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새글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01 22:32
연재수 :
213 회
조회수 :
12,211
추천수 :
132
글자수 :
1,618,798

작성
23.11.15 19:37
조회
7
추천
0
글자
19쪽

113화 성녀

DUMMY

113화 <성녀>



“이걸 어떡하죠? 찬물에 빠트려야 할까요?”


몽롱한 의식 너머로 확실히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여자와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현재. 왕국의 손님을 모셔둔 방에 침입한 두 괴한과 쓰러진 성녀가 함께 있었다.


“찬물? 내가 가서 가져올까?”

“네. 빨리 가져와 주세요.”


움찔.

무의식중에 위험을 감지한 성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기절한 정신을 서서히 깨웠다.

아직 제정신이 아닌데도 위기를 감지한 온몸이 잔뜩 긴장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한 번 기절한 몸이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져왔어. 이걸 어떻게 해?”

“부으세요!”


쏴아아아-

불과 수십 초 동안 쌓인 두려움과 걱정이 쓸려나갔다.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던 혼수상태도 함께 쓸려갔다.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성녀가 정신이 번쩍 드는 냉수마찰에 두 눈을 번뜩 떴다.


“아. 아으. 아아아아···.”


팔다리를 허덕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이를 떨었다.

무려 한겨울에 맞는 냉수마찰이다. 이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이번 순례에서 이런 일을 겪을 거라 생각 못 했기에 더욱 충격받았다.


“추, 추워어어어-”


냉수마찰을 맞은 여파로 턱이 따닥따닥 부딪쳤다.

최대한 주변의 천을 끌어모으며 추위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한겨울의 물벼락이 젖은 천들을 끌어안는다고 해결될 일 없었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추위에 덜덜 떨었다.


“캣니스. 얘 일어났어.”

“후우, 정말 다행이에요.”


두 침입자가 태연히 대화를 나눴다.

홀딱 젖은 성녀의 금발 사이로 녹색 눈동자가 번뜩 뜨였다.

성녀는 마치 ‘이게 다행으로 보이냐?’라는 의사 표현으로 흉흉하게 눈을 흘겼다.


“이게··· 다행으로 보여···?”


마치가 아니라 정말이었다.

성녀는 두 사람의 대화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간신히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을 차리자, 원망과 독기를 담아 두 사람에게 으르렁댔다.


“감히 무단침입도 모자라서 사람을 얼려서 죽이려 해?”


성녀는 화났다.

정확히는 죽지 않았지만, 이 부분은 당사자만이 말 할 수 있는 공포였다.

감히 성녀를 위해 마련된 장소에 침입한, 망토를 뒤집어쓴 여성과 외견만 멀쩡한 남성을 손가락질했다.


“너희들. 무슨 속셈으로 이곳에 찾아왔어! 나를 어떻게 하려는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이건 바보 같은 행동이야!”


나름 진심을 담아서 으름장 뒀다.

비록 전투 능력이 없는 자신이었지만 도와줄 인맥은 많았다.

당장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스릴 등급 모험가와 프로텐시아 신전과 가람 왕국의 비호 아래 있던 사람이 자신이다.

그런 훌륭한 무력이 있는 이를 건드리면 내일 해를 못 보게 될 거라고 협박했다.

그녀가 현재 쓸 수 있는 최고의 무기였다.


“지금이라도 무례를 인정하고 방에서 나가면 용서해줄 수도 있는데? 성녀가 베푸는 자비는 흔치 않다고?”


나름 위엄있게 말하려고 애쓴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홀딱 젖은 속 드레스 차림, 누가 봐도 겁에 질린 목소리와 눈동자. 가녀린 여성의 배짱은 침입자를 위협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으음? 잠이 덜 깬 거 같은데 한 번 더 물을 부을까요?”

“그냥 밖에 내놓으면 되지 않아?”


두 사람이 엉뚱한 대화를 나눴다.

당사자가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잔혹한 계획을 꾸몄다.


“아. 그렇군요. 그런 방법이 있었어요.”


성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대로 제정신이 아닌 두 괴한과 있다가는 꼼짝없이 쫓겨날 상황이었다.

그 일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두고 볼 수 없기에 억울한 심정을 토해냈다.


