39화 조총(2)
#38
***
"대장, 조선이 보입니다."
"전열을 갖추어라. 최대한 빨리 섬들을 정리해."
"하잇"
"빨리빨리 노를 저어라."
"하잇"
'조생진 놈들, 재작년 손죽도에서 굴욕을 갚아주마."
재작년 손죽도에서의 일을 어찌 잊으랴.
작은 섬에서 노략질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한 무리의 집단들이 왔다.
제법 활도 쏠 줄 알고 말이야.
속절없이 밀리다, 부하들을 버리고 부끄럽게 도망치던 과거가 떠올랐다.
"뿌득"
이빨을 갈았다.
다시금, 기존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조선의 무력을 보았던 터.
하지만, 만약 왜선이 조금 더 있었다면?
아마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으로 빚까지 왕창 져서 기존 병력의 2배를 만들었다.
"크크크, 이 정도면 작은 병영 하나 정도는 초토화하기도 쉽지."
그러면서, 자신의 옆에 있는 소총을 쓰다듬었다.
어렵게 구한 소총. 이것만 있으면 제깟 놈들이 별 수 있나.
이번에 한탕 크게 한 후 병력을 더 늘려, 점점 크게 키워나간다.
생각만 해도 짜릿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켈켈켈켈'
저 멀리 첫 번째 약탈을 할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
"자네 그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아 글쎄, 지방에 마마가 돌았는데 신선이 나타나 마마신과 싸웠다는군."
"신선이 아니라 제자인 도령이라던데?"
소문이 퍼지고 퍼져 드디어 박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뭐 신선도령님이 마마신을?"
박호는 그날로 바로 집을 나섰다.
"아니, 도령님도 참, 그런 일이 있으면 응당 이 박호를 불리셨어야죠. 내 이럴 것이 아니다. 당장 도령님을 만나러 떠나야겠다."
내려가는 길,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박호가 말했다.
"혹시 소문 들으셨습니까?"
"네? 무슨 소문이요?"
"어허, 이분이 아직도 듣지 못하셨군요."
...
"이렇게 된 것입니다."
"정말로 대단하시네요."
"믿습니까?"
"믿습니다."
"그러면 '신도'라고 하시면 됩니다. 신선도령을 믿습니다. 라는 뜻이죠."
극성 신성도령 팬 모임.
신도의 출현이었다.
물론 음성적이지만, 점차 그 크기가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한편,
나는 방안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당장 임시로 사용할 화약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염초 밭을 만들었지만 아직은 시기가 더 필요했다.
"인도나 중국과 교역이 활발하다면 초석을 구입해 쉽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자연적으로 초석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신대륙을 제외하면, 인도와 중국이었다.
중국이 폭죽놀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초석으로 화약을 만들기 쉬운 문화적 배경이 있어서였다.
한국이나 조선이나 자원이 없어 힘들어하는 것이 어찌도 이리 같을까. 그나마 한국은 무역과 교통이 발달하여 나름 잘살게 되었다지만, 이놈의 조선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찌질한 마인드로 도로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에휴, 다음으로는 도로인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돌쇠를 불렀다.
"돌쇠야!"
"도련님, 이번엔 또 무슨 일이여유?"
저번에 허준에게 일침을 당한 후 요즘은 나에게서 열 보 이상 떨어져 말을 하는 중이었다.
"가까이 오거라. 지금은 내 말이 잘 안 들릴 텐데."
"아닌데유, 엄청 잘 들리는데유."
이 녀석, 단단히 삐진 모양이네.
일단 바쁘니 화는 다음에 풀어주기로 하고,
"여하튼 너는 지금 당장, 흙 중에서도 짜거나 시거나 달거나 쓴 흙을 조금 구해오너라."
"네, 아니 도대체 흙이 무슨 맛이 있어유!"
"그래 보통 흙이라면 맛이 없지, 하지만 지붕 밑, 오랜된 담벼락, 아궁이 주변, 화장실 주변 등 오래된 땅 주변에는 저런 흙이 있다. 그리고 하얀색이 나는 결정이 들어있으면 최상의 흙이다."
"아이고, 살다 살다 이제는 별 이상한 것까지 제가 하네유."
"우리 집에서 다 찾았으면 무강이네 집을 깡그리 뒤지거라. 나는 아랫집에 다녀오마."
