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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님의 서재입니다.

40대 부장님이 연예계를 장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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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인절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18 21:55
최근연재일 :
2024.06.17 23:54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516
추천수 :
107
글자수 :
125,305

작성
24.06.09 23:59
조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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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아저씨 (2)

DUMMY

차준혁의 대사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한소리와 조연 배우들은 물론 감독과 작가, 그리고 속으로 쓴 침을 삼키던 강민호까지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돼···!’


단순히 운과 다른 요소로 인해 주연 자리를 뺏긴 것이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강민호는 자신의 격과 자존심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명연기.

차준혁과 자신은 오직 하나, 실력 차이만으로 캐스팅이 좌지우지 됐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봐요 유하린 씨. 지금 1분 늦었네요?”


단순한 평대사를 뱉었음에도 차준혁의 얼굴에 모든 시선에 꽂혔다.

관용이라곤 없는 원칙주의자다운 감정없는 대사.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캐릭터 설명을 차준혁은 단 몇 마디로 단숨에 표현한 것이다.


“엄연한 지각입니다. 다음부턴 늦지 않게 조심하세요.”


극중 백민혁 부장은 국내 1위 유통회사인 '배스코'의 낙하산 재벌3세였다.

그러다보니 그 누구도 감히 백민혁을 건들 사람은 없었고, 그건 그의 상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요즘엔 말야···. 도대체가 회사에 목숨 건 사람이 없어."


회사가 말그대로 자기 소유나 마찬가지인 백민혁만이 할 수 있는 말.

그야말로 자아도취와 선민의식에 빠져있는 그는 도무지 설렁설렁 일하는 주변 부하직원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노력하면 돼! 응? 나도 다 겪어봐서 알아.

-이봐, 나도 밑바닥부터 올라왔어. 목숨 걸고 해봤어?!


재벌3세가 인생 경험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는가.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전부인줄 아는 배스코의 직원들에게 부러움과 차가운 시선을 동시에 받았다.

자칫하면 비호감의 끝을 달릴 수 있는 뉴 매뉴얼의 남자주인공 백민혁.


하지만.


“그걸 제가 왜 해야 하죠, 부장님?”


그런 천하무적 백민혁 부장에게 눈 똑바로 뜨고 대드는 부하직원 유하린.

처음 당해보는 대우에 백민혁은 그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볼 뿐이고.

넋을 잃는 동안 유하린으로부터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듣게 된다.


“솔직히 재수없어요, 부장님.”

“뭐, 뭐라고?!”


대체 무얼 믿고 덤비나 싶은 백민혁이지만.

알고 보니 전직 장관의 막내딸이었던 유하린이었다.

그야말로 금수저와 권력 수저의 한판 대결.


뉴 매뉴얼의 리딩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 갔다.

높은 탑이었던 백민혁의 고고한 위치가 유하린이라는 존재에 의해 점차 금이 가면서 스토리는 점차 흥미로워졌다.


“아버지한테 말만 하면 당신 따위 파리 목숨이야.”

“그렇구나. 부장님씩이나 돼서 파파보이시구나.”

“···?!”


백민혁은 유하린에게 좀처럼 당해내질 못했다.

유하린의 등장 전까지 백민혁이라는 캐릭터는 안하무인의 콧대 높은 캐릭터.

그녀가 없었으면 시청자들에게 질타를 받을 위험이 충분한 그런 인물이었다.


‘다행히도 유하린이 밸런스를 잘 맞춰주고 있어.’


엄청난 연기력인지 아니면 실제 모습인지 모를 한소리의 MZ 캐릭터 연기.

그녀의 톡 쏘는 대사에 백민혁을 향한 부정적인 첫인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얼굴이 한 건 하네.’


이원식 감독은 차준혁을 보며 눈과 귀에 온 감각을 쏟았다.

귀로는 그의 대사톤을 맞춰보았고, 눈으로는 가릴 수 없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잘 생겨서 뭘 해도 호감이에요.”

“사실 그렇지.”


이원식 감독과 유소원 작가는 진지하게 리딩이 진행되는 와중에 조용히 속닥였다.


이와중에 드문드문 튀어나오는 차준혁의 애드립.


“이게 무슨 쌍팔년도 기획안이야?”


