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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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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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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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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DUMMY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릴리트. 무슨 용건으로 우리를 미행했나요?”


경계심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캣니스가 말문을 텄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지난 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헤어진 시간 동안의 거리감이 베르길드에서 처음 만났던 때처럼 돌아갔다.

하지만 이건 인과응보였다.

릴리트가 억울해할 부분은 없었다.


“하얀 사제. 생각보다 화를 안 내네···?”

“의미 없는 일로 감정 소모할 생각 없어요. 찾아온 용건이나 말해요.”


캣니스는 가더를 통해서 다 알고 있었다.

일전에 가람 왕국에서 가더를 데리고 사라졌던 릴리트다.

이 때문에 왕국은 큰 위험에 처했고. 이로 틀어진 감정은 진보가 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망가트리기 충분했다.


“저 같으면 다시는 우리 앞에 못 나타났을 텐데요. 하지만 당신이니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겠죠.”


그런 릴리트가 못마땅하다.

그래도 저번처럼 싸울 자세를 갖추지는 않았다.

감정에 휩쓸려서 달려들었던 지난날과 다르게 지금은 차분히 이성을 유지하였다.


“이, 이봐 용사님. 저거 설마 진짜야? 동명이인 아니지? 지, 지금 싸워야 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라나 님. 우리를 공격할 의도였다면 진즉에 쓸어버렸을 테니까요.”


싸울 준비 하는 라나의 행동을 저지했다.

저번보다 세 명의 일행이 추가되었지만, 여전히 릴리트를 상대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물론, 이길 수 없는 싸움이어서 대화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대화할 여지가 있었고, 대화만이 성립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꼬맹이. 너도 잘 지냈어?”

“릴리트 님보다야.”

“그런 거 같네. 확실히 기분이 좋아 보여.”


그 배경에는 가더의 존재가 있었다.

그가 확실히 억제제 역할을 해주기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가더의 맹약이 있는 한 릴리트는 캣니스를 건드릴 수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캣니스는 이번만큼은 실컷 가더의 온정에 기대기로 했다.


“릴리트. 제 동행자에게 추파 던지지 말고 찾아온 용건이나 말하세요. 우리 중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해서 쫓아온 거잖아요.”


릴리트가 그들을 미행한 이유, 아마도 브레드와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리라.

그토록 애타게 굴다가 헤어질 때 인사도 못 했으니 아쉬웠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결국 이렇게 됨을 알고 있었고, 소란이 잠잠해진 지금을 노리고 접촉한 지도 모른다.


“그래. 전부 네 말이 맞아.”


릴리트가 순순히 대답했다.

조금 전 말이 전부 옳음을 시인했다.


“사제. 이런 말 하면 우습지만. 너와 꼭 다시 만나야 할 거 같았어.”


다만 찾아온 대상이 달랐다.

브레드가 아니라 캣니스를 보기 위해 나타났다.


“저를요? 왜요?”


캣니스가 의아하여 되물었다.

스스로 좋은 대접 해주지 못할 상대에게 오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다시 만나고 싶었어.”

“그렇군요.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어요.”


캣니스는 재를 들쑤셔 작물을 꺼냈다.

후, 입바람을 분 뒤 그것을 릴리트에게 던졌다.

건네받은 작물을 반으로 가르니 토실토실한 노란 속살이 드러났다.

차가운 손에서 식지 않은 열기가 김이 되어 올라왔다.


“이기적인 사람이네요. 당신이 어떤 감정을 지녔든. 그 해답을 저에게서 찾으려 하지 마세요.”


작물을 준 것과 별개로 매몰찬 말이 날아왔다.

이에 릴리트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반으로 가른 작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열기를 잃었다.

침묵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예나 지금이나 당신은 당연한 방법 하나를 모르고 있어요.”


캣니스는 더욱 릴리트를 몰아세웠다.

함께 자리 지키던 브레드와 게이로드 그리고 게르드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여행 중 처음으로 차가운 감정을 드러낸 여사제.

그들의 대화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예요. 그것만 먹고 떠나세요. 릴리트.”


그렇지 않겠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쫓아내겠다.

그런 뜻이 실려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별바다···.”

“네. 말씀하세요.”

“별바다 보여줬잖아!”


릴리트는 소리쳤다.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외침이었다.

궁지에 몰린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캣니스에게 떼를 쓰는 것이었다.


“내가 친히 예쁜 꿈에 초대했어.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 거야?”

“역시. 제가 아플 때 도움을 주었군요.”

