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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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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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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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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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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14화 성녀

DUMMY

114화 <성녀>



“내 이야기는 그만해! 내 험담을 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잖아!”


아쿠아는 화냈다.

자꾸만 그린 듯한 미소 짓는 캣니스에게 한마디 했다.

그래도 캣니스가 여전히 그린 듯한 미소를 짓자, 아쿠아의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캣니스.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자? 내가 이 나이 먹고 너랑 싸워야겠어?”


아쿠아가 캣니스의 양 볼을 잡고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이번만큼은 캣니스도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


“아야! 아파요! 놔주세요, 아쿠아 님!”

“지금 이게 내가 너를 볼 때 느끼는 고통이야. 못된 미소 짓는 얼굴을 아주 피자처럼 만들어줄 거라고!”

“잘못했어요! 이제 안 그럴게요!”


사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캣니스를 놔주었다.

기싸움에서 승리한 아쿠아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그래서. 진짜 이곳에 찾아온 목적이 뭐야? 알렉산드로스도 만났다면서, 대신 생존 신고를 해달라는 말은 아닐 테고 말이야.”


성녀, 울보, 다음은 새침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물론 소녀라고 표현하기에는 30대는 충분히 성숙한 나이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는 성녀.

캣니스가 그런 생각을 품고 바라보자, 또 한 번 아쿠아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너 또 이상한 생각했지?”

“네? 아니요? 안 그랬어요.”

“거짓말하지 마. 여신님께 맹세코 그런 적 없다고?”

“···이상한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아쿠아 님을 만나니 신기한 기분이 들어서 그래요.”


성직자답게 궤변을 늘어놓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러나 어떤 대답이 나오든 이미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아쿠아가 한 번 더 캣니스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캣니스가 아픔을 호소하며 발버둥 쳤다.

미스릴 모험가들은 늘어나는 얼굴만큼이나 늘어지는 이야기에 한숨 쉬었다.


“그래서. 이제 적당히 질질 끌고 이야기해봐. 알렉산드로스에게서도 피해 다녔던 네가, 대체 무슨 이유로 직접 나를 찾아온 거야?”


서로 신분이 있는 만큼 몰래 만나러 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여사제가 단순히 얼굴 보러 왔을 리 없었다.

아쿠아가 재촉하자, 캣니스는 우물쭈물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야기 안 하면 내쫓는다?”


내쫓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셀레브리디 대신전에서 아쿠아 개인에게 선사한 굉장히 귀한 보물이었다.

유니콘의 뿔을 세공하여 만든 저 호루라기는, 성 바깥의 사람들까지 깨울 수 있는 무시무시한 성능을 갖췄다.

언젠가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주어진 보물이기에, 망설이는 여사제를 몰아세우는 용도로 탁월했다.


“자, 말해. 나 진짜로 할 때는 하는 거 알지?”


캣니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쿠아의 할 때면 한다는 말이 옛 기억을 자극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끄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자리에서 슬며시 내려왔다.

손으로 바닥을 쓴 뒤 무릎 꿇었다.


“저를 도와주세요!”


허리를 바짝 펴며 소리쳤다.

스스로 무모한 부탁이라 여기는지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을 지켜본 아쿠아는 의아해했다.

이 아이가 왜 이러는가 싶은 얼굴로 호루라기를 내려두었다.


“왜? 무슨 일인데?”


한 번도 부탁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아이가 이러니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캣니스는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지금 저와 문지기님은 아주 큰 문제를 겪고 있어요!”

“설마 연애 이야기야? 그런 걸 나한테 묻는 거 아니지?”

“사람들이 저와 문지기님을 무서워해요!”

“그야 당연하지. 여신의 무구랑 마족의 조합인데 무섭지 않을 리가···”

“아쿠아 님의 도움이 절실해요! 부디 재판에 나와주세요!”


아쿠아의 얼굴이 굳었다.

곧, 캣니스가 하려던 말이 이곳에 오기 전에 부탁받았던 일과 같음을 눈치챘다.

어지러운 마음이 담긴 눈이 흔들렸다. 평소 대외용 웃음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 그야 당연히 나가야지! 내가 왜 재판에 안 나온다고 생각한 거야?”