“그게 방버이긴 무슨 방법이야! 내 몸에 손끝 하나 대기만 해봐? 그때는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성녀는 제 몸을 보호하려는 야생동물처럼 웅크렸다.

바닥에 놓인 나이프를 들고 두 사람을 가리켰다.


“알아들어?! 나를 건드리면 그때는 정말로···”

“성녀님!”


벌컥-

문이 열렸다.

조금 전까지 문 앞을 지키던 시종이 들어왔다.

평범한 시종이 아니었는지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다.

그녀가 당찬 목소리로 성녀를 찾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성녀님! 혹시 침입자라도···”


걱정돼서 뱉던 말을 멈추었다.

막상 당당히 들어와 놓고서는. 당황한 시야가 방 안을 훑었다.


“이. 이 무슨···.”


어지러운 방 안, 열린 창문, 두 명의 침입자, 속 드레스 차림으로 홀딱 젖은 성녀의 모습.

심지어 두 괴한을 앞에 두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나이프를 내려놓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곧, 한 가지 사실로 직결됐다.

유능한 시종은 금방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렇군요. 전부 이해했습니다.”


허리춤에 달려있던 검을 들었다.

시종은 시종의 업무도 맡고 있지만 호위 기사이기도 한 여성이었다.

궁전의 예절과 쌍검술을 통달한 시종은 두 눈을 부릅떴다.


“감히! 내가 지키는 이곳에서 성녀님을 겁탈하려 들다니!”

“거, 겁탈? 그런 거였어?!”

“제가 있는 한 절대로 성녀님의 순결을 빼앗기게 두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별궁 내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

이것저것 많은 물건이 망가졌다.

망가진 종류에는 사물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시종의 체면과 자존심 그리고 성녀의 정신도 있었다.


“소, 손대지 마! 진짜로 죽어버릴 거야! 죽어버릴 거라고!”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혀서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반발하였다.

바닥에 있던 시종은 제압되어 구석에 던져졌지만, 좀처럼 진정할 모습이 없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체불명의 괴한은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어떡하죠 문지기님?”


또 한 명의 괴한이 손날을 들었다.

손날을 세운 채 당연하듯 다가가는 그를 나무랐다.


“뭐든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옳지 못해요,”


두건을 쓴 괴한이 말하자 다시 내렸다.

결국 성녀와 시종이 진정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잠깐 진정하고 이야기를···”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했어!”


괴한. 아니, 캣니스는 한숨 쉬었다.

성녀가 진정하기까지의 시간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했던 대로, 성녀가 진정한 시간은 시계의 시침이 두 바퀴 더 돌고 나서였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람?”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진 모양인데?”

“게르드! 게이로드!”


물론 그냥 진정한 건 아니다.

정신적 지주가 오고 나서야 독기가 줄었다.

그리고 진정했다고 해서 이야기를 듣겠다는 건 또 아니었다.


“저것들 침입자야! 당장 무찔러줘!”


성녀의 부탁을 따라 움직이는 두 명의 모험가.

캣니스가 쓴 망토 아래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



“흑. 뭐야? 너 왜 살아있어?”


결국 캣니스가 얼굴을 공개하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됐다.

얼굴에 멍이 든 두 미스릴 모험가를 뒤에 두고 탁자 앞에 앉았다.

성녀 아쿠아는 조금 전까지 울었던지라 코를 훌쩍였다.

정말로 무서웠는지 눈과 코가 새빨갰다.


“분명 마왕성에 가서 죽었다고 했는데. 모종의 수단을 써서 살아남은 거야?”


눈가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목소리에서 정제되지 못한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이에 캣니스가 손수건을 건네자, 패앵, 코를 풀었다.


“얼굴은 또 왜 그래? 그때 다친 거야?”


패앵, 한 번 더 코를 풀었다.

캣니스는 그저 웃기만 하였다.


“캣니스. 뭐야? 왜 내가 묻는데 말을 안 해? 내 꼴이 우스워? 응? 내가 우스워?”

“으으음~ 글쎄요?”


캣니스가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성녀는 서러워했다.

다 큰 여성스럽지 않게 볼을 부풀리더니,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흐어엉. 너 정말 못났어! 못났다고 캣니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캣니스는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조용히 찻잔으로 손을 옮겼다.


“너는 옛날부터 그랬어! 냉혈한! 기계! 인간 병기! 흐어어엉. 게르드, 게이로드. 뒤에 있는 재가 나를 째려봐···.”

