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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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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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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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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재판

DUMMY

117화 <재판>



“저의 죄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일입니다.”


캣니스가 말하자마자 심한 욕설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법정에서 기대한 건 처참한 악의 말로였지. 여사제를 둘러싼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참수하라는 목소리가 오갔다. 오물과 물건을 던지는 이도 수두룩했다.

이는 베르길드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들을 위해 목소리 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정숙! 모두 정숙하시오! 누가 감히 신성한 재판 중에 소란을 피우오!”


재판관이 판결봉을 세 번 두들겼다.

이 법정에서 재판관은 모든 권리를 지닌 중재자였다.

소란을 관리하는 일은 물론이고, 살리는 일도 죽이는 일도 모두 그의 손에 달렸다.


“정숙-!”


그런 그에게서 큰 언성까지 나오고 나서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잠시 품위를 정비한 뒤에 재판이 재개됐다.


“크흠. 죄인은 본인의 죄를 인지하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맞소?”


흰 머리카락 안으로 노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국왕에게 베르 길드의 편의를 봐달라고 미리 언질 받았는데도, 여전히 양측 모두에게 공정한 재판관이었다.

그러나 캣니스는 그 사실이 원망스럽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운 성정이었다.


“재판관님. 제가 어떠한 이유에서 이 자리에 섰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죄를 짊어질 각오를 끝냈습니다.”

“아무래도 죄인은 본 재판관이 알고 있는 죄의 무게가 다른 모양이오. 진정으로 죄를 짊어진다면 두 다리로 여기 서 있을 수 없을 터인데!”

“어디까지나 제 죄에 관하여 한 말입니다.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저와 무관한 곳에서 끝난 일임을 알아주십시오. 재판관님.”


우우우, 또다시 야유가 쏟아졌다.

건물 내부에 야유와 울음이 멈추지 않고 메아리쳤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판결봉을 세 번 두들겼다.


“정숙! 정숙하시오!”


이제 재판관은 죄인을 노려보았다.

과연 이 자리를 빌려 무고를 증명하려는 태도인지, 아니면 이 자리를 혼란 시킬 작정인지.

죄인이 무슨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선 건지 주시하는 의도였다


“죄인은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대학살의 죄를 부정하는 바요?”

“부정합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죄인에게 피해받았다고 주장하는데, 그래도 부정하겠다는 말이오?”

“부정합니다.”

“하면 본인의 죄를 부정한바, 조금의 선처도 불가하다는 점을 기억하시오!”

“그래도 제 대답은 같아요. 저와 베르길드는 오히려 이 참사를 막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캣니스의 칼 같은 답변에 재판관은 침묵했다.

이 시간이 조금 전 발언을 번복할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한 번 뱉은 대답을 번복하는 일은 없었다.

두 눈에는 죄인답지 않은 긍지 높은 결의가 담겨있었다.


“알겠소. 그러면 본 법정은 죄인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겠소.”


드디어 기다리던 절차가 진행됐다.


“죄인은 본인의 무고를 증명하시오!”

“웃기지 마-!”


누군가 소리쳤다.

베르길드에 변론의 기회가 생김과 동시에 사람들이 반발했다.

당장 재판관은 최고 징벌인 사형을 진행하라며, 재판의 절차가 멍청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제삼자의 재판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며, 명확한 증거 없는 어처구니없는 비난이었다.

평소였다면 모두가 한 번 눈치 주고 넘어갈 일.

그러나 현재 재판 안에서 옳은 소리를 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선동의 불씨였다.


“정숙하시오!”


이번만큼은 재판관의 목소리에도 소란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의 원망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는 베르길드를 응원하는 이들은 물론, 중립인 입장조차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캣니스여. 괜찮겠는가?”

“네, 할 수 있어요.”


결코 호의적이지 못한 분위기.

그런데도 캣니스는 브레드의 물음에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브레드 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우리를 믿으세요.”


곧장 재판의 정중앙을 향해 돌아서서 심호흡했다.

이번 기회로 베르길드는 결백의 수단이 주어짐과 동시에 모두의 적이 될 양날의 검을 쥐었다.

그들 편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단 한 번의 기회로 결백을 증명해야 했다.


