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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님의 서재입니다.

40대 부장님이 연예계를 장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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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인절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18 21:55
최근연재일 :
2024.06.17 23:54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505
추천수 :
107
글자수 :
125,305

작성
24.05.26 12:03
조회
103
추천
9
글자
13쪽

캐스팅 (1)

DUMMY

차준혁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동안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마음대로 튀어나왔던 이 글자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좋게 말하면 그에게 어떤 선택을 제안했고, 나쁘게 말하면 종용했다.


‘페르소나를 얻을 거냐고···?’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차부장은 본디 그런 사람이었다.

새로운 삶을 갈망하지만 막상 위험을 무릅쓰긴 싫어하는 그런 사람.

차근차근 살아왔고,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그 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쓴맛이 느껴지는 다 그 때문이었다.

그는 목숨을 내던져 뭔가를 이루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영업 하나는 죽기 살기로 했지만···.’


영업에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성화제과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회사라는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또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탈락자가 되기 싫어 벌인 일종의 생존 행위였을 뿐이다.


【새로운 페르소나를 얻으시겠습니까? [Y/N]】


‘젠장.’


차준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검지손가락을 조심스레 펼친 뒤 눈앞에 보이는 비현실적인 선택지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페르소나를 탐색합니다!】


‘으읏···?!’


대본에서 희멀건 빛이 뿜어져 나오며 차준혁의 시야를 하얗게 밝혔다.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주춤 물러나는 그였다.


잠시 후.


【···탐색 중】

【예상 소요 시간 : 알 수 없음】


눈부신 빛이 사라지더니 뭔가를 탐색 중이라는 문구만 남아 있었다.

게다가 예상 소요 시간은 알 수 없단다.


‘뭐지 방금···?’


딱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구의 내용으로 봐선 페르소나라는 것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차준혁!”


그리고 이제야 들려오는 현실의 목소리.

매니저 차현우의 굵직한 음성이었다.


“준혁아! 너 내 말 안 들려?”

“···어? 어어, 왜?”


한참 동안 허공의 글자를 바라보던 차준혁은 당황스런 목소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매니저의 눈에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뿐이었다.


“왜. 그 대본 관심 있어졌어?”

“대본? 어어. 읽다 보니 재미있네. 설정도 신선하고.”


일단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을 하는 차준혁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성화제과 부장이었던 그가 드라마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의 주된 취미는 퇴근 후에 게임을 하거나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것, 또는 동년배들이 상주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소모적인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거나 간간히 올라오는 예쁜 아이돌 사진을 감상하는 것, 대체로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


차준혁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오묘한 표정을 짓는 매니저였다.

뭐랄까, 기쁨과 아쉬움이 적절히 섞여 있는 느낌.


“그치만 이미 늦었지 뭐.”

“아, 내가 깠다 그랬나?”

“예! 대배우 차준혁님께서 이 어마어마한 기회들을 발로 뻥 차버렸죠!”


장난기 어린 얼굴로 차준혁의 머리를 쓰다듬는 매니저였다.

많아 봤자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의 남자에게 이런 행동을 당하는 것이 아직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그나마 적응이 된 차준혁이었다.


‘쩝···. 아쉽네. 젊은 놈이 패기도 없기는.’


차준혁은 진짜 차준혁의 선택에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노련미를 장착한 자신이 이 몸을 차지한 이상, 더는 미련한 선택 따윈 하지 않을 거니까.


“준혁아. 넌 진짜 할 수 있어.”


매니저는 차준혁의 어깨에 손을 탁 올리며 말했다.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잖아?”


죽어도 연기 칭찬은 안 하는 구만.

차준혁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연기를···. 앞으로 연기 실력을 키워야 한다.


“아무튼 가서 얼른 한숨 자! 그리고 선물은 너 필요할 때 가져가. 안 그래도 집에 둘 곳도 없다 그랬잖아.”

“응? 으응.”

“그리고 이건···. 가져가서 읽어보고.”


매니저 장현우는 두터운 대본을 차준혁에게 조심스레 안겨주었다.


“니 뜻대로 출연은 고사했지만, 틈틈이 공부해서 올해 안에 다음 작품 들어가야지? 응?”

“···그래 형.”