“그래! 이 내가 오직 너를 위해 해준 일이었어! 그런데 너는 입 싹 닫고 매몰차게 나를 내쫓으려 하는···”

“그렇지만 정말로 아플 이들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네요.”


다시 한번 차가운 목소리가 릴리트의 말을 막았다.

여전히 잿더미 속에서 작물을 뒤적였다.

캣니스는 손을 뻗었다.

타오르는 불 속에 있는 그것을 맨손으로 집어 들었다.


“상관없는 일이었겠죠. 관심은 있었으나 그뿐이었겠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순간 변덕을 부려봤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던 거겠죠.”


뜨거운 온도에 살이 익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손바닥 안쪽이 성치 못함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여사제의 얼굴은 잔잔했다.

여전히 릴리트를 바라보는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있잖아요 릴리트. 왜 문지기님을 데려갔어요?”


작물의 껍질을 벗기는 섬세한 손길이 있었다.

그러나 벗겨지는 건 작물의 껍질뿐만이 아니었다.

있던 식욕도 다 사라지게 만드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보다 못한 라나는 입을 막고 숲으로 뛰어갔다.


“내가 꼬맹이를 데려간 이유···”

“네. 그러니 대답해봐요 릴리트. 대체 그 상황에서 문지기님을 데려간 이유가 뭔가요?”


조용한 말이었지만 상대방을 몰아세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떠한 물리적 요소 없이, 사천왕에게서 땀방울을 얻어냈다.


“대답을 못 하시네요. 결국 우리가 어떤 일을 겪든 상관없었으면서요.”


그녀에게는 잔인한 결론이었을까.

릴리트가 흡, 숨을 삼켰다.


“그랬으면서 왜 다시 나타났나요? 더 무엇을 가져가려고 왔나요?”

“나, 나는···.”

“솔직히 대답해봐요. 또 제 무엇이 미웠어요? 아니면 탐이 났나요? 자, 말해봐요. 숨기지 말고 말해봐요 릴리트.”

“아니야 나는···!”

“아. 그렇군요. 배가 고팠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드릴까요? 조금 미흡한 대접이지만요.”


캣니스가 손에든 작물을 내밀었다.

이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릴리트는 도리질했다.

그뿐 아니라 차가운 밤공기를 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덜덜 떨면서 스스로 끌어안았다.


“나··· 나는 그냥 도와줄까 해서······.”

“당신이요? 우습네요. 변덕을 밥 먹듯이 부리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맡길 인간이 있을까요?”

“그, 그렇지만······”

“다시 한번 말할게요. 필요 없어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괴물을 누가 데리고 있고 싶나요?”


잔인한 말이다. 그러나 타당한 분노였다.

캣니스는 이유 모를 성의가 언제나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많이 지켜봐 왔다.

그건 릴리트도 해당했다.

이 세상의 누군가는 미숙한 서큐버스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알려줘야 했다.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기분에 따라 행동할 뿐인 가엾은 사람. 무언가 필요해서 왔다면 돌아가세요. 이곳에서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그 정도의 작물뿐이니까요.”


이 말이 마지막이다.

이 이상 무언가를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것만 먹고 가세요. 당신이 또 심술이 나서 왕국을 지배하든 말든 제 알 바 아니니까요.”


손에 쥔 작물을 반으로 갈랐다.

노란 속살을 입에 물었다.

입에 작물을 문 채로, 새빨갛고 새까맣게 변한 손에 황금빛 신성력으로 덮었다.

금방 하얀 피부를 되찾은 손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식사를 이어갔다.


“아직도 다 안 먹었나요?”


노란 작물의 반을 먹어 치운 후,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는 서큐버스에게 핀잔주었다.

이에 릴리트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입술을 깨물 정도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더 뭘 하면 되는데···.”


릴리트는 작게 목소리 냈다.

캣니스는 슬쩍 그녀를 보았다.


“아무것도요. 당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요. 모든 걸 알고도 방관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면 돼요.”


다시금 남은 작물 반쪽을 입에 넣는다.

릴리트의 몸이 좋지 못한 감정으로 파르르 떨렸다.

고개 숙이고 있음에도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지 짐작 갔다.

분명 얼굴에는 수치심과 모멸감이 가득할 터였다.


“네가 원하는 꿈을 보여줄게. 내가 처참한 모습이 보고 싶어도 얼마든지 해줄게···.”


그래도 어지간히 함께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회유의 단계에 이르렀다.


“당신이 주는 거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 말마저 캣니스는 거절했다.

무엇도 주지 않고 무엇도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싫어하는 사람들 전부 악몽을 꾸게 해줄게! 우선 너를 다치게 했던 사람들을 괴롭히고 올까?”

