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재벌 님의 서재입니다.

크루세이더 킹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최고재벌
그림/삽화
최고재벌
작품등록일 :
2024.02.04 21:46
최근연재일 :
2024.06.28 13:57
연재수 :
101 회
조회수 :
56,851
추천수 :
1,994
글자수 :
579,030

작성
24.06.12 14:15
조회
307
추천
18
글자
12쪽

87. 기준 화폐.

DUMMY

87. 기준 화폐.


아이카드 대주교는 베르트랑의 제안에 크게 끌렸다.

은화는 많이만 찍어낼 수 있다면 돈이 되었다.

그러려면···.


“충분한 은을 가지는 있는가?”


은이 없으면 의미가 없었다.

금·은·동화 모두 현물을 기반으로 했다.

화폐를 찍을 만큼 충분한 현물을 보유해야 한다.

통화로 유통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물량이 되어야 했다.

첫 물량으로 은화 수백 개, 수천 개, 아니, 그 이상을 찍어내야 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은은 충분합니다.”


레 보드 프로방스와의 교역으로 상당한 은을 축적했다.

아를에서도 상당한 은이 세금으로 들어왔다.

은 제품뿐만 아니라···.

디르함이라는 사라센의 은화도 들어왔다.

사라센인들은 교역으로도 많은 부를 쌓았다.

은화가 널리 사용되었다.

순도가 높은 편이라···.

오래된 디르함을 녹여 다시 은화를 만들기도 했다.

은은 그리 부족하지 않았다.

문제는 신뢰였다.

화폐는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

베르트랑의 이름으로 발행해 봐야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은의 함량 그대로 가치를 평가받을 것이다.


“대주교 예하의 허락만 있으면 됩니다.”


화폐에 신뢰를 줄 이름이 필요했다.

몽마주르 수도원은 프로방스의 대표하는 곳이었다.

아이카드도 그곳을 통해 대주교로 올라섰다.

인근의 생질만큼 명망이 높은 수도원이었다.

대주교는 화폐 발행권을 허락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주의 이름으로 함량을 속이지 않겠다고 맹세하겠는가?”

“주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알겠네. 그럼 허락하겠네.”


아이카드 대주교는 신실한 베르트랑을 믿었다.


***


-화폐 발행을 감시하기 위해 수도원에 사람을 파견해야 해.-

-에이. 설마 수도사가 은화의 함량을 속이겠어?-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거 몰라? 시장에 저질 은화가 유통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이 시대의 은화는 대부분 수도원에서 발행되었다.

그럼에도 시장에는 저질 은화가 넘쳐났다.

수도원과 수도사가 다 청렴한 것은 아니었다.

상인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 은화의 가치를 판별하는 일이었다.

은화에 따라 물건값을 다르게 받아야 했다.

그걸 모르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다 저질 은화를 상대에게 주려 하지.-


좋은 화폐는 보관하고 나쁜 화폐는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시장에는 나쁜 화폐만 돌아다니게 된다.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것이다.

화폐의 역사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Bad money drives out good).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


법칙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은만 정확히 건네주면 되잖아.-


통화 발행의 책임은 아이카드 대주교와 몽마주르 수도원이 지게 된다.

베르트랑은 은화를 찍어내는 데 필요한 은만 공급하면 되었다.


-그게 아니냐. 화폐의 품질을 관리하는 일은 매주 중요해. 우리가 만드는 은화가 기축 통화(基軸通貨, world currency)되면 이점이 많아.-


기축 통화란 거래의 기준이 되는 통화였다.

이 시대에도 기축 통화가 있었다.

쾰른 마르크였다.

마르크는 금과 은의 무게를 재는 단위였다.

파운드와 마찬가지로 화폐의 단위로도 사용되었다.

쾰른 마르크는 규모가 큰 중요한 거래에 사용되는 기준 통화였다.


-우선 기축 통화가 되면 다른 통화보다 높은 가치를 지니게 돼.-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


시장에서 밀려난 좋은 화폐는 금고에 보관되었다.

그러한 금·은·동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인플레이션의 영향도 있지만···.

새로운 수요가 생기는 것이다.

중요한 거래에서 믿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화폐가 필요했다.

그 자리를 쾰른 마르크가 차지했다.


-그렇게 기축 통화를 원하는 가수요가 발생하게 되지.-


창고에 넣어놓기만 해도 가치가 올랐다.

좋은 화폐는 돈 가뭄(전황, 錢荒)이 발생했다.

화폐 가치의 폭등이었다.

물론 그렇게 가치가 오른 만큼 은화를 찍어내기 때문에···.

조선만큼 심각한 전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쾰른 마르크가 은의 가치보다 높은 시세가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그 기간 많은 은화를 찍어내 쾰른은 막대한 환전차익을 올렸다.


-신뢰만 확보되면 굳이 몽마주르 이름을 빌려 쓸 필요가 없어져.-


시간이 흐르면 수도원이 아닌,

도시의 이름으로 화폐를 주조할 수 있게 된다.

