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재벌 님의 서재입니다.

크루세이더 킹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최고재벌
그림/삽화
최고재벌
작품등록일 :
2024.02.04 21:46
최근연재일 :
2024.06.28 13:57
연재수 :
101 회
조회수 :
56,843
추천수 :
1,994
글자수 :
579,030

작성
24.06.10 11:53
조회
318
추천
19
글자
12쪽

85. 아이카드 대주교의 방문.

DUMMY

85. 아이카드 대주교의 방문.


1079년은 특별할 게 없는 해였다.


신성로마 제국은 여전히 내전에 빠져 있었다.


폴란드의 왕은 귀족에 의해 헝가리로 쫓겨났다.


북해와 발트해의 바이킹 왕국은 내분으로 갈라졌다.


사생아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안정화하기 바빴다.


프랑스는 왕권이 너무나 미약했다.

카페 왕조의 직할령은 오를레앙과 파리 주변에 불과했다.

노르망디 공작과 아키텐 공작, 툴루즈 백작은 왕보다 더 강한 힘을 지녔다.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었다.

후(後) 우마이야 왕조 타이파들이 하나둘 독립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11세기에 이르면 코르도바 인근 지역만을 지배하는 소국으로 전락했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슬람과 기독교도가 손을 잡기도 했다.

그곳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수십만의 인구를 가지고 번성하던 코르도바는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라나다에서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유대인은 혼란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아를에 정착한 유대인도 그곳에서 피난 온 이들이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로베르 기스카르는 교황과 황제의 분쟁을 이용하여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넘어 동로마 본토에 대한 침공을 준비했다.


그에 대항하는 동로마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동로마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튀르크에 패했다.

그 결과로 시리아 북부와 아나톨리아 지역을 잃었다.

황제 로마노스 4세가 폐위되고 두카스 가문이 정권을 잡았다.

두카스 가문은 무능했다.

그 결과 각지에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시대였다.

심지어 1079년엔 룸 술탄국을 공격하기 위한 군대가 오히려 깃발을 거꾸로 들었다.

동로마는 서서히 몰락하고 있었다.


이슬람 쪽도 만만치 않았다.

중동에서는 파티마 왕조와 셀주크 튀르크가 대립하고 있었다.

레반트 지역에서는 두 세력이 약해지면서 아미르(아랍어: أمير; amīr, ãmir, 총독)는 독립영주가 되기 시작했다.

룸 술탄국은 셀주크 튀르크에서 독립했다.


1079년을 한마디로 말하면 혼란이 시대에였다.

베르트랑과 같은 새로운 세력이 힘을 키우기 좋은 시기였다.


***


가을 추수가 마무리된 논과 밭을 소가 끄는 쟁기가 갈아엎었다.

싹을 틔운 밀과 보리가 땅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나날이 추워지는 날씨에 나그네가 옷매무새를 단단히 잠갔다.

한결 차가워진 바람이 지중해의 습기를 머금었다.

이슬비(drizzle)가 옷자락을 적셨다.

수탄(Soutane) 위에 양털로 만든 펠레그리나(Pellegrina)를 두른 이들이 말을 타고 물레방아 마을로 들어왔다.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만 해도 10명이 넘었다.

대주교 아이카드와 그 일행이었다.

1079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누구에겐 특별할 일이 없는 1079년이지만···.

누구에겐 특별한 1079년이었다.

아를 대주교의 방문에 베르트랑이 직접 나와 마중했다.


“대주교 예하.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베르트랑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웃고 있지 않았다.

아이카드 대주교는 환난을 부르는 자였다.

프로방스의 내전이 그로 인해 일어났다.


“자네가 이렇게까지 반기니,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어.”


아이카드 대주교는 베르트랑의 반응을 모른 척했다.


“요새 자네에게 좋은 소식이 들리더군. 주님의 은총이네.”


아이카드 대주교 덕분에 손쉽게 아를을 얻었다.