“당신은 변함이 없군요. 제가 그런 일을 원한다고 생각해요?”


잘못된 제안을 받은 캣니스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에 릴리트가 더더욱 아랫입술을 깨물며 주먹 쥐었다.


“그러면 대체! 대체 뭘 해야 기분이 풀리는 거야?!”


그 잘난 자존심이 인내심을 넘어섰다.

어떠한 제안을 내밀어도 거절당하니 소리쳤다.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몰랐다고! 꼬맹이 없이 잘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이 그렇게 될 줄 내가 알았겠어?”


릴리트는 격한 숨소리를 내쉬었다. 일그러져있는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겨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이 설명해야 했다.


“나도 내가 구질구질하게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러나 본인의 감정을 모르는 릴리트였다. 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캣니스는 릴리트를 나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릴리트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도 왜 너희를 따라다니는지도 모르겠어. 혹시 내가 미쳐버리기라도 한 걸까?”


한 사람이 슬픔에 침몰한 듯한 모습이었다.

릴리트가 저런 처참한 얼굴로 미소 짓는 게 가능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미안했어.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 되었다.

그리 생각한 캣니스는 무릎 위 천을 내렸다. 먹다 남은 작물도 미뤄두고 일어섰다.

릴리트 앞에 똑바로 서서 얼굴을 마주했다.

저보다 몇 배나 나이를 먹은 서큐버스. 그런데도 본인의 감정 하나 제대로 인지 못 한 서큐버스를 가엾게 쳐다봤다.


“릴리트. 망가졌군요.”

“그래! 언젠가 페넥스도 그렇게 말하더라!”

“하지만 좋아요. 나쁘지 않은 변화예요.”


릴리트는 눈을 크게 떴다.

처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해준 것이다.

캣니스는 조금 전과 달라진 분위기로 브레드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눴다.


“릴리트여. 만약 우리와 함께한다면 무슨 일을 할 생각이었지?”

“아마 하얀 사제 좀 살피고··· 당신에게 안겼을 거야.”

“솔직하군. 거짓말은 아닌 거로 보이네. 하면, 저번처럼 우리에게 골칫거리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일. 다시 만들지 않아. 무얼 하던 너희에게 먼저 물어볼게.”

“그렇다면 그대의 말을 믿도록 하지. 게르드! 게이로드여!”


숨 막혔던 분위기가 해방됐다.

그의 질문에 게르드와 게이로드가 대답했다.


“우리의 고용주. 아쿠아에게 물어보렴~”

“아쿠아의 결정이 곧 우리의 결정이니까~”


캣니스는 걸음을 옮겼다.

닫힌 마차의 문을 살짝 열었다.

지금 사정을 설명하고 답변을 얻는 절차였다.


“잠시 비켜봐.”


그런데 예상 밖의 움직임으로 마차의 문이 활짝 열렸다.

잔뜩 헝클어진 모습인 아쿠아가 내렸다.

아쿠아는 성녀와 거리가 먼 행색이었지만, 보기 드물게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래. 네가 그 서큐버스야? 마족 주제에 감히 나랑 같이 다니고 싶다고?”


그리고 릴리트 앞에 섰다.

서큐버스를 대하는 모습이 호의적이지 못했다.


“대답해. 우리에게 어떤 취급을 당해도 같이 다닐 자신 있어? 마왕군의 수뇌부였던 네가 그런 수모를 견딜 수 있다고?”

“함께 다닐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 이건 변덕이 아니라···”

“하. 네가 그러겠다고?”


말을 끊고 콧방귀를 뀌었다.

조금 전 대답을 우스갯소리 대하는 것처럼 취급했다.

이에 릴리트의 어깨가 떨렸다. 캣니스에게 받은 모멸감보다 더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든 말든 아쿠아는 제 할 말을 이어갔다.


“물론 아예 안될 건 없지. 같이 데리고 다녀 줄 수 있어.”


겁쟁이 아쿠아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무려 사천왕의 가슴께를 찌르면서 몰아붙였다.


“정말로 네 마음이 그렇다면 목숨을 걸고 맹세해. 절대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제약을 걸어. 너 같은 걸 데리고 다녀야 하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


한 마디 한마디가 전부 자존심을 깎아내는 말이다.

그래도 릴리트는 손찌검하지 않았다.


“이것도 못 한다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가장 기본적인 신용조차 못 지키는, 악마만도 못한 한심한 서큐버스야.”


릴리트는 이를 사리물었다. 생에 처음 받는 모욕이다.

