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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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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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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맷돌의 의미.

DUMMY

80. 맷돌의 의미.


맷돌은 악마와 베르트랑의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악마는 맷돌의 보급을 권유했다.


-맷돌?-

-곡식을 가는 데 쓰는 기구야.-


베르트랑은 맷돌이라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물레방앗간 같은 거야?-

-목적은 같은 데 방식이 달라.-


분쇄한다는 결과물은 같지만···.

빻는 것과 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행동이었다.

맷돌은 블렌더(Blender)와 믹서기(Mixer)에 가까웠다.

방아와 맷돌은 다른 기계였다.

둘은 모두 수력에 의해 기계화가 되었다.

다만, 좌우회전(맷돌) 운동보다 상하운동(방아)이 기계화에 유리했다.

물레방아가 대표적인 제분소가 된 것이다.


-방앗간보다 좀 더 간단하고 단순한 기계야.-


맷돌(mill stones)은 아주 오래된 도구였다.

방아보다 맷돌이 먼저 사용되었다.

구석기 시대에 이미 채집한 곡식을 맷돌에 갈아 먹었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부터 맷돌이 사용되었다.


-맷돌이 보급되면 여러 가지 장점이 많아.-

-어떤 장점?-

-곡물을 쉽게 가루로 낼 수 있지. 마을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단단한 걸 부수고 가는 행위는 소화(消化)의 첫 단계였다.

입에 단단한 이빨이 있는 이유였다.

풀을 먹는 소의 경우 되새김질을 했다.

음식물을 잘게 쪼개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소화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는 것만으로 음식의 흡수율을 높일 수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소화 시간을 줄인다는 것이다.

침팬지는 12시간을 먹고 소화하는 데 사용했다.

초식동물은 하루 대부분을 먹고 소화하는데 보냈다.

음식을 갈고 익힘으로써 인간은 많은 시간을 얻었다.

그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농사를 짓고,

건축물을 만들고 ,

문명을 일구었다.

맷돌은 화식(火食)과 함께 인간 진화의 큰 열쇠였다.

그러한 맷돌은 인류와 함께 전 세계로 퍼졌다.


***


-가루를 내는 건 방앗간이 있잖아.-

-방앗간과 맷돌은 사용되는 상황이 달라.-


방앗간은 대량으로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시설이었다.


-맷돌은 소량으로 곡식을 가루로 만들 수 있지.-


맷돌은 블렌더(Blender)처럼 주로 가정에서 사용되었다.

악마는 베르트랑에게 맷돌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괜찮은 거 같은데···. 나는 왜 그걸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지?-


악마의 말에 따르면 맷돌은 아주 오래되고 널리 사용된 도구였다.

베르트랑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생소한 기구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유럽의 경우 맷돌이 로마 시대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다 중세 시대부터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중 하나는 물레방아의 보급이야.-


로마가 몰락하면서 아를의 물레방앗간처럼 공장과 같은 대규모 시설은 사라졌다.

대신에 소규모 물레방아의 보급은 더욱 진행되었다.

물이 풍부한 북유럽엔 물레방앗간이 매우 흔해졌다.

사생아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점령한 후 세금을 매기기 위한 세무 조사에 들어갔다.

그것이 룸스데이 북(Doomsday Book)이라는 책자로 정리가 되었다.


[룸스데이 북에 따르면 잉글랜드에 인구 300명당 1개의 방앗간(mill)이 있었다. 죽 대신에 빵의 소비가 증가한 것을 암시한다.- 조르주 뒤비의 중세 시대 사회 경제사.]


방앗간의 보급은 맷돌의 사용을 감소시켰다.

집에서 힘들게 맷돌로 곡식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


-방앗간이 있어도 맷돌의 수요는 꾸준히 있을 것인데···.-

-역시 영리하군. 네 말이 맞아.-


대규모로 밀을 제분하던 로마 시대에도 맷돌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집에서 소규모로 제분하는 데 맷돌만 한 게 없었다.

밀가루와 방앗간이 있어도 집에서 블렌더를 사용하는 이유였다.

빵집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시대에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중동과 중앙아시아엔 맷돌로 제분하여 화덕에 구워내는 난(naan)과 로티(Roti)와 같은 빵이 있었다.

