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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님의 서재입니다.

A급 헌터가 살아가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검미성
작품등록일 :
2024.05.23 21:16
최근연재일 :
2024.06.26 00:0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696,310
추천수 :
29,372
글자수 :
211,922

작성
24.05.24 00:00
조회
25,755
추천
818
글자
11쪽

학원 수강생 김극 - [4]

DUMMY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었다.


나는 학원에서 마주친 수강생들의 끔찍한 시체를 계속해서 보아야 했다.


이종호. 양팔이 찢겨나가 피를 철철 흘리며 죽었다.


김진준. 머리가 으깨져 구불구불 뇌가 고스란히 드러난 채 죽었다.


성문영. 가슴팍에 큼지막한 구멍이 여러 개 뚫려서······.


물론 전부 환각이었다. 현실 속 그들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안도하긴 어려웠다. 매 환각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나는 끔찍한 분노와 우울감을 느껴야 했으니까.


그리고 꿈, 그놈의 꿈이 계속되었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


“니미······.”


나는 일어나자마자 숨을 헐떡였다. 입가에 잔뜩 묻은 침을 닦아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정신과에 가봐야 하나?


씻고 학원 갈 준비를 하자니 그 생각은 점차 굳어졌다. 정말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건가?


꿈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었다. 가슴은 계속해서 쿵쿵거렸고, 라면 하나 끓이는데도 기시감이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병원 갈 돈도 없겠다, 고작 악몽과 기시감 때문에 병원에 갔다간 의사가 호구 새끼 왔냐며 비웃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헌트웹에 들어가니 익숙한 닉네임의 유저가 이상한 글을 올려놓았다.



Ⓐ syberMagneto : 지나가는 길에 비각성자가 나 보고 큰절 안 하길래 삼족을 멸했는데 칭찬 좀



이 친구는 댓글 하나 달리지 않아도 매번 비슷한 내용의 헛소리를 게시판에 꾸준히 올려댄다. 게시판 규정상 가능한 일이 아닌데 어떻게 가능한 걸까?



BabyBerserker : 아조씨들! 헌터 게시판에 뻘글 올리면 경고 후 정지 아니에양? 사이바매그니토 저 옵바야는 왜 정지 안 먹어양?



헌트웹은 이해할 수 없을 만치 이용자가 많다. 아침인데도 곧바로 댓글이 달린다.



익명 : A배지라서


BabyBerserker : A배지가 뭐예양?


익명 : 각성자 인증하면 닉넴 옆에 붙는 거



어리즌(Arisen) 혹은 어웨이큰(Awaken)의 A였나보다. 각성자의 영미권 명칭들.



BabyBerserker : 그 배지 달면 뻘글 올려도 정지 안 먹어양? 어째서?


익명 : 일종의 각성자 우대 특권임



그런 좋은 풍습이 다 있군, 하고 생각하며 타자를 쳤다.



BabyBerserker : 민주적이지 않네양 ㅠ



곧바로 댓글이 우르르.



익명 : 민주 타령하고 자빠졌네 찌끄레기 짐꾼 새끼가 ㅋ


익명 : 민주적으로 굴면 민주주의 정령이 강림해서 괴수 대신 잡아줌?


익명 : 니 같은 짐꾼 백 명이 공들여 쓰는 헌터 정보보다 각성자가 쓴 일상 잡글이 더 고급정보인 경우 많아 병신아


Ⓐ syberMagneto : 불만이면 느 애미랑 같이 목매달고 뒤져



심통 난 댓글이 계속해서 달리는 가운데 나는 그놈의 각성자 인증을 할 방법을 찾아보고는 실행에 옮겼다.


서류 제출 페이지에 들어가자 웬 안내 문구가 적혀있었다. 전용 앱을 내려받아 각성자 서류를 찍어서 제출하면 알바가 확인하고 배지를 발급한단 것이다.


그 와중에 맨 아래에 적힌 문구가 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 2011년 1월 5일부터 헌터 직무 수행에 부적합하다고 판명된 16종 초상 능력에는 배지를 발급하지 않게 되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각성자용 배지를 발급하지 않는, ‘헌터 직무 수행에 부적합한’ 능력 목록의 맨 앞에는 내 여동생의 얼음 능력이 적혀있다.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차별을 해야 하나 싶어 놀랍고도 경악스러울 뿐이다.


물론, 내 능력은 헌터 노릇에 부적합한 종류가 아니다. 절대로.


명시된 서류를 폰 카메라로 찍어 제출했다.


사이트 알바가 이미 근무 중이었던 듯하다. 오래지 않아 예의 배지가 발급되었단 시스템 메시지가 도착했다.



Ⓐ BabyBerserker : A배지 잘 어울리나양?



그 즉시 자랑 글을 올렸더니 곧바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익명 : 이 새끼 방금 올린 글에선 비각성자인 것처럼 굴더니 비틱질 하려고 준비하던 거였음? ㅎㄷㄷ


익명 : 기만질 존나 자연스럽네······.


Ⓐ syberMagneto : 비각성 쓰레기인 줄 알았더니 동족이었네? 환영해!



이후로도 댓글이 주르륵 달렸는데, 나는 그 하나하나를 훑으며 웃었다.


질시와 부러움의 반응들. 내가 각성자란 사실을 인증한 결과는 예상외로 뜨거웠다. 갑자기 날 형님이라 부르는 놈부터 특정 RPG 하는 것 같은데 친구 등록하게 닉네임 알려달라는 놈까지 별별 놈이 나타나서 내게 친한 척하는 것이다.