낯선 단어에 한소리 배우는 물론 몇몇 조연들이 당황했지만.

막내아들인 백민혁은 나이 지긋한 아버지로부터 총애를 받았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오히려 캐릭터의 입체감을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엄청나네. 대본에도 없는 디테일을.”

“지금···. 애드립으로 하는 거야 저거?”


점점 웅성대는 배우들의 소리가 회의실 안을 가득 메웠다.

대본 리딩 현장은 사실 차준혁 개인의 차력쇼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뉴 매뉴얼의 백민혁 부장.

하지만 얕은 수준의 흉내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이 환생한 기분이었다.


‘속에 아저씨가 들어있어. 대체 얼마나 연기연습을 한 거야···?!’


구석에서 가장 놀라고 있는 강일환 본부장이었다.

차준혁의 미모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은 업계 사람인 그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도저히 흠 잡을 데가 없잖아.’


차준혁의 연기력이 기대 이상이다.

아니, 이상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이보다 더 대본을 잘 소화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치 유소원 작가가 차준혁 배우에게 맞춤형 대사를 하나하나 써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준혁.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미모의 청년에 아저씨의 결합이라니.

이원식 감독이 괜히 들떠있던 것이 아니었다.

정반대의 요소를 최상의 정반합으로 만들어 브라운관에 띄울 수 있단 생각에 그렇게 실실대고 웃었던 것이다.


어느새 1화의 중후반부까지 치달았다.

매끈한 대본 덕분인지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이다.


“부장님. 근데 왜 자꾸 쫓아오세요?”

“그럼 고작 너 같은 거 때문에 길을 돌아가리?”


대사 한 토시마다 차준혁의 즉흥 애드리브가 녹아 있었다.

젊은 청년이 가진 풋사과 같은 매력과 아저씨가 내뱉을 만한 뉘앙스나 단어 같은 것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있었다.


“재벌이 무슨 회사를 걸어서 퇴근한대?”

“기름값은 땅 파서 나오나? 참, 요즘 것들이란.”


퇴근길에서까지 지속되는 두 남녀의 싸움.

얼핏 보면 유치할 수 있는 대화였지만 유소원 작가의 대사에 담긴 말맛으로 재밌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로맨스 코미디에 나오는 전형적이지만 여주와 남주의 케미스트리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장면이었다.


‘······!’


그러다가 백민혁 부장은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내면으로부터 느끼게 되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리고.


-백민혁은 이상함을 감지하고 서서히 유하린에게 다가갔다.


조연출이 지문을 읽어오자 차준혁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1화 엔딩 지점에 있는 추가된 행동 지문.

바로 유하린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매만진다는 그 연기를 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킨십엔 익숙하지 않다고···!’


운 좋게도 새롭게 탄생한 재벌 3세 꼰대부장 백민혁 캐릭터.

그 덕에 마치 시트콤처럼 재밌는 남자 주인공이 탄생했고 극 전체에 자연스럽게 가벼움과 무거움을 배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의 본질은 바로 두 남녀 간에 벌어지는 애정 라인이었다.

앞에서 아무리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연기했어도 애틋한 대사나 스킨십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지 못하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차준혁은 다가오는 엔딩 포인트에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장현우 매니저는 귀신처럼 그의 중심이 흔들렸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준혁아. 중심 잡고 지금까지 한 대로만 하자!’


차마 입 밖으로 전달할 순 없었지만 매니저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자신의 응원을 전달했다.

하지만 연기란 차준혁의 인생에서 매우 낯선 일이었다.


‘응? 갑자기 숨이 불안정해지는데.’


조연출이 지문을 하나하나씩 읽어가자 차준혁의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옆에 앉은 한소리는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그를 쳐다봤다.

그녀가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존나 잘 생겼네.’


그리고 마침내.

조연출이 지문이 적힌 문단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백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유하린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매만지기 시작한다.


보통 리딩 자리에서는 대사만 맞춰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의 행동, 게다가 바로 옆자리끼리의 배우들은 동작까지 맞춰보며 대본의 흐름을 체화시키는 데 집중하곤 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었다.

모두가 주목한 1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차준혁이 한소리의 얼굴을 매만지며 연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


그때.

