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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새글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01 22:32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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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1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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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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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07화 불신

DUMMY

107화 <불신>



“비상! 비상! 전 병력은 무장 후에 1기사단 건물 앞으로 집결하라!”

“무슨 일이지?”


마력석을 이용한 확성 마법.

일급 위기 경보가 기사단 내부에 울려 퍼졌다.

이에 브레드는 피 묻은 손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캣니스가 지정했던 흑막을 놓았다.


“뭐야? 이걸로 끝난 거 아니었어? 아니면 대장이 죽으니 남은 애들이 폭주라도 한 건가?”


자일리는 바닥에 누운 도플갱어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했다.

도플갱어의 얼굴은 달걀같이 변했고, 가슴 한가운데에 뻥 구멍이 뚫려 죽었다.

한데.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더니 조금 전의 호출이 있었다.


“저. 여러분? 먼저 자리를 옮겨도 괜찮겠습니까?”


간수 역할을 맡았던 기사가 말했다.

굉장히 초조한 눈빛으로 밖을 곁눈질했다.

조금 전의 호출과 이번 중요 참고인의 정체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 어려워했다.


“걱정하지 말게. 이곳은 우리가 지키고 있을 터이니···”


브레드가 본인은 신경 쓰지 말고 갔다 오라고 말하려던 그때였다.


“여기서 아직도 뭐 하고 있는 거야!”


쾅. 문이 세게 열렸다.

얼굴이 익숙한 기사가 취조실로 들이닥쳤다.

이 기사단의 우두머리인 사령관이었다.

과거, 신화급 골렘 토벌 때도 토벌대를 이끌었던 노장.

직접 취조실 내부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구겼다.


“이게 무슨!”


분노하며 간수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에 간수는 턱 근육을 떨며 변명했다.


“사령관님! 그런 게 아닙니다! 전부 설명하겠습니다! 전부 설명할 테니 노여움을···”

“빨리빨리 안 나가고 뭐 하는 게야! 1급 경보를 들었으면서 농땡이나 부리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당황한 기사는 얼른 나갔다.

방에 남은 사령관이 바닥에 쓰러진 사체를 걷어찼다.


“그래. 기사단에 숨어든 쥐새끼가 아주 잘 죽었군. 그러면 우리 기사단의 훌륭하신 조력자분들도 함께 와주시겠습니까?”


사령관은 그 짧은 사이에 상황 판단을 끝냈다.

따라와 달라는 요청을 받은 브레드는 순순히 요청에 응했다.


“쯧쯧.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사령관은 성난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걷던 중에 부하로 보이는 인물이 나타나 종이 뭉치를 건넸다.

종이 뭉치를 전부 확인하고는 복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분개한 목소리로 욕설을 되풀이했다.


“이거 참 세상이 거지 같구먼. 영웅님께서는 현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길게 한숨을 내뱉고 브레드에게 물었다.

브레드는 쓰레기통을 잠시 곁눈질하고 대답했다.


“상당히 지독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시궁쥐 몇 마리가 온 도시를 헤집어 놓으니 말일세.”

“시궁쥐. 시궁쥐라···. 허허, 틀린 말은 아니군. 한데 이 시궁쥐 놈들이 그냥 시궁쥐가 아니라 역병을 지니고 있던 모양입니다.”


역병.

과연 그런 단어가 나올 만큼 도플갱어가 위협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지금 또 다른 무언가가 왕국에 위협이 되고 있단 소리인가.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있던 뒤, 브레드는 되물었다.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원래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주아주 지독한 역병을 풀어놨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사령관은 복도 끝에 나타난 문을 열었다.

커다란 연무장을 빼곡히 채운 가람 왕국의 병사들이 줄을 맞춰 있었다.

모두가 기사였다.

갑옷과 검으로 무장했다.

조금 전의 소집으로 기사단원 전체가 연무장에 모였다.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는 저들과 함께 들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잠시 실례하죠.”


사령관은 기다리고 있던 부하에게 모자를 건네받았다.

모자를 눈썹 아래까지 내려쓰고 연설대 앞에 섰다.

마력석을 만지던 부하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거대한 화면이 등 뒤에 나타났다.


“전군은 들어라-!”


사령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잠깐 동요의 감정을 보였던 이들이 바짝 차렷 자세로 섰다.


“지금 띄운 화면으로 현 상황을 파악했으리라고 본다!”


통신석으로 띄운 화면은 아비규환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으로 무장하였다.

서로를 믿지 못해 윽박지르고, 조금만 의심스러워도 무기를 휘두른다.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신전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줄을 섰다.

그러나 신의 목전이라 일컫는 신전 앞에서도 싸움은 여지없이 일어났다.