그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궂은 날씨에 이렇게 세워둘 건가?”


안에서 이야기하자는 말이었다.


“변변치 않지만, 저의 거처로 안내하겠습니다.”


그의 말대로밖에 세워둘 수는 없었다.

불청객이라도 손님은 손님이었다.

접대의 관습을 다하기로 했다.


***


-아이카드 대주교가 왜 왔을까?-


베르트랑의 물음에 악마가 대답했다.


-무력 아니면 돈이겠지. 다른 일로 이곳에 올 이유가 없잖아.-


서로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막무가내로 왔다면 목적이야 뻔했다.

원하는 게 있어 온 것이다.

베르트랑이 보유한 병력이 상당했다.

타라스콩과 물레방아 마을, 아를, 베르트랑을 따르는 3명의 기사를 합하면 250명 정도 되었다.

최대 200명까지 전쟁에 동원할 수 있었다.

프로방스에서 내전을 벌이는 이들의 군대는 각각 1,000명 내외였다.

200명이면 전황을 바꿀 수 있는 숫자였다.

아이카드 대주교가 탐낼만했다.

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를을 베르트랑에게 넘기면서 대주교는 큰 수입을 잃었다.

대주교의 힘은 신앙뿐만 아니라,

돈에서 나왔다.

성직자 사이의 뇌물은 흔했다.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아이카드 대주교는 기사와 병력을 운용했다.

그들에게 보수를 주어야 했다.


-아를의 조세권을 다시 돌려달라 할 수도 있어.-

-거절해야겠네.-


프로방스의 내전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모아온 병력과 돈을 잃는 일이었다.

내전에 승리해도 얻을 수 있는 건,

프로방스 북부에 있는 얼마 안 되는 땅이었다.

지키기도 관리하기도 힘든 곳이었다.

얻어봐야 계륵(鷄肋)이었다.

버리기 아깝고···.

지키기 위해선 많은 자원을 써야 했다.

그 자원을 아를에 사용하는 게 더 나았다.

아를의 조세권은 더욱 말도 안 되었다.

힘들게 밥상 차려 남 주는 일이다.

아를이 대주교에게 받았을 때보다 훨씬 성장했다.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야.-


병사와 돈 모두 아이카드 대주교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만큼 집요할 것이었다.


-아이카드 대주교가 돌아서면 우리도 곤란해.-


레 보드 프로방스의 보 가문과 마르세유 자작, 새끼 돼지 가문 등이 아이카드 대주교를 위해···.

아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프로방스 백작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칼끝은 언제든지 이쪽으로 돌아설 수 있었다.

명분만 주어진다면···.

아이카드 대주교는 그러한 명분을 쥐어 줄 수 있었다.


-음···. 적당하게 걸 주고 달래야겠네. 뭔가 괜찮은 게 없을까?-


아이카드 대주교를 만족시키면서···.

이쪽은 별 부담이 없는 것을 찾아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계획을 좀 더 빠르게 진행하지.-

-어떤 거?-


일전에 악마가 베르트랑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


물레방아 마을에 베르트랑의 영주관(Manor house)은 따로 없었다.

에드몽의 영주관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아를이 베르트랑의 영지였다.

물레방아 마을의 영주는 에드몽이었다.

아를에 영주관이 생기면···.

이곳의 영주관은 에드몽에게 넘겨줄 것이었다.

그래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저택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자네는 보기와 달리 검소하군.”


아이카드 대주교가 오해했다.

그도 베르트랑의 재력을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런 이가 작은 집에 머무른다는 사실이 그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검소함은 그리스도교인의 미덕이었다.


“모은 재산을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돈을 영지 개발에 투자하고 있었다.

아를이 빠르게 발전하는 건 그 덕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맷돌의 보급, 영지 주민의 생활 개선에도 힘쓰고 있었다.

모두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은 그걸 알 수 없었다.

베르트랑은 자애롭고 신실한 영주로 소문이 났다.