심지어 시스템 메시지 외엔 본 적도 없는 쪽지가 갑자기 와서 보니 자기가 현역 헌터인데 연락하면 선배로서 밥을 사주고 업계 정보를 알려주겠단 제안이다.


아, 쪽지가 하나 더 왔다. 이번엔 좀 더 본격적이다. 과거 작성 글을 보니 아직 현역 헌터는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꾸릴 헌터팀에 베테랑 헌터를 넣을 생각 없느냐며 자기 전화번호와 경력을 적어서 내게 보냈다. 나랑 같이 일하고 싶은 모양이지. 귀여운 놈이.


댓글도, 쪽지도 하나하나 즐거운 맘으로 감상하던 중이었다.


어딘가에 빨려드는 느낌이 들더니, 또 다른 댓글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씨발.


갑작스레 불쾌감이 치솟았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익명 : 애미 뒤진 새끼가. 컨셉질에 기만질에 가지가지 하네 좆같은 새끼가. 운빨로 각성해놓고 지가 잘난 줄 아나?


익명 : 지옥 간 애미애비 따라 너도 얼른 뒤져서 지옥행 버스 타자



이 새끼는 왜 갑자기 욕질이지? 욱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댓글란을 본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거지 같은 댓글 어디 간 거냐?


다시 보니 댓글에 예의 욕설은 보이지 않았다. 새로고침을 하지 않았으니 댓글 단 놈이 지웠어도 보여야 정상인데 어째서?


설마 또 환각을 봤나?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또 환각에 빠지는 특유의 감각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런 댓글은 달리지 않았던 모양이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새로고침을 했다. 그리고 새로 달린 댓글들을 감상하다가 눈을 부릅떴다.



익명 : 애미 뒤진 새끼가. 컨셉질에 기만질에 가지가지 하네 좆같은 새끼가. 운빨로 각성해놓고 지가 잘난 줄 아나?


익명 : 지옥 간 애미애비 따라 너도 얼른 뒤져서 지옥행 버스 타자



방금 환각에서 본 댓글이 그대로 달려있었다.


나는 화를 참는 동시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해보려 애썼다. 뭐지? 대체 뭐냐?


끝내 답을 내지 못한 채 학원에 갔다.


그리고 학원 가는 길에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었다.


“아, 씨발!”


걷다가 웬 대변을 밟아서 욱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아무것도 밟지 않았다.


또 환각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바닥을 유심히 살피며 나아가다가 절로 몸이 멈췄다.


이게 대체 무슨······.


나는 크게 뜬 눈으로 저 앞에 똬리를 튼 대변을 보았다. 환각에서 본 것만큼 큼지막한 대변, 나무 그림자에 숨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냥 나아갔다면 분명 밟았으리라.


계속 길을 걸어가자니 이번에는 음료수 자판기가 날 분노케 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도 음료수를 뱉어내질 않자 울컥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환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자 주변에 자판기라곤 하나도 없는 걸 보니.


그놈의 자판기는 십 분쯤 더 걷고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시험 삼아 동전을 넣어보니 과연, 자판기는 음료를 내놓지 않았다.


*******


학원에 도착해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형법 수업 중에 겪은 환각이 특히 구체적이었다.


형법 강사는 학생들이 자기 수업에 잘 출석하지도 않고 기껏 출석해서는 스마트폰이나 한다는 사실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


그래서 정당하게 짜증을 내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싶은 건지 가끔 아무 학생한테나 수업 관련 질문을 던진다.


이번엔 내가 그 대상이 되었다.


‘헌터가 범죄자 체포하거나 감금하면 체포·감금죄라고 전에 말했죠? 헌터의 형사법적 지위는 어디까지나 사인에 불과해서······ 물론 법에는 늘 예외가 있어요. 그 예외가 뭘까. 김극 씨? 대답해볼래요?’


장담컨대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형사법적이 뭔지 사인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뭔 수로 대답한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대답했다.


‘체포·감금행위가 정당방위·긴급피난·자구행위인 경우?’


내가 알지 못하는 저 단어들을 고스란히 읊을 수 있었던 비결은 간단하다. 저 대답을 환각 속에서 봤으니까.


“김극 씨? 수업 시간에 정말 좋았어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줘!”


그 결과 형법 강사는 내가 생각보다 모범생이었다고 느끼게 되었는지 수업이 끝나고서 내게 커피 한 잔을 뽑아 건넸지만 딱히 기쁘진 않았다. 매 환각이 끝나면 겪게 되는 분노와 울화를 참아내야 했으니까.


모든 감정이 가라앉은 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환각들은 정신병이 아니라 어떤 초능력일지도 모른다고.


왜, 텔레포트도 가능한데 미래 예지가 안 될 이유가 뭔가?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또 한 번 각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별로 대단치는 않은 예언자가 된 것일지도.


물론 내가 멋대로 미래를 보고 있다고 기억을 조작하는 식의 조현병일 수도 있단 생각도 했지만, 이 가능성은 당장엔 고려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정신과에 갈 돈이 없으니까.


아무튼 내가 미래의 어느 순간을 미리 보는 것이라면······.


내가 앞서 보았던, 학원 수강생 누군가의 죽음도 언젠가 닥쳐올 미래일까?


그렇다면 무시하기 어렵다. 내가 주변 사람이 끔찍하게 죽으리란 사실을 무덤덤하게 넘길 만큼 사이코패스도 아니거니와,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해보려 해도 매 환각에서 나는 나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느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의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먼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나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왜 죽게 되는 걸까. 그들은 나와 함께 싸우다 죽는 걸까? 그러니까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죽는 건가? 그래서 나는 매번 환각에 빠질 때마다 분노와 절망을 느끼는 것이고?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뭘 해야 할지는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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