수도원보다 도시가 신뢰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피렌체의 플로린(florin)과 베네치아의 두카트(ducat)가 있었다.

아를에서 찍어내는 은화가 기축 통화···.

아니, 기준 통화 중 하나가 된다면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은을 들여와 은화를 마음껏 찍어낼 수 있었다.

그게 다 이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를은 쾰른과 달랐다.


-그렇게 되려면 신뢰가 중요하겠지.-


아직 아를의 신용도는 낮았다.


***


쾰른 마르크가 3~4차 십자군 원정 때 기준 통화가 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건 쾰른이라는 도시의 입지와 위치 덕분이었다.

쾰른은 4~5만 명의 인구를 가진 신성 로마 제국의 최대 도시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도시 중 저지대(네덜란드와 벨기에)와 가까웠다.

특히 네덜란드와는 라인강으로 이어져 있었다.

지중해와 신성 로마 제국의 생산물이 쾰른을 통해 저지대로 공급되었다.

반대로 북해와 잉글랜드의 생산물이 지중해와 신성 로마 제국으로 가는 통로였다.

교역으로 크게 성장한 도시였다.

북해에서 잡힌 청어가 육지로 수송되는 길이기도 했다.

훗날 한자 동맹의 중요 도시이기도 했다.

저지대에 상업과 수공업이 성장하자,

그 혜택을 정면으로 받았다.

쾰른은 산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통화량도 무시할 수 없어.-


기축, 기준 통화가 되려면 시장에 충분한 물량을 공급할 수 있어야 했다.


쾰른은 대량의 은화를 주조할 산업적 역량을 지녔다.

거기에 쾰른 대주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이자,

이탈리아의 재상이었다.

신뢰도는 말할 것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쾰른 마르크화가 가장 먼저 기축 통화가 된 것이 당연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신뢰도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많은 은화를 찍어내는 것이야.-


통화의 신뢰와 통화량은 기축 통화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들이었다.

아를의 은화가 유럽의 중요한 화폐가 된다면 대도시로 성장했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제노바와 피렌체, 베네치아에 못지않은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화폐 발행을 관리하는 일은 매주 중요했다.

다만, 그 일을 추진하는 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


-몽마주르 수도원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반발하지 않을까?-


성직자는 세속 영주가 간섭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친 간섭은 반발을 일으켰다.

하인리히 3세는 자신의 임기 동안 4명의 교황을 임명했다.

그는 하인리히 4세의 아버지였다.

성직에 대한 지나친 간섭···.

그레고리오 7세가 서임권을 다시 가져오려 한 이유이기도 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따지기가 어려웠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에겐 피에르가 있잖아.-


피에르는 베르트랑을 따르는 성직자였다.

그를 더 높은 자리로 갈 수 있게 지원할 생각이었다.

욕심이 있는 한 베르트랑의 말을 잘 따를 것이다.


-이번 기회에 피에르를 몽마주르 수도원으로 보내지.-


몽마주르 수도원 원장 자리는 비어있었다.

아이카드 대주교가 나간 후 따로 수도원장을 임명하지 않았다.

그는 부원장을 통해서 수도원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에게 줄 명분과 이권이 필요하겠네.-


쉽게 수도원장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를 설득할 명분과 이권이 필요했다.


-명분은 충분하고···. 이권도 이미 준비해 두었잖아.-


미리 준비한 패를 보여 줄 때였다.


***


베르트랑이 아이카드 대주교에게 말했다.


“화폐 발행과 관련해서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들어 주겠네.”


아이카드 대주교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은화 발행으로 얻을 이익을 계산하고 있었다.


“수도원장 자리에 피에르 사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곳의 사제 말인가?”


아이카드 대주교도 피에르 사제를 알고 있었다.

물레방아 마을과 아를의 교구는 대주교의 관할권이었다.


“그렇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맹세한 만큼···. 화폐 발행을 감독하고 싶습니다.”


은화의 함량을 속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수도원과 조폐소에 은을 보내는 건 베르트랑이었다.

은을 빼돌리지 않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화폐 발행을 감독할 명분이 생겼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부수도원장은 믿을만한 사람이네.”

“계속 그럴지는 알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욕심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부수도원장은 그런 이가 아니야. 재물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네.”


그동안 아이카드 대주교를 위해 일해온 사람이었다.

깊게 신뢰하는 이였다.


“스스로 수도원장이 되어 독립을 꿈꿀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수도원장은 위에서 임명하는 때도 있지만···.

그곳의 수도사들이 추천하여 임명되는 예도 있었다.

힘을 가지면 아이카드 대주교의 영향력을 벗어나려 할 수 있었다.

은화로 얻는 수익은 그럴 힘을 가지게 할 수 있었다.

수도원의 독립이었다.

교회가 힘을 가지자,

세속권력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힘이 있으면 남의 밑에 있는 것을 싫어하기 마련이었다.