“사형! 사형! 사형! 사형!”


이는 따질 필요도 없이 무모한 일이었다.

그래도 브레드는 그녀를 믿었다.

이미 걱정은 충분히 했기에, 지금은 지켜보았다.

앞으로 나서는 여사제의 등을 받치고 밀어주었다.


“그렇다면 확실히 하고 오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는 자네를 지킬 터이니.”


응원에 힘입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재판 한 가운데에 선 캣니스는 천천히 고개 들었다.


“이 사람의 탈을 쓴 괴물아!”


이때다 싶어서 날카로운 물건을 던지는 방중이 있었다.

법정을 소란스럽게 한 사람을 내쫓기에는 그 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토록 원망과 악의가 가득한 재판은 재판관의 판례 역사상 처음이었다.

마녀사냥의 역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보호막 덕분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지만, 때로는 사람의 말이 폭력보다 무서운 법.

정도를 넘어서면 가더와 브레드가 나설 텐데, 지금은 얌전히 있었다.

오늘이 있기 전에 캣니스가 말해주었던 계획.

그 계획을 꾸린 캣니스를 믿고 자리 지켰다.


“저는 캣니스 센츄어리. 셀레브리디 님을 섬기는 작은 종입니다.”


기다림 끝에 캣니스가 입을 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당하기도 힘들 원성 안에서도,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우선 저는 저에게 주어진 죄를 부정하기에 앞서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하려 합니다. 제 동료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헤칠 마족이 아니고. 저는 여러분이 말하는 괴물. 즉, 사제의 탈을 쓴 마족이 아닙니다.”

“우리가 똑똑히 봤는데 뭐라고 떠드는 거야!”

“인간의 피부를 뒤집어썼다고, 우리가 다시 속을까 보냐!”

“그년을 숨기지 말고 당장 끌고 와!”

“여러분이 보고 들은 제 모습은 이번 일을 계획한 원흉에게 당한 모습이었습니다! 제 동료인 마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를 비롯한 우리는 이 자리에 서지 못했어요!”


캣니스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모든 이야기가 사실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마음의 귀를 닫은 상태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한들 이성과 마음에 닿지 못할 이야기였다.


“죽여라! 죽여라!”

“저 입에서 저주의 말이 나오기 전에 목을 베어버려!”


또다시 소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캣니스는 재판관을 뒤돌아봤다.

재판관은 그 요구를 받아줬다.


“정숙. 정숙하시오.”


소란을 잠재운 뒤. 재판관은 재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짧게 훑어봤다.

여전히 성난 관중. 이렇게 되면 죄인의 무죄는 중요하지 않은 정황이다.


‘저들에게 안타깝지만 이대로라면···’


재판관은 캣니스와 시선을 마주쳤다.

불리한 상황을 모면해야 할 죄인의 의중을 살피려고 하였다.

그런데 정작 초조해야 할 죄인이 웃음 지었다.

그 웃음 안에 숨겨진 속내를 파악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의외의 종류를 발견했다.


“죄인. 재판관은 분명 이번 일에 연관된 모든 사람이 참석할 거라 들었소.”


지금 하는 말이 한낱 죄인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상황이었다.

역시 재판받는 캣니스가 미소 지었다.


“한데 어찌하여 이번 재판에, 누구보다 죄질이 큰 마족이 자리에 없단 말이오?”


군중이 술렁였다.

그들은 제일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가볍게 여겼다.

그들이 미워하는 대상은 여사제의 탈을 쓴 마족이 아니다. 새까만 짐승으로 사람들을 학살한 살인마야말로 미움받아야 마땅할 주 원흉이었다.

지금 나와서 몰매 맞는 마족의 개들보다도, 하얀 머리카락의 여인이 재판에 있어야 했다.


“여러분, 재판관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그의 소재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재판관님의 말에 있는 오류 하나를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재판관의 말에 어폐가 있다고 하였소?”

“네. 오류가 존재합니다. 그 오류라는 것은, 이 자리에는 그때의 당사자가 모두 참석했다는 겁니다.”


술렁, 또 한 번 방청석이 소란스러웠다.