아이카드 대주교가 감탄했다.


“자네가 주님의 은총을 받는데 이유가 있었어.”

“다 대주교 예하의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아를을 가져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하하.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자네는 참 겸손하군.”


아이카드 대주교는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

베르트랑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시종이 마실 것과 음식을 들고나왔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드십시오.”


마실 것으로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포도주가 나왔다.

포도주를 뜨거운 물에 담가 데웠다.

술에서 향신료와 포도주의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먹을 것으로 비프스테이크(Beefsteak)와 달걀 및 두부 요리였다.

비프스테이크는 후추와 향신료를 듬뿍 사용했다.

달걀과 두부는 소금과 간장으로 마무리했다.

비프스테이크에 향신료를 많이 쳤기 때문이었다.

맛의 조화를 맞춘 것이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정성을 들였구먼···. 허허.”


갑작스러운 방문에 미리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베르트랑이 일상적으로 먹는 것으로 준비했다.

그러나 아이카드 대주교에게는 다르게 다가갔다.

사치스러운 사람이 값비싼 음식을 내어놓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검소한 이가 손님에게 사치스러운 음식을 대접하는 건 크게 다가왔다.

자신을 위해 특별한 식사를 준비한 것으로 생각했다.


“마음에 드시길 바랍니다.”

“이런 대접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 다른 이에게 욕할 것이네. 하하.”


향신료가 들어간 포도주는 로마 시대에서부터 고급 음료였다.

로마 시대가 끝나고 바다에는 사라센 해적과 바이킹이 날뛰었다.


지중해에서 동서의 교역이 쇠퇴했다.

서쪽 지역에 향신료의 공급이 급감하고 가격이 크게 올랐다.

향신료는 값비싼 물건이었다.

포도주와 음식에 향신료의 사용이 줄었다.

다시 향신료의 사용이 늘어난 것은 십자군 원정 이후였다.

십자군 원정이 지중해 동부와 서부 지역의 교역을 활성화했다.

향신료가 들어간 포도주는 대영주나 대주교 정도나 마실 수 있는 음료였다.

아이카드 대주교는 검소한 베르트랑에게 자신에 걸맞은 대접받은 것이다.


“소고기를 식사로 내어놓다니···.”


성직자 중에서는 사순절 기간 외에도 육식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수도원에 속한 수사들이었다.

그들은 콩을 재배해서 먹었다.

귀족 중에도 일부 그런 이들이 있었다.

중세에도 콩과 콩 요리가 남아 있는 이유였다.

서양의 채식주의는 종교와 영향이 깊었다.

육류와 유제품, 달걀 등에 세부적인 지침이 달랐다.

후대에 채식주의자를 나누는 기준인 베지테리언(Vegetarian)과 비건(vegen)도 종교적 신념이 큰 영향을 주었다.

세속적인 아이카드 대주교가 그렇다는 건 이외였다.


“고기가 문제가 된다면···. 다른 음식으로 가져오라 하겠습니다.”

“아니네. 자네의 마음이 갸륵해서 그런 것이네. 이 귀한 것들을···.”


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사에 중요한 가축이었다.

우유와 치즈를 만드는 데도 필요했다.

큰일이 아니면 잘 잡지 않는 가축이었다.

가축으로는 보통 돼지나 닭을 많이 잡았다.

양과 염소도 양털과 치즈를 제공하는 가축이라 잘 잡지 않았다.

가장 많은 건 멧새나 자고새, 사슴, 토끼, 멧돼지와 같은 야생 동물 고기였다.

가축으로 키워진 것보다 노린내가 심했다.

향신료를 듬뿍 친 비프스테이크 굉장히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

달걀도 비슷했다.

닭은 잡아도 달걀을 잘 먹지 않았다.

달걀은 일종의 종자였다.

부화시켜 키우면 다시 달걀을 생산했다.

