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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쌤님의 서재입니다.

어게인 조선에서 힐링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레인쌤
작품등록일 :
2023.10.17 09:41
최근연재일 :
2024.02.05 21:53
연재수 :
99 회
조회수 :
306,336
추천수 :
7,281
글자수 :
583,899

작성
23.11.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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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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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글자
18쪽

23화 남한산성 (2)

DUMMY

#23



얼핏 보면 보일까?

초록색 불빛이 아니었다면 확인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았다.


오메가(Ω) 모양의 쇠말뚝.

그 쇠말뚝을 기준으로 양옆에 이를 보조하듯 한 쌍의 다른 쇠말뚝이 박혀 있었다. 보는 순간 그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쇠말뚝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다.

일본이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했다는 의견과

혹은 등산로나 측량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 기억 한편에는 할머니와 쇠말뚝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어렸던 나는 방학한 김에 할머니 댁에 놀러 갔었다.

할 일 없이 여느 초등학생처럼 마당에서 흙 놀이를 하던 중,

갑자기 용달차 두 대가 할머니 집으로 왔다.

할머니와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시고는

서둘러 그 용달차 사람들과 할머니는 어디론가 가셨다.


어둑어둑해 저서야, 할머니와 용달차가 돌아왔다.

쿵!

커다랗고 불길해 보이는 시뻘겋게 녹슨 쇳덩이가 3개가 있었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어린 마음에 궁금해하던 나에게 저리로 가라고 손짓을 하셨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몇 시간 동안 구슬픈 방울 소리가 들렸다.

다시금 마을 사람 몇 명이 와서 할머니를 도왔다.

아리따운 한복을 입고 나오신 할머니는 이내 신내림을 한 듯,

하늘을 보면서 연신 뭐라고 하셨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뭐라고 하시는 거지?

어린 마음에 생긴 궁금증, 나는 할머니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누군가에게 사죄하시면서 굿을 진행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스쳤다.


생각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쇠말뚝에 손을 댔다.

쑤욱!

순간 무언가 내 몸 안에서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핑.

머리가 어지러웠다.


윽~!

나도 모르게 비틀거리자,


"괜찮으세요?"

옆에 있던 이라마가 깜짝 놀라 나를 부축해주었다.


"아···. 네, 잠시 현기증이 나서···."

다시금 쇠말뚝을 잡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쇠말뚝을 당기자 신기하게도 서서히 쇠말뚝이 빠져나왔다.


"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뽑을 수 있으세요?"

옆에 있었던 그녀가 놀란 듯 물었다.


어떻게 했냐고요?

그냥 하니까 되던데.


마치 엑스칼리버가 아서왕을 만난 것처럼,

내가 손을 대자 쇠말뚝이 힘없이 빠져나왔다.

그렇게 빠져나오자 구멍을 내려다 봤다.

시뻘건 쇳물, 혈향의 강한 철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으···. 이거. 피 냄새 아닌가요?"

놀란 이라마.

그러게, 이건 누가 봐도 핏물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거기에선 오랜 기간 녹슨 쇳물이 마치 핏물처럼 들어있었다.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꺼내서 닦아냈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어디서 생겼는지 자꾸 뻘건 물이 생겨났다.

마치 피를 닦아냈더니 다시금 피가 차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계속 닦아내자 어느새 피가 멈춘 것처럼 녹물이 멈췄다.


그 순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이 아팠다.

옆에 있던 그녀도 같은 느낌이였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어있었다. 신기한 현상이였다.


조심스럽게 쇠말뚝을 바닥에 내려놓고, 옆에 있는 보조 쇠말뚝을 바라보았다.


"이건, 제가 한번 해봐도 될까요?"

내가 너무 손쉽게 쇠말뚝을 꺼내자 자기도 해보고 싶은 모양.


"얼마든지요."

나는 옆으로 비켜섰다.


이라마가 두손으로 쇠말뚝을 잡고 힘껏 당겼다.

"읔!"

하지만, 아무리 당겨도 빠질 생각이 없었다.


산책로에서 가까운 위치.

