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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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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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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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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작별

DUMMY

118화 <작별>



“브레드. 당신의 생각은 어때?”

“뭔가 생각했던 사제의 모습과 다른데?”


게르드와 게이로드가 짐더미 앞에서 말하였다.

덩치와 안 맞게 조심스럽게 말하며, 한 방향을 곁눈질했다.

그들이 신경 쓰는 대상은 캣니스였다.

마차 위에 하염없이 앉아서 멍한 상태인 그녀를 걱정하였다.


“더 당찬 모습을 생각했는데, 병으로 시름시름 앓는 여인의 모습이야.”

“밥을 안 먹은 아쿠아를 보는 느낌이랄까?”


조금 전까지 짐을 옮기던 브레드.

브레드는 짐을 내려놓고 그들이 보는 방향을 보았다.


“애가 너무 힘이 없어~”

“보는 내가 다 슬퍼져~”


브레드는 그들의 걱정을 이해했다.

무사히 재판이 끝나고. 예전처럼 캣니스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캣니스는 그날 이후로 저 상태이다.

비탄에 빠진 사제의 모습은 낯설고도 걱정됐다.


“아마 큰일을 겪은 이후라서 정리가 안 된 모양일세. 지금은 혼자서 쉬게 두도록 하지.”


걱정은 한다. 그러나 괜한 위로나 위안을 주지는 않았다.

지금은 자신의 존재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 도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함께했던 그 남자밖에 없었다.


“캣니스. 꼬치 먹을래?”

“네···.”

“몸은 어때? 괜찮아?”

“네···.”

“그쪽에는 입이 없는데? 거기는 뺨이고 입은 여기 있잖아.”

“네···.”


문제는 그 남자가 여인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

직접 꼬치를 먹여주는 지금 행동도, 평소였다면 얼굴이 새빨개질 캣니스가 거부하리라는 점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미처 씹지 못한 고기들이 다람쥐처럼 볼이 빵빵해지도록 넣어져 있었다.

차라리 나무늘보 걸음걸이가 더 빠를 정도로 느리게 턱을 움직였다.

누가 봐도 고민이 많은 행동인데···.

태연히 꼬치나 주고 있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탄식을 나오게 하였다.


“캣니스. 그렇게 먹다가는 하루 종일 걸려도 못 먹을···”


그러던 그때였다.

평소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일어났다.

그건 잠깐의 사고였다.

브레드도 가더도 심지어 행위의 주체자인 캣니스도 놀란 채 눈을 크게 떴다.


“캣니스?”


조금 전 고기를 제대로 못 먹던 그녀다.

당연히 뺨에 음식물의 흔적이 묻었고, 그걸 가더가 닦으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고기 묻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는 가더의 행동이 끝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그러니까··· 이게 아니라···.”


캣니스는 혀가 꼬였다.

스스로 벌인 일인데도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모두가 놀란 이상으로 그녀는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았다.


“무의식중에 그만···”


본인이 저지르고도 시큰거리는 손목, 조금 커진 가더의 눈동자.

조금 전 캣니스가 가더의 손길을 거부하고 쳐냈다.

평소였다면 절대로 일어날 리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당황할만한 상황이었다.


“아니에요! 절대로 문지기님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가더는 변명하는 캣니스에게 처음 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서서히 멀어졌다.

자리에 남은 캣니스만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산 넘어서 산이로군.”


브레드가 혼자 말했다.

무슨 일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왕국과 그들 간의 불화를 중재하니 그들 사이에 다른 갈등이 생겼다.


“싸운 걸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걸?”


물론 갈등이라 치부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가더는 캣니스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하였으니까.

그저 캣니스만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이야. 다들 열심이네요.”


여러 사정이 있어도 시간은 흘러갔다.

더 늦지 않기 위해 부지런하게 짐을 싣던 중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대문 쪽에서 서서히 가까워졌다.


“우리의 꼰대, 이카루스 님이 행차하였습니다.”

“클레인? 그런 소개는 조금···”


시끌벅적한 장소에 시끄러운 사람이 나타났다.

가람 왕국 모험가 길드가 총출동했다.


