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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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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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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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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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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11화 성녀

DUMMY

111화 <성녀>



“준비가 끝난 듯하군.”


베르 길드의 네 사람.

네 사람에 한 마리 더 얹어서 다섯 존재가 모였다.

그들은 계단 앞 로비에 모여서 외출 준비를 마쳤다.


“정말로 티미 님이 집으로 돌아왔네요.”


캣니스는 그리웠던 석상을 보다가 쓰다듬었다.

한동안 그들 사이에 없어서 적적했던 티미의 존재.

어젯밤 몰래 베르 길드로 돌아와서 로비에 안착했다.

이걸로 티미가 도플갱어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저택에서 도망친 게 분명해졌다.


“그래도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부르르-

한마디 들은 석상이 떨렸다.

그 미세한 떨림을 본 자일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도 아이에게 해코지한 줄 알고 욱했다고요. 부디 제가 실수로 정화하지 않게 미리 말해주고 다니세요.”


캣니스는 잠깐 사이에 마른 수건까지 가져와서 석상을 닦았다.

부르르르-

석상의 떨림이 더 커졌다.

아무래도 티미가 집을 나간 이유는 도플갱어만이 아닐지 모른다.

그리고 조만간 또 집을 나갈지 모른다.

자일리는 벌벌 떠는 석상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품었다. 남몰래 조용히 조의를 표했다.


“뭐. 저건 그렇다 치고. 브레드. 우리 진짜로 성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거야? 앱솔루트 고위층들도 신년회에서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그 성녀를?”

“으음. 아마 그럴 걸세 자일리여. 아무래도 그쪽 도움을 받는 이상 얼굴을 봐야 할 터이니.”

“오. 그래? 내 평생 성녀를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자일리는 담백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별거 아니라는 태도와 다르게 다리를 떨었다.

일반인이 성녀와 직접 대면하는 건 한 사람의 일생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

그나마 마법사라서 저 정도의 반응이었지. 같은 교단의 평신도라면 눈물을 쏟아내며 엎드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하하···. 캣니스. 어째 너는 꽤 여유로워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 따져보면 오히려 캣니스의 반응이 지나치게 얌전했다.

같은 교단의 사람이 성녀를 마주하는 태도 같지 않았다.


“네? 저요? 아니요? 저 지금 엄청나게 떨리는데요?”

“그래···?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제 표정이 어떤데요? 많이 기대하는 게 드러나나 보네요.”


자일리는 저를 보는 눈빛에서 은은한 광기를 엿보았다.

전혀 기대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은연중에 가기 싫다는 기분을 팍팍 풍기는데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는 듯했다.

브레드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 쉬었다.


“그런데 캣니스여. 그때는 미처 말하지 못했네만. 내 우상의 존재는 괜찮은 건가?”


이번 일에 대해 논의했다.

성녀와의 만남은 그렇다 치고. 이후에 요청할 재판 쪽 일을 걱정했다.

같은 교단인 알렉산드로스와 수행자들의 반응을 떠올리면 성녀라고 크게 다를 게 없을 터.

오히려 가더의 존재가 더 궁지로 몰아넣지 않을지 문제였다.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재판을 없던 일로 하는 게 좋지 않을지···.”


그런데 브레드의 걱정이 무색하게 캣니스는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굉장히 우울하고 한심함이 담긴 한숨이었다.

그 어두운 감정에 잠시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를 책망하는 의미는 아니었는지. 제자리서 한 번 더 한숨 쉬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가?”

“아니요. 고민 같은 게 아니에요. 그냥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하하. 굉장히 공허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코앞에서 직관하는 석상은 덜덜 몸을 떨었고, 지켜보는 브레드와 자일리마저 식은땀을 흘렸다.

그만큼 캣니스의 처음 보는 어두운 감정은 굉장히 기분 나쁜 종류였다.

그 암울한 분위기에서 가더만이 벗어나, 정원 쪽을 바라보았다.


“온다.”

“응?”


창가에 있던 가더가 한 마디 뱉었다.


“도련님-!”


벌컥.

예상치 못한 방문자가 문을 열었다.

로비에 있던 이들은 놀라서 정문을 바라봤다.


“도련님. 허억 헉···. 제가 왔습니다.”


붉은 머리카락과 노란색 눈동자. 턱에 작은 흉터가 있고 햇볕에 그을려진 피부를 가진 기사.


“너··· 너······!”


세올 카이스트.

톨스 가문의 충직한 기사였다.

무려 베르 길드의 입단 제안을 거절한 뒤 본가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지금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


“너 뭐야?! 왜 네가 여기에 있어?”