잡아먹는 건 수탉이나 알을 잘 못 낳는 늙은 닭이었다.

닭과 달걀의 가격이 비슷했다.

그런 소와 닭이 물레방아 마을엔 흔했다.

소는 농사일을 위해 예전부터 많이 키웠다.

닭은 아를에서 많이 키웠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라센인들에게 인기이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음식인가? 맛이 별미이군.”

“콩치즈입니다.”


연두부였다.

연두부에 아를에서 구한 보리 간장으로 맛을 내었다.

부드러운 연두부와 단맛과 감칠맛이 나는 연두부는 잘 어울렸다.

추가로 라임과 허브를 더해 맛을 내었다.

별미라고 부를 정도로 맛이 괜찮았다.


“일부러 나를 위해 준비했군.”


아이카드 대주교는 자신이 성직자라서 일부로 베르트랑이 연두부 음식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콩 요리는 수도사를 위한 음식이었다.

그는 몽마주르 수도원의 원장이기도 했다.


“허허. 자네를 다시 보았네.”


베르트랑은 평소에 자신이 먹는 음식을 대접했을 뿐이었다.

반면에 아이카드 대주교는 제대로 대접받았다고 생각했다.

불청객이라도···.

자신을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그를 좋게 보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 경청하겠습니다.”


예의 바른 대답이었다.

아이카드 대주교는 그런 베르트랑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크루세이더 킹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7.1일부터 새로운 글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4 24.06.21 243 0 -
101 101. 전쟁보다는 타협. +4 24.06.28 174 19 12쪽
100 100. 장례식. +4 24.06.27 219 18 12쪽
99 99. 시몽이 바르셀로나에 간 이유.(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2 24.06.26 230 19 12쪽
98 98. 바르셀로나(Barcelona). +4 24.06.25 272 16 12쪽
97 97. 나르본(Narbonne). +2 24.06.23 289 18 12쪽
96 96. 아삽(Asaf)의 고민. +4 24.06.22 281 17 12쪽
95 95. 탐이 나. +8 24.06.21 286 15 12쪽
94 94. 원로원 제1인자(princeps senatus). +6 24.06.20 275 22 12쪽
93 93. 아를 상회(company). +4 24.06.19 288 17 13쪽
92 92. 타유(세금)의 의미. +6 24.06.18 286 17 12쪽
91 91. 연못 아랫마을에서의 전투. +8 24.06.17 322 17 13쪽
90 90. 바다 위의 빛(Fos-sur-Mer). +2 24.06.15 309 17 12쪽
89 89. love or hate. +4 24.06.14 304 17 13쪽
88 88. 성모의 이름으로. +4 24.06.13 320 19 11쪽
87 87. 기준 화폐. +2 24.06.12 307 18 12쪽
86 86. 은화 주조. +2 24.06.11 307 17 13쪽
» 85. 아이카드 대주교의 방문. +2 24.06.10 319 19 12쪽
84 84. 농업 길드. +2 24.06.09 322 16 12쪽
83 83.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 +2 24.06.08 325 18 12쪽
82 82. 자애롭고 신실한 영주. +4 24.06.07 331 16 11쪽
81 81. 나에겐 힘들지 않지만 상대에게 힘든 일. +2 24.06.06 318 13 14쪽
80 80. 맷돌의 의미. +4 24.06.04 342 15 12쪽
79 79. 자애로운 영주. +4 24.06.03 342 14 13쪽
78 78. 쓸모를 찾는 일. +7 24.05.31 357 17 14쪽
77 77. 옆구리 찌르기. +4 24.05.30 339 17 12쪽
76 76. 운송비. +4 24.05.29 354 18 12쪽
75 75. 청어와 코그(Cog), 플루트(fluyt). +2 24.05.28 348 15 13쪽
74 74. 바이킹의 유산. +4 24.05.26 370 19 12쪽
73 73. 최선을 고를 수 없다면 차악을. +4 24.05.25 368 1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