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새글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01 22:32
연재수 :
213 회
조회수 :
12,206
추천수 :
132
글자수 :
1,618,798

작성
23.10.07 18:20
조회
9
추천
0
글자
19쪽

104화 불신

DUMMY

104화 <불신>



“믿어줘! 믿어달라고!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 저 여자가··· 아아아악!”


신전을 울리는 단말마.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제.

프로텐시아 신전은 전례 없는 혼란에 빠졌다.

그 이유는 모험가 측에서 보낸 협력자와 연관이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죽은 사제의 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얼마 전까지 모험가 측의 협력 요청으로 파견한 사제이기도 하였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시체를 뒤집자.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반인도 확인할 수 있었다.

눈, 코, 입,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도플갱어가 죽고 기다린 뒤에 발견되는 독특한 현상이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우리 신전이 이렇게나 오염되어 있었다니.”


프로텐시아의 대사제가 참담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한때 일반 사제로 위장하여 캣니스와 일면식이 있는 그였다.

항상 온화했던 대사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도플갱어가 나올 때마다 탄식하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성스러운 신전에 마물을 들인 것도 모자라 일반 신도들과 접촉까지 시켰다니. 저는 완전히 대사제 자격 실격입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만큼 이번 사태가 일반적인 상황과 다르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중대 사항을 사전에 알아채지 못한 잘못은 큽니다.”

“프로텐시아 님은 종교 활동에 관대하니까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예배에 참여하지 않으니, 그 인원에 대해서는 확인할 기회가 없던 거죠.”

“아아. 프로텐시아시여. 이 미천한 종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한탄하는 심정이 이해되었다.

대사제의 관리 아래에 다음 사제가 들어왔다.

캣니스가 신전서 찾은 도플갱어만 해도 다섯이었다.

그들 모두 수색조와 협력한 관계였기에, 그들의 농간으로 놓친 도플갱어가 과연 몇 명일지 알 수 없었다.


“다음 차례 오세요.”


신전에는 아직 검증을 마치지 않은 사제가 한가득하다.

한 번 했던 검증이 무의미했다는 게 증명된 만큼 걱정이 한가득했다.


“대사제님 그쪽 상황은 어떤가요?”

“벌써 여덟 명이 걸렸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마물의 숫자.

그 수에 절망하기보다 앞서. 성기사가 다음 사람을 들여보냈다.


“몸수색 철저히 하여서 들여보내세요. 속옷 한 장까지 철저히 조사해서··· 아아. 말하기 무섭게 또!”


우당탕.

대사제의 비명과 함께 캣니스가 앉아있던 의자가 넘어갔다.

뒤에서 대기하던 성기사들이 즉각 포획용 막대를 뻗었다.


“괜찮으신가요 은인님!”

“아, 네. 괜찮아요. 조금 당황했을 뿐이에요.”

“아아. 그거 다행···”


다행이라고 안도하려던 대사제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본인의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재빨리 캣니스에게 다가서서 망토를 펼쳤다.


“잠시 이리로···”


괜찮다는 말과 다르게 심한 상처를 입은 캣니스.

식기용 나이프가 왼쪽 눈에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이만 쉬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대사제는 이만 캣니스를 돌려보내려 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 기대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아니요.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저 혼자···”

“이미 충분히 해주셨습니다. 남은 일은 선별작업이 끝난 사제들로 대체할 테니 제발 쉬십시오.”

“그러면 너무 미안한···”

“홀로 일흔 명의 사제를 보셨으면서 무슨 소립니까! 이제 저희로 충분하니 제발 사제님 몸 상태를 신경 써 주세요.”


거듭되는 만류에 캣니스는 시선을 옮겼다.

확실히 대사제의 말대로 남은 인원은 사제들이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셀레브리디 교단만큼 우수하지 않아도 그들은 성직자다.

대사제의 감독 아래라면 저번 같은 실수는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이봐, 저 여사제님 드디어 쓰러졌어.

-이제야 힘이 끝난 건가? 셀레브리디 교단은 전부 저 사제 같은가?

-그렇진 않을 거야. 내가 듣기로 저 사제님이 저번 성역에서···


안 그래도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고위 사제가 선별작업에서 스무 명 정도 확인 가능한데, 캣니스 홀로 일흔 명을 확인했으니 뒷말이 나올 만도 했다.


“알겠어요. 편의를 봐주신 점 감사히 받아들일게요.”


대사제의 배려를 받았다.