온 도시가 대혼란에 빠졌다.


“현재 더러운 마물 따위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불안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현 시간부터 기사단은 거리로 나가 수상한 사람들을 전부 구속한다!”


허리춤에 찬 진검을 버리고 목검을 허리춤에 찼다.

무고를 외치는 남성이 두들겨 맞는 화면으로 다가가 검을 들었다.


“지금 기사가 왕국을 구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구한단 말이냐!”


화면 속 사람들은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질려있었다.


“살상은 불가하다! 불허한다! 전부 살아있는 채로 붙잡아라!”


사령관이 마지막으로 외쳤다.

노장의 투지가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하게 한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제히 움직이는 발걸음.

기사들은 보폭을 벌렸다가 다시 차렷 자세로 했다.

사령관과 같이 진검을 버리고 목검을 들었다.


“시민들이 저딴 마물에게 현혹되어 우리를 믿지 못한다! 가서 우리의 명예와 신임을 되찾아 와라!”

“존명!”

“기사단! 출격하라!”

“존-명-!”

“존명 존명 말만 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이 밥버러지들아!”


‘와아아아!’,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기사단의 문이 열렸다.

기사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거리로 달려 나갔다.

사령관은 굳센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연설대에서 내려가 브레드에게 말했다.


“상황은 전부 설명됐다고 생각됩니다. 부디 손을 빌려주시겠습니까? 일찍이 왕국을 구한 영웅이시여.”


브레드는 팔짱 낀 자세에서 얼굴을 굳혔다.

조용히 본인의 턱을 쓸었다.

자신에게 뻗어온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결정을 내리고 맞잡았다.


“물론일세. 나의 친우여.”


또 한 번 가람 왕국의 위기 앞에 뭉친 두 사람.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



“풋. 푸하하하하!”


벽에 걸린 양초가 켜졌음에도 칙칙한 지하 공간.

곰팡내가 진득하게 깔린 방 안.

그곳에서 한 사람은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즐겁게 웃었다.


“하하하! 즐겁지 않아요? 사람들끼리 서로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란!”


신나는 유랑극단이라도 보는 듯 박수치는 남자.

이 모든 일의 주모자인 호문쿨루스였다.

그는 재밌게 웃다가도 발아래에 누운 사람을 볼 때면 웃음을 멈추곤 하였다.


“하··· 좋아요. 저만 재밌으면 안 되겠죠. 그러면 왕국 함락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탐정님의 추리부터 수정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죠.”


회색 머리카락과 회색 눈동자.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청년이 웃느라 흘린 눈물을 닦았다.


“함께 하나하나 풀어갈까요? 우선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대로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하죠.”


바깥의 대혼란과 무관한 공간에서 지금까지의 경위를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틀렸어요. 저는 그때부터 들어온 게 아니랍니다.”


도플갱어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장소가 며칠 전의 시장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호문쿨루수가 왕국을 함락할 준비가 끝난 상태였음을 설명했다.


“저는 그보다 먼저, 더 깊숙이 숨어 있었어요. 이름 모를 인간이 저에게 흥미를 가져다줬죠.”


때는 지금으로부터 고작 몇 달 전. 베인 지역의 몬스터 파도와 인간이 전쟁을 벌이던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호문쿨루스는 우연히 죽인 기사의 기억을 읽었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짜릿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당신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어요. 인간계에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니! 정말 보기만 해도 재미있고 심장이 뛰었죠.”


최근 일 년간의 기억은 영웅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인간과 마족의 공동체가 절대로 무찌를 수 없어 보였던 골렘을 무너뜨렸다.

전쟁 속에서 끝없이 활약했다.

호문쿨루스는 지난 기억을 엿보면서 군침을 삼켰다.

다시 회상에서 돌아온 그가 회색 눈동자를 번뜩 떴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왔어요. 이곳이라면 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여겼죠! 최대한 쓸만한 정보가 모이고, 들키지만 않으면 의심받지 않을 곳에 거점 잡았어요. 바로 이곳 지하였죠.”


그건 우연히 접하게 된 기회였다.

훗날에야 유일한 기회였음을 알게 되었다.

딱 하루 동안만 저택의 결계가 없을 때가 있었다.

여사제도 마법사도 저택의 경비를 허술히 했던 날.

행운이라고 해도 좋을 그날에 베르 길드의 지하에 숨어들었다.


“아아. 또 눈물 흘리시기는···. 그래요. 누님은 아이들을 찾으셨죠? 그런데 글쎄요. 아이들을 찾으려면 꽤 오래전에 찾았어야죠.”