차준혁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그의 연기의 흐름이 깨진 것은 배우라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응···?’


당황한 건 차준혁 본인 뿐만이 아니었다.

이원식 감독과 유소원 작가는 물론, 뒤쪽의 강일환 본부장마저 달라진 공기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게 잘해놓고 이걸 못 한다고?’


고차원의 인물 표현은 너무도 쉽게 했던 차준혁이었다.

그런데.

지금 고작 천천히 얼굴을 매만지는 연기 하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차준혁이었다.


‘역시···. 예전에도 멜로눈깔 하나만 잘했었지.’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차준혁은 예전에도 오직 상대역을 그윽하게 쳐다보는 ‘멜로눈깔’, 단 하나의 무기밖에 가지지 못한 연기자였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나.

차준혁은 어느 한 영역의 연기만 잘해졌을 뿐, 전체적인 연기의 기본은 갖춰지지 못한 상태라고 강일환 본부장은 생각했다.


'사람의 재능은 타고 나는 건가.'


강일환 본부장은 실망감에 고개를 살짝 떨궜다.

어쩌다 보니 혼자 괜한 기대를 한 것일까 하는 마음에 깊은 한숨을 내뱉기도 했다.


그럼 그렇지.

안 보는 새에 연기력이 미친 듯이 늘은 줄 알았건만.


‘유소원 작가한테 대본을 미리 받은 건가?’


멜로눈깔에 이어 혼자 주구장창 아저씨 캐릭터만 팠던 것이 분명했다.

다른 배우들보다 훨씬 전에 대본을 받고 연구하면 남들보다 훨씬 입체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테니까.

안 그러면 지금 상황이 설명이 안 된다.


“저···. 방금 꺼 다시 해봐도 될까요?”

“그럼요. 편하게 하세요.”


차준혁은 기어코 자신의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이원식 감독을 보며 부탁했다.

한소리는 옆에서 혼자 어깨를 으쓱였다.

거의 끝이 다 온 지점에서 벌인 차준혁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했다.


‘침착하자. 침착해.’


차준혁 속의 차부장이 다짐했다.

그래, 연기.

연기는 자신의 본 모습을 꺼낼 때 가장 자연스러워지고 강력해지는 것이다.


‘그치만, 없는 걸 어떡해···!'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차부장의 인생에서 여자와의 스킨십은 항상 어려운 고난과 시련 그 자체였으니까.

꺼내올 경험조차 없으니 지금 이 난관을 어떻게 넘어설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였다.


“차배우. 땀 좀 닦고 하세요.”

“그래요. 어차피 거의 다 끝났으니깐.”


이원식 감독과 조연출이 이어서 말했다.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니 미끄러울 만큼 어느새 땀이 흥건해져있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조연출이 땀을 닦을 손수건을 대령해주었다.

이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배우란 이렇게 대우받는 직업이구나 생각하는 그였다.


‘침착해 차준혁. 내면 속에 집중하자’


그는 땀을 닦는 척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핸드폰 셀카모드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차준혁이었다.

이토록 긴장될 때 말도 안 되게 잘생긴 자신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놓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후우우우우···.


나지막이, 그러나 깊은 농도의 숨을 내뱉던 그때였다.


차준혁의 눈앞에 구원투수처럼 어떤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금을 해제하시겠습니까?】


‘응···?’


핸드폰 화면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

그리고 그 옆에 실낱같은 희망이 떠있었다.


【첫사랑】


‘첫사랑···?’


설마, 차준혁이 겪었던 과거의 경험을 말하는 건가?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던 손이 멈췄고, 자신감이 올라오는 듯 입술에 적당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만약 그게 맞다면···?!'


지금 떠있는 '첫사랑' 세 글자.

이 잠금만 해제하면 지금 코 앞에 닥친 빌어먹을 '얼굴 만지는 연기'를···.

방금 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됐다.'


이 상황을 타개할 매우 적절한 키워드였다.

차준혁에게 필요한 건 이성과의 진득한 연애 감정이었으니까.

그는 지금 연기에 녹아낼 연인과의 과거의 추억이 절실했다.


‘그래···. 이거다!!’


차준혁이 속으로 어떤 마음을 먹기라도 한듯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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