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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드라마

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5.1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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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18,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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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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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4대 의혹 사건 (1962년 ~ 1963년 3월)

DUMMY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현태룡은 김재천이 자신을 설득한 내용처럼 중정 간부 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렇게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중정이라는 국가 핵심 기관에 들어온 이상 이 곳의 ‘민간인’ 생활은 현역 군인의 생활 논리보다 훨씬 복잡하기 마련이었다.


중정 감찰실은 참으로 묘한 곳이었다. 이 부서는 본래 중앙정보부장이 부원들의 비위를 감찰하기 위한 부서지만 그 감찰 대상에는 차장 등 최고 수뇌부는 물론이요 심지어 부장 본인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중정 간부 대부분이 김종일이 직접 영입해서 임명한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김기전과 현태룡처럼 다른 라인을 타고 들어오는 경우가 없진 않았다.


김종일은 군사정권의 2인자였지만, 그런 만큼 김재천과 같은 이들의 견제를 받았다. 그 견제 구도는 박정희 의장이 짜놓은 것이었다. 박정희는 2인자 및 2인자가 되고 싶은 자들 간 상호 경쟁을 장려했다.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들의 싹을 밟아버리는 용인술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종일은 겉으로는 환영하는 척했으나, 울며 겨자먹기로 김기전과 현태룡을 감찰실장과 1과장으로 발령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김 부장 본인이 직접 관여하는 공작들은 감찰실에서 최대한 모르게 일을 처리하였다. 그리고 김종일이 감찰실 몰래 일을 벌여야 할 수밖에 없는 건 김재천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김 실장, 여기로.”


김기전과 현태룡이 중정으로 들어간 후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김재천은 덕수궁 석조전 근처에서 김기전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물론 김종일에게는 그 만남을 비밀로 했다. 건물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던 김재천은 자신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김기전을 발견하고 손짓했다. 김기전은 자신에 대한 미행을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다시 둘러본 뒤 김재천에게 다가갔다.


“충성.”


“그럴 필요 없소.”


군대에서의 습관대로 김기전이 김재천에게 경례하려 하자 김재천이 손을 내저었다.


“미행, 도청 피하려고 여기서 보자 한 거요. 자료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장님께서는 지금 제 직속상관이 아니신데 말입네다.”


김기전은 자료를 바로 주지 않았다. 그를 보며 피식 웃은 김재천은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이내 바닥에 담배를 떨어뜨리고 짓이겨 불을 완전히 제거했다.


“이게 말이요, 김 실장. 작년에 영등포에서 우리가 서로 대립했을 때만 해도 우리가 서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그 얘긴 갑자기 왜 하시는지..”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얘기거든. 그때 김 실장은 나를 권력에 미친 반란군으로 생각했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우리 군사 혁명이 재작년 4.19 의거의 연장선이라 믿고 주도한 거요. 박정희 의장과 우리 군부는 사회 정화라는 역할만 하고 바로 국민에게 통치권을 돌려주고 군에 복귀하는 거라고 단단히 다짐했거든. 근데.. 하..”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이십네까?”


“박정희 의장과 김종일 부장이 다른 마음을 품는 것 같단 말이오. 군정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민정 이양의 탈을 쓰고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려 하는 것 같소. 당신도 그걸 느끼지 않나?”


김기전 역시 속으로는 김재천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도 군인의 논리로 생각하기에 김재천의 말에 맞장구를 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저에게 뭘 원하시는지요? 제가 대장님의 비서실장이었고, 대장님 추천으로 중정에 들어갔지만, 지금 제 상관은 김종일 부장입니다. 제게 배신이나 하극상을 종용하시는 겁네까?”


김종일 부장의 우려와 달리, 김기전은 자신에게 자리를 마련해준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증권 파동 보면서 못 느꼈소? 자기들 비자금 만들겠다고 그딴 장난을 쳐? 그 장난 때문에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소.”


이 시기 증권 파동으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었다. 김재천의 추측대로 군정 수뇌부는 순순히 민정 이양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전역하고 민간인이 되어 권력을 계속 잡는 것이 곧 민정 이양이었다. 이에 따라 민주공화당 창당이 준비되고 있었다. 창당에는 마땅히 돈이 필요했고 곧 중앙정보부의 주도 하에 증권사가 여러 개 설립됐다. 그렇게 중정은 증권거래소를 장악한 다음 당대에 이름난 투기꾼을 시켜서 증권시장으로 막대한 돈이 몰리도록 유도하였다. 이때 주가 조작이 일어났다고 의심하는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하면서 주가가 급락하였고, 결국 결재일에 가서 주식 거래 대금이 결제되지 못하는 지급 불능 사태가 오고 말았다. 5,340명의 투자자가 138억 6천만 환에 달하는 재산상 피해를 본 중대 사건이었다. 증권사 설립에 김종일 부장이 연루되었다는 소문은 무성했다.