“브레드! 오랜만이에요!”

“냐냥. 나도 왔다냥!”


그들의 등장에 우중충했던 분위기가 환기됐다.

이카루스와 클레인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짐꾼들에게 지시 내렸다.

그동안 바네샤는 루나와 인사를 나누러 돌아다녔다.

바네샤는 브레드에게 가까이 갔고, 루나는 캣니스에게로 향했다.


“캣니스냥. 요 며칠간 바네샤와 클레인이 냉전이었다냐.”


가람 왕국과 베르길드의 이별인 만큼, 모험가 길드의 사람들이 직접 인사하러 왔다.

그들은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깊은 인사를 나누었다.


“길드장냥! 캣니스 상태가 이상하다냐!”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캣니스에게 말을 걸었던 루나가 소리 질렀다.

제 인사를 전부 무시하고 우울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캣니스에게 겁먹었다.

그 비명을 들은 이카루스는 직접 캣니스의 상태를 살폈다.


“으음. 이건 심각한 자책 중독이야. 죽을 때까지 안 나을 테니까 내버려 둬도 돼.”

“뭐가 내버려 둬도 된다냥! 포기하지 마라, 길드장냥!”


일개 종업원에게 멱살을 잡히는 길드장.

가람 왕국의 일상인 하극상을 처음 본 게르드 형제는 서로 수군댔다.


“하하하. 루나 이제 놓아주지 않을래?”


탈곡기 마냥 탈탈 털리던 이카루스가 풀려났다.

심각한 얼굴의 종업원을 두고 돌아섰다.

캣니스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세간에 유명하신 성녀님은 지금 어디에 있죠?”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님.”


이카루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답변이 돌아왔다.

마차 지붕 위에서 직접 성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성녀답게,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었다.

두 손을 모은 모습은 보기만 해도 성실하고 신실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데 왜 마차 위에서···?”


다만 그런 고귀한 사람이 마차 지붕 위에 있다는 점은 의문이었다.

바네샤가 의문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의문을 해소해주는 답은 성녀의 일행에게서 나왔다.


“어머. 아쿠아. 또 거기에서 낮잠 자고 있었니?”

“기껏 한 치장이 망가지니 자제해달라고 그렇게 말했잖니.”


게르드 형제가 한탄과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이에 아쿠아는 선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여신님을 더 가까이 뵙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온 겁니다.”


한 치의 거리낌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 행동에 의심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아쿠아를 살펴보면 볼에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구겨진 사제복이 있었다.


“저 사람이 성녀님···!”


바네샤같이 은근히 순수한 이들은 믿는 눈치였지만. 눈치 빠른 몇몇은 금방 이해했다.

그래도 대륙에서 유명한 성녀이기에 체면을 지켜주었다.


“이야. 그렇군요. 따르는 신을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시다니, 역시 성녀님이십니다.”


지켜주다 못해 치켜세워주는 이카루스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부를 들은 성녀는 입을 다물었다.

거의 정색하듯 이카루스를 바라보는 눈빛.

성녀에게 아부한 이는 당황했다.


“어라? 이게 아니었나요?”


단번에 험악해진 분위기에 이별의 시간이 흐려질 찰나였다.

쐐액, 예리한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퍽-


돌멩이는 이카루스의 머리를 정확히 적중했다.

이카루스는 뒤통수를 만지고 손을 확인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길드장님이 암살당했다냥!”

“진정해 루나. 흔히 있는 일이잖아.”


이카루스가 쓰러졌는데도 별 소란은 없었다.

루나와 바네샤는 이카루스를 죽인 이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돌멩이를 공중에 던졌다 받았다 하는 너구리 수인이 있었다.

모험가 라나가 그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바네샤 언니! 루나! 잘 지냈어?!”

“라나잖아! 오랜만이야~ 왜 왔다면서 제대로 얼굴도 안 비췄어?”

“오자마자 바빴잖아. 나도 언니도 워낙 바쁘기도 했고.”


모험가 라나와 라군이 나타났다.

그들 외에도 많은 모험가가 함께 왔다.


“여, 브레드 우리 왔다고!”