여태껏 설명했듯이. 고작 며칠 사이에 일을 벌인 게 아니다.

저택을 자유롭게 드나들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했다.

어디를 돌아다녀도 괜찮고, 의심도 받지 않을 완벽한 위치의 몸.

아이들은 딱 좋은 소재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순서가 바뀌었어요. 도시가 위험하니 저택이 위험한 게 아니라 이 저택을 거점 삼아서 도시를 위험하게 만든 거예요.”


그러니 그녀가 애타게 찾는 아이들은 진즉에 교체되었다.

쇠창살 안에 갇힌 키메라가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그것도 모르고 아이들을 찾느라 분주한 모습은 꽤 웃겼어요. 어때요 누님? 제가 준비한 깜짝 선물은 만족스럽나요?”


선물이 만족스럽든지 어땠는지는 뒤로 하고. 그는 더 간단하게 일의 전조를 설명했다.


“첫째. 가짜 아이들을 시작으로 점점 영향력을 넓혔다.”


다섯 개의 손가락 중 엄지를 하나 접었다.


“둘째. 사건을 크게 터트려도 되겠다고 판단했을 때, 도플갱어로 위장한 분신이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


남은 네 개의 손가락 중 검지를 접었다.


“셋째. 여러 종류의 분신을 만들어 왕국을 혼란 시켰다.”


마지막으로 세 개의 손가락 중 중지를 접었다.


“그 결과,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왔어요.”


인류의 장점을 무력화한 만족스러운 결과가 얻었다.

이제 한 왕국을 거대한 실험장으로 만들 때까지 느긋이 기다리면 되었다.


“아. 참고로 누님이 추측하신 그자 있잖아요? 원래 누님 말대로 그 역할은 제가 맡으려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자리를 얻을 줄은 저도 몰랐죠.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네, 꼼짝없이 당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캣니스가 추측했던 중요 참고인의 자리. 원래였다면 그 추리는 맞았다.

하지만 새로 생긴 자리는 무려 유명한 길드의 마족.

중요 참고인 역할을 맡았을 때의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도 피해 갈 수 있었다.


“뭐. 몇몇은 제가 조사 안 받아서 껄끄럽게 여겼지만, 역시 우리 훌륭하신 누님께서 알아서 저를 변호해주셨죠.”


기사단에서 그 또한 신성력으로 조사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 묻던 말들.

가더의 정체를 아는 그녀가 알아서 막아줬다.

호문쿨루스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그건 참 감사했답니다.’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는 활짝 웃었다.


“그다음은 누님이 보고 겪은 대로예요. 도플갱어에 시선이 쏠리면 쏠릴수록 정작 중요한 건 보지 못하죠. 예를 들면 저와 제 분신이 신성력에 면역이 있고, 또 사용도 할 수 있다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말이죠.”


파지직-

캣니스에게 뻗은 손이 불탔다.

호문쿨루스는 신성력에 그을린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물론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종류에서요. 단순히 신성력을 모방하거나, 몸을 훑고 지나가는 정도로만 괜찮게 만들 수 있었답니다.”


애초에 그걸 위한 실험이었으니까요.

호문쿨루스는 그리 말하며 또 한 번 웃었다.


“그런데 이건 참 신기하네요. 사제라는 것은 전부 이렇게 좋은 재료였을까요?”


화륵. 촛불에 불이 붙었다.

칙칙하던 베르 길드의 지하실이 조금이라도 환해졌다.


“정말 우연이 많아요. 우연히 이곳에 들어와서 우연히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 들어오고 우연히 이런 귀중한 실험체를 얻고요.”


이곳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건 괴물뿐이었다.

잔인하고도 참혹한 비밀을 가진 숨겨진 장소였다.

비밀을 아는 이 중에는 방금 막 지하실의 비밀을 푼 여사제도 있기는 했지만 문제 되지 않는다.

이미 그의 실험체가 된 이상 무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아직도 이렇게 쌩쌩하다니요. 저 왠지 기뻐서 울 거 같아요.”


호문쿨루스는 바닥에 널브러진 금색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한순간 캣니스 주위의 빛이 강해졌다.


“어라? 안 돼요. 또 그러면 저 멍청한 풍선이 풍선처럼 터질지도 몰라요. 펑.”


신성력이 위협적으로 변하기 전에 얼른 설득했다.

철장 속의 살덩이로 캣니스를 협박했다.

쇠꼬챙이를 쇠창살 속으로 찔러넣을 때마다 아이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좋아요. 착하네요. 이렇게만 얌전히 있어 주세요.”


한 번 난폭했던 신성력이 다시 잠잠해졌다.

