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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세이더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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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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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작품등록일 :
2024.02.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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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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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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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청어와 코그(Cog), 플루트(fluyt).

DUMMY

75. 청어와 코그(Cog), 플루트(fluyt).


베르트랑은 악마와 조선소 건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발트해와 저지대의 배는 수송용으로 나쁘지 않아.-

-저지대의 배?-

-청어(herring)잡이 배들이지.-

-청어?-


청어(靑魚, Pacific herring)는 한류성 소형 물고기였다.

산란기에 육지와 가까운 곳으로 몰려들기에 손쉽게 어획할 수 있는 어류이기도 했다.

발트해와 북해의 중요한 생선이었다.

중세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이 물고기를 [바다의 은]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남유럽에 속하는 프로방스엔 잘 알려지지 않은 생선이었다.

악마가 베르트랑의 이해를 도왔다.


-사순절에 먹는 생선이야.-


사순절(四旬節, 영어: Lent)은 부활절을 앞두고 약 40일간 몸과 마음을 정결하고 경건하게 하며 지내는 기독교의 절기를 말했다.

부활절과 사순제, 크리스마스와 같은 행사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했다.

중세는 종교에 의해 생활이 영향을 받았다.

그중 청어는 사순절에 하는 금식과 관련이 깊었다.

원칙적으로 사순절에는 40일 동안 금식이었다.

그러나 3~4일 정도 금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힘을 써야 하는 직업의 경우 3~4일만 굶어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보통은 하루에 한 끼를 굶거나,

사순절 기간 안에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러면 40일 동안 먹을 수 있는 고기는 생선뿐이었다.

그 기간 훈제나 염장 청어는 큰 인기 식품이었다.

서민의 음식인 청어가 귀족의 식탁에도 올라왔다.


-아! 그 생선···. 그럼. 어선을 말하는 거야?-

-그곳의 배들은 고기잡이뿐만 아니라···. 청어의 수송에도 활용이 되고 있어.-

-청어가 그렇게 중요한 생선이야?-

-맞아. 그 생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거야.-


***


청어는 바이킹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북해와 발트해는 바이킹의 바다였다.

바이킹이 사는 해안은 청어가 산란하는 장소였다.

그런 청어는 그들의 중요한 식량이기도 했다.

청어를 잡기 위해 선박 기술이 발달했다.

동시에 말리거나 염장한 청어는 중요한 교역품이었다.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항해술이 발달했다.

항해술과 선박 기술을 바탕으로 바이킹이 탄생했다.

청어는 바이킹을 바다로 나가게 했다.

바다에 청어가 없었으면 바이킹 시대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강력한 왕 크누트의 등장으로 바이킹의 시대가 저물었다.

발트해와 북해의 혼란이 끝나고 정치가 안정화되었다.

그곳에 바이킹의 약탈로 얻는 수익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 지역이 궁핍해졌을 것 같지만···.

그 반대였다.

현재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약탈이 아닌 청어였다.

바이킹 시대에 발전한 선박 기술과 항해술은 청어의 어획량을 증가시켰다.

약탈보다 청어를 잡는 것이 더욱 돈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청어에 의해 발트해와 북해에 많은 어촌 마을이 생겨났다.

그런 어촌 마을들이 시간이 지나면 한자 동맹( Hanseatic League)의 도시로 성장했다.

한자 동맹은 북해와 발트해를 아우르는 교역과 안보 동맹이었다.

그곳은 암스테르담과 마찬가지로 청어의 뼈로 세워진 도시였다.

청어는 바이킹을 어부와 상인으로 변화시켰다.

바이킹은 청어와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발트해와 북해에 어부와 상인이 활개치기 시작했다.

그들로 인해 바이킹 시대보다 더욱 풍요로워졌다.


***


청어가 중요한 생선이 된 건 잡히는 숫자 때문이었다.

북해와 발트해의 청어 개체수는 엄청났다.

산란기가 되면 바다가 검어질 정도로 육지 근처로 몰려들었다.

양동이로 물과 함께 퍼담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즌이 되면 배에 청어를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얼마나 많은 청어를 실을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청어는 새로운 선박의 개발로도 이어졌어.-


속도보다 선복량(船卜量, Freight Space, 적재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선박?-

-코그(Cog) 또는 코게(독일어: Kogge)라 불리는 배야.-

-그 배가 네가 말하는 선박이야.-

-그렇지.-


발트해와 북해 바다의 청어를 실어 나르기 위해 코그라는 선박이 개발되었다.