“가더 형씨는 여전히 힘이 좋구만!”


그들은 베르 길드와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물론 인사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짐을 나르는 일도 도왔다.


“클레인 언니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래, 도둑 너구리야. 나는 비교적 잘 지냈어.”


특히 모두와 면면이 있는 라나가 모험가 길드의 여자들과 이야기했다.

다만 반겨주는 클레인의 말이 상당히 살벌했다.

라나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가 흠칫 놀랐는데. 바네샤와 루나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이상하다? 왜 언니가 화 난 거 같지?”

“그걸 내게 묻는다는 게 상당히 불쾌한걸?”


상당히 기분이 저조해 보이는 답변.

라나도 한 성깔 하기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잘 알던 사이이기에 참고 넘어갔다.

이야기의 화제는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현 도시에서 누구보다 유명한 사람에 대한 화제였다.


“그런데 용사는 어딨어? 사실 그 아이 때문에 모인 거나 다름없는데.”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한 용사 일행의 성직자.

이번 재판으로 기적적인 생환이 온 도시에 퍼졌다.

현재 이 도시에서 누구보다 유명한 용사님인데, 지금은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지 않았다.

브레드는 라군과 대화하고 있고, 인성 파탄 난 잘생긴 총각은 짐을 옮기고 있는데, 캣니스만 보이지 않았다.


“아. 저기 있네. 이봐 용사님.”


이내 라나는 짐마차에 쭈그려 앉아있는 캣니스를 발견했다.

루나와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걸었다.

그리고 역시나, 멋쩍은 표정이 되어 그들 사이로 돌아왔다.


“저거, 왜 저래?”


한쪽은 축제 분위기인데 한쪽은 죽을상이다.

아무리 제멋대로인 라나여도 더 말을 걸지 못하고 포기하였다.


“브레드 공 들어보게. 내 딸이지만 어찌나 고집이 세던지···”


여자들이 이야기 나누는 한편. 남자들도 떠들썩했다.

남자들의 모임은 조금 더 야성적이고 거칠었다.

이번에 그들 사이에 술이 없다는 사실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했다.

예전에 모험가 길드에서 자주 모였던 때같이 소란스러웠다.


“어휴. 형님 딸은 다행입니다. 우리 아들은 어찌나 속이 썩이던지.”

“그러고 보니 형수님이 셋째를 가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정말이냐? 벌써 셋째라니 정말 기쁜 일이구나!”


대부분의 이야기는 유부남의 자식 이야기였다.

브레드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쁘게 경청하였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대들이어서 참으로 다행이군.”


그러다 한마디하고는, 옆에 있던 라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역시 마지막은 조용히 떠나기보다는 시끌벅적해야 하지.”


브레드는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이래야 그가 아는 모험가였다.

이 사실이 만족스러워서 입꼬리가 가라앉을 새가 없었다.


“···그런데 브레드 공은 이걸로 괜찮은 겁니까?”

“무얼 말인가?”

“이렇게 도망치듯 떠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이어지는 라군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다들 비슷한 표정으로 브레드를 바라봤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는 표정과 그리 다르지 않을 터였다.


“맞아요 브레드 씨. 우리 함께 오크통으로 술 마시기로 했잖아요.”

“애초에 이제 도망갈 필요도 없잖아. 도시 분위기도 바뀌었는데 더 여기 있어.”

“우리가 더 잘해줄 테니 가지 말고 여기 있어.”

“가지 말고 더 지내요.”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브레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 같아도 이렇게 떠나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할 터였다.

그만큼 이 도시에서 그의 존재는 컸고, 그만큼 그 안에서의 도시의 의미도 컸다.


“지금이라도 마음 바꿔요. 여기 남기로요.”


어쩌면 지금이 결정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브레드는 그 배려를 무시하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니. 그대들에게 미안하지만 떠날 걸세.”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오늘 그는 도시를 떠난다.


“한 번 떠나기로 정한 이상 반드시 떠나야 하네. 이런 일을 망설여서 나빴던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면 떠나라.

유명한 여행가의 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브레드는 이 말을 삶의 지침 중 하나로 여겼다.