“전적이 많으셔서···.”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나가기 귀찮다고 사람만 보냈어?”


두 미스릴 모험가가 뒤에서 쑥덕거렸다.

뒤통수가 따끔거리자 아쿠아는 표정 관리 못 했다.


“그, 그래! 사실 말만 전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찔릴 것 없기에 당당하게 나서기로 했다.

여태껏 제 이름만 필요한 사람들. 원하는 대로 이름만 빌려준 게 뭐가 잘못됐냐고 따졌다.


“너, 너는 치사하게! 성녀에게 지인 특권을 요구하는 게 어딨어?!”


지금껏 성녀의 행동을 묵인해온 날개들이다.

잔소리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아쿠아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이번 일에만 직접 모습을 드러내라고 부탁하다니.

그런 캣니스가 미웠다.


“저도 가능하다면 아쿠아 님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데요···.”

“그렇게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이번 일은 전과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을 거라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아쿠아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하라고 추궁했다.


“브레드 님에게 간략한 이야기는 얼추 들었을 거예요.”

“그래. 너희들이 아주아주 곤란한 처지에 처해있다고 했어.”

“그런데 사람들은 저희와 왕가가 아주 긴밀한 사이임을 알고 있어요.”


아쿠아의 움직임이 굳었다.

아랫입술을 짓씹더니 그대로 인상 썼다.

왕가와 친밀하다는 이야기로 유추할 바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성녀의 이름만 이용한 재판이라고 의심받을 수 있다는 거지?”

“네. 이름만 빌릴 경우, 민심은 가라앉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굉장히 절박한 처지인 사람들이니까요.”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의 시간은 앞선 부탁을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어디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아쿠아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할 정도의 냉혈한은 아니다.

또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여 누구처럼 앞뒤 없이 나서는 부류도 아니었다.

위험 부담을 천칭에 올려두고 무엇이 옳은지 가늠할 줄 안다.

과연 어느 선택이 옳을지. 신중히 고민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런 재판에 나더러 나가라고?”

“네. 불만은 많겠지만, 성녀의 목소리만이 저희를 구제할 수 있어요.”

“내 위엄이 떨어지는 쪽은 생각 안 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요.”


캣니스는 아쿠아의 걱정을 일축하며 웃었다.

그 단언하는 말에, 아쿠아가 당황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잘 생각해 봐. 왕가하고 사람들이 짜고 친다고 생각한다며? 거기에 내가 나간다고 중재가 되겠어?”


아쿠아는 이번 부탁이 위험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이미 왕가의 말을 무시했고, 성녀의 대리인마저 무시할 거라고 단언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성녀까지 나서서 이 마족은 나쁜 마족이 아니야! 라고 소리쳤다고 가정해보자.”


법정에 나타난 성녀.

드디어 가람 왕국의 악인을 척결하는 줄 알았더니, 도리어 감싸 안는다.


“내 말을 잘도 듣겠다! 나까지 돌 맞을 일 있어?!”


성녀의 이름이 불러올 결과를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런데 캣니스가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뜻을 알아차린 아쿠아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지 말고 나 좀 봐줘! 이대로 가다가는 돌에 맞아 죽는다고!”

“이미 약속까지 하셨잖아요. 별일 없을 테니 법정에 나와주세요.”

“싫어! 싫다고! 내가 왜 그동안 앞으로 안 나섰는데! 선하고 착한 성녀랑 무시무시한 범죄자를 만나게 둘 생각이야?!”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범죄자가 없잖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왕국과 모험가 길드에서 막아 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캣니스는 아쿠아를 어르고 달랬다.

아쿠아의 사정은 딱하지만, 베르길드만큼은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범죄자가 없긴 왜 없어! 예비 성녀 살인자들이 도시에 가득한데!”


뚝, 분위기가 술렁였다.

재판에 나서기 싫다는 이유로 온 도시 사람들을 예비 살인자로 만드는 성녀의 모습이란.

도움을 받기 위해 살살 달래던 캣니스조차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지만, 일단 우는 성녀를 어르고 달랬다.