“어허. 부수도원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표정에 의심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건 모를 일이지요.”


아이카드 대주교의 마음에 의심의 싹을 심었다.

사람은 손쉽게 선동에 넘어갔다.

그 의심을 더욱 크게 만들어야 했다.


***


“이번에 우연히 중요한 성물을 얻었습니다.”

“헉···. 그래 무슨 성물인가?”


성물은 매우 중요했다.

인기 있는 성물이 있는 수도원과 도시는 크게 발전했다.

몽마주르 수도원은 1030년 출처가 의심스러운 곳에서 성십자가 조각을 얻었다.

그 후 수십 년 만에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수도원이 되었다.

쾰른의 대성당은 밀라노로부터 동방 박사 유골함을 옮겨왔다.

동방 박사(현자, magus)의 유골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유골함은 막대한 순례객을 끌어모았다.

성물 또는 성유물은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었다.


“눈물 흘리는 성모상입니다.”

“헉···.”


성모에 대한 신앙은 뿌리 깊었다.

특히 프로방스와 남부 프랑스에 강했다.

성모와 관련된 예배당이 여러 곳에 건설되고 있었다.

눈물 흘리는 성모상이라면···.

몽마주르 수도원을 프로방스뿐만 아니라···.

서방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야곱의 유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과 순례길을 만들었다.

그만큼 파급력이 있었다.


“그건 어디에서 구했나?”


아를의 유대인 세공업자를 통해 비밀리에 만들었다.

유대인의 세공 기술은 매우 뛰어났다.

돈을 받고 입을 꽉 다물었다.


“사라센 상인이 우연히 아프리카의 옛 유적에서 구해 가져왔습니다.”

“오오···.”


그럴듯했다.

아프리카의 북부는 로마의 영토였다.

그곳에서 성모상이 발견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매우 넓은 지역이었다.

거기에 이슬람 영토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문제가 생기면 사라센 상인에게 속았다고 말하기도 좋았다.


“그 성유물이 지금 어디에 있나?”

“은밀한 장소에 모셔놓았습니다.”

“혹시 지금 볼 수 있나?”

“물론입니다.”


아이카드 대주교를 데리고 눈물 흘리는 성모상이 안치된 곳으로 향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위 동굴 안이었다.

횃불이 성모상의 얼굴에 비치자···.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아···. 이건 기적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크루세이더 킹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7.1일부터 새로운 글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4 24.06.21 244 0 -
101 101. 전쟁보다는 타협. +4 24.06.28 174 19 12쪽
100 100. 장례식. +4 24.06.27 219 18 12쪽
99 99. 시몽이 바르셀로나에 간 이유.(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2 24.06.26 230 19 12쪽
98 98. 바르셀로나(Barcelona). +4 24.06.25 273 16 12쪽
97 97. 나르본(Narbonne). +2 24.06.23 290 18 12쪽
96 96. 아삽(Asaf)의 고민. +4 24.06.22 282 17 12쪽
95 95. 탐이 나. +8 24.06.21 286 15 12쪽
94 94. 원로원 제1인자(princeps senatus). +6 24.06.20 275 22 12쪽
93 93. 아를 상회(company). +4 24.06.19 288 17 13쪽
92 92. 타유(세금)의 의미. +6 24.06.18 286 17 12쪽
91 91. 연못 아랫마을에서의 전투. +8 24.06.17 322 17 13쪽
90 90. 바다 위의 빛(Fos-sur-Mer). +2 24.06.15 310 17 12쪽
89 89. love or hate. +4 24.06.14 304 17 13쪽
88 88. 성모의 이름으로. +4 24.06.13 320 19 11쪽
» 87. 기준 화폐. +2 24.06.12 307 18 12쪽
86 86. 은화 주조. +2 24.06.11 307 17 13쪽
85 85. 아이카드 대주교의 방문. +2 24.06.10 319 19 12쪽
84 84. 농업 길드. +2 24.06.09 322 16 12쪽
83 83.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 +2 24.06.08 325 18 12쪽
82 82. 자애롭고 신실한 영주. +4 24.06.07 331 16 11쪽
81 81. 나에겐 힘들지 않지만 상대에게 힘든 일. +2 24.06.06 318 13 14쪽
80 80. 맷돌의 의미. +4 24.06.04 342 15 12쪽
79 79. 자애로운 영주. +4 24.06.03 342 14 13쪽
78 78. 쓸모를 찾는 일. +7 24.05.31 357 17 14쪽
77 77. 옆구리 찌르기. +4 24.05.30 339 17 12쪽
76 76. 운송비. +4 24.05.29 354 18 12쪽
75 75. 청어와 코그(Cog), 플루트(fluyt). +2 24.05.28 348 15 13쪽
74 74. 바이킹의 유산. +4 24.05.26 370 19 12쪽
73 73. 최선을 고를 수 없다면 차악을. +4 24.05.25 368 1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