더 이상 이곳에 남아봤자 이로울 건 없다고 판단했다.

왼쪽 눈을 지혈하던 수건을 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속 수고해줄 대사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봐. 거기 자네. 우리 신전의 은인님을 모셔다드리고 와라.”


대사제의 목소리에 선별장소를 통제하던 성기사가 불려왔다.

대사제가 직접 그의 정체를 확인하고, 떠나는 길에 붙여줬다.


“아니요. 혼자 가도 괜찮은데···”

“도움을 주신 은인님을 어찌 그냥 보내겠습니까. 부담스러우시다면 제가 은인님께 잘 보이려고 헛짓거리한다고 여겨주십시오.”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일게요···.”

“받아들인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너는 옆에서 들었겠지? 은인님이 가는 길을 안전하게 배웅하고 와라.”


대사제가 성기사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의외인 상황이 펼쳐졌는데. 성기사의 표정이 단번에 썩어들어갔다.


“제가 어련히 잘하겠죠. 시킨 일에 간섭하지 말아요.”


대사제를 상대한 성기사가 흥, 콧방귀 뀌었다.

그 서슴없는 태도에 캣니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 기사의 말투는 너무 신경 쓰이겠지만 부디 알아주세요. 우리는 전부 이러고 지냅니다.”


대사제가 당황한 캣니스에게 직접 설명했다.

프로텐시아 교단은 이런 분위기가 일상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대사제는 그저 수고를 더하는 직위일 뿐. 약간의 목소리와 결정력을 갖는 게 다인 자리였다.

이는 계급이 높을수록 신과 닿는 거리가 짧아진다고 믿는 셀레브리디 교단의 사상과 많은 점이 달랐다.


“자, 그러면 어디서 모실까요 은인님?”


밖으로 나온 성기사가 대사제가 쓰던 호칭을 빌려 썼다.

캣니스는 민망한 기분을 잠재우려 헛기침하였다.


“모험가 길드로 갈 거예요. 그리고 은인님이라는 호칭은 그만둬주세요.”

“알겠습니다. 은인님. 모험가 길드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은인님.”


어쩐지 성기사의 성격을 알 거 같았다.

벌써 피곤한 기분이 엄습하여 얼굴을 감쌌다.

신전 내부와 바깥을 가리지 않은 낯부끄러운 호칭 탓에 주위 사람들이 쳐다봤다.

안 그래도 제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호위를 맡겨서 미안한데, 거리를 거닐면서 ‘은인님. 은인님.’이라고 들으니 울고 싶어졌다.


“저, 혹시 저를 놀리려는 속셈이 있어서 일부로 그러는 건가요···?”

“그런 속셈 없습니다, 은인님. 그저 반응이 귀여워서 계속 부르는 겁니다. 은인님.”


결국 놀리는 게 즐거워서 일부로 한다는 거다.

캣니스는 참담한 심정에 고개 숙였다.

제 아버지뻘 되는 성기사는 생각보다 수다쟁이였다. 가는 길에 귀가 쉴 틈이 없었다.

그가 멋대로 말한 가족사에는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전부 무뚝뚝해서 심심하다던가 뭐라던가.

그 와중에 이렇게 똑 부러지면서도 귀여운 아가씨를 보니, 어떻게 이뻐하지 않을 수 있냐면서 떠들었다.

정말로 많은 부분이 셀레브리디 교단과 다른 성기사였다.



*****



“안녕하세요 루나 님···.”

“냥? 캣니스 얼굴이 핼쑥하다냥.”

“오늘은 루나 님이 길드에 남으셨네요···.”


캣니스는 접수처로 다가가 루나의 손을 잡았다.

여기까지 함께 온 성기사는 돌아갔기에 그녀 혼자였다.

이제는 당연하게 되어버린 도플갱어 확인 절차를 해두었다.

손을 맞잡은 루나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끝났어요. 루나 님이 확실하네요.”


손을 놓아주자 루나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간지러움이 사라진 미소가 안면에 자리 잡았다.


“항상 느끼지만냥. 신성력이 들어오는 거 굉장히 간지럽다냥.”

“그래요? 보통은 몸이 좋아지는 정도에서 그칠 텐데요. 루나 님은 신성력에 민감한 체질인가 봐요.”

“그럴까냥? 그렇다기에는 유독 캣니스의 힘에만 강하게 반응한다냥.”

“신기하네요. 그러면 한 번 더 해 볼까요?”