보이지 않는 학살자가 이 재판에 참석했다는 이야기는 상당한 공포를 불러왔다.


“어, 어두운 곳에서 물러나! 그년은 그림자 안에서 나왔다고!”


의심과 불안이 파도쳤다.

그날의 일을 겪었던 사람들인 만큼 긴장감이 고조됐다.


“하면 죄인. 그 죄인은 지금 어디에 있소?”

“이미 재판장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보고 있는 위치에 버젓이 서 있습니다.”


당당한 말과 다르게 그때의 당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있는 사람이라고는 금 등급 모험가와 짙은 피부의 모험가 그리고 마족의 똘마니 가짜 여사제가 전부였다.


“다들 못 찾으시는 모양이네요. 하지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저도 그 심정을 이해하니까요.”


어쩌면 지금 이야기가 재판 자체를 우롱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많은 이가 캣니스의 말을 의심하였다.

끝까지 자신들을 능욕하려는 걸까,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앞으로 나서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전부 설명하겠습니다. 한 치의 거짓조차 없다고 맹세하겠습니다. 제가 모시는 분인 셀레브리디 여신님의 이름 아래서요.”


신의 이름을 건 맹세.

순식간에 술렁임이 사라지고 얼음장 같은 침묵이 찾아왔다.

더 이상 그녀의 발언을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의 맹세로 그녀는 두 가지 사실을 입증하였다.


“역시 대단하군···”


브레드는 캣니스가 상황을 조율하는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번 일을 맡겨달라던 지난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주 불가능한 계획이 아닐지 모른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단은 있어요.


애초에 그들이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미 그때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에는 문지기님의 존재가 너무 깊이 박혀있어요. 그것을 억지로 건드리면 심리적인 방어가 튀어나올 뿐이죠.


무모한 방식을 택했으면서 이번 사태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짚었다.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으며, 그런 소중한 사람을 빼앗은 건 검은 짐승을 부린 마족이라고 믿는 도시 상황을 말이다.


-그 방어 심리에는 자기혐오도 들어가 있어요. 자신은 끝까지 소중한 사람을 지켰다는 현실도피의 일환이죠.


왕실과 신전의 입장조차 무시하고 베르길드를 배척한다.

이 극단적인 현상에는 평화로이 나날을 즐기던 그들이 있었다.

절대로 도플갱어를 곁에 두지 않았다고 믿는 현실도피. 마족에 대한 증오만이 분노의 원동력이 된 부류들.


-하면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자네의 말대로 그들 중 누구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려 하는데?


이미 그때 이야기했다. 어중간한 방법으로는 분노를 잠재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러나 캣니스는 웃으면서 답했다.


-간단해요. 그들의 마음에 의심을 심어주기만 하면 돼요.


그렇기에 캣니스는 다른 방법을 이용했다.

당장 이해받지 않아도 좋다. 언젠가 깨닫게 될 현실을 언질 줄 뿐이다.

이것이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캣니스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눈앞에서 증오할 대상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버티지 못할 거예요. 국왕님도 이러한 점까지 보셨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일에 책임감을 느끼기에 끝까지 책임지려 하는 모습.

가람 왕국을 떠나고 다시 오지 않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힘든 길을 선택했다.

그 바탕에는 일개 모험가로서 가지기 힘든 상냥함이 있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무거운 짐을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는 자였다.


“이미 왕실의 말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그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였어요. 누군가 모든 도플갱어의 뿌리를 뽑지 않는 한,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죠.”


그래서 지금. 그들이 떠나고도 아픔을 회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중이다.

모두 같은 편이라고 설득하고, 같은 고통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제 말에 틀린 점이 있나요 여러분? 저는 한 마디 거짓도 섞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고요함만이 흐르는 재판장의 공기.

열심히 설득하던 캣니스의 이야기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거친 눈빛만이 전부였던 공간은 얼마 전 대규모 장례식이 연상될 정도로 어두웠고 조용했다.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처럼 굴던 사람들이 침묵한 채 경청하고 있었다.


“저는 그때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네임드의 실험체가 됐었습니다. 이 또한 제 죄입니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죄는 제가 책임지고 평생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진심으로 아파하는 목소리에 흐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부모일 터였다.