우리 둘이 무언가를 뽑아내는 모습을 하자,

사람들이 신기한 듯 한두 명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이거 상황이 애매하네, 얼른 끝내자.


"이번엔 제가 해볼게요."

나는 다시금 쇠붙이에 손을 댔다.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큿~!

살짝 힘을 주자, 쇠말뚝이 무가 뽑히듯 쑤욱 뽑혔다.

내가 쇠말뚝을 너무나 쉽게 뽑아내자, 주변사람들도 놀라워했다.

"와, 대박"

"저게 저렇게 쉽게 뽑히는 거예요."

"힘 엄청 센가 보네."

"얼굴도 잘생겼는데, 힘도 좋은가 보네."

"허리는 얇은 게 힘없어 보이는데?"


허리 생각보다 탄력적이거든요.

힘도 좋은데요, 다른 곳도 좋···.

참나, 이걸 보여줄 수도 없고.


마지막 쇠말뚝도 뽑아냈다.

"와아아아!"

"짝짝짝!"

"대단하다, 저 사람 뭐야?"

"저걸 저렇게 쉽게? 스포츠 선수인가."

"영화 촬영인가?"

야단법석,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상황.


애앵애앵~.

저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문화재 훼손을 하는 줄 알고 신고를 한 모양이였다.


경찰이 도착했을 땐,

이미 바닥에 총 3개의 쇠말뚝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혹시, 이거 손으로 뽑으신 겁니까?"

바닥에 놓인 쇠말뚝을 보면서 경찰의 의구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네, 그냥 당기니까 빠지던데요?"

"네?"

"죄송한데,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신고가 들어와서요."

내가 신분증을 건내자, 옆에 있던 보조경찰이 궁금한 듯 물었다.

"혹시 초능력 있으세요?"

"아니,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조선은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냥 가볍게 웃어주었다.


소란스러운 상황이 끝나자, 경찰이 떠나고, 등산객들도 떠나갔다. 그리고 우리도 등을 돌려 돌아섰다.


'고맙구나.'

누군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휙~.

뒤를 돌아보았지만, 당연하게 아무도 없었다.

온조왕 사당이 있는 방향에서 들린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잠시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작가님?"

"아네, 죄송합니다. 생각할 게 있어서요. 그만 내려가실까요?"


오늘 이후, 가끔 남한산성에서 이상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졌다.

귀신 멘트가 자신이 온조왕이라나 뭐라나.

요즘 사람 중에 온조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나?

'내가 온조왕이다. 네? 누구요? 딱 이럴거 같은데...'



***


5만 너튜버 하꼬,

최근 구독자 수가 정체 중인 상황으로 골치가 아팠다.

복잡한 마음에 머리도 식힐 겸,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야산에 이상한 남녀 한 쌍이 보였다.

거리를 살짝 벌려서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남녀.

"좋을 때다."


절대로 눈꼴셔서 그런 건 아니었다.

보기 싫은 커플들 앞을 치고 나가면서 슬쩍 돌아봤다.


'우와'

살짝 보기에도 상당한 미녀였다.

그런데, 남자는

검정 추리닝?

'돈 많은가 봐. 남자는 역시 돈, 나도 꼭 성공한다.'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두 남녀가 갑자기 산으로 들어갔다.


'뭐여? 갑자기.'

혹시? 에이 설마? 아니겠지만...!!!


너튜버의 본능.

자극적인 상황엔 일단 켜라.

그렇게 온에어 버튼을 눌렀다.


"유하 유하, 형님들 하꼬입니다."

오늘은 휴재 공지를 내놓고 쉬러 나왔지만,

이런 상황에선 방송은 무조건 키는게 옳았다.

그래도 나름 5만 너튜버, 사람들이 한두명씩 들어오고 있었다.


- 아니, 오늘 휴방이라며?

- 하꼬가 뭐 맨날 그렇지, 언제 말 지키는거 봤어.

- 저번에 벌칙도 '왜 나에게만 이렇게 엄격한건데'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갔지?