염초밭이 제대로 가동만 된다면, 더 쉽게 구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원시적으로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얼마나 흙을 파고 다녔던가,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아이고 힘들다."
돌쇠가 작은 항아리 가득, 흙을 담아왔다.
"허허, 겨우 그 정도냐?"
무강이가 돌쇠보다 조금 큰 항아리에 가득 흙을 담아왔다.
자신이 이겼다는 듯 자랑스러워하는 얼굴.
"아니, 이것들이 하루 종일 놀았냐!"
내가 호통을 쳤다.
"네에? 놀았다유!"
"형님, 억울합니다. 하루 종일 찾았습니다. 얼마나 숙이고 다녔는지 허리도 아픕니다."
"맞아유, 제 얼굴 좀 보셔유. 온통 흙투성이쥬?"
아놔, 이것들이 장난하나.
쾅!
거대한 항아리 가득 흙이 담겨 있었다.
"사내라면 이 정도는 모아와야지. 쯧!"
"허억!"
"히엑! 어···. 엄청난 양이다."
지급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고작 이 정도로 놀라면 쓰나.
"자, 흙을 불에 태우고, 그 흙을 다시 잘 섞어 나무통에 담은 후 물을 붓거라."
"형님, 이번에는 또 무슨 신통한 것을 만드는 것입니까?"
"흐흐흐, 글쎄 뭐가 나올 것 같으냐?"
"저러써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갑니다."
"아마, 나중에 깜짝 놀랄 물건이 나올 것이다."
1635년(인조 13)에 저술된 이서(李曙)의 ≪신전자취염초방≫과 1698년에 이루어진 ≪신전자초방≫에서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초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가마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펄펄 끓인 물을 약간 조려서 식혔다.
그리고 다른 흙을 넣어서 흙 성분을 우려내기를 계속 반복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하자."
아침부터 우려낸 채로 건져내어 물을 다시금 끓이고, 식히고 끓이기를 몇 차례 하자, 물이 말라가면서 먼저 사각형 모양의 소금 결정이 먼저 만들어졌다. 소금을 건져내고, 더 말리자 창모양으로 길쭉한 결정이 나온다.
"드디어 만들어졌구나.!"
질산칼슘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초석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하여, 석탄에 초석 가루를 던져 넣었다. 불꽃이 튀지 않고 번쩍거리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상급이군!'
유럽의 경우, 미신으로 박쥐의 피를 약간 넣었다고 한다. 밤에도 목표물을 맞혀준다고 믿으면서···.
"도련님, 이 하얀 것은 뭐여유? 소금 같기도 하네유."
"이것이 나중에 천둥을 치고 벼락을 치게 할 가루다."
"도련님, 쇤내가 아무리 일자 무식이여두, 이번에는 안 속아요."
"그···. 그렇지, 형님. 저도 깜빡 속을 뻔했습니다. 하하하."
어쩌다, 내 이미지가 이렇게 되었을까?
후회해도 늦었다.
흑색화약을 만들기 위해 질산칼륨을 중심으로 숯과 황을 적정 비율로 섞었다. 물론, 비율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최적의 조합 비율.
섞는 비율에 따라서, 품질에 많은 차이가 난다.
옛날에는 경험적 지식으로만 비율을 맞췄기 때문에 동일한 성분으로 화약을 생산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지.'
이 3가지 물질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질산칼륨(KNO3)의 질산(NO3)은 반응 시 산소를 공급하고,
숯은 연소 반응이 일어날 수 있도록 탄소를 공급하고,
황은 낮은 온도에서도 발화하며 폭발을 증가시킨다.
이 3개의 물질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비로소 화약이 되는 것.
가루를 갈아서, 서로 섞어서 덩어리로 만든다.
두꺼운 채로 친다.
그다음에는 고운 채로 다시 친다.
그렇게 너무 두꺼운 것은 다시 갈고, 너무 얇은 것은 다시 반죽을 한다. 적당한 크기의 화약 알갱이를 만들었다.
적당한 크기에 잘 혼합된 화약. 즉, 균질성이 격발 및 사거리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때문에, 절대로 사소하게 다룰 수 없는 상황.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아니 이게 누구여유. 잘 지내셨슈."
"그래, 돌쇠도 잘 있었냐?"
박호가 왔다.
