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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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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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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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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8. 성모의 이름으로.

DUMMY

88. 성모의 이름으로.


“성모시여. 죄 많은 저희를 용서하소서.”


성모의 발현(Apparitiones Virginis Mariae)은 기적이었다.

아이카드는 눈물 흘리는 성모의 모습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대주교라는 신분도 잊었다.

정신적인 고양감이 그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손과 발까지 떠는 모습은···.


-마치 마약 중독자 같군.-


악마는 여느 때와 같이 이상한 말을 했다.


-마약?-

-도파민과 비슷한 물질이야. 행복감과 고양감을 주는 성분이지.-


그와 함께 잡다한 지식이 들어왔다.

성모상이 만들어진 것을 알지만···.

사람의 감정은 동조현상을 일으켰다.

베르트랑도 어느새 대주교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팍 식었다.


-뭔가 신비감이 사라지네.-

-오히려 신비이기도 하지. 도파민이 많은 걸 이루어 냈으니.-

-도파민?-

-인간이 문명을 이룰 수 있게 만들어 준 물질이야.-


뇌에 행복감과 고양감을 주는 물질이었다.

그런 행복감과 고양감을 얻기 위해 인간은 힘들어도 노력했다.


-도파민이 없다면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않아.-


사냥과 스포츠, 공연, 전쟁 등 모험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성취감과 보상, 쾌락의 감정을 느끼며 인체를 흥분시켜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느끼게 했다.

도파민은 그런 육체적인 일뿐 아니라, 정신적인 일에도 관여했다.

창조적인 활동도 도파민과 연결되어 있었다.

예술과 음악, 창작 과정에도 크게 관여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문명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신체에 도파민이 부족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기력해졌다.

도파민은 계속 무언가를 갈구하며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좋은 물질이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조절하지 않으면 망가져.-


도파민이 조절되지 않으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되어 버렸다.

과열된 차는 부서졌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망가져 버렸다.

도파민의 조절은 중요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뒷구멍을 만들지.-


힘든 노력을 하지 않고···.

행복감과 고양감을 얻을 방법을 찾았다.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술이었다.

알코올이 흡수되면 뇌의 신경을 자극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출하게 했다.

도파민은 술 마시는 사람 뇌에 보상받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 음주를 계속하게 했다.

니코틴과 코카인도 비슷한 효과를 가졌다.

인간은 마약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찾았다.


-손쉬운 방법에는 대가가 있어.-

-무슨 대가?-

-중독이야.-


도파민은 중독과 관련이 깊었다.

게임과 섹스, 약물, 폭력, 도박, 쇼핑 등 모든 중독에는 도파민이 관여했다.

인간의 뇌는 언제나 도파민을 갈구했다.


-그중 하나가 신앙이야.-


종교적 믿음은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켰다.

신앙은 정신적인 황홀경을 맞보게 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종교는 제정신으로 하기 힘든 일들도 하게 했다.

신앙은 술과 약물, 도박, 폭력 등과 함께 중독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였다.

중독은 쉽게 치료하기 어려웠다.

도파민에 절어진 뇌는 계속 강한 자극을 원했다.

이 시대의 사람은 단순히 지옥이 무서워 힘든 순례길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힘든 순례길을 마치고 신과 성인의 자취를 만났을 때···.

정신적인 고양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그게 없다면 먼 길을 걸어 예루살렘까지 갈 수 없었다.


***


-효과는 확실하군. 돈이 되겠어.-


아이카드 대주교를 보며 악마가 말했다.

눈물 흘리는 성모상은 확실히 큰 인기를 끌 것이었다.

성모의 기적에 아이카드 대주교처럼 신앙의 황홀감을 느낄 것이다.

그에 비해 베르트랑은 담담했다.

녀석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정신적인 고양감에 몸을 떨 것이었다.

눈물 흘리는 성모상은 그가 만든 것이다.

원리를 알고 있었다.

베르트랑에겐 그냥 조각상이었다.

그 안에 신성이 깃들지 않았다.

악마는 베르트랑 안에 있는 신앙을 확실히 부수었다.


-뭔가 아쉽군.-


신앙이 사라진 것이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도파민 분비가 아쉬운 것이다.

그건 삶에 의욕을 주는 물질이기도 했다.

도파민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 걱정하지 마. 도파민은 다양한 상황에서 분비되니.-


도파민은 보상 기전에도 작용했다.

노력과 그에 대한 보상···.

그 과정에 도파민이 분비된다.

노력에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

인간은 우울감과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너의 노력에는 언제나 보상이 주어질 거야.-


신앙과 술, 약물, 도박, 폭력에 의지하는 것보다···.


-그게 더 나은 방법이야.-


노력에 제대로 된 보상이 주어지는 것···.

보상 기전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

그게 도파민의 진정한 역할이었다.


-계속 노력한다면 그걸 느낄 수 있을 것이야.-


그건 베르트랑이 위대한 군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


아이카드 대주교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정신적 황홀감과 신앙적 고양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도파민은 빠르게 분해되는 물질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베르트랑에게 물었다.


“성모의 성물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이카드 대주교는 눈물 흘리는 성모상을 원했다.

그에 베르트랑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자기 영지에 두는 것이다.

영지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몽마주르 수도원에 기증할 것입니다.”


아이카드 대주교를 만족시키면서 눈물 흘리는 성모상으로 이득을 얻는 방법이었다.

몽마주르 수도원은 물레방아 마을이나 아를과 그리 멀지 않았다.

순례객들은 아를과 물레방아 마을을 통해 성모상을 참배하러 갈 것이었다.