"하하하, 형님들 지나간 일은 잊으시고요. 오늘 방송을 킨 이유. 방금 남녀 한 쌍이 남한산성 야산으로 들어갔습니다."


- 뭐?

- ᄋ·ᄋ

- ????

- !!!!!

- !!!!!!!!!!!!!

- 야스?

- 불타는 밤님이 [후원 : 5000원]을 하셨습니다. : 오늘 산불 나는 날인가? 다 불태워라~.


"어허, 형님들 방송심의 규정을 준수 바랍니다. 과도한 채팅시 저도 어쩔 수 없이 채금 때립니다. 사실, 방송을 킨 이유는 그것 보다 요즘 웹소설도 힐링이 대세 아닙니까? 그래서 힐링 방송을 좀 해볼까 해서..."

살짝 눈치를 봤다.


- 노노

- 노잼, 노잼

- 하차합니다.

- 방송 꺼라.

- 마! 정신차려라.


이거 점점 나빠지는 분위기네.

"아하하하, 농담입니다."


그러면서 방금 산으로 올라간 커플 쪽을 바라봤다. 방송 실수인 척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면 바로 카메라를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산책로 바로 옆에서 멈추어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산으로 들어가다 멈췄네요. 그런데 이상한 짓을 합니다."

그래도 나름 5만까지 너튜브를 그나마 끌어올 수 있었던 이유. 멘트를 자극적으로 뽑을 줄 알기 때문이었다.


- ??

- 이상한 짓??

- !!!!!!!!!

- 카메라 돌려!

- 돌려라, 돌려.

- YAS

- 야, 너만 좋은거 보냐? 시청자가 우습냐!!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흥을 이어갈 때,


"형님들의 기대에 부흥하고자 카메라 살짝 돌려볼게요."

그렇게 카메라를 돌렸다.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늘씬한 몸매의 여성과 한 남성이 산 중턱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양새.

- 우와, 여자분 몸매 죽여준다.

- 이거 하꼬 흑심으로 찍는 거 아냐?

- 여성분 클로즈업하면 후원 쏜다.

- 여성분 얼굴을 공개하라!

- 공개하라.!!

- 공개, 공개!!!!!!

- 얼굴이 최고 아님 님이 [후원 : 1,000원]을 하였습니다. : 얼굴 공개하면 만원 간다.!!


"하하하, 방송 허락 안 받고 그냥 막 올리면 위험합니다. 형님들."

그렇게 유치한 말 따먹기를 하는 도중이었다.


"남자가 뭔가를 뽑는데요, 조금 클로즈업 해볼게요."


쑤욱, 커다란 쇠말뚝이 뽑혔나왔다.

- !!!!

- !!!!!!!!!!!

- 방금 뭐한거냐?

- 저런 게 저렇게 쉽게 뽑히는 거냐?

- 주작 방송이네.

- 주작, 주작.

- 해명해, 해명해!

- 뭐지? 내가 뭘 본거지?


처음에는 다들 주작인 줄 알았다.

그때였다.


"어, 나 저분 알아요?"

인터넷 조회수를 위해선, 사이버 렉카 활동도 필수.

과거 이건우 영상이 유명할 때가 있었다.


"저분 그...아! 이...이건우 교수네요."

- 이건우가 누꼬?

- 백제본기 이건우 모름?

- 백제본기 모르면 일본인인데?

- 일제를 백제로 바꾸신 분.

- 누꼬? 잡았다. 일본놈.


"주변에 상황 들어보니, 일본이 박아놓은 쇠말뚝을 손으로 뽑았다는데요?"

- ?????

- ????

- 네? 뭘 뽑아요? 쇠를요?


- 캬, 차력쑈 지리네.

- 저런걸 뽑을려면 악력이랑, 허리힘이 얼마나 좋은 거지?

- 남자는 허리힘 아닙니까?


- 여성분이 따르는 이유를 알겠네, 힘캐네 힘캐.

- 저도 오늘부터 차력 배우러 갑니다.

- 저도 오늘부터 끊었던 헬스 다시 다닙니다.