“최고회의에서 조사하고 있지만, 제대로 되고 있지 않지. 당신네 중정에서 부장이 연루된 사건을 조사할 리가 있겠소?”


“저랑 현태룡 대위가 내사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 그러니까 자료 달라는 거 아니야.”


“자료 가지고 뭐 하실 계획이라요? 차라리, 제가 의장에게 직접 보고하면 모를까, 대장님께 드리는 건 지휘계통에 어긋납네다.”


“그래, 내가 자네의 그 꼿꼿함을 참 좋아하지. 하지만, 김 실장. 내가 추천하기는 했지만, 자네가 중정에 들어간 이상 자네도 정치라는 걸 할 줄 알아야 해.”


“정치하기 싫어서 군인, 공무원하는 사람입네다.”


“하 참.. 일단 내 말 들어봐. 김종일 부장이 독단으로 증권파동이나 다른 장난질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나?”


“흠..”


“자네가 박 의장한테 보고할 기회도 없을뿐더러, 보고한다 치더라도 박 의장이 자네나 태룡이를 가만 놔두겠나? 나한테 자료를 넘기면, 내가 그걸 바탕으로 방첩대에서 따로 조사한 것들과 합쳐서 최고회의에서 김종일을 견제하는 세력의 무기로 쓸 거야. 아무리 박 의장이 국가원수라 해도, 정식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아닌 이상 최고위원들의 압력을 무시하지는 못할 거고.”


김재천이 담배를 다시 꺼내자 김기전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려 했으나, 김재천은 김기전의 도움을 거부했다.


“불은 괜찮아. 그거 말고, 자료가 필요해. 자료가...”


김재천은 스스로 담뱃불을 붙였다. 김기전은 그를 한참 쳐다보다 그의 진짜 의중을 알아챈 듯 말을 꺼냈다.


“혹시 대장님이 여기(중정)로...?”


“...”


김재천은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들어오시려는 이유가 김종일만 견제하시려는 게 아닌 것 같습네다.”


“솔직히 말하면 난 박 의장이 대통령 출마 안 하면 좋겠소. 군인이 군으로 돌아가야지 경무대, 아니 청와대로 가는 게 말이 되나?”


“...”


“청와대로 들어가면 국민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언젠가는 불행이 될 거야. 그러니까 김 실장. 나 좀 도와주시오. 내 말 맞지 않아?”


이번에는 김기전이 한참 말을 하지 않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석조전을 쳐다봤다.


“제가 16년 전에 저 중강진에서 험한 꼴 당하고 산 넘고 물 넘어 월남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이 석조전이었디요. 그때 마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을 때입네다. 왜놈들에 이어서 양키, 로스케 놈들까지.. ”


김기전은 옛 기억이 떠오른 듯 얼굴을 찡그렸다. 방앗간을 운영하던 집안의 아들이었던 그 역시 해방 직후 내려온 다른 월남민들과 마찬가지로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 직계 친족은 살해당하거나 실종되었고 내려오지 못한 친척들은 그대로 소식이 끊겼다. 설령 살아 있다해도 김일성 밑에서 그들이 절대 좋은 대우를 받을 리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괴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고향을 도망쳤고 남쪽에서는 괴물이 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김기전 역시 원하는 대로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위치였다. 괴물이 되기를 강요당하거나 괴물들에게 당하거나, 괴물을 잡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 총을 들거나 누군가를 죽이지는 않지만 결국 그런 선택을 또 강요당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조선인이 스스로 뭘 해보려고 해도 결국 힘 있는 외부인들에 휘둘려야만 하는 운명이라 절망했었습네다.. 지금 그 감정이 다시 한번 듭네다. 이 자리에서 제게 무슨 선택권이 있겠습네까.”


김재천은 김기전의 심리를 이해하고 동정한다는 표정이었다. 선택권이 없는 김기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결국 김기전은 품에서 문서를 꺼냈다. 증권파동 및 다른 비자금 조성 내역에 관해 내사한 자료였다. 김기전이 줄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가져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재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건네받았다.


“현 과장이 목숨 걸고 만든 자료입네다. 꼭 정의롭게 써주시라요.”


“고맙네. 김 실장, 현 과장에게 조금만 더 목숨 걸어달라고 해주시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도 전해주고.”


앞으로도 계속 내사해서 자신에게 자료를 건네라는 말이었다.


“대장님도 저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시라요.”


“하하, 그래야지. 안 그러면 자네 총이 날 겨눌 테니.”


...


뜨르릉 뜨르릉.


“감찰실장 김기전입네다.”


“김 실장. 부장이네.”