그의 어린 주인이었던 자일리가 특히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분명 세올이 떠난 줄 알았고, 베르 길드의 일원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 세올의 피부는 새사람처럼 광택이 좋았고, 미세하게 볼에 살이 오른 모습이었다.

표정은 또 어떠한지. 십 년 묵은 근심을 싹 다 씻어낸 사람 같았다.


“세올 카이스트. 휴가에서 복귀했습니다!”

“···뭐라고?”

“···휴가에서 복귀했습니다?”


선뜻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어린 주인님.

세올도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어라? 분위기가 이상하네요? 제가 소리소문없이 찾아와서 놀란 겁니까? 아니면 선물을 안 챙겨서 삐진 겁니까?”


‘그럴 줄 알고 선물을 가져왔습니다~’라며 한 보따리 풀었다.

그러자 자일리는 마법 스태프를 들고 그를 두들겨 팼다.


“아악! 아악! 도련님 아파요!”


소리는 지르지만, 일부로 맞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더욱 그를 심하게 팼다.


“너는! 휴가를 무슨! 그딴 식으로 말해!”


자일리는 화난 숨을 몰아쉬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가녀린 비극의 여주인공 자세를 취한 세올에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한바탕 소란이 있고, 잠시 이대로 진정하나 싶더니 다시 스태프를 높이 들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그림자를 마주한 세올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도, 도련님 진정하세요! 그동안 강해진 힘을 보니 잘 지내신 거 같아서 다행이지만. 예전처럼 맞아주기에는 너무 아프다고요!”

“너! 너! 네가 떠나면서 했던 말 다시 한번 해봐! 지금 여기서 그대로 읊어봐!”

“넹? 분명 ‘도련님이 마음 놓고 지낼 곳을 찾아서 다행입니다. 이 세올 카이스트는 안심하고 도련님의 곁을 떠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근데! 인제 와서 한다는 말이 휴가를 다녀와? 선물을 사와? 어쩐지 본가에 도착한 지 한참 지났을 놈이 연락이 없어 이상하다 했어!”

“악! 아악! 진짜 아파요, 도련님! 혹시 전공을 바꾸신 겁니까? 검을 배울 생각이라면 훌륭한 재능을 찾았다고 감히 자부하겠습니다!”

“크아아악! 이거 놔 대머리! 저놈 머리통을 열어서 인간이 맞는지를 확인해볼 테니까!”

“···세올은 도플갱어가 아니라 인간이 맞네. 안타깝게도 말일세.”


브레드의 만류 덕분에 세올은 살아남았다.

여전히 흑흑, 눈물 흘리며 비운의 여인 자세를 취했다.

이를 보고 또 열이 뻗친 자일리였지만. 필사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그래. 너는 실컷 놀고 들어왔어. 그런데 이렇게 급하게 나를 찾은 이유가 뭐야?”


오랜만에 만난 가문의 기사를 심드렁하게 내려다봤다.

세올이 또 이상한 말을 할 징조를 보이자, 망설임 없이 마법 스태프를 슬쩍 들었다.

다행히 본인도 더 맞을 생각은 없는지 알아서 행동을 사렷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전부 설명하겠습니다. 도련님도 제가 휴가를 신청한 기간보다 일찍 돌아와서 많이 당황했겠죠?”


애당초 휴가인지도 몰랐지만 일단 경청했다.


“실은 사막의 나라 마두크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도련님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는 주술사가 있다고 들어서 수색했습니다.”

“체질? 주술사···?”

“네. 그곳에서는 마법과는 또 다른 체계가 잡혀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이라면 도련님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올. 너 설마···!”

“하지만 결국 주술사는 찾지 못했고! 저는 도련님의 체질을 개선할 방법을 얻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올 위기에 처했습니다!”

“세올! 너···!”


자일리는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조금 전까지 짜증이 가득했던 기분이 온데간데없었다.

무려 언어와 전통이 모두 다른 먼 나라로 가서 본인을 위해 수소문해주었다.

그 기특한 행동에 감동하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따뜻한 감정이 자일리 안에 자리 잡았다.


“너··· 그렇게까지 나를 위해서···.”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일. 실컷 즐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응···?”

“그런데 아차! 너무 놀았더니 벌써 휴가의 끝이 보였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도련님을 삐질 터, 선물이라도 잔뜩 사서 돌아가기로 했죠.”

“야. 잠깐 기다려봐.”

“그리고 저는 떠올렸죠! 시장에 갈 때마다 푸른 눈과 금발 머리 인형을 보면 애달픈 눈빛을 지었던 도련님의 눈빛이! 그래서 바로 근처의 유명한 공방에서···”

“조용!”