한 번 더 시험해보자, 끓는 물 위의 뚜껑처럼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마력 신호를 잡은 통신석처럼 진동하더니, 손을 떼자 금방 얌전해졌다.


“후냐냥. 세 번은 무리다냥.”


아무래도 루나에게 이 절차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캣니스는 접수처에 축 늘어진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카루스 님은 위에 있나요?”

“길드장님은 지금까지 본 구역을 한 번 더 확인한다고 아침에 나갔다냥. 길드장님이 돌아오면 캣니스가 신전 일을 마쳤다고 보고하면 될까냥?”

“음. 아니요. 실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뵈려 했거든요. 그런데 자리에 없다니 아쉽네요. 다음에 물어봐야죠.”


캣니스는 접수처 앞에 자리 잡았다.

여전히 엎드려있는 루나의 귀 뒤쪽을 살살 긁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팔로는 제 턱을 괴고 사색에 빠졌다.


‘정말로 이대로만 가면 되는 걸까?’


머릿속에는 이번 사태에 대한 문제로 가득했다.

이대로 도플갱어 선별작업을 계속해도 괜찮은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장소는···’


도시에서 도플갱어가 발견된 위치는 기사단 내부와 민간인의 집 그리고 프로텐시아 신전이었다.

그들의 존재가 대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또 그들이 보이는 일정한 행동 방식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도시, 도플갱어, 이카루스가 목격했다가 사라진 고블린, 바솔루트, 클레인 님이 경고한 호문쿨루스라는 존재.’


이 모든 것을 한데 묶는 건 비약이 심한 거 같다만. 왠지 이 모든 일이 엮여있으리라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언가 놓친 느낌이 들어서 다시 생각했다.


‘이카루스, 정보상, 호문쿨루스, 전서구.’


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건 클레인이 보낸 영문 모를 편지였다.

아무리 통신석이 망가진 상황이라도 그렇지. 전서구로 보낸 내용이 별 볼 일 없었다.


‘도대체 클레인 님은 무얼 알리려고 했던 걸까.’


도플갱어 거짓. 호문쿨루스.

클레인이 알린 정보는 도플갱어가 거짓이라는 것과 호문쿨루스라는 존재였다.

그래서 이카루스는 도플갱어의 소란이 눈속임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가정이기에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게 옳았다.


‘클레인 님이 쓴 편지가 맞기나 한 걸까?’


이쯤 되니 전서구의 존재마저 의심스러웠다.

그 클레인이 이렇게 비약이 심한 편지를 쓸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카루스 님의 보증이 있으니 믿어야겠죠. 그렇다면 클레인 님은 도플갱어를 이용한 양동작전을 알리고 싶었다는 건데···.’


가능성으로 남겨두기로 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양동작전일 확률이 높다.

도플갱어를 이용한 양동작전은 이카루스가 제일 경계하던 일이었다.

그날 따로 모여서 이야기한 이후, 그들 사이에 큰 문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인걸.’


몇 주 동안 자리를 비웠던 클레인이 이 소식을 접할 수 있었을가?

이 미래를 미리 내다봤다고 봐야 했다.

아니면 그녀가 찾아간 정보상이 그렇게 유능한 존재라는 거다.

편지로 양동작전을 알리려고 했다는 말은 이런 전제가 깔려야 했다.


“뭔가. 뭔가 부족해요.”

“캣니스···?”

“무언가 결정적인 걸 놓치고 있어요.”


캣니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한 가지. 딱 한 가지 퍼즐 조각만 찾으면 모든 게 확실해질 거 같았다.

그런데 그 단서는커녕 심증도 찾지 못하겠다.

어디서 이 퍼즐 조각을 얻을지 조금도 짐작 가는 곳이 없었다.


“어서 와라! 무슨 일로 방문했을까?”


그때였다.

문이 열렸다.

종업원 모습으로 돌아간 루나가 벌떡 일어섰다.

입구 쪽을 돌아보니 언젠가 보았던 새내기 모험가 파티가 있었다.


“캣니스 부탁한다냥.”

“네, 맡겨주세요.”


캣니스는 직접 그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뭔데? 이거 뭐 하는 거야?”


반응을 보니 모험을 나간 지 오래된 모양이었다.

다행히 그들 모두 도플갱어가 아니었다.

캣니스는 확인을 끝냈으니 그들이 가는 길을 비켜주었다.


“아. 진짜 내 말 좀 들어줘 루나 씨! 이번에 엄청 큰일이었다니까?”


아직 이 도시의 소문을 접하지 못한 건지. 낙관적인 태도들이었다.