- ㅋㅋ, 맨날 방구석에서 클릭질이나 하는 놈들이 헬스는 무슨.

- 아니, 그나저나 아직도 저런 쇠가 박혀 있다고?

- 저거 주작 아님? 길을 가다가 갑자기 쇠를 뽑는다고?


- 캬, 역시 건우형님. 일본 만행에는 가차 없죠.

- 건우형님은 일본에 대해선 진심이시다.

- 건우형님, 손아귀 힘이 얼마나 샌 거냐? 저런 쇠 파이프도 뽑아내고.


- 건우형님, 한순간이지만 이상한 생각 해서 죄송합니다.

- 건우형님, 설마 저기 쇠 파이프 박힌 거 아시고 직접 뽑으러 오신 거냐?

- 진짜로, 쇠 파이프 때문에 직접 오신 거라고?

- 아니면 왜 옴?


- 갓 건우, 갓 건우,

- 그저 빛.

- 일본열도 기다려라, 건우 형님 나가신다.

순식간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순간 하꼬는 생각했다.

'이거 조회 수 좀 빨겠는데?'


그리고, 그 조회 수에는 일본도 포함되어 있었다.

***


남한산성을 내려오는 길.

어휴 귀가 간지럽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 옷이 많이 더러워졌어요."

그녀가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나를 도와주느라 이라마 옷도 많이 더러워졌네.'

그녀의 옷도 많이 더러워져 있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아니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나야 본능적으로 움직인 거지만,

나를 도와주느라 여기저기 진흙이 묻고 살짝 뜯겨있는 옷이 자꾸 신경쓰였다. 그리고 작은 미안함이 생겼다.


"음. 저도 옷이 지저분해져서 새로 살까 했는데, 제 옷 사는 것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건···."

뭔가 애매한 상황. 내가 강하게 나가야 오히려 상대방이 결정하기 쉬울 것 같았다.


"제발 같이 가 주세요. 제가 옷 진짜로 잘 못 고르거든요."

"풋."

그만 웃음을 터트린 이라마.

온통 흙투성이인 상황에서 비굴한 멘트가 꽤나 재미가 있었나?

의외의 좋은 반응이 나왔다.


"좋아요. 대신에 오늘 고생했으니 맛있는 거 사주세요."

"맛있는 거요?"

"네."


그렇지 않아도 집에 가면 귀찮아서 라면 먹으려고 했는데

오, 잘됐다.


"좋습니다. 제가 사는 거니까 대신 메뉴는 제가 고릅니다."

"네, 그 정도는 제가 양보하죠."


그렇게, 우리 둘은 라렌이를 타고 강남으로 이동했다.

라렌아 달려~!!


조만간 고구려대학교 강단에 서기로 했다.

첫 강의, 첫인상의 중요성!

사회생활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

그래서 큰맘 먹고, 슈트를 구매하기로 했다.


강남 톰포드 매장.


"어서 오세요?"

더러운 추리링 복장을 보더니 다소 놀란 점원.


'흐흐흐, 죄송합니다. 조금 놀라셨죠?'


만약 멕라렌을 타고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웃픈 상황, 하지만 노련한 점원은 금세 얼굴 표정을 바꾸고 한없이 밝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안내로 이동한 2층 매장, 점원이 건네준 슈트를 입어보고 있다.


"이건 올해 유행하는 디자인인데 어떠세요?"

"무늬 패턴이 들어간 건 어떠신가요?"

"모던한 것 좋아하시면 이 스타일도 좋아요. 한번 입어보세요."


이런저런 슈트를 걸치면서 전면 거울에 서서 내 모습을 봤다.

내내 이야기가 없던 이라마가 반응을 보였다.

"이번게 좋아 보여요."

"네? 이거요?"


고생이라면 나름 했던 나.

키는 작은 편은 아니고, 살이 없는 다소 마른 체형이었다.

얼굴은?

과거에 맘고생 때문인지 뺨이 홀쭉해서 광대뼈가 강조되어 보였다. 마른 해골 같은 인상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최근 이런저런 좋은 일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서인가.