“어머. 째려보다니? 저 아이는 그냥 아쿠아를 한심하게 보고 있을 뿐이란다?”

“그럼 그럼. 저 아이가 너를 해코지할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머리통이 몸통과 분리됐을 거란다?”

“부, 분리? 나는 아직 죽기 싫어. 싫다고! 흐엉엉.”


캣니스는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성녀의 태도에 가더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다과를 준비하는 시종은 반쯤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도 오죽한데, 외부인인 시종은 오죽할까.

이곳에 아무도 자신의 편이 없자 성녀는 더 크게 울었다.


“흐어엉. 여신님도 너희도 다 미워. 왜 내가 이런 무서운 일을 겪었는데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 거야?”

“아쿠아 님의 말을 들어봤자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된다는 걸 아는 거예요. 우선 눈물부터 그치고 이야기할까요?”

“매정해! 차가워! 정말! 나는 캣니스 네가 너무 싫어!”


캣니스는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속내는 굉장히 피곤했다.

세상 사람들은 성녀를 고귀한 사람으로 알고 찬양하고 칭송하지만. 그녀의 실체를 아는 이들은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아쿠아는 너무 피곤하게 살아~ 지금은 그냥 멋진 아가씨와 청년을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게 어떨까?”

“맞아, 맞아. 저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우리를 이기는 실력자는 흔치 않단다.”

“훌쩍, 확실히 자꾸 눈이 갈 정도로 멋있긴 한데.”


세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가더의 표정이 썩어 들었다.


“솔직히 정이 가지 않아.”


시종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로 네 사람이 단합하였다.


“훌쩍. 그래서 언제 내 질문에 답해줄 거야?”


어느 정도 울음을 진정하고 나서야 아쿠아가 물었다.

캣니스는 여전히 그린 듯한 미소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시치미 떼지 마! 내가 너에게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물었잖아!”

“아. 그랬죠. 참.”


‘당연히 투정의 일환이라 생각했죠···’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아쿠아의 얼굴이 다시 눈물로 얼룩졌다.

또 그녀가 한바탕 눈물을 쏟기 전에, 캣니스는 얼른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분이 저를 구해줬어요.”


캣니스의 얼굴에서 그린 듯한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에 진심이 담긴 진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얼굴을 본 아쿠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

여전히 성격이 까칠해 보이는 청년과 캣니스를 번갈아 보았다.


“변했구나···.”

“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던 거야?”

“으음. 말하자면 긴데요···.”


캣니스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알렉산드로스에게조차 숨겼던 부분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쿠아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가더에게 구해졌다는 이야기를 기점으로 안색이 나아졌다.

그렇다고 우는 소리를 안 하는 건 아니었다.


“흐엉 헝. 캣니스가 너무 불쌍해.”


옆에서 손수건을 건네받아 훌쩍, 코를 먹었다.

코까지 풀며 캣니스의 일에 슬퍼했다.


“흐음? 그 귀염둥이가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다니.”

“믿을 수 없어. 조만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거 같은데?”


두 미스릴 모험가도 용사에 대한 평가를 바꿨다.

그런 마음을 품은 두 사람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크응. 그랬구나.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다친 거였구나.”


또다시 캣니스가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쯤 되니 아쿠아도 그 표정의 의미를 눈치챘다.


“왜? 뭔데? 뭐가 마음에 안 들길래 또 그렇게 웃어?”


캣니스는 여전히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아쿠아는 울상이 되더니 두 모험가에게 매달렸다.


“흐어엉. 애들아 캣니스가 나를 한심하게 쳐다봐.”

“한심한 건 맞잖니. 현실을 직시하렴 아쿠아.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의 반만큼만 성격이 당돌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모험가의 독설을 들으며 더 크게 울었다.

그들이 그러는 동안 가더와 캣니스는 얼굴의 간격을 좁혔다.


“캣니스 저거···.”

“네, 눈치채셨나요?”


가더가 하려던 말은 아쿠아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었다.

캣니스는 그가 눈치챈 부분을 이야기했다.


“아쿠아 님의 힘은 특이한 부류예요.”