저 시기에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도, 바깥을 돌아다닐 일이 많긴 하였다.

그들은 조금 전 캣니스의 행동에 더 의문 갖지 않았고, 오로지 이번에 수행한 의뢰를 이야기하느라 정신없었다.


“이번에 의뢰받은 괴물 박쥐 있잖아? 그거 완전 개 뻥이었어!”

“맞아맞아. 갔더니 박쥐가 아니라 날개 달린 구울이 살고 있더라니까?”

“아니야! 날개 달린 구울이 아니라 흡혈귀라고!”

“뻥치지 마. 우리가 흡혈귀를 이겼다니 농담이 심하잖아.”

“맞아맞아. 그건 구울이었어. 마법도 못 쓰는 게 무슨 뱀파이어냐?”

“너희들··· 하아, 너희 마음대로 믿어라! 하지만 그건 흡혈귀였다는 거 제대로 기억해두라고!”

“대충 다들 이런 상태예요. 이게 놈을 해치우고 얻은 전리품이니 한번 봐주시겠어요?”


모험 중에 만난 적의 정체를 몰라서 다투고 있었다.

루나는 그나마 침착한 남기사에게서 주머니를 받았다.

주머니를 뒤집자 송곳니 하나가 떨어졌다.

그걸 보는 루나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후냥. 잘 모르겠다. 이건 길드장님에게 물어볼 테니···”

“흡혈귀의 송곳니가 맞네요.”


루나가 알아보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정체가 밝혀졌다.

캣니스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흡혈귀의 송곳니를 주웠다.


“일종의 마석이에요. 흡혈귀도 마수나 마물처럼 사후에 시체를 남기지 않으니까요. 마족은 마석이나 몇몇 소재를 남기곤 하는데, 마물로 취급되는 구울은 마석을 남기지. 송곳니를 남기지 않아요.”


명쾌하게 밝혀지는 진실에 새내기 모험가는 입을 쩍 벌렸다.

그들은 저마다 안색이 새파래져 수군댔다.


“그러면 만약 놈이 약해진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제야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는 걸 인지한 듯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를 계속 들어본 바로는. 동굴에서 만난 흡혈귀가 상당히 쇠약해져 있었다.

하긴. 애초에 흡혈귀의 몸이 정상이었다면 그들은 멀쩡히 돌아오지 못한다.

그만큼 마인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이다.


“봐! 내 말이 맞잖아! 그런데 너희는 흡혈귀를 날개 달린 구울이다, 뭐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힘을 입은 걸까.

지금껏 무시당했던 모험가의 목소리가 커졌다.


“헹. 누가 흡혈귀인 줄 알았나? 그렇게 생겨 먹었는데 당연히 구울이라 생각했지!”

“맞아맞아. 우리를 보고 미친 듯이 달려들기만 하는데, 어떻게 그걸 지성이 있는 생물로 보겠어?”


그러나 동료의 답변은 뻔뻔했다.

그들은 괴물에게 죽을뻔했다는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우리 이러면 은 등급도 가능한 거 아니야?”


오늘 자신들이 쓰러트린 게 구울이 아니라 흡혈귀였다는 사실을 마냥 기뻐하였다.


“캣니스? 무슨 일 일까냥?”


흡혈귀 토벌로 떠들썩한 새내기 파티를 뒤로 하고. 루나는 심각한 표정인 캣니스에게 다가갔다.

미간 사이에 주름이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혹시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던 걸까냥? 어째 표정이 좋지 않다냥.”


이런 질문을 한 이유에는 캣니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미간을 한껏 찡그리고 입술을 꾹 다문 상태로. 캣니스는 새내기 파티를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걸까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는 걸까냥?”


시선을 옮겼는데도 별로 이상할 게 없었다.

루나는 캣니스가 왜 이리 심각한 얼굴인지. 의문만 가득하던 그때였다.


“루나 님. 아무래도 알아낸 거 같아요.”


캣니스가 돌연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퍼즐 조각을 찾아냈다.


“그게 무슨 소릴까냥?”

“이건···”


쿵- 쿵-

그때 또 한 번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갑자기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캣니스와 루나 모두 이야기를 멈추고 천장을 바라봤다.


“루나 님. 지금 소리.”

“나도 들었다냥.”


쿵- 쿵-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소리가 들리는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저쪽은 창고 쪽이다냥.”


모험가 길드 바깥에 있는 창고.