즉석에서 구운 빵은 그 나름대로 별미였다.

그런데···.

같은 밀을 먹는 서유럽에만 그런 식의 빵이 드물었다.

난(naan)과 로티(Roti)와 비슷한 피자가 나온 건 상당히 후대의 일이다.

한동안 서유럽에서 맷돌이 사라졌다.


-맷돌이 사라진 건···. 세금 때문이야.-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각종 행정 제도가 쇠퇴했다.

인두세는 명확하지만···.

다른 세금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가 영주를 대신해 세금을 거두는 일을 돕고 있었다.

교회와 수도원은 영주보다 더 정확히 세금을 알 수 있었다.

신앙은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었다.

수도원엔 생각보다 상세한 자료들이 남아 있었다.

인구와 가구 수, 과일나무와 가축 수까지···.

괜히 왕과 영주가 수도원이나 교회를 손아래 두려는 게 아니었다.

서임권 투쟁(Investiture Controversy)의 본질은 세금과 그에 따르는 권력 때문이었다.

교회를 통해 거두는 세금이 11(十一租, tithe)조였다.

11조의 상당 부분은 영주의 손에 넘어갔다.

레이먼드는 생질 수도원이 거두는 세금의 절반을···.

에티엔 백작 부인의 몽마주르 수도원이 거두는 세금의 절반을 가져갔다.


-세금은 아무리 거두어도 부족하지.-


인두세와 11조를 받아도 영주는 언제나 세금이 부족했다.

가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연회를 자주 개최해야 했다.

그들에게 선물도 자주 베풀어야 했다.

그래야 가신들의 충성심이 유지되었다.

상무적 관계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었다.

공짜는 없었다.

타유(taille), 경조사비는 공짜가 아니었다.

거기에 다른 영지와 전쟁을 하게 되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상인에게 돈을 빌려서 전쟁을 수행했다.

빌린 돈은 언젠가 갚아야 했다.

결국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세금을 거두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 제분소와 화덕을 통제하는 것이야.-


제분소와 화덕은 교회와 영주만 가질 수 있었다.

빵을 먹으려면 세금을 내야 했다.

밥상머리를 쥐고 있으면 세금을 안 낼 수가 없었다.

잉글랜드에 방앗간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죽 대신에 빵의 소비가 증가한 것만은 아니었다.

영주들이 세금을 거두기 위해 방앗간을 많이 지은 영향도 있었다.

조르주 뒤비와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었다.


***


-맷돌을 보급한다면 나에게도 문제가 생기지 않아?-


베르트랑은 영주였다.

세금을 거두어야 하는 처지였다.

세금이 줄어드는 정책을 선택하긴 어려웠다.


-몰래 빵을 만들어 먹는 걸 감시하는 게 쉬운 게 아니야. 실효성이 적어.-


인구 300명당 하나는 모든 마을에 물레방앗간이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평균의 함정이었다.

큰 마을엔 방앗간이 두 개 있을 수 있었다.

작은 마을엔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다.

비가 적게 오거나 수로가 정비되지 않은 곳은 가축이나 다른 동력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다.

거기에 방앗간의 제분 능력은 제각각이었다.

생각 외로 방앗간이 없는 곳이 많았다.


-맷돌을 단속하는 이는 방앗간지기야.-


방앗간지기는 마을의 유지였다.

그는 맷돌을 사용하지 않는 이를 적발했다.

그들의 생계가 달린 일이니,

맷돌을 철저히 감시했다.

방앗간 지기의 눈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갑자기 방앗간 이용이 줄어들면 의심할 것이다.

맷돌을 사용하는 것으로···.

그러나 그런 방식에도 한계가 있었다.

마을에 방앗간이 없으면 방앗간 지기가 없었다.

그런 마을은 감시할 수 없었다.

장과 피에르가 있는 연못 아랫마을이었다.

그들은 몰래몰래 사용했다.

다른 마을의 방앗간 지기는 정확한 사정을 알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맷돌과 화덕은 마음만 먹으면 회피할 방법이 많아.-


단순한 맷돌은 두 개의 돌만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분리해 놓으면 그냥 돌 두 덩어리였다.

화덕도 마찬가지였다.