호문쿨루스가 원하는 대로, 몸에 뒤섞인 마족 신체에 영향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더 실험할 게 남았냐고요? 아주 많죠~ 그러니 준비된 건 많으니 누님만 힘내면 돼요. 파이팅~”


그리 응원받은 대상은 이미 사람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었다.

사람의 몸에 마수와 마인의 신체가 마구잡이로 붙어있었다.


“음. 미노타우로스의 뿔까지 무사히 융합. 다음은 이걸로 할까?”


실험. 이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막무가내인 방식이었다.

가까스로 생명을 유지하는 상대에게 이것저것 추가할 뿐이었다.


“아~ 하세요. 이번엔 뱀파이어의 송곳니로 대체해보겠습니다~”


뿌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경련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각난 이를 바닥에 버렸다.


“워워워.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저도 저 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몰라요?”


또다시 불순물을 없애기 위한 신성력이 날뛰었다.

그에 맞춰 키메라의 살덩이가 터졌다.

아이들의 비명이 나오자 살벌했던 신성력이 또 한 번 가라앉았다.


“옳지. 착하죠. 그러면 돼요. 이번에도 잘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손이 불타는 것도 마다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문쿨루스는 캣니스를 다루는 법을 꿰고 있었다.

힘이 강한 주제에 약자를 포기할 줄을 모르는 여사제.

아이들이 쓸모가 다했음에도 데리고 있던 건 그녀 때문인데. 생각보다 더 훌륭한 목줄이 되어주었다.


“자. 그러면 이번에도 상을 줄게요.”


호문쿨루스의 눈의 구멍이 점점 커졌다.

곧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뜬 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바깥 상황이 궁금하시죠? 현재 제가 풀어놓은 도플갱어와 전쟁을 시작했어요~”


뿌득, 뿌득.

손가락이 살을 파고드는 소리와 함께 눈이 쑥 빠졌다.

진득한 액체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특별히 저와 함께 바깥 광경을 보도록 해요~”


방금 빼낸 제 눈알을 들었다.

가짜 아이들이 캣니스의 몸을 일으켰다.

이어질 실험을 위해서 벽에 딱 묶어두어 못 움직이게 하였다.


“지금 제 눈은 수많은 복제품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답니다~ 이 광경을 누님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벅 저벅.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저항하는 캣니스의 얼굴을 단단히 붙잡았다.

황금빛이 아른거리는 눈동자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에 손가락을 넣었다.

끔찍한 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와우. 정말 예쁘네요. 이렇게 예쁜 색깔 오랜만에 봐요.”


볼일이 끝난 호문쿨루스는 멀어졌다.

아이처럼 웃으며 책상 위에 올라탔다.

그는 푸른 보석을 관람하듯 하늘 높이 든 그것을 관찰했다.


“이번에도 비명 한 번 안 지르다니 대단한 자제심이긴 해요.”


짝짝, 호문쿨루스는 손뼉 쳤다.

아이들이 팔을 놓기 무섭게 캣니스의 몸이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그녀가 눈을 부여잡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새로 이식한 눈을 빙글빙글 돌렸다.


“어디 보자~ 아, 기사단이 왔어요. 오오, 제 분신일 지도 모르는데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로 했다니. 생각보다 더 인륜적이네요. 그렇죠?”


호문쿨루스가 보고 있는 광경을 캣니스 또한 알았다.

두 사람은 같은 시야를 함께 공유했다.


“그런데 꽤나 안일하네요~ 여기 계신 누님이라면 단번에 죽였을 텐데요.”


바깥 상황이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이 한탄했다.

도플갱어와 맞서는 사람들은 한 가지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그건 바깥에 있는 도플갱어들이 전부 호쿤쿨루스의 분신이라는 것이다.

지성도 무력도 도플갱어와 격이 다른 존재.

신성력도 없는 기사단이 제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흐음. 일단 잡혀줄까요? 나중에 펑 터트리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은데.”


네임드란 그런 존재다.

일개 슬라임마저 나라를 집어삼킬지 모르는 가능성이 있는 개체.

재앙의 씨앗이라고도 불리는 존재가 바로 그들이었다.


“아. 그래요. 누님 것도 하나 만들어야겠어요. 그 대머리 아저씨랑 콧대 높은 꼬마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데요?”


호문쿨루스는 웃었다.

네임드에게 기회와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이것의 존재가 밖을 활보하게 다니면 다닐수록 위험하기에 발견 즉시 신속히 처리해야 했다.


“어이쿠 이런. 많이 화나셨나?”


우당탕.

시야 하나가 지하실 바닥을 보았다.

다른 한 명의 시야는 천장을 보았다.