하나둘 사람들의 마음에 가짜 진실에 대한 의심이 심어지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저는 신전에서 오랜 시간 치료해야 했어요. 신전의 조력으로 많은 부분이 나아졌지만, 아직 제 몸에 남은 마족의 잔재도 있어요.”


확실히 하기 위해, 캣니스는 겉에 걸치고 있던 망토를 걷어냈다.

외투를 벗고 얇은 사제복만을 남겼다.


“여기 있습니다. 사제님.”


사전에 이야기해두었던 관리인이 가위를 건네었다.

캣니스는 사제복의 가슴 부분을 잡고 세로로 찢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자른 앞섬을 펼쳐서 증거를 보였다.

하얀 가슴 한가운데에 검붉은색 구체가 박혀있었다.

마치 비명을 지르는 수십 개의 얼굴을 조각한 듯한 기괴한 생김새.

가슴 위에서 숨 쉬듯 꿈틀대는 끔찍한 구체는 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것이 여러분이 본 그날의 진실입니다. 저와 그분은 결코 사람을 헤치지 않았어요.”


벌 떼 같은 웅성거림이 생겼다.

캣니스가 던진 화두에, 사람들이 지난 행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는 그동안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왕국도 신전도 돌리지 못한 마음을 그녀 한 명이 해냈다.

가히 사람들을 이끄는 영웅의 반열에 든 자만이 해낼 수 있다는, 이끄는 자의 업적이었다.


-그래도 불안감은 남아있네. 그토록 자네를 멸시하던 이들이 고작 몇 마디 사실로 넘어가겠는가?


여기까지만 되어도 희망적인 단계이긴 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나리라고 여기면, 사람의 슬픔과 증오를 얕보는 것이다.


“다들 멍청이야?! 누가 봐도 우리를 속이려는 거잖아! 애초에 심장이 저렇게 됐는데 살아남은 인간을 본 적 있어?”


이미 한 번 현실에서 눈을 돌린 그들은 몇 번이고 눈을 돌린다.

그것이 브레드와 캣니스가 겪어온 인간의 일면 중 하나였다.


“그래! 누가 신성력과 마기가 충돌하는 것도 모를 줄 아나!”

“또! 또 우리를 속이려고 했어!”


캣니스가 던진 의문은 확실히 그들에게 남았다.

그러나 이곳은 재판장이다.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당장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고작 몇몇 사람이 아닌 모두가 그녀의 편이 되어야 했다.


“이럴 수가···”


그 수가 없기에 브레드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였다.

지금껏 방관에 가까운 태도로 있던 게 이런 탓이었다.


“정말로 여기까지 읽고 있었다니.”


그렇지만 지금. 방법이 있기에 앞으로 나선 이가 있었다.

그녀만이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바꿀 능력이 있었다.

브레드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법정에 들어서고 한 번도 팔짱 낀 자세를 풀지 않던 이유가 있었다.

이곳의 무엇도 여사제를 다치게 할 요소는 없었다.

모든 건 그녀의 계산 범주였다.


-그렇죠. 고작 몇 마디로 사람들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이미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가 그의 눈에 보였다.

재판장 한가운데 서서, 양손을 꼭 쥔 채 기도하는 캣니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은 그녀의 무고를 증명하는 것과 상관없었다.


“성역 선포, 캣니스 생츄어리-”


대규모 신성 마법이었다.

캣니스를 중심으로 거대한 생명력이 퍼져나갔다.

신성력이 원료인 황금빛 뿌리가 재판장 바닥을 가로질렀다.

타국의 재판장에서 대놓고 이능을 사용했다.

모든 방중이 경악했다.

이능에 대한 두려움으로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족! 마족이 결국 모두를 죽이려 해!”


수많은 마법사와 사제들이 이능을 갈아 넣어서 만든, 모든 이능이 무효화 되는 공간.

그런 공간의 지금껏 당연했던 진리가 깨졌다.

한 여사제의 손에서, 모두에게 배척받던 죄인의 손에서. 누구도 본 적 없던 찬란한 이능이 공간을 장악했다.


-거기서 저는 꼼수를 사용할 거예요.