자일리는 마법 스태프를 휘둘렀다.

열변을 토해내던 세올의 뺨을 후려쳤다.

단번에 물리적으로 입을 다물게 만들고 흥분한 숨을 몰아쉬었다.


“나, 나, 나. 절대로! 인형 모으는 취미 같은 거 없다?”


뒤돌아보며 캣니스에게 변명했지만, 당사자는 이 말을 변명이라 여겼다.

그렇게나 외로웠구나. 동정의 눈빛을 받았다.


“카아아악! 본인 일 아니라는 저 얼굴이 괜히 더 열받아!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세올!”


화가 난 자일리의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톨스 가문의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과거의 자일리를 보는 듯한 망나니 일이 벌어졌다.

지팡이로 잔뜩 구타한 뒤에는 멱을 따버릴 듯이 목을 흔들었다.


“애초에 잘 나가다가 왜 갑자기 이상한 길로 빠지는 거야 너는?! 주술사는? 나를 위해 행동한 신념은? 내 감동 전부 어디 갔어!”

“아. 그게. 막상 가보니까 재밌는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거저거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나한테 쓸 휴가가 아까워졌다?”

“어··· 정확히는 도련님 생각 못 할 만큼 정신없이 놀았다가 맞는 말이죠.”


맞는 말이었다.

자일리에게 두들겨 맞는 말.

휴가를 어떻게 쓰든 상관 안 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면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전히 이러한 면에서 스스로 매를 버는 능력이 탁월한 세올이었다.

지팡이 한쪽이 조금 우그러져서야 다시 진정하고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걸로 끝? 선물을 주;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찾았다고?”

“에? 아니요. 제가 뭐 하러 징그럽게 도련님 줄 선물 때문에 급히 돌아오겠습니까?”

“···자일리여 인내하게. 분명 휴가를 일찍 끝내고 온 중대한 사항이 있는 것일 테니.”


자일리는 또 한 번 인내했다.

마법 스태프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참아냈다.

그러고 생각했다.

브레드의 말대로 세올은 휴가를 일찍 끝내고 돌아왔다.

자신과 연관된 일을 듣자마자 휴가를 끝내고 온 행동은 참된 기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너무 감정적으로 대우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감사하는 게 올바른 주인으로서의 행실···.


“이야. 여전히 훤칠합니다 가더 씨.”

“오랜만이에요 세올 님.”

“어이쿠. 사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예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까?”

“작은 사정이 있어서요.”

“하하하.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사 온 삼백 개의 선물이 있는데. 이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따악.

마법 스태프가 세올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자일리는 세올을 칭찬하려던 지난 생각을 후회했다.

그러한 배신감을 담아서 마법 스태프를 높이 들자. 그제야 원래 대화하던 이야기로 돌아왔다.


“너도 참 징하다. 어떻게 주인과 이야기 중에 딴청을 피울 수가 있냐?”

“죄송합니다. 명령하시면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아니. 이게 명령까지 할 일이야?!”


이제는 화나다 못해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일리의 눈빛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보는 눈빛이었다.


“도련님. 차라리 욕을 하시지. 그런 눈빛은 너무 마음이 아픈···”

“됐고. 뭐 때문에 급하게 나를 찾았는지나 제대로 이야기해.”

“아, 맞다.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실망할 구석도 없었다.

자일리는 싸늘한 눈빛으로 세올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세올은 가슴께의 단추를 풀고. 안쪽 셔츠 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도련님 축하드립니다! 어르신께서 이만 본가로 돌아와도 된다고 허락하셨습니다!”

“뭐?”


베르 길드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과연 가문의 기사가 휴가를 일찍 끝내고 돌아올 만한 용건이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본가에서 쫓겨났던 귀족 자제가 자일리였다.

비록 초기에는 귀족의 위엄도 없고 인성도 형편없었지만, 귀족이 아닌 건 아니었다.

이제야 모험가로서 자리를 자리 잡기 시작한 순간에 찾아온 편지 한 통.

이 편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동안 너를 봐왔다는 사실과 동시에 이만 돌아와 귀족 일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라는 명령이었다.


“싫어. 안 돌아 가.”


그러나 자일리는 가주의 은혜를 걷어찼다.

모두가 세올의 입에서 피가 쏟아지는 거 같은 착각을 느꼈다.

거절의 말을 들은 세올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일리를 보았다.


“도련님··· 제가 잘 못 들은 거죠···?”