“아쿠아 님. 아무런 대책 없이 도와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아쿠아 님이 조금도 다치지 않을 방법이 있어요.”

“훌쩍. 그런 방법이 있어?”

“네. 제가 본 모습을 드러내면 돼요.”


캣니스가 망토 모자 부분을 잡으며 웃었다.

이에 아쿠아의 턱이 벌어진 채 닫힐 줄을 몰랐다.


“잠깐··· 잠깐만··· 잠깐만 말하지 말아봐.”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여 손바닥을 뻗었다.

캣니스가 말한 말뜻이 망토를 벗은 얼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곧, 방금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황당해했다.


“설마 여기 사람들 모두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네. 어쩌다 보니까요.”


아쿠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사제의 양 볼을 잡아당겼다.


“잠깐만요. 왜 또 이러시는···”

“이게 내가 아는 그 아이가 맞는 걸까? 아니면 내 귀가 이상한가? 이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온 거 같은데 진짜일까?”


상당히 심각한 표정의 아쿠아.

마치 다른 생물이라도 보는 듯이 캣니스의 얼굴을 뜯어 살폈다.


“아, 아파요. 그만 잡아당기세요···.”

“너 캣니스 아니지? 솔직히 말해. 그 원칙주의자가 이런 짓을 벌였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걸?”

“저 맞아요! 맞으니까 그만 하세요!”


짧은 실랑이 뒤에 캣니스는 부어오른 양 볼을 감쌌다.

아쿠아는 그런 여사제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곧 아쿠아의 몸은 세상 삶이 다 귀찮은 듯 점점 내려갔는데. 끝에 따라서는 거의 의자에 눕듯이 기대었다.


“알았어. 도와줄게. 나가서 말 한마디만 하는 게 뭐가 어렵겠어.”


드디어 긍정적인 답변을 돌려주었다.

그런데 아쿠아의 표정은 그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냥 하기 싫은 표정을 지었다면, 지금은 어딘가 질린 표정이었다.

무엇에 질렸는지에 대해서는 미스릴 모험가들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어쩐지 사람들이 너무 겁이 없다 싶었어.”


아쿠아는 혼잣말한 뒤 티스푼을 입에 물고 우물거렸다.

더 지난 약속을 어길 기색이 없자, 그제야 캣니스도 안심하고 바닥에서 일어섰다.


“감사해요 아쿠아 님.”

“감사한 줄은 아니 다행이네.”


감사 인사에 대한 답으로 불통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캣니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쿠아 님. 혹시 뭐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괜찮은데?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딱히 아무런 용건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기는.

무언가 잔뜩 있었다.

아쿠아의 양 볼이 잔뜩 부풀어 있는 모습은 그냥 넘어가서 안 될 징조였다.


“얘. 얘. 지금 아쿠아가 이러는 이유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란다.”

“하여간에 애도 아니고. 자기감정도 똑바로 표현할 줄 모른다니까?”


다행히 미스릴 모험가가 나서줬다.

캣니스는 그들의 개입이 반가웠다. 원인을 알고 나니 한숨 놓았다.

그에 반해 그들의 고용주는 덜컥 화를 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게르드! 게이로드! 나는 그런 게 아니야! 나는 그냥··· 그냥······.”


기분이 심통해졌을 때는 언제고 눈치를 슬쩍 살핀다.

정말로 뭐 마려운 아이처럼 입술을 달싹이며 안절부절못하였다.


“그. 그러니까···.”

“말씀하세요 아쿠아 님.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라면 들어드릴게요.”

“그, 그렇게까지 부탁한다면야!”


아쿠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줄곧 이 말을 기다린 모양이다.

캣니스는 점점 밝아가는 아쿠아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점점 차가워지는 감정을 느꼈다.


“···너무 떠받들어서 버릇을 잘못들인 거 같은데요.”

“응? 캣니스 뭐라고?”

“아니요. 그래서 저에게 할 부탁이 뭐예요?”


또 삐지기 전에 얼른 말했다.

옛 동료답게 대하는 행동에 서슴없었다.