-도난까지 생각한다면 수도원이 더 낫지.-


이 시대엔 성유물을 훔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가치가 높은 성유물은 더욱 심했다.

성유물을 빼앗기 위해 전쟁까지 벌일 정도였다.

관리를 수도원에 맡기는 게 나았다.

몽마주르 수도원은 성유물을 지키기 좋은 장소였다.


“잘 생각했네. 역시 자네는 신실하군.”


그걸 모르는 아이카드 대주교는 매우 기뻐했다.

자신이 영향력을 보유한 몽마주르 수도원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기증을 예하의 이름으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만일을 대비한 것이다.

성유물의 출처에 문제가 생기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사라센 상인과 아이카드 대주교 사이에···.

베르트랑은 단순한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그게 정말인가! 하하. 잘 생각했네. 그런데···.”


크게 기뻐하던 대주교가 의문을 품었다.

호의가 과하면 그 의도를 의심해 봐야 했다.

대주교는 정치인이었다.


“자네. 뭔가 원하는 것이 있군.”


눈치가 빨랐다.

여기서 피에르 사제 이야기를 꺼내면 하수였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성모의 눈물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이카드 대주교는 그 말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작금(昨今)의 상황에 비통해하시는 것이겠지.”


황제와 교황이 다투고 있었다.

독일이 내전에 빠져 있었다.

그건 프로방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이들이 목숨과 집을 잃었다.

피난민이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이건 주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야.”


그는 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무도한 프로방스 백작에 대한 주님의 징벌이 필요하겠어.”


아이카드 대주교는 정치가였다.

이 일을 빌미로 정적을 공격할 것이었다.

교황을 직접 비난하는 건 위험했다.

대신, 프로방스 백작을 공격할 것이었다.

배후에 있는 교황을 간접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동시에 대주교를 따르는 이들에겐 성모가 함께한다는 명분을 줄 수 있었다.


“다만,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


아이카드 대주교가 들을 자세가 되었다.

요구가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었다.


***


“적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적이라면···.”


정치인인 아이카드 대주교에겐 적이 많았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에게 많은 적이 있지만···.

대표적인 적이라면 그를 파문한 교황이었다.

굳이 그 이름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몽마주르 수도원에 손을 쓸 수 있습니다.”


교황이 수도원장 자리나···.

대주교 자리를 약속하고 부수도원장을 회유할 수도 있었다.

수사들을 부수도원장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몽마주르 수도원은 은화 발행권과···.

눈물 흘리는 성모상이라는 큰 이권을 가지게 되었다.

많은 걸 가지게 되면 사람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공석인 수도원장 자리를 노릴 수도 있고···.

아를의 대주교나 추기경 자리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교황과 협력한다면···.

그렇게 되면 둘 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될 것이다.

손해 보는 건 아이카드 대주교와 베르트랑이 된다.

그 말에 아이카드 대주교는 불안을 느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건 위험했다.

위험의 분산이 필요했다.


“내가 부수도원장을 믿지만···. 권력을 몰아주는 건 위험하겠군.”


의심이 깊어졌다.


“자네 말대로 피에르 사제에게 몽마주르 수도원을 맡기는 게 낫겠네.”


피에르 사제가 수도원장이 된다면 서로를 견제하게 된다.

교황이 한쪽을 설득하더라도 쉽게 넘어가지 않게 될 것이었다.

양쪽을 모두 포섭하기는 힘들었다.

두 사람을 만족시킬 좋은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저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몽마주르 수도원장의 자리가 결정되었다.


***


“그동안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예하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아이카드 대주교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

권력자는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겐 은근하게 빚을 지워야 제맛이었다.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를 더 준다는 말이 있었다.

시끄럽게 우는 아이가 매를 버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사이의 간극(間隙)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카드 대주교는 그런 베르트랑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네. 내가 그동안 라크라우 지역의 이들의 말을 듣고 자네를 오해했네.”


그는 그동안 담아왔던 이야기를 풀었다.

마르세유 자작은 라크라우 지역에 관여할 생각도 여력도 없었다.

그곳의 사람들이 달려간 곳은 아이카드 대주교였다.


“하마터면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갈 뻔했네.”


베르트랑이 아이카드 대주교의 요청을 거절했다면 그들의 편에 설 수도 있었다.

기대가 좌절되면 분노와 증오로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분노와 증오는 강력한 힘이었다.

라크라우 지역의 영주들을 옹호하고···.

베르트랑을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이로 몰아붙일 수도 있었다.


“자네가 이렇게 사려가 깊고 신실한 이였을 줄이야.”


베르트랑을 아끼는 만큼···.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이를 그렇게 매도하다니. 그자들이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것이야.”


라크라우 지역의 영주와 성직자들에 대해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났다.

자신을 챙겨주는 이와,

귀찮게 하는 이들 중 누구를 지지할지는 분명했다.


“만일 이곳을 노린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네.”


아이카드 대주교는 베르트랑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성모의 눈물을 보고 깨달은 게 있네. 이 세상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이들이 너무 많아.”

“옳은 말씀입니다.”


성모의 이름으로 그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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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 love or hate. +4 24.06.14 317 18 13쪽
» 88. 성모의 이름으로. +4 24.06.13 334 20 11쪽
87 87. 기준 화폐. +2 24.06.12 321 19 12쪽
86 86. 은화 주조. +2 24.06.11 322 18 13쪽
85 85. 아이카드 대주교의 방문. +2 24.06.10 334 20 12쪽
84 84. 농업 길드. +2 24.06.09 336 17 12쪽
83 83.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 +2 24.06.08 338 19 12쪽
82 82. 자애롭고 신실한 영주. +4 24.06.07 345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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