“내가 미쳤다고 그 양반 밑으로 다시 돌아가겠냐? 그딴 용서 필요 없으니 돈이나 좀 넉넉히 보내라고 해.”

“쿨럭···.”


망나니.

모두가 그 단어를 떠올렸다.

앞뒤 무서워하지 않고 칼을 휘두르는 악덕한 자의 모습을 연상했다.


“도련님. 주군께서는 아카데미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정 단어를 입에 담자 자일리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대답은커녕 더 험악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안 가. 절대로 안 가. 내가 뭐 좋다고 그런 멍청이 집단에 들어가야 해?”

“언제는 천재들이라면 꼭 가야 하는 곳이라고 했잖습니까···.”

“너, 너는 자리에도 없었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 아무튼 안 갈 거니까 퇴학 조치를 하든 뭘 하든 알아서 하라 해.”

“도련님. 제가 할 말은 아닌데 그렇게 인생 막살면 나중에 큰일 납니다?”

“그래봤자 교육기관 아니야? 그런 곳에 다녀도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졸업하면 연줄과 직위를 얻죠. 아카데미를 졸업 못 한 귀족이 어떤 구설에 오르는지 아시면서 왜 이러세요···.”


이쯤 되니 포기하지 않는 세올의 진심을 느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자일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이곳의 생활도 자유로워서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자일리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사정이 있었다.


“멍청한 놈들 콧대를 납작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카데미에 남겠다고 했잖아요.”

“···다 지나간 일이야.”

“절대 패배자처럼 도망가지 않겠다고 말했잖아요.”

“너 아까부터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마님께서 떠나기 전에 해주었던 이야기입니다. 도련님은 절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돌아올 거라고요···.”

“···그 아줌마.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기는.”

“지금은 모험가 생활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훗날이 되면 어떻게 하실 거죠? 도련님의 형제들이 훗날까지 지원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 잘 아시잖습니까. 그때가 되면 도령님의 동생인 아가씨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요.”


꽈악-

자일리가 쥔 주먹에 핏줄이 불거졌다.

동생 이야기가 나온 시점부터 어디 더 떠들어보라는 듯이 살벌하게 눈을 빛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도련님이 좋습니다. 제 넷째 동생이 떠올라서 자유롭게 보내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안 됩니다. 아카데미 졸업만큼은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다 떠들었냐? 감히 가문의 개가 내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여? 계속 같은 소리 지껄일 거면 당장 여기서 꺼져!”

“이 자리에서 맹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련님께서 아카데미를 무사히 졸업하신다면, 평생 곁에서 모시겠습니다.”

“헛소리! 그런 말을 믿을 거 같아?”

“저와 제 스승인 안스 님의 명예를 걸겠습니다. 부디 제가 도련님을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만큼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세요!”


당장 쫓아낼 거처럼 굴던 자일리는 침묵했다.

그만큼 세올이 기사의 맹세를 언급한 행동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실은 작은 마님과 도련님 그리고 아가씨를 보면서 줄곧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도 좋다고요.”


맹세도, 이 말도 설득하기 위해서 급히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세올은 진심으로 자일리를 따르기를 어느 정도 원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도련님을 따르는 게 아닙니다. 작은 마님과 아가씨와 같은 피를 나누신 분을 따르는 거죠.”


작은 마님과 아가씨를 위한 최선이 자일리의 입지가 커지는 거다.

이 사실을 자일리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런 말에 넘어갈 거 같아? 애초에 그런 일을 신경 썼으면 순순히 여기로 내려왔겠어?”

“넘어가든 안 넘어가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이미 그러기로 정했습니다.”


거듭하는 설득에 자일리는 아랫입술을 씹었다.

세올이 자일리를 따라는 이유가 작은 마님을 위해서라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속내를 전부 털어놓은 게 오히려 이점이 됐다.

자일리가 지금 집안에 미련이 있다면 제 어머니와 여동생이다.

그런 그에게 두 가족이 아니면 지금의 기사 자리도 버리겠다는 각오를 담은 말을 한 거니. 여기서 또 도망치는 건 귀족의 지위는 물론 혈육까지 전부 포기하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젠장! 좋았던 분위기 다 흐리기는!”


자일리는 신경질 내며 시선을 거두었다.

한번 깊게 한숨을 쉬고는. 아주 귀찮아죽겠다는 얼굴로 캣니스와 브레드를 돌아봤다.


“···그렇게 됐어. 아무래도 우리의 여행은 여기까지인가 봐.”


영원할 것만 같던 모험가의 생활이 끝나고 본가로 돌아간다.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할 이들에게 이별을 알렸다.