특이하다고 하여 사제가 마력이나 신력을 가진 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녀의 신성력이 굉장히 독특한 성질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제의 신성력은 크게 정화와 축복으로 나뉘죠. 하지만 아쿠아 님은···.”


신성력을 크게 분류하는 정화와 축복.

아쿠아는 둘 중 무엇도 아니다.

정확히 아쿠아의 힘을 설명할 수 없지만, 정화에 속하지 않은 치유의 능력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신기하죠? 신성력으로 치유한다면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정화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세요.”


타고난 신성력의 크기는 크지만, 치유 능력만을 쓸 수 있다.

마기에 오염당한 육체는 치유할 수 있지만, 몸에 남은 마기까지 치유할 수 없다.

교단의 성녀 아쿠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였다.

넘쳐나는 신성력을 낭비하는 일 그리고 치유 능력. 그 외에는 평사제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조차 못 한다.


“항마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도 타고나지 못했고요.”


어둠 속에서 가더의 정체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캣니스의 상처를 단순한 후유증으로 본 문제가 여기서 비롯됐다.

성직자라면 당연히 꺼려야 할 마기를 그녀는 분간 못한다.


“간혹 그런 거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함께 지내본 바로는 안 보이는 쪽이 맞는 거 같아요.”


가끔 마기와 연관된 일이 생길 때 도망간 일이 있긴 하다.

사람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미리 도망친 일도 많았다.

그러나 그건 마기를 보는 일과 별개로 직감에 의존한 행동이었다.

마기도,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니 위험에 대한 감이 크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일.

참으로 여러 면에서 신기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저 성격에 가진 게 치유 능력뿐이라면 날개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겠죠.”

“혹시 싸움을 잘하나?”

“아니요. 지금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말싸움조차 제대로 못 하는 분이세요.”


안전한 곳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의존할 곳이 없으면 금방 무너진다.

그런 연약한 사람이 성녀의 자리에 오른 데는 경시할 수 없는 큰일이 있었다.


“날개의 자리는 모두 신탁을 통해 이뤄져요. 신탁 이전에 자질을 드러내는 이가 있기도 하다면, 날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인물이 되기도 하죠.”

“저 여자처럼?”

“네. 그리고 날개가 된 이들은 모두에게 인정받을만한 능력의 소유자만 뽑히는데요···.”


역대 여신의 날개는 모두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어떠한 방면으로든 제 능력을 한눈에 이해시키고 사람들을 사로잡는 능력자들이었다.

그러나 아쿠아는 특별하게 눈에 띄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군중을 통솔할 카리스마도 사기를 이끌어줄 뛰어난 무력도 없다.

그러면 무엇이 그녀를 날개로 만들었을까. 무엇이 날개로 인정받게 했을까.


“신탁이 내려졌으니 날개의 자리에 올랐지만. 당연히 사람들은 의아해했어요.”


치유 능력이 뛰어나긴 하다.

하지만 치유 능력만 있는 자가 날개의 자리를 맡는 건 의아했다.


“날개란, 여신의 뜻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을 바치는 자리니까요.”


주교 정도의 자리면 충분한데 굳이? 라는 말이 많았다.

아무리 치유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다른 면에서 날개의 그릇이라고 보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전의 책임자 중 한 명이 일어섰어요. 날개라는 사람이 마족과 맞설 힘조차 갖추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지고 들었죠.”


여러모로 날개로서 부족한 점이 많은 아쿠아였다.

하지만 평신도들의 생각이 어찌 됐든. 열 명의 날개 중 아쿠아의 자질을 의심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대주교님이 아쿠아를 성녀로 추앙하며 고개 숙일 정도였으니, 더 논쟁할 가치도 없었다.


“사실 대대적으로 이야기 한 말인데도 사람들은 꽤 믿지 않더라고요.”


과거에 사람들에게 자질을 의심받았지만, 열 명의 날개만큼은 아쿠아를 인정한 이유.

그건 지금 아쿠아가 소리 지르는 모습과 연관이 있었다.


“아아아! 시끄러워요! 제발 그만 주접떨어요! 다른 애들도 있는데 왜 저한테 이러냐고요!”


갑자기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화낸다.

이에 캣니스는 미소 지으며 가더를 보았다.

아직 아쿠아의 행동을 이해 못 한 가더에게 설명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지금부터 설명할 말도, 캣니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서 전해 들은 말이었다.