이놈은 또 왜 온 거야?
아니지, 일손 하나가 부족했는데 잘되었네.
그렇게, 무료 일꾼 한 명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아이고, 도령님, 이번에는 마마를 잡으셨다고 하는데 제가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이리 급하게 내려왔습니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마치 자기일 인 것처럼 좋아하는 모습.
"어, 고마워, 그런데 겨우 그것 때문에 온 거야?"
"도령님이 계신 곳에 제가 있는 것이 당연한데, 섭섭합니다."
"뭐, 와주면 좋긴 한데, 진짜로 왜 온 거야?"
"형님과 함께 대과 시험에 응시하려고 왔습니다."
"뭐?"
"원래는 소과 급제자들에게 백패를 주어야 하나, 갑자기 역병이 번져 미루어지지 않았습니까. 마침 역병이 잘 마무리되어 나라의 큰 복이라며 알성시를 연다고 합니다. 그 후 한꺼번에 백패와 홍패를 하사한다고 합니다."
'뭐! 선조가 지금 이 시기에 알성시를 실시했다고?'
내가 알기론 그런 적이 없다.
역사가 내가 알던 것과 다르다고!!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백성들과 식구들을 위해서 이것저것 조선에 도입했었다.
역병을 막아서 그런가?
내가 알던 역사가 뒤틀려지기 시작했다.
"도령님, 알성시가 열린다고 하니 그렇게 기쁘십니까?"
"아···. 뭐, 좋긴 하지."
알성시란 정기적 시험이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이벤트 시험이다. 왕이 주관하며 기존의 초시에서 복시까지 가는 복잡한 단계가 아닌 한방에 합격생이 나오는 시험.
그런 시험이 열린다면 좋지만, 기록에도 없는 시험이라니.
선조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화약을 만들어야 하니까.
"박호야, 이젠 일해야지?"
"네?"
우리집에 오자마자 그렇게 무료일꾼 1호가 일을 시작했다.
"헉헉...도령님, 이거 언제까지 하나요?"
귀하게 자라 글공부만 했나?
박호가 금세 힘들어 했다.
"박호, 나를 이기고 장원급제를 하고 싶다고?"
"네, 그렇습니다."
"이거 끝나면 과거시험의 팁을 주지!"
"..."
"와아아악, 다 비켜, 내가 한다."
씨익, 절로 웃음이 나왔다.
후후후, 학생들 가르치는 거야 내 전공이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형님,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쉬면 안될까요?"
"도련님, 이러다 저 정말로 죽어유."
박호는 너무 열심히 달린 탓일까 이미 쓰러져 있었다.
"쯧. 어쩔수 없지. 오늘 고생이 많았으니 다들 쉬고, 내일 일찍 일어나."
내가 먼저 등을 돌리고 사라지자.
나를 바라보는 4개의 눈동자만이 사납게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깊은 밤을 혼란스럽게 보내고, 다음 날 아침 퀭한 얼굴로 일어났다. 새벽에 상쾌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벌인 일이니, 최대한 내가 수습해야지.'
마음의 결정을 내렸으니 이제는 수습해야 하는 단계.
화약을 만들면서 틈틈이 대장간을 찾아가 만들어진 부품을 수정하고, 다듬었다. 그리고 오늘 최종 완성품이 나온다.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대장간으로 가면서 초선에 처음 만들어지는 총을 상상해보았다.
"야장님, 저 왔습니다."
그동안 왕래로 인해서 친해진 사이
"도련님 오셨습니까?"
"그동안 무례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허, 아닙니다. 제가 8살 때부터 쇠붙이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망치질을 해온 게 수십 년입니다. 하지만 요 며칠 같이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부분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존경과 기쁨이 묻어났다.
"감사합니다. 일단은 물건을 볼까요."
"네, 따라오시지요."
진열장에 걸러져 있는 총이 반짝였다.
막상 보니 현대의 총과는 다르게 고풍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꿀꺽.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초록색이 총기 전체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잘 만들어졌구나.'
기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도련님, 이름을 붙여주십시오."
이름이라,
여기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라면 추억이 들만한 이름을 말했다.
"케이투요."
앞으로 케이투 소총과 함께, 조선을 바꾸어 나가야겠다.
일단은 밀어두었던 정여립 먼저 만나봐야겠군.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