얼굴 살이 제법 붙었다.


흉물스럽게 보였던 인상이 살이 붙고, 피부가 탄력적으로 변하니, 이런 말 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내가 봐도 꽤 괜찮아진 상태.

그래서일까?

수트빨이 제법 어울렸다.


이라마를 내 여친으로 아는 듯한 점원이 바로 호응을 시작했다.


"어머 고객님, 보는 눈 너무 좋으시다."

"여자 친구분이 너무 이쁘세요. 이래서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 봐요!"


아니! 방금 그 말,

내가 돈만 있고 다른 것은 없는 남자 같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분 돌쇠 친척분인가?

축구 선수 하셨으면 잘하셨을 듯.

무슨 말이냐고?

돌려 까기 잘하신다고.


"네, 작가님 분위기랑 너무 잘 어울리세요."

이라마가 내 슈트의 깃을 매만져주었다.

어깨선이 가운데 오도록 해주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고민하는 눈치로 나를 바라봤다.


눈치빠른 직원은 그저 도울 뿐.

"그러게요, 군살이 없으셔서 핏이 살아나세요."

"얼굴도 잡티가 없고 화사한 편이라서 더 세련되어 보이세요."

여성 점원 2명이 옆에서 연신 칭찬해주고 있었다.


"음. 조금 쪼이는 것 같은데···"

신세대들에게 어울리는 다소 윤곽이 드러나는 옷이 부담스러웠다.


"아니에요. 고객님은 슈트를 약간 쪼여 입어야 멋있어요."

"네, 그게 멋있어요."


점원들이야 매번 이러니 신빙성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이라마의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물건을 결재하러 갔다.

"네, 이게 더 젊어 보여요."


"아. 젊어 보여요?"

나도 이젠 나이가 드나?

젊어 보인다고···.

꽉 조여서 마음에 안 들었던 수백만 원짜리 슈트.

그냥 샀다.


그렇게 뒤돌아서 나가려는 이라마를 내가 붙잡았다.

"옷이 더러운데, 옷 한 벌 사드릴게요?."

"네? 여기 비싼데···."


그거 얼마나 한다고, 나는 바로 점원을 불렀다.

"여기, 이분이 입을 만한 옷 한 벌 추천 좀 해주세요."

거부할 틈도 없이, 점원에게 붙잡혀서 어디론가 끌려가는 이라마였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패션쇼를 하듯, 이옷 저옷 갈아입고 나오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뭐, 안 어울리는 게 없네.

본바탕이 좋은 사람이었다.

흔히 말하는 옷걸이가 좋은 사람. 그 사람이 이라마였다.


"꺄악, 제가 점원 생활 5년 했는데,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잘 어울리세요."

"어쩜 어쩜, 이렇게 입는 옷마다 전부 잘 어울리죠? 혹시 모델이세요?"

"아···. 아니요."

과도한 칭찬에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런 상황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야 하는 물건이 결정되었다.

"와아···."

이라마가 몸매가 적당히 드러나는 핏이 들어간 투피스를 입고 나왔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점원도 만족스럽다는 듯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만장일치 결정.


"초면에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라마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괜찮습니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요. 그리고 저 때문에 옷이 지저분해진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내가 말하면서도 놀랐다.

과거 몇천 원에도 벌벌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이래서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한다.

슬프게도 이게 현실,

돈이 많으면 행복한건 아니지만, 없으면 불행한 건 사실인거 같다.

내가 그랬으니까...


가만? 누군가랑 쇼핑할 수 있는 상황, 기회라니

이건 흔치 않은 기회긴 한데?

다음 장소가 그렇게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에 조금 썼는데, 중간에 끊기가 어려워 8000자로 올립니다. 최근 내용이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글로 죄송한 마음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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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태극비누 +4 23.11.11 5,157 106 13쪽
13 13화 여기부터 저기까지 +10 23.11.11 5,265 91 14쪽
12 12화 플렉스 +16 23.11.10 5,452 106 13쪽
11 11화 선빵필승 (내용 추가) +7 23.11.09 5,595 10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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