한자 동맹이 건설되는데 청어와 함께 코그라는 배가 크게 이바지한 것이다.

그 배에 의해 서양의 역사는 큰 전환점을 맞는다.


***


청어는 선박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 그 영향을 끼쳤다.

청어는 한 번에 많은 숫자가 잡혔다.

그에 반해 생선은 쉽게 상하는 식품이었다.

청어를 위한 다양한 보관 방법이 개발되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해풍에 말리는 것이다.

건조를 시키면 보전성이 높아졌다.

다만, 북해와 발트해는 습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었다.

시기를 잘못 맞추면 마르지 않고 상했다.

무엇보다 건조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대량으로 잡혀 온 걸 손질해서 건조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훈제는 더욱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제때 손질하지 못한 청어는 쉽게 상해버렸다.

그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염장하는 것이었다.

청어를 통에 담고 위에 소금을 뿌리면 염장이 끝났다.

소금으로 손쉽게 대량의 청어를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해에 인접한 독일 북부의 뤼네부르크를 비롯한 소금 광산이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염장된 청어는 사순절에 먹을 수 있는 육류로 큰 인기를 끌었다.

청어와 소금이라는 중요한 교역품이 탄생했다.

그 교역로는 점점 바다와 육지로 확장되었다.


***


북해와 발트해는 소금을 생산하기 힘든 바다였다.

육지에서 유입되는 담수가 많았다.

바닷물의 염도가 낮은 바다였다.

흐린 날이 많고 비가 많이 오기에 바닷소금보다 암염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소금 암염은 상당히 비싼 상품이었다.

그것으로 절이는 청어는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청어의 가격 중 소금의 비중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거기에 선박과 어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청어의 어획량이 갈수록 늘어났다.

청어의 가격은 저렴해지고,

소금의 가격은 높아졌다.

비싼 암염으로 청어를 염장하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되었다.

결국 새로운 청어의 염장법이 개발되었다.

끓인 바닷물로 청어를 절이는 방법이었다.

바닷물을 끊이면 염도가 올라갔다.

청어를 부패시키는 세균을 죽이는 효과도 있었다.

동시에 적절한 염도는 발효균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발효는 보관기간을 늘려주는 효과도 있었다.


***


저렴해진 절인 청어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삼포제와 심경과 같은 농업 생산량의 증가와 관계가 있었다.

삼포제와 심경의 보급으로 단위 면적당 곡물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사람들이 섭취하는 음식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식단에서 곡물의 비중이 늘어나면 생기는 문제가 있었다.

곡물은 탄수화물이 많은 대신에 단백질과 함께 염분이 부족했다.

여름에 땀을 흘린 농부에게 절인 청어만큼 좋은 음식이 없었다.

절인 청어와 곡물 생산량의 증대는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인구 증가로 경작지가 부족해졌다.

영지를 두고 전쟁이 자주 발생했다.

청어는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중요한 어업으로···.

무역과 도시 발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십자군 원정과 대항해시대로 이어지는 시대의 시발점이 되었다.


-코그와 청어는 이 시대를 변화시킬 것이야.-


***


악마의 말에 베르트랑이 반론했다.


-청어는 아를에서 잡히지 않잖아.-

-맞아. 하지만···. 코그는 이곳에서 이용할 수 있지.-


코그(Cog)는 10세기에 처음 등장한 선박의 한 종류로 12세기경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롱쉽(longship)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였다.

바이킹의 롱쉽은 첨저선이었다.

얕은 수심을 지나가기 어려웠다.

코그는 평저선이라 얕은 수심을 지나가기 좋았다.

발트해와 북해의 중심은 수심이 깊은 북쪽의 피오르 해안에서 수심이 얕은 저지대로 옮겨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코그가 만들어진 목적은···.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짐을 나르기 위해서였다.

선원 1인당 수송량에서 롱쉽과 코그는 차이가 크게 났다.

이것 역시 청어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만선을 한다면 코그가 훨씬 많은 청어를 실을 수 있었다.

코그는 염장 청어의 운송뿐만 아니라···.

어선으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바이킹의 상선인 크노르(Knǫrr)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 배가 그렇게 중요한 배야?-

-그래. 코그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나타날 선박의 토대가 되는 배야.-


코그가 널리 사용되면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선박의 주요 동력원이 노에서 돛으로 변화되었다.