그곳과 붙어있는 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평상시였다면 모른 척 지나갔겠지만, 한참 도시가 떠들썩한 와중이니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뭐야? 무슨 일이야? 우리가 도울 일 있어?”


새내기 파티가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루나와 캣니스는 그들의 협력을 기꺼워하였다.

연무장으로 향하는 뒷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여기다냥.”


언젠가 가더와 브레드가 나무통을 옮겼던 창고.

여전히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여기 있다고 알리는 듯이 반복적으로 벽을 두드렸다.

미닫이문을 잡고 옆으로 밀었다.


“문이 안 열린다냥.”


문이 열리지 않는다.

따로 창고를 잠가두지는 않기에 자물쇠 문제는 아니다.

누군가 안에서 지지대 같은 걸로 막아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한 거네요.”


생쥐나 길 잃은 개가 지지대를 세워둘 리는 없으니 답은 정해졌다.

어쩌면 사람이 아닌 존재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확실히 확인해야 했다.


“나와봐. 내가 부술게.”


남기사가 검을 십자로 휘두르자 문이 사 등분 났다.

곧장 부서진 벽을 발로 차서 문을 열었다.


“이건!”


모두가 입을 틀어막았다.

창고 안에는 여덟 살 정도의 아이가 있었다.

언제부터 창고 안에 있던 건지 많이 야위었다.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은 게 아닐지 핼쑥했고, 양 볼이 움푹 파여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이봐, 물! 물을 가져와!”


쓰러진 아이에게서 탈수 증상이 보였다.

새내기중 한 명이 수통을 열고 아이의 입술을 적셨다.

하지만 아이는 정신을 못 차렸다.

방금 벽을 두드린 게 최후의 발악이었는지 숨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정신차려 꼬마야! 젠장, 정신 차려! 대체 어쩌다가 여기 갇힌 거야?!”

“잠깐만요. 일단 아이를 내려두세요.”


의식이 흐릿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들 필사적이었다.

캣니스가 아이를 바닥에 눕히고 신성력을 사용했다.

미약했던 아이의 숨이 서서히 본래의 호흡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들은 한시름 놓았다.


“다, 다행이다. 사제님이 있어서.”


사제의 치유 능력은 쓰러진 아이를 충분히 구해냈다.

앞으로 며칠간 아이의 영양상태를 고려하여 돌봐주면, 금방 제 기력을 되찾을 것이다.


“루나 님···.”


그런데 아이를 무사히 구한 상황에서도 캣니스는 얼굴을 펴지 못했다.

창고 안을 빙 훑어보더니, 사 등분 난 잔해더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새내기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문의 잔해로 다가갔다.

나무 조각을 모두 치우자, 문을 막고 있던 물체가 뚜렷하게 보였다.


“티미 님···.”


아직 늦은 오후라 돌이 되어있는 티미.

그동안 베르길드에서 보이지 않던 가고일이 아이를 가둬두고 있었다.

마족인 그가 아이를 가둬둔 이유가 무엇일지.

불안한 예감에 주먹 쥐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6 133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31 12 0 21쪽
155 132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9 8 0 15쪽
154 131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6 9 0 15쪽
153 130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2 11 0 14쪽
152 129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19 11 0 13쪽
151 128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7 12 0 11쪽
150 127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11 0 13쪽
149 126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6 0 22쪽
148 125화 이름없는 성녀 24.01.10 6 0 14쪽
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8 0 12쪽
146 123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3 11 0 16쪽
145 122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1 8 0 13쪽
144 121화 이름 없는 성녀 23.12.29 10 0 14쪽
143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7 7 0 17쪽
142 <2부> 119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5 8 0 24쪽
141 118화 작별 23.12.13 6 0 22쪽
140 117화 재판 23.12.06 9 0 21쪽
139 116화 재판 23.11.30 10 0 20쪽
138 115화 재판 23.11.22 12 0 21쪽
137 114화 성녀 23.11.19 10 0 19쪽
136 113화 성녀 23.11.15 7 0 19쪽
135 112화 성녀 23.11.11 8 0 21쪽
134 111화 성녀 23.11.08 10 0 21쪽
133 110화 성녀 23.11.04 13 0 19쪽
132 109화 떨어진 과실 23.10.25 10 0 34쪽
131 108화 불신 23.10.21 8 0 25쪽
130 107화 불신 23.10.17 8 0 20쪽
129 106화 불신 23.10.14 12 0 25쪽
128 105화 불신 23.10.10 10 0 18쪽
» 104화 불신 23.10.07 10 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