“솔직히 내가 많이 못나서 민폐만 끼쳤어. 그래도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


쓸쓸한 얼굴로 그들의 관계에 점을 찍으려 했다.

그러자 가만히 지켜보던 브레드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무슨 소리인가!”


브레드는 크게 소리쳤다.

잔뜩 위축한 자일리에게 다가가서 두 팔로 꼭 껴안았다.


“시작은 좋지 못했지만, 그대는 이미 우리와 한 가족이나 다름없네! 그러니 모든 것을 끊고 홀로 싸울 생각은 하지 말게! 언제든 우리는 그대를 응원하고 기다릴 터이니.”


절대로 마지막이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꼭 껴안았던 몸을 떨어트렸다.

많은 것을 짊어진 작은 어깨에 커다란 손을 얹고 눈높이를 맞췄다.


“꼭 성공해서가 아니고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와도 좋네. 앞선 이별의 말 같은 건 그대가 진정으로 우리와 결별하기로 마음먹을 때, 그때 다시 말해주게.”

“하지만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적어도 오 년은 시간을 허비할 거야. 그때까지 나는 너희에게 아무런 도움도···”

“그 오 년 치의 우정과 보답을 이미 받았지 않은가? 그대가 돌아오기를 원하는 한 언제든지 자리를 비워둘 테니, 원하는 대로 저지르고 돌아오게.”


브레드는 싸울 결심을 한 소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작은 소년이 걸어갈 나날을 격려했다.

그러자 자일리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을 쏟은 장본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지 황급히 눈가를 숨겼다.


“도, 도련님?”


세올의 걱정하는 말에 거칠게 눈가를 닦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며, 자일리는 브레드를 향해 삿대질했다.


“그,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런 거야! 아카데미에서 잔뜩 실력을 키워 올 테니 긴장하라고 대머리!”

“그래. 내 쪽도 실력을 다듬으며 기다리도록 하지.”

“다, 다듬긴 뭘 다듬어 이 근육 변태가! 마지막에 강해지는 건 내 쪽이니까, 금 등급 모험가 일 위를 절대 놓지 말라고!”

“도련님···.”


세올이 감격하는 모습으로 자일리를 보았다.

손수건을 꺼내더니 본인의 눈가를 닦았다.


“역시 하찮은 마법 실력 때문에 절망하실 분이 아니라 믿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시는군요.”

“너! 그렇게 말하지 마! 이제 내 마법 안 하찮거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련님. 이 세올 카이스트가 어떻게든 도련님을 무투계의 달인으로 졸업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저를 패던 실력이라면 충분히 아카데미에서 상위권을···”


조금 전까지 진지했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또 바보 같은 말들로 제 평판을 깎아 먹었다.

자일리가 마법 스태프를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절차였다.


“악! 아악! 아파요! 아파요 도련님!”


입을 다물게 하는 물리력으로 흠씬 두들겨 팼다.

이제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비명으로 잔뜩 얼룩졌다.

똑똑똑-

그때였다.

이미 열려있는 문을 한 번 더 두드리는 노인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격식을 잔뜩 갖춘 옷차림.

드디어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왔다.


“브레드 님, 캣니스 님, 가더 님, 자일리 님. 왕성에서 모시러 왔습니다.”


왕성에서 데리러 왔다는 왕국의 대신.


“칼투스 14세께서 성녀의 방문을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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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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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126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6 0 22쪽
148 125화 이름없는 성녀 24.01.10 6 0 14쪽
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7 0 12쪽
146 123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3 10 0 16쪽
145 122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1 8 0 13쪽
144 121화 이름 없는 성녀 23.12.29 10 0 14쪽
143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7 6 0 17쪽
142 <2부> 119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5 8 0 24쪽
141 118화 작별 23.12.13 6 0 22쪽
140 117화 재판 23.12.06 8 0 21쪽
139 116화 재판 23.11.30 9 0 20쪽
138 115화 재판 23.11.22 11 0 21쪽
137 114화 성녀 23.11.19 10 0 19쪽
136 113화 성녀 23.11.15 7 0 19쪽
135 112화 성녀 23.11.11 8 0 21쪽
» 111화 성녀 23.11.08 10 0 21쪽
133 110화 성녀 23.11.04 12 0 19쪽
132 109화 떨어진 과실 23.10.25 9 0 34쪽
131 108화 불신 23.10.21 7 0 25쪽
130 107화 불신 23.10.17 8 0 20쪽
129 106화 불신 23.10.14 12 0 25쪽
128 105화 불신 23.10.10 10 0 18쪽
127 104화 불신 23.10.07 9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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