아쿠아는 고개를 살짝 꺾었다가 찝찝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별 부탁 아니야. 대머리 아저씨 말로는. 이번 일만 끝나면 왕국을 떠나기로 했다며?”

“네. 더 도시에 머무르기에는 사정이 좋지 않아서요.”

“그러면 우리랑 같이 가자! 아니, 같이 가게 해줄게!”


상체를 불쑥 내밀며 제안했다.

오랜만의 재회 이후로 처음 보인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어차피 갈 곳이 없으면 당분간 나랑 같이 가자! 여기 국왕님에게 너희 길드가 나를 호위하겠다고 잘 이야기 해줘!”


아쿠아는 테이블 너머에서 넘어올 기세로 몸을 길게 뺐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콧김도 내뿜고 있었다.


“응? 같이 가자? 가자 가자. 같이 가자고~”


캣니스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현재 성녀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 국왕이 그 일을 논의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아직 재판도 끝나지 않은 마당에, 사건의 당사자를 성녀 호위 일행에 넣겠다고 하면 이상하긴 했다.


“아쿠아 님의 호위라면 저희도 좋기는 한데요···”


성녀 호위는 당연히 진행될 이야기였지만 얼버무렸다.

상대가 그 아쿠아니까. 최대한 약점을 없애고 가는 편이 좋았다.

아쿠아를 속인다는 사실에 미안함은 있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또한, 캣니스는 아쿠아가 굳이 호위를 부탁하는 의중을 짐작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나 보네요.”


고민하지 않고 긍정하는 성녀가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성녀의 품위를 유지하는 일이 상당히 고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아쿠아 님이 직접 나서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힘든가요?”


사실에 기반한 말에 아쿠아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볼을 긁적였다.

본인도 이런 사실을 민망한 건 아는지 멋쩍게 웃었다.


“으음. 그렇긴 한데···.”


좋은 뜻을 갖고 시작했지만, 대륙을 순례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

성녀 아쿠아의 마음은 갈대보다 더 변덕이 심했다.


“역시 나는 남들을 돕기보다는 나다울 때가 행복하더라고.”

“···정말. 왜 성녀의 칭호를 반납하지 않는지 의문이네요.”


참담한 본심을 들으니 탄식이 나왔다.

그러다 캣니스는, 문득 본인이 무의식중에 뱉은 말에 아차 싶었다.


“아, 아뇨. 그렇다고 아쿠아 님이 잘못됐다거나 그런 말은 아니고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변명의 말을 쏟아냈다.

아쿠아는 그런 캣니스의 당황을 지켜보며 그저 웃었다.


“푸훗. 그러게. 이런 호칭 전혀 갖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아쿠아의 시선이 슬며시 발코니 쪽으로 향하였다.

미소 짓고 있지만, 은근히 쓸쓸해하는 진심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캣니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에이. 캣니스 너 또 진지해지려 하지? 사람들의 관심은 버겁긴 한데, 성녀로서 놀고먹는 일을 즐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캣니스가 당황한 모습을 고쳐주려는 걸까. 아쿠아가 어두운 분위기를 웃으면서 넘어갔다.

저보다 어린 성직자를 어르고 달랬다.


“어머. 아쿠아.”

“벌써 시간이 이렇단다?”


쌍둥이 모험가가 시간을 알렸다.

밤이 늦었으니 이만 손님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자자. 쌍둥이들이 말하잖아. 잠잘 때라고. 캣니스 너는 나만큼 키 크려면 일찍 일찍 자아지?”


캣니스와 가더는 등살을 떠밀려서 쫓겨났다.

문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 봤다.

아쿠아가 웬일로 어른의 표정을 지으며 배웅하였다.


“캣니스. 네 부탁은 제대로 들어줄게.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두 다리 뻗고 자도록 해.”


아직도 걱정이 남아있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였다.

호위에 대한 답변은 떠나기 전에만 말해달라는 말과 함께였다.


“···여전히 어려운 분이네요.”


캣니스는 밤거리를 걸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는 신전에서 봤던 모습과 변한 게 없었다.

궁전에서 나온 그들은 곧장 베르 길드로 돌아갔다.