차준혁은 마치 소중한 아기를 안듯 대본을 받아들었다.


“우리, 열심히 해서 꼭 메이저 진출해 보자! 알았지?”


살며시 포옹을 하는 매니저였다.

차준혁을 신뢰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이 손발이 돼주겠다는 의사 표현.


확실히 믿음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직업은 매니저라지만 마치 형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느낌.


‘사람 되게 좋아 보이네.’


그는 차준혁을 향해 손을 일정한 속도로 흔들었다.

아마 차준혁이 집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을 모양이었다.


‘······!’


요령껏 차가 주차된 빨간 벽돌의 빌라에 들어갔던 차준혁은 이내 다시 나왔다.

그리고는 매니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형.”

“왜 준혁아?”


한껏 진지한 표정의 그는.

전혀 엉뚱한 질문을 매니저에게 건네고 말았다.


“우리 집 비밀번호 뭐였지?”

“······.”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매니저는 차준혁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병원이라도 예약해놔야 하나 진심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매니저일 뿐만 아니라 간호사 업무까지 같이 해야 될 수도 있을 지경.


“···내가 카톡으로 보내줄게. 너 왠지 말해줘도 또 까먹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 아 고마워 형.”


···자기 집 비밀번호를 알려준다니 고맙단다.

매니저는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차준혁을 보며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남겼다.


“들어가면 바로 자. 또 인터넷 같은 거 괜히 보지 말고. 알았지?”


그의 말에 차준혁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뭐가 그리 좋은진 모르겠지만···.


“형, 안 봐도 비디오지!”


라는 말을 남기곤 서툴게 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집에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

매니저는 입을 쩍 벌린 채 덩그라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멘트가 엄청 올드해···!’


과거 예능에서나 봤던 표현.

그런 말을 20대 초반 차준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


* * *


‘이게 차준혁 집이구나.’


배우라기보단 대학 신입생의 첫 자취방이라고 보는 게 더 맞는 표현.

10평쯤 돼 보이는 원룸에는 차준혁의 화보 사진들과 팬들이 준 걸로 보이는 선물과 굿즈 등이 비좁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웹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 ‘일진과외’]


웹드라마 계에선 끗발 날리는 모양.

하지만 그가 메이저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스펙트럼이 좁은 연기 때문인 걸로 보였다.


‘이 몸으로 살게 된 거, 제대로 알아야겠어.’


차준혁은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본체에 전원 버튼을 눌렀다.

마치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느낌.

집이야 해야 할지 방이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실내에선 은은한 편백나무 향이 났고 옷들도 행거에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연예인은 연예인이네.’


40대 아저씨의 심정으로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옷 스타일들.

칙칙한 어두운 계통이 아니라 각양각생의 색깔과 디자인들의 옷가지가 그곳에 걸려있었다.

심지어 찢어진 청바지에는 구멍이 송송 나있어 이걸 감히 입고 나갈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가 그랬더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랬는데.’


그사이 부팅이 완료됐고, 차준혁은 자연스레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라라위키’에 자신의 이름, 배우 차준혁의 이름을 검색했다.


[프로필]


-본명 : 차준혁

-출생 : 2002년 2월 02일 (22세)

-국적 : 대한민국

-신체 : 183.6cm, 74kg

-학력 : 신동고등학교

-소속사 : 엔돌핀컴퍼니

-데뷔 : 2020년 7월 13일 웹드라마 '일진과외'

-별명 : 멜로눈깔, 만찢남, 차느님

-MBTI : INTJ


‘이야···. 이게 나라고?’


활자로 직접 확인하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숫자로 증명된 그의 스펙. 키는 훤칠했고 몸도 다부지다.


심지어는.


‘월드컵 때 태어났다고···?’


이거 몸과 정신의 세대 차이가 너무 나는데?

차부장은 잊고 있던 빛바랜 기억을 더듬거렸다.


‘기억나는 거라곤 8강 이탈리아전 때 안정환이 헤딩골 넣은 거랑···.’


대뜸 추억에 젖어드는 차부장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미나의 전화받어도 있었지.’


그러다가 아저씨의 주책이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차준혁이었다.

거의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어린 나이.

차준혁은 자신의 프로필을 찬찬히 훑어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MBTI는 뭔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 보자, 별명은···.’