노가 아닌 돛으로만 움직이는 배가 탄생했다. 방향타, 키라 불리는 러더(rudder)도 도입되었다.

조타 장치가 개선되어 선박의 방향 조정이 훨씬 쉬어졌다.

용골 구조가 선박에 적용이 되었다.

오랜 기간 지중해에서 발전한 선박 기술이 코그라는 새로운 배에 적용된 것이다.

그런 개선으로 헐크(Hulk)와 캐러벨(Caravel), 카락(Carrack), 갤리온(Galleon), 클리퍼(Clipper) 등 다양한 함선이 탄생하게 되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악마의···.


-진짜 목적은 다른 배야.-

-어떤 배?-

-플루트(fluyt)야.-


플루트는 코그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저지대)에서 개발된 배였다.

그 배의 탄생 목적은 단순했다.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물자를 나르기 위함이었다.

얕은 흘수로 인해 선박이 항구 안팎으로 화물을 운반할 수 있었다.

다른 선박이 도달할 수 없는 강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었다.

코그와 동일했다.

저지대의 사람들은 바이킹의 롱쉽을 코그로 개조한 것처럼···.

갤리온을 플루트로 개조했다.

플루트는 갤리온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짐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청어와 코그, 플루트가 작은 네덜란드를 해양 강국으로 만들었다.


***


-플루트는 만들지 쉽지 않겠는데?-


플루트라는 배는 갤리온이라는 선박을 변형한 배였다.

오랜 조선 기술이 축적된 배였다.

코크와는 상당히 달랐다.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아. 플루트를 만들기 위한 기반 기술은 이미 대부분 갖추고 있어.-

-어디에?-

-이탈리아의 해상 도시와 사라센, 동로마에 있지.-

-그곳들은 갤리선을 만드는 곳이 아니야?-

-그들이 만드는 갤리선에 관련 기술이 축적되어 있어.-


갤리선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노 젓는 배를 갤리선이라 불렀다.

페르시아와 카르타고, 로마 제국,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에 운행되는 노 젓는 배를 다 갤리선이었다.

그러나 갤리선이라고 다 같은 배는 아니었다.

시대마다 형태와 기능이 다 달랐다.

처음의 갤리선은 목재를 짜 맞추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튼튼하고 빈틈이 적어 침수(侵水)에 강했다.

그러나 건조에 막대한 노동력과 시간이 들었다.

그 후 용골(龍骨, keel)과 늑골을 사용하는 카벨 이음(carvel built) 방식이 갤리선에 사용되었다.

덕분에 선박 건조가 예전보다 쉬워졌다.

갤리선은 처음엔 하나의 돛대에 큰 가로돛을 달았다.

바람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갤리선이 노로만 움직이는 배라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었다.

노 젓기는 많은 힘이 드는 일이었다.

사람은 오랜 시간 노를 저을 수 없었다.

순풍에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거나 전투 중엔 노를 사용했다.

돛은 계속해서 개량되었다.

보조 돛을 추가하여 바람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카벨 이음(carvel built) 방식은 선박에 추가로 돛대를 달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큰 가로돛보다 세 개의 세로돛이 효율이 높았다.

세로돛은 역풍에도 갤리선이 바람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돛대가 많아지고 돛의 숫자가 늘어났다.

다양한 도르래를 이용하여 돛의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동시에 조향장치, 조타기에 관련된 기술도 발전했다.

지중해의 선박 기술이 그대로 머무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항해시대로 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북쪽의 코그와 남쪽의 갤리선이 서로 기술을 교류하며 새로운 배들이 탄생했다.


-꼭 플루트가 아니어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저렴하게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일이야.-


아직 장기간 대양을 향해 할 필요는 없었다.

아를에서 병력과 물자를 레반트로 효과적으로 나르면 되었다.


-그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네.-


운송비가 낮아지는 건 교역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처럼 아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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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 옆구리 찌르기. +4 24.05.30 339 17 12쪽
76 76. 운송비. +4 24.05.29 354 18 12쪽
» 75. 청어와 코그(Cog), 플루트(fluyt). +2 24.05.28 348 15 13쪽
74 74. 바이킹의 유산. +4 24.05.26 370 19 12쪽
73 73. 최선을 고를 수 없다면 차악을. +4 24.05.25 367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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