같은 눈동자를 공유한 두 시야가 서로 뒤엉켰다.

한 사람의 얼굴에 많은 감정이 담겼다.


“아. 멈추세요.”


한 시야에 황금빛 창이 드리운 그때, 움직임이 멈췄다.


“저를 죽여도 많은 분신 중 한 명으로 부활한답니다. 그러니 지금 이래봤자 헛수고예요.”


여전히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캣니스.

황금빛 창을 유지하기도 힘든지 금방 사라졌다.

그래도 눈앞의 괴물만큼은 없애려는지 목을 졸랐다.

무언가 하려는 사람치고는 궁지에 몰린 눈빛이었다.


“하하하하. 꽥- 제 말뜻을 전혀 못 알아들으시네요. 그러니까 아까부터 말하고 있잖아요. 헛,수,고,라고요.”

“언니이이이이이-!”


퍼억.

뒤쪽에서 살점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남자의 목을 조르던 힘이 단번에 줄었다.

호문쿨루스는 제 위에 있는 캣니스를 바라봤다.

증오와 고통이 함께하는 얼굴.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캣니스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 이렇게나 효율 좋은 실험체가 있다니. 기뻐서 지려 버릴 거 같아요~”


순식간에 다리 하나가 캣니스를 걷어찼다.

호문쿨루스는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른이었던 키가 어린아이로 변한 분신이 물러섰다.

잠깐 사이에 일어났다고 믿기 힘든 감쪽같은 변화였다.


“보셨죠? 이런 느낌이에요. 이 도시에 있는 모두가 저라고 보셔도 무방해요.”


구석까지 날아간 캣니스가 몸을 웅크렸다.

온몸에서 새까만 연기를 내보냈다.

체내에서 억누르지 못한 마기가 나오는 기화 현상이다.

이는 마족이 죽을 때가 다가오면 나오는 단계였다.


“아, 이런. 너무 세게 찼나? 아직 실험 단계인데 너무 과격하게 다뤘어!”


호문쿨루스가 호들갑 떨며 비커 안의 피를 덜었다.

그것을 캣니스의 입안에 강제로 먹였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안개 밑으로 신성력이 몇 번 반짝였다.

여태껏 비명을 참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후우. 이렇게나 반발이 심하다니. 분명 마기도 신이 내린 힘일 텐데, 어째서 이렇게 반발이 심할까요?”

“으으윽. 아아. 아아악!”

“힘내요! 지면 안 돼요! 누님만을 지켜보는 아이들을 위해서 힘을 내셔야죠!”


호문쿨루스는 캣니스가 죽지 않고 더 놀아주기를 바랐다.

그녀를 보는 시선은 호의가 아닌 순수한 광기로 가득했다.


“어째서. 어째서 당신은···!”

“오. 말할 기력이 있다니 아직 버틸만한가 보네요. 흐음. 그래요. 정신을 집중할 게 있으면 더 오래 버틸지도 모르죠.”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여사제 앞으로 가 양반다리로 앉았다.


“그러면 제 이야기라도 들어보겠어요?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호문쿨루스는 울부짖는 여사제에게 기대하였다.

더 오래 실험을 하고 싶었다.

혹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제 이야기를 펼쳤다.


“자. 들어주세요. 그건 아주아주 오래전의 일이었어요.”


지성도 이성도 없는 멍청한 도플갱어의 숲.

언제나 같아 보였던 도플갱어들 사이에 한 마리 변종이 나타났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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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25화 이름없는 성녀 24.01.10 7 0 14쪽
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8 0 12쪽
146 123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3 11 0 16쪽
145 122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1 8 0 13쪽
144 121화 이름 없는 성녀 23.12.29 11 0 14쪽
143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7 7 0 17쪽
142 <2부> 119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5 8 0 24쪽
141 118화 작별 23.12.13 7 0 22쪽
140 117화 재판 23.12.06 9 0 21쪽
139 116화 재판 23.11.30 10 0 20쪽
138 115화 재판 23.11.22 12 0 21쪽
137 114화 성녀 23.11.19 11 0 19쪽
136 113화 성녀 23.11.15 8 0 19쪽
135 112화 성녀 23.11.11 8 0 21쪽
134 111화 성녀 23.11.08 10 0 21쪽
133 110화 성녀 23.11.04 13 0 19쪽
132 109화 떨어진 과실 23.10.25 10 0 34쪽
131 108화 불신 23.10.21 8 0 25쪽
» 107화 불신 23.10.17 9 0 20쪽
129 106화 불신 23.10.14 12 0 25쪽
128 105화 불신 23.10.10 10 0 18쪽
127 104화 불신 23.10.07 1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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