모닥불에 데운 돌이 화덕의 역할을 했다.

순례자나 여행객 중에는 그런 식으로 납작 빵을 만들어 먹었다.

마음먹고 작정하면 막을 수 없었다.


-물레방아 마을과 아를은 다른 곳과 상황이 달라.-


물레방아 마을은 대규모 제분소와 제빵소가 있었다.

직접 맷돌과 화덕을 만들어 빵을 굽는 것보다 사 먹는 게 더 저렴했다.

대부분은 그냥 빵을 사 먹었다.

빵을 팔아 생기는 이익이 세금으로 걷혔다.

아를은 제분소와 제빵소가 참사회의 소속이었다.

참사회가 정해진 세금만 내면 관여할 이유가 없었다.

그곳은 간접세였다.

베르트랑의 영지는 맷돌을 금지한다고 세금이 느는 상황이 아니었다.


-맷돌을 사용하게 하는 게 오히려 장점이 많아.-

-그게 장점이 더 많다고?-


영지에 맷돌을 보급함으로써 얻는 장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


-우선 땔감의 소비를 줄일 수 있어. 이곳에서 재배되는 곡물이 쌀과 밀만 있는 것이 아니야.-


쌀은 익히면 소화가 잘되는 곡물이었다.

땔감이 적게 들었다.

그에 비해 소화흡수율은 높아 매력적인 작물이었다.

밀은 가루를 내어 빵으로 만들면 소화하기 편해졌다.

그 과정에 일손과 땔감이 많이 들지만···.

방앗간과 제빵소를 통해 한 번에 많은 양을 생산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다른 곡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물레방아 마을은 밀 빵만 생산했다.

다른 곡물은 들어간 노력에 비해 수익이 안 나오기 때문이었다.

물레방아 마을에 쌀과 밀, 보리만 재배하는 것은 아니었다.

토지의 사정에 따라···.

개인의 취항에 따라···.

귀리와 호밀과 같은 잡곡들도 생산이 되었다.

그것들은 보통 죽(수프와 스튜)과 같은 형태로 조리되었다.

수프에 알곡을 넣는 것보다 가루를 넣는 게 땔감이 적게 들었다.

소화흡수율도 마찬가지였다.


-인구가 늘면 땔감의 소비가 증가할 거야.-


난방과 조리를 위해 땔감은 필요했다.

도시가 커질수록 주변의 산림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민둥산이 되는 것도 금방이었다.

따뜻한 프로방스는 난방보다 조리에 들어가는 땔감의 수요가 많았다.


-맷돌의 보급은 땔감 소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돼.-


그것만 줄여도 도시는 더 크게 성장할 것이다.

환경이 망가지면 도시의 성장도 제한을 받았다.


-그게 이렇게 연결이 되나?-

-세상의 모든 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음···.-

-작은 변화가 큰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지.-


칭기즈칸이 몽골군을 이끌고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로 인해 동방의 문물이 서방에 빠르게 전달되었다.

그것은 대항해 시대로 이어졌다.

그사이에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의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졌다.

모험가 마르코 폴로가 전쟁 포로로 제노바의 감옥에 수용되었다.

그의 옥중 이야기가 책으로 편찬되었다.

동방견문록(Book of the Marvels of the World)이었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동방견문록이 발간되지 않았어도 대항해 시대는 일어났을 것이다.

향신료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은 좀 더 늦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맷돌이 아를과 물레방아 마을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어.-


더 빠른 시기에 더 큰 도시로···.


-음···.-


베르트랑의 맷돌이 주는 이해득실(利害得失)을 따지기 시작했다.


***


-무엇보다 라크라우 지역의 영주들을 도발할 수가 있어.-


아를과 물레방아 마을 동쪽에 라크라우 지역이 있었다.

아를 인근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다.

베르트랑이 성장하기 위해 차지해야 할 땅이었다.

그곳의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미 도발을 했었다.

장과 피에르 같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쉽게 싸움을 걸지 않았다.

그들을 더 도발할 필요가 있었다.


-맷돌이 물레방아 마을에 보급되면 이곳에만 사용될까?-

-그렇네.-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작정하면 막을 수 없었다.

맷돌이 서서히 주변 지역으로 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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