석조전에서 일이 벌어진 다음 날 갑자기 김종일이 김기전을 호출했다. 김기전은 자신이 김재천을 만난 사실이 부장의 귀에 들어간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김 실장, 오늘 일정 있나?”


김종일의 말투는 평상시와 똑같았다. 김기전은 일단 안심했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없습네다.”


“잘 됐군. 내가 의장님이랑 식사하고 올 테니까, 김 실장도 식사하고 와서 부장실로 오시오. 함께 갈 곳이 있으니까.”


“네.”


김종일이 전화를 끊자 김기전은 잠시 고민했다. 현태룡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 과장.”


“실장님.”


“부장이 나보고 어디 좀 함께 가자는데, 내 생각에는 워커힐호텔 건설 현장 같으니 먼저 가 있으라우. 뭐 해야 하는지는 알디?”


“네.”


김기전의 예상대로였다. 김종일은 자신의 차량 조수석에 김기전을 태우고 손수 운전해서 워커힐호텔 건설 현장으로 갔다. 김종일과 김기전이 하차하자 워커힐 호텔 부사장이 된 정원석이 다가왔다. 김종일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같은 육사 동기이자 막역지간이었던 정원석 역시 정변으로 수혜를 입었다. 그 역시 전역 후 중정에 있으면서 워커힐 호텔 건설에 관여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사장님. 잘 지내셨는지요?”


“하하, 아주 좋습네다.”


“건설은 잘 진행되고 있겠죠?”


“물론입네다. 건설 감독관도 현장 지휘 잘하고 장비하고 인부들도 잘 제공되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네다.”


“공병과 죄수들을 이용하니 비용이 안 들어가죠. 거기에 군 장비까지.”


김기전이 끼어들었다. 워커힐호텔 공사에 각 군 공병대는 물론이고 형무소에서까지 차출된 인력을 활용한다는 것은 중정 간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김기전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가 없지. 야당에서 무슨 호텔이냐고 난리치니 비용을 아껴야 해서. 이런 호텔 만드는 게 다 경제발전을 위한 일인데 말이오.”


“시멘트가 일제라 질도 좋습네다. 사실 원래대로 하면 단가가 비싸긴 한데...”


김기전의 의도대로 정원석이 무언가 말하려던 참이었다.


“어어, 일단 그 얘기는 여기서도 안 하시는게... 누가 들을 것 같아서요.”


김종일이 정원석의 입을 막았다.


“죄송합네다.”


현태룡은 정원석도 모르게 인부로 위장하고 멀리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태룡과 눈이 마주친 김기전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룡은 김종일과 정원석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옷에 몰래 숨긴 사진기로 그들을 촬영했다. 김종일과 김기전은 정원석을 따라 공사 현장 곳곳을 둘러보면서 공사 진행 상황을 브리핑받았다. 이때 현태룡은 자재 창고로 들어가서 일본어가 적힌 시멘트 봉투를 촬영했다.


“그러면 부사장님. 나중에 또 뵙죠. 언제 한번 식사나 같이 합시다.”


“물론입네다.”


정원석의 배웅을 받아준 김종일은 김기전과 함께 차에 탑승해 시동을 걸었다.


“김 실장, 방첩대에 있다가 중정에 오니까 어떤가? 뭐가 좀 다르오?”


현장으로 향할 때는 아무 말도 없었던 김종일이 중정 본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그에게 갑자기 말을 걸었다. 김기전은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제가 부정축재자 조사위원회 때 말고는 군인들하고만 상대했었는데, 여기서는 요원을 감찰하는 업무를 하면서도 동시에 민간인들 상대할 일이 많다는 게 다릅네다.”


“김재천 대장이 김 중령을 감찰실장으로 추천했을 때 처음에는 마뜩찮았네.”


은유적으로 말하기를 즐겨 하는 김종일답지 않게 속내를 직설적으로 털어놓았다. 평소와는 다른 부장의 모습에 김기전은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 무언가를 직감했다.


“허나, 김 실장은 참 꼿꼿하더군. 그래서 내가 당신을 신뢰하는 거고.”


“네.”


“방첩대가 정보기관이라 해도 기본적으로는 군부대라 상관에게 절대복종하는 자세면 충분하지만, 중정에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해.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정치요...?”


김기전은 이 말을 김재천과 만난 것을 알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김 부장이 전화를 했을때부터 무언가를 느꼈지만 이제 확실했다. 김기전은 마음 속으로 자신의 운명을 대비 하고 있었다.


헌데 김종일이 이어서 꺼내는 발언은 그의 예상을 또다시 빗나갔다.


“그럼. 특무대 시절에 김창환이가 정치를 했었지만, 중정이 하는 정치는 방첩대가 하는 정치하고는 차원이 달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지. 내가 뽑은 요원들이지만, 우리 직원들은 언제든 나를 버릴 준비가 돼 있다고...”