-귀, 귀신이 말을 걸어요···!


아쿠아 센츄어리의 세례식이 있던 날, 단상에 오른 아쿠아는 기절했다.

동시에 의식을 주관하던 대주교에게는 여신의 신탁이 내려졌다.


“아쿠아 님은 말이죠. 여신님의 계시를 직접 들을 수 있으세요.”


듣기로는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엉엉 울면서 매달렸다고 한다.

누군가 사제들을 보며 웃는다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총대주교가 직접 그 목소리가 귀신의 소리가 아니라 여신의 목소리였다는 점을 일깨웠다.

더불어 여섯 번째 날개로 임명받았다고도 알렸더니, 아쿠아는 한 번 더 기절했다.


“놀랍게도 세례식에서 기절한 추태를 보인 사제가, 셀레브리디 교단에서 세 번째로 등장한 성녀였다는 거죠.”

“저게 성녀라고?”

“저래 보여도 성녀 맞아요. 문지기님의 마음은 이해하니 다음 말은 굳이 하지 않을게요.”


캣니스는 성녀의 역사를 떠올렸다.

첫 번째 성녀는 종교라는 개념이 없던 시기에 나타났다.

오로지 왕을 숭배하던 시대에 태어나 셀레브리디 교단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목숨을 다하였다.

두 번째 성녀는 센츄어리 대륙이 암흑기에 휩싸였을 때 태어났다.

용맹한 용사와 함께 대륙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죽었다.

이처럼 성녀는 종교의 역사에 거대한 한 획을 긋는 자들이었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이 전부 이러했으니, 성녀에게 예의를 갖추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설령 아무런 자질도 보이지 않는 성녀라도 선대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숭배할 가치는 충분했다.


“흐어엉. 왜 나만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거야. 여신님이라도 내 편을 들어줘야지!”


솔직히 선대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긴 하였다. 심지어 정신적으로도 모자라 보였다.

그래도 지켜보는 처지에서는 신의 뜻이 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의 뜻이 있으리라고 침묵했다.


“그냥 머저리처럼 보이는데.”


가더가 짧게 느낀 바를 말하였다.

이는 굳이 언급하지 않은 뒷말이었다.

또한 아쿠아 본인 빼고 모두가 이해한 사실이기도 하였다.


“나 머저리 아니야!”


가더가 툭 뱉은 한마디에 발끈하는 아쿠아.

아쿠아가 머저리처럼 우는 건 어쩌면 정해진 순서였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작가의 tmi: 아쿠아 센츄어리가 날개로 임명 받은 날은 17세의 세례식이었습니다. 당시에 캣니스의 나이는 5살로, 수도원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시절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6 133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31 12 0 21쪽
155 132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9 8 0 15쪽
154 131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6 9 0 15쪽
153 130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22 11 0 14쪽
152 129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19 11 0 13쪽
151 128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7 12 0 11쪽
150 127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11 0 13쪽
149 126화 이름 없는 성녀 24.01.15 6 0 22쪽
148 125화 이름없는 성녀 24.01.10 7 0 14쪽
147 124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8 8 0 12쪽
146 123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3 11 0 16쪽
145 122화 이름 없는 성녀 24.01.01 8 0 13쪽
144 121화 이름 없는 성녀 23.12.29 10 0 14쪽
143 120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7 7 0 17쪽
142 <2부> 119화 여정 그리고 일행 23.12.25 8 0 24쪽
141 118화 작별 23.12.13 7 0 22쪽
140 117화 재판 23.12.06 9 0 21쪽
139 116화 재판 23.11.30 10 0 20쪽
138 115화 재판 23.11.22 12 0 21쪽
137 114화 성녀 23.11.19 11 0 19쪽
» 113화 성녀 23.11.15 8 0 19쪽
135 112화 성녀 23.11.11 8 0 21쪽
134 111화 성녀 23.11.08 10 0 21쪽
133 110화 성녀 23.11.04 13 0 19쪽
132 109화 떨어진 과실 23.10.25 10 0 34쪽
131 108화 불신 23.10.21 8 0 25쪽
130 107화 불신 23.10.17 8 0 20쪽
129 106화 불신 23.10.14 12 0 25쪽
128 105화 불신 23.10.10 10 0 18쪽
127 104화 불신 23.10.07 10 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