“아니, 잠깐만! 지금 이 힘은 마기가 아니야!”

“말도 안 돼! 지금 이게 신성력이라고?”


-누구도 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이 순간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했다.

아주 오랫동안 세상을 속였던 거짓의 안쪽을 들여다봤다.

황금빛 덩굴 식물이 재판장 전체를 둘러쌌다.

황금빛 식물이 창가를 오르고 지붕을 감쌌다.

지금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광경은 환영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환영이 아닌, 실체 못지않은 생명력이 있었다.

마치 신이 빚은 숲을 보는 듯한 생명력으로 차오르는 공간.

도망치던 사람들도, 놀라서 주저앉은 사람들도, 황금색 가지와 식물이 이어진 곳에서부터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저 위대한 신의 증인. 셀레브리디 교단의 여섯 번째 날개. 아쿠아 센츄어리의 이름으로 보증합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더욱 쐐기를 꽂듯. 선망하는 목소리가 재판장에 울려 퍼졌다.

등장한 자는 성녀라 칭송받는 여섯 번째 날개, 아쿠아 센츄어리였다.

그러나 동경하는 성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녀를 찾는 이는 없었다.

눈앞에 벌어진 기적에 시선을 빼앗기기 바빴다.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무릎 꿇은 여사제. 기도하는 신실한 존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쿠아는 천천히 캣니스의 곁으로 다가가 우스운 연극의 막을 내릴 준비 하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찬란한 여신의 기적. 여신이 내린 땅을 위협하는 사악한 무리에서 생환한 자. 우리 교단의 자랑스러운 사제. 용사입니다.”


성녀인 존재가 조금 전까지 마족이라 손가락질받는 여사제를 감싼다.

그 진실함을 증명하듯, 두 사람의 신성이 공명하며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재판장에서 황금빛 나무는 사라졌다. 그러나 나무의 소실에 사람들이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나무의 자리를 대신하는 거대한 여신의 상. 셀레브리디 여신의 형상이 법정에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하얀 사제여. 셀레브리디 교단을 대표하여 저 아쿠아 센츄어리가 그대의 생환을 환영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보인 거대한 신성력, 모두에게 칭송받는 성녀의 보증,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모두를 속였던 용사 일행 중 한 명의 생환 소식.

더 이상의 재판은 의미 없었다.

한낱 왕국에서 시행할 수 있는 재판조차 아니었다.

따라서 재판관은 떨리는 목소리를 자제하며 판결 내렸다.


“그러면 판결하겠소! 본 재판의 죄인인 캣니스 센츄어리. 아니, 용사 하얀 사제님의 죄가 무고함을 인정하는 바이오!”


땅땅땅-


판결봉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판장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이로써 베르길드의 무고가 입증됐다. 그런데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아쉬워할 재판이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가람 왕국 재판이 끝난 뒤에 처음 있는 경우였다.

기적을 목도하고, 혼이 빨려 나간 듯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이었다.

재판장의 정적은 주요 참여인이 비는 순간까지도 지속되었다.

이날 재판장에서 일어난 소동은 빠른 속도로 도시에 퍼졌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우선 사죄 드리겠습니다. 감기 몸살 + 과제 폭탄으로 인해 글 쓰는 속도가 느려질 거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정상 컨디션 회복해서 완결까지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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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126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6 0 22쪽
148 125화 이름없는 성녀 24.01.10 6 0 14쪽
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7 0 12쪽
146 123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3 10 0 16쪽
145 122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1 8 0 13쪽
144 121화 이름 없는 성녀 23.12.29 10 0 14쪽
143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7 6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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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화 재판 23.11.30 10 0 20쪽
138 115화 재판 23.11.22 11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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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113화 성녀 23.11.15 7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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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11화 성녀 23.11.08 10 0 21쪽
133 110화 성녀 23.11.04 12 0 19쪽
132 109화 떨어진 과실 23.10.25 9 0 34쪽
131 108화 불신 23.10.21 7 0 25쪽
130 107화 불신 23.10.17 8 0 20쪽
129 106화 불신 23.10.14 12 0 25쪽
128 105화 불신 23.10.10 10 0 18쪽
127 104화 불신 23.10.07 9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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