브레드는 궁전에 머무르기로 했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좋은 꿈 꾸어요. 여사제님.”


계단에서 마주친 티미가 짧게 인사하고 사라졌다.

그 외에는 너무나 조용해서. 사람이 있는데도 유령 저택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잘 자 캣니스.”

“주무세요 문지기 님.”


저택에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향했다.

최근에 같이 방을 쓴 적이 많지만, 오늘은 따로 방을 썼다.


‘앞으로 사흘.’


캣니스는 방금 씻고 나온 머리를 털어내며 생각했다.

사흘 뒤에 재판이 열린다.

재판관과 사람들의 앞에서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또한 그때가 되면 그동안 외면해왔던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앞으로 좋으나 싫으나 삶에서 많은 부분이 변할 터였다.


‘정말로 많은 게 변하겠죠···.’


침대에 몸을 누웠다.

지금까지 누린 평안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느끼기 위해 침대에 파묻혔다.

얼마 후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이 저택도 유령 저택처럼 변한다.

자일리는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본인들도 성녀를 따라서 떠난다.

언젠가 그와 다시 만나면 오 년은 훌쩍 넘겠지.

그 시간을 가늠해 보자니, 마왕에게 닿는 시간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때가 되면 그도 변할까요.’


침대에 누워있고 눈을 감고 있지만 잠들지 못하였다.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잠 못 들고 있었다.

크나큰 일을 앞두고 있기에 잠 못 드는 밤.

이 밤에 잠들지 못하는 이는 베르길드 말고 다른 장소에도 있었다.


“너무 호들갑이에요. 그렇게 나쁜 아이도 아닌 거 같던데.”


손님을 마련된 왕성의 별궁.

특별한 손님이 머무르는 별궁 발코니에서였다.

발코니 난간에 턱을 괸 채 잠 못 드는 아쿠아가 있었다.


“그 아이의 말을 잘만 들어주던데 뭐. 너무 사적인 감정으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관심도 적당히 해야죠. 이 정도는 집착이에요. 아주 진절머리 나는 집착.”


찬바람에도 속 드레스 차림으로 나와 있는 여인.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아쿠아는 그리 손님을 돌려보내 놓고도 홀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녹색 눈동자는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당신의 그게 사랑이라는 생각을 좀 바꾸라고요.”


참으로 많은 감정이 담겼다.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눈이었다.

한 손에 쥐고 있는 사과주도 그녀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말해도 마음은 안 바뀌어요. 이번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끊임없이 누군가랑 말을 주고받았다.

이따금 가벼운 사과주로 갈증을 달랬다.

그렇게 달이 하늘 높이 떠서 기울어질 때까지도 발코니 문은 열려 있었다.

가람왕국의 잠 못 드는 성녀의 밤이 길게 이어졌다.


“그저 이 여정이 끝날 때. 상처 입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요.”


드디어 별하늘이 가득한 밤에 한 마디 남기고 떠났다.

밤하늘의 별은 이날 유독 밝았다.

한 주정뱅이가 별하늘의 강물에 취하여 빠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다.

이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잔혹할 정도로 빨랐다.

그렇게 시간이 다다르기를 사흘 후.

온 국민이 참석할 재판의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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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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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8 0 12쪽
146 123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3 11 0 16쪽
145 122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1 8 0 13쪽
144 121화 이름 없는 성녀 23.12.29 1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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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117화 재판 23.12.06 9 0 21쪽
139 116화 재판 23.11.30 10 0 20쪽
138 115화 재판 23.11.22 12 0 21쪽
» 114화 성녀 23.11.19 11 0 19쪽
136 113화 성녀 23.11.15 7 0 19쪽
135 112화 성녀 23.11.11 8 0 21쪽
134 111화 성녀 23.11.08 10 0 21쪽
133 110화 성녀 23.11.04 13 0 19쪽
132 109화 떨어진 과실 23.10.25 10 0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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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107화 불신 23.10.17 8 0 20쪽
129 106화 불신 23.10.14 12 0 25쪽
128 105화 불신 23.10.10 10 0 18쪽
127 104화 불신 23.10.07 1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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