“물론 재판이 끝난 지금은 괜찮겠지. 하나 시간이 흐르면 우리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나올걸세.”


모험가로 지내다 보면 여러 경우를 겪는다.

그만큼 얻는 지혜도 있었다.

그중에서는 사람들과의 불합리한 충돌 또한 굉장히 있었다.


“물론 남는다는 선택지 또한 있네. 예전처럼 돌아가 잘 살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저들의 모험이 지속되었으면 하네.”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확실히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전부터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다.

이 일이 지나고도 이곳에 남으면 그들의 모험은 멈춘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이 모험할 수 없게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 어떠한 진보도 없고 절대로 이전 같은 감정의 교류도 있을 수 없지. 그건 더 이상 모험이 아니라고 감히 단언하네.”


모험이란 미지의 영역.

모험가는 미지와 삶을 탐구하는 연구자이다.

그런 모험가가, 모든 상황이 예측되는 공간에 오래 머물면 어떻게 되는가.


“라군. 그대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 정착하였지. 과연 그대는 스스로 모험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라군은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 모험가라고 자부할 수 없었다.

그만큼 젊었을 적의 모습과 지금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일전엔 나 또한 모든 감정을 내려둘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지. 하나 마주치고 말았네.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나 모험을 바라는 두 사람의 눈을.”


원래 브레드도 은퇴 후의 삶을 살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마음을 바꾼 기연을 얻었다.

별것도 없는 대륙 끝의 도시지만, 모험을 꿈꾸는 두 사람을 보았다.

은퇴를 고려하던 모험가에게 새로운 미지를 꿈꾸게 하였다.

대체 그들이 무엇을 위해 모험하는가. 무엇을 얻으려고 저렇게 빛나는가. 다 사라진 줄 알았던 모험가의 호기심이 그를 이끌었다.


“라군. 그대는 알고 있나? 이 어두운 며칠 동안에도 그들의 눈에서 빛이 사라진 적은 없네.”


브레드가 모험에 대해 걱정하는 동안, 가더와 캣니스는 단 한 번도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하고 있었다.


“모험은 계속 이어져야 하네.”


드디어 브레드는 그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로써 베르길드는 완전해졌다.


“그들은 한 번도 모험이 끝나리라고 의심한 적 없으니.”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정적이 찾아왔다.

라군이 숙연한 분위기에서 한마디 하였다.


“정말 멋진 말이었습니다.”


떨어지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냈다.

다들 하나같이 감동한 표정으로 브레드를 바라봤다.


“브레드 씨! 우리는 맹세하겠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친구! 영원한 우상! 브레드를 향한 우정을 변치 않겠습니다!”

“먼 길에서 돌아오면 내 술 한잔 기꺼이 내어주마!”

“어쩌면 왜 인제 왔냐며 엉덩이를 걷어찰지도 모르지만!”

“그대는 우리 모험가들의 영원한 친우입니다!”

“가람 왕국의 구원자입니다!”

“사랑해요 브레드 씨!”


먼 길을 떠나도 여전히 인연은 이어진다.

비록 이런 안 좋은 시기에 헤어지지만, 다시 돌아올 날을 기대하겠다는 멋진 친구들이었다.

브레드는 그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팔을 벌렸다.

거대한 품 안으로 모험가들이 몸을 겹쳤다.


“저, 바쁘신 와중에 죄송해요.”


뜨거운 이별의 순간을 나누던 와중이다.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라고 캣니스의 등장이 알려줬다.

모험가들은 코를 훌쩍이며 캣니스와도 포옹했다.

다행히 캣니스가 남자들의 땀내 나는 포옹을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셰인이 안부 전해달래. 언젠가 캣니스 너에게 얻은 은혜를 꼭 갚겠다고.”


바네샤가 전해준 셰인의 안부를 마지막으로 마차에 올라탔다.

이제는 정말로 저택과 멀어질 시간이었다.

한겨울 이슬로 얼은 베르길드의 대문을 열었다.

성녀를 태운 마차가 대로변으로 나왔다.

저택뿐만 아니라 왕국과도 이별할 시간이 되었다.

어제의 일이 알려진 터라, 그들을 막는 무리는 없었다.