인터뷰를 진행했던 스튜디오에서 들었던 몇몇 단어들.

자신의 주특기인 멜로눈깔, 그리고 차느님.


‘만찢남은 뭐야?’


모르는 말이 너무도 많아 이제는 곧장 찾아보기로 한 그였다.

만찢남.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남자란 뜻이었다.


“오케이. 또 하나 배웠고.”


차준혁은 갑자기 주변을 다급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책장에서 빈 노트 하나를 꺼내 볼펜을 들어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만찢남 :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남자!


젊은 친구들의 단어를 아는 것은 기본 상식.

차준혁은 앞으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쓸데없는 거라고 치부하던 신조어 따위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디 보자. 그다음엔···.”


아저씨 특유의 흥얼거림을 선보이는 차준혁.

탁상 거울에 비친 자신의 조각 같은 얼굴을 보자 콧노래는 한층 더 발랄해졌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한 그였다.


‘역시! 팬클럽도 있구나.’


그럼, 이런 얼굴을 가졌는데 없을 리가 없지.

차준혁은 라라위키에 친절하게 등록된 팬클럽 링크를 마우스로 클릭했다.


그러자.


-차준혁의 마음에 차박! 어서오세요. ‘카센타’입니다.


‘팬클럽 이름이 카센타···?’


차준혁의 노트에 등재된 두 번째 단어였다.


카센타.

배우 차준혁을 응원하는 팬들의 팬클럽.

언제든 지친 몸을 이끌고 카센터로 오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었다.


‘다들 무슨 작명소에 다니나?’


차준혁은 팬클럽의 게시판을 살펴보았다.

생중계 인터뷰를 진행한 탓인지 게시판은 꽤 활성화돼 있었다.


-오늘은 차느님의 뉴 탄생일임.

-나 지금 20번째 보고 있어 ㅠㅠㅠㅠㅠㅠ 너무 귀엽자나 우리 애기

-멜로눈깔 뭔가 좀 색다르지 않아??????


‘훗.’


차준혁은 자기 덕에 팬들이 기뻐하고 있음에 흐뭇해했다.


그리고 역시나.


【소수의 대상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소수의 대상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

【'카르마'가 정산됩니다.】


마치 모바일 게임의 자동사냥처럼 알아서 적립되는 시스템.

차준혁은 정확히 보상이 뭔지는 모르지만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키보드에 손을 올리며 뭔가를 결심한 차준혁이었다.


“그래. 팬들한테 감사의 인사를 남기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이전의 차준혁도 주기적으로 팬들에게 인사글을 남긴 것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주르륵 댓글들이 달리며 마치 신을 영접한 듯한 반응을 남긴 팬들.


차준혁은 생애 최초의 팬서비스를 할 생각에 마음이 들뜬 얼굴이었다.


-톡, 토독, 톡.


독수리 타법으로 한 땀 한 땀 글자를 입력하는 차준혁.

회사에서 공문을 보낼 때보다 몇 배는 더 신중한 모습이었다.


『수신 : 카센타 팬 여러분.


1. 팬 여러분 귀하의 무궁한 행복을 기원합니다.

2. 안부 인사 및 오늘 있었던 인터뷰 건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하오니 정독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차준혁입니다.

오늘 TV 인터뷰 건으로 제 진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아이돌이 팬들에게 보내는, 공문 양식으로 된 최초의 인사글이었다.


“크-! 이 정도 글솜씨면 백일장에서 상 탈 수준이지.”


팬들의 안위를 걱정함과 동시에 사실 자신은 이런 사람이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즉, 자연스레 차준혁의 제2의 인생을 홍보한 셈.


자신이 쓴 글에 자아도취 하고 있던 그 순간.

어디선가 하얀빛이 발산했다.


‘아···!?’


그 빛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잠시 잊고 있었던 대본이었다.


【페르소나 탐색을 마쳤습니다.】


의문의 문구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지이잉!


이어서.

책상 위에 있던 핸드폰에 진동이 일었다.


-준혁아! 지금 잠깐 통화돼?!!


매니저의 다급한 메시지 문자였다.

차준혁은 침착함을 유지한 채 그의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좀 전에 감독님한테 연락왔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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