그래도 힘겹게 노여움을 참고 입을 열었다.

입에서 나온 말은 당장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타나토스 님의 이름 아래 맹세할게. 나는 너희의 의견을 따르고, 이에 목숨을 담보로···”

“아니. 그게 아니야!”


어렵게 뱉은 말이 끊었다.

아쿠아는 릴리트의 당황한 얼굴에 대고 하나하나 읊조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알아내려 하지 말고.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마. 방해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나를 위해서 움직여.”


그렇게 말한 아쿠아의 표정은 진지했다.

릴리트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그렇게 한다고! 네가 말하는 대로 한다고 방금 말했잖아!”

“아니. 달라. 그러니 내 말에 동의하겠다고 어서 말해.”


대체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지만, 릴리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자신이 고른 말조차 못 하는 치욕스러움을 삼키며 대답했다.


“나 릴리트가 타나토스 님의 이름으로 맹세해. 조금 전의 말, 전부 동의할게.”


이로써 계약이 끝났다.

아쿠아는 속 시원하다는 얼굴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그런데 정작 동행을 원했던 릴리트는, 계약이 끝나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이런, 미친 여자.”

“릴리트. 무슨 문제 있어요?”


험한 말이 나오자마자 캣니스가 나섰다. 아쿠아를 해코지할까 경계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게 만들어서 그래.”


잠깐 흠칫 놀라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 젓는 릴리트.

다시 우울한 감이 적잖이 있는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러면 나중에 보자. 근처에 있을 테니 필요해지면 불러···.”


더 자신이 필요 없다고 여긴 릴리트는 날개를 폈다.

이전처럼 먼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려 했다.


“어딜 가려고요?”

“또 뭔데···.”


릴리트의 옷자락을 캣니스가 붙잡았다.

날개 접은 릴리트를 모닥불 앞으로 끌고 와서 앉혔다.


“자. 라나 양도 와서 앉지.”


브레드가 겁에 질린 라나를 챙겨서 앉았다.

마차로 돌아간 아쿠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모닥불 앞에 모였다.


“자, 그러면 새로운 일행도 생겼겠다.”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까?”


여행 중에 만난 일행을 대하는 모험가의 불문율.

자기소개와 더불어 친해질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 아니, 저는 라나라고 합니다! 성은 없고! 선배님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 잘 부탁한다. 라나~”

“그러면 우리 용사님에게 붙잡힌 그쪽 이름은 뭘까~”

“···릴리트. 너희가 생각한 서큐버스 맞으니 할 말 있으면 해.”

“호오.”


줄곧 품고 있던 의문을 해결해주자 세 명의 모험가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게르드가 금방 정신 차리고 손뼉 쳤다.

예의 험상궂은 미소를 지으며, 외관과 어울리지 않는 친절함을 보였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 우리 아가씨들은 사랑을 해봤으려나?”


험상궂은 얼굴과 다르게 인류애가 가득한 질문이었다.

라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릴리트에게서는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 그렇지. 사랑 해봤어. 많이는 아니고 한 두 번 정도···”


처음에는 당당히 말하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얼굴은 서서히 붉어지더니 이내 손으로 가렸다.

혼자 쑥스러워서 그러더니,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횡설수설 변명했다.


“푸핫. 이게 뭐야? 서큐버스 여왕이라 불리던 녀석이 왜 이렇게 쑥맥이야?”


라나가 말하기 무섭게 보복당했다.

벌레의 환영이 라나를 휩쓸고, 육두문자를 동반한 비명이 나왔다.

참지 않는 라나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모험가다운 사나운 욕설로 릴리트를 쏘아붙였다.

다른 이들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흥. 내, 내가 너희들에게 말해줄 의리 없잖아···!”


확실히 릴리트는 캣니스가 기억하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심한 말을 듣고 눈가가 새빨개진 모습부터가 그러했다.

한때 토벌 대상이었던 서큐버스 여왕.

오히려 지금이 센츄어리 대륙에 더 좋은 변화일지 모른다고 캣니스는 생각했다.

그렇게 달이 지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이야기했다.

잿더미 안의 작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이야기가 식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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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25화 이름없는 성녀 24.01.10 6 0 14쪽
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7 0 12쪽
146 123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3 10 0 16쪽
145 122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1 8 0 13쪽
144 121화 이름 없는 성녀 23.12.29 10 0 14쪽
»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7 7 0 17쪽
142 <2부> 119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5 8 0 24쪽
141 118화 작별 23.12.13 6 0 22쪽
140 117화 재판 23.12.06 9 0 21쪽
139 116화 재판 23.11.30 10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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