이대로 아무런 탈 없이, 그들은 떠날 줄 알았다.

예고 없이 마부석의 브레드가 마차 속도를 늦추고, 멈추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캣니스여.”

“네?”

“천막을 열게나.”


마부석에 탄 브레드가 말했다.

짐칸을 돌아본 그는 가림막을 가리켰다.

캣니스는 바깥과 단절해 놓은 천막을 조심히 열었다.


“아···.”


이윽고 마차 천막을 들춘 그녀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가득 찼다.



*****



“이건···.”


캣니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 존재하지만 믿기 힘든 광경에 말을 빼앗겼다.

멈춘 마차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눈이 쌓여있던 길 위로 새로운 흔적을 새겼다.

마지막으로 걷는 거리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브레드 님 지금 모습은···.”


몸을 반 바퀴 도는 동안에도 놀라움은 그치지 않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람 왕국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길을 연 채로 무릎 꿇고 있었다.

지난 잘못을 뉘우치는 의미로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당황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게. 누가 시켜서 벌어진 일이 아니니.”


돌아오는 대답에 캣니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두렵거나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 눈물을 쏘아낼 듯한 표정 아래서 착실히 미소 지었다.

이 광경은 날개의 신분으로 줄곧 바라왔던 일이다.

줄곧 사람이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일을 꿈꿔 왔다.


“멋져요. 정말로···”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캣니스는 그 광경에 홀려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가슴 벅차오르게 하는 감동은 코끝을 빨갛게 만들었다.


“언니. 이거 받으세요.”


새빨개진 눈가를 닦고 있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두 아이가 나왔다.

여자아이는 꽃집 아주머니의 딸이었고, 남자아이는 티미가 함께 도망친 덕에 살아남은 아이였다.

이제는 캣니스가 도시를 떠나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을 남겨주는 아이들이었다.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


두 아이가 손에 든 선물을 주었다.

여자아이는 언젠가 받았던 화관을, 남자아이는 꽃으로 엮인 목걸이를 준비했다.

캣니스는 그 꽃을 몸에 받아들이고 조용히 서 있었다.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를 지켰다.


“느낌이 어떤가 캣니스여?”


어느새 다가온 브레드가 물었다.

캣니스는 여전히 마차와 등 돌린 상태였다.

등 너머로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가 닫은 그녀는, 조용히 소매 끝으로 얼굴을 비볐다.


“믿기지 않아요.”

“어느 부분이?”

“이 많은 사람이 스스로 참회한다는 사실이요.”


평소에 프로텐시아를 믿던 이들도 셀레브리디 교단의 징표를 달고 기도했다.

모두가 떠나는 그들을 위하여 배웅하고 있었다.


“놀라울 필요 없네. 모두 다 그대가 만들어낸 일이니.”


브레드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뒤, 아이들이 본래 있어야 할 장소로 돌려보냈다.

이 순간 그들은 생각했다.

베르길드가 떠나고 왕국은 다시 웃음을 되찾을 것이다.

확증은 없지만 왠지 그렇게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는 자매님. 모두 자매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부디 삶의 모험을 계속하실 자매님을 위해, 여러분이 구한 왕국의 미래만큼이나 여러분의 삶이 번창하기를 축복하겠습니다.”

“대사제님?”


이제는 떠나는 길에 빠지면 섭섭할 이들이 다가왔다.

왕궁과 신전 사람들이 배웅나왔다.

선두에 선 대사제가 신전을 대표하여 앞으로 나왔다.

왕궁 대표로는 제1왕자가 국왕을 대신하여 나왔다.


“저와 아버지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우리 가람 왕국은 그대들의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친우, 우리의 구원자시여. 프로텐시아 님의 보금자리는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제1왕자가 예를 갖추어 말했다. 신전의 대사제도 그들의 이별에 밝은 앞날을 축복했다.

이로써 두 대표의 성원이 함께했다.

이보다 더 축복받은 모험가는 없을 것이다.

비록 이 길의 시작은 원망이었지만, 지금은 떠나는 걸음마다 많은 축복이 함께하였다.


“가세요. 사사로운 마음으로 발목을 잡지 않겠습니다. 더 큰 세상을 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영향을 끼치십시오.”


대사제의 말에 캣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조한 마차 짐칸에 올라탔다.

떠나라는 그들의 말을 따라서 떠났다.

마차가 움직이고, 서민들과 사제들 그리고 높은 직위의 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였다.


“모두 안녕히 계세요!”


한 사람 한 사람. 낯익은 얼굴들을 전부 눈에 담았다.

행렬이 끝날 때쯤에는 마차가 무사히 성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캣니스. 저기 봐.”

“도시가 새하얘요.”


세상은 아직 하얀 부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경치는, 오래전 두 사람이 봤던 모습과 또 다르게 보였다.


“브레드 님 떠날 때 물으셨죠? 지금 제 기분이 어떠냐고요.”


캣니스는 좀처럼 들뜬 기분을 진정하지 못했다.

마차의 천막 밖으로 반쯤 몸을 내밀었다.

새하얀 얼굴이 추위로 달아올랐다. 그래도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캣니스여 저길 보게!”

“네! 보고 있어요!”


설경을 달리는 마차 안에서 확실히 보았다.

벼랑 너머 왕국의 성벽에 셀레브리디 교단의 깃발이 올라갔다,

왕국은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그들을 배웅해주었다.

감사한 마음을 실컷 받은 캣니스는, 이내 마차 안쪽으로 고개 돌렸다.


“가슴이 막 두근거려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 심장이 쿵쿵 뛰어요.”

“사람은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행복하면 그런 법일세. 이 시간이 마냥 슬프지 않다니 다행이네.”

“언젠가. 언젠가 또 뵐 날이 오겠죠?”


마부석의 브레드는 미소 지었다.

어쩐지 캣니스의 흥분이 옮는 거 같았다.

언제나 모험은 시작할 때가 제일 긴장되고 즐거운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모험가는, 마차의 속도를 높였다.


“하하하!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캣니여!”


마차가 바람을 헤집고 달렸다.

바람 소리 뒤처지지 않게 즐거워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바람 속에서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연극의 유명한 대사였다.


“그대가 원한다면 언제든 떠나라!”


모험은 사람과 시기를 가리지 않는다!


베르길드는 가람 왕국을 떠나서 새로운 여정에 나섰다.

가람 왕국을 떠나 성녀와 함께하는 모험은 어떨지 두근두근했다.

그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모험가였다.

미지라는 개념은 그들을 설레게 할 뿐. 망설임조차 주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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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제 1부 완! 해냈다!

별 볼 일 없는 글이었지만 함께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재정비 이후 2부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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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133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31 12 0 21쪽
155 132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9 8 0 15쪽
154 131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6 9 0 15쪽
153 130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2 11 0 14쪽
152 129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19 11 0 13쪽
151 128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7 12 0 11쪽
150 127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11 0 13쪽
149 126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6 0 22쪽
148 125화 이름없는 성녀 24.01.10 7 0 14쪽
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8 0 12쪽
146 123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3 11 0 16쪽
145 122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1 8 0 13쪽
144 121화 이름 없는 성녀 23.12.29 10 0 14쪽
143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7 7 0 17쪽
142 <2부> 119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5 8 0 24쪽
» 118화 작별 23.12.13 7 0 22쪽
140 117화 재판 23.12.06 9 0 21쪽
139 116화 재판 23.11.30 10 0 20쪽
138 115화 재판 23.11.22 12 0 21쪽
137 114화 성녀 23.11.19 11 0 19쪽
136 113화 성녀 23.11.15 7 0 19쪽
135 112화 성녀 23.11.11 8 0 21쪽
134 111화 성녀 23.11.08 10 0 21쪽
133 110화 성녀 23.11.04 13 0 19쪽
132 109화 떨어진 과실 23.10.25 10 0 34쪽
131 108화 불신 23.10.21 8 0 25쪽
130 107화 불신 23.10.17 8 0 20쪽
129 106화 불신 23.10.14 12 0 25쪽
128 105화 불신 23.10.10 10 0 18쪽
127 104화 불신 23.10.07 1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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