“...”


“그날이 오기 전에 차라리 이 독이 든 성배를 넘기고 싶소.”


김종일 자신이 ‘알아서’ 나갈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신에 대한 내사를 계속 진행하라는 이야기였다. 이제 서로가 속마음을 알게 되었지만 김기전은 일단 예의 상 모르는 척을 하기로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모르겠습네다.”


“김 실장도 알면서... 혁명을 일으킬 때만 해도 권력의 무서움을 몰랐네. 달리는 기차에서 내 멋대로 내려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오.”


김종일 역시 이 바닥에서는 제2인자라는 자신조차 무사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황제 밑에서 정치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알겠습네다.”


김종일은 씁쓸하게 웃었다. 중정 건물 입구에 도착해 내리기 직전 김종일은 김기전에게 한마디 더 꺼냈다.


“그나저나 일본에서 재밌는 물건들을 많이 들여오더군.”


김기전은 무사히 김종일과 헤어지고 감찰실로 돌아왔다. 그는 얼마 뒤 김종일이 말하는 것이 일본제 자동차와 파친코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 실장은 역시 옛 상관인 정원석에게 걸리지 않고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현태룡을 불렀다.


“현 과장, 새나라자동차와 파친코를 내사해보게.”


“네.”


...


김기전의 지시대로 현태룡은 새나라자동차 공장에 위장 취업하여 새나라자동차에서 수입 생산하는 일본제 차량을 조립하면서 다른 직원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야, 솔직히 몽땅 일제 부품 수입해서 조립만 하는 게 무슨 국산 자동차야.”


“나는 그것보다 일제 차량이 면세로, 그것도 대량으로 들어온 게 참 신기하더라. 일본이랑 외교도 아직 안 하고 있잖아.”


“그렇지.. 이 나라에 승용차 타고 다닐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


“그거 얘기했나? 내 친구가 사실 얼마 전에 감방에서 출소했는데.. 워커힐호텔 건설 현장에서 노역했다는군. 거기도 죄다 일제 시멘트랑 장비만 들여왔대. 걔네도 다 면세고.”


“그런 얘기 막 떠들어도 되는 거냐?”


“뭐, 누가 들으라 하지. 내가 알 정도면 검사나 형사나 새로 생긴 중정 요원들도 다 아는 거 아니겠어?”


“맞다, 하하.”


“아, 그 감옥 갔다 온 놈이 아는 깡패 놈들이 몇 있는데, 걔네가 일제 파친코를 들여와서 사업한다는군. 그것도 많이 더럽다는군.”


“깡패 놈들이 그런 짓하는 건 당연한데, 새삼..”


“그렇지, 하하.”


현태룡은 휴대용 녹음기로 공장 직원들의 말을 녹음해둔 뒤,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부터 자동차 공장을 관두고 파친코 도박장으로 갔다. 현 과장은 김종일이 조성하는 비자금 경로를 확인하여 꼼꼼하게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김기전에게 넘겼다.


“여깄습니다.”


“수고했네.”


“실장님 덕입니다.”


“나는 중간에서 관리하는 일만 했다우. 이제 윗선에서 알아서 하시겠디.”


1963년이 되었다. 여러 최고위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종일은 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김재천은 김기전에게서 건네받은 내사 자료를 토대로 일명 ‘중앙정보부 4대 의혹 사건’ 자료집을 만들어 언론에 몰래 흘렸다. 이전부터 계속 세간의 이목을 끌던 사건들의 퍼즐이 짜맞춰지자 언론들은 혁명을 명분으로 ‘구악’을 몰아냈다지만 결국 ‘신악’이 되어버린 이들을 공격했다.


결국 김종일은 중정부장 직에서 사퇴하고 해외로 외유를 가버렸다. 박정희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남 하동 출신의 김용수가 2대 중정부장으로 임명됐으나, 그는 겨우 한 달여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마침내 김재천이 제3대 중정부장으로 취임했다. 현역 군인 시절에 이어 이번에도 다시 김기전, 현태룡과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다.


작가의말

138억 6천만 환은 2020년대 초반 기준 약 60조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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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 24.05.19 13 2 10쪽
85 인사 없는 작별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9 12 2 7쪽
84 뱃속은 거지새끼잖아요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8 14 1 18쪽
83 그놈의 식사 예절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12 2 8쪽
82 골칫거리는 잘 씹어삼켜야 한다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14 2 12쪽
81 기습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15 2 10쪽
80 마타도르(Matador)의 도착 (1965년 9월, 프랑스 파리) 24.05.12 31 2 13쪽
79 전사(戰士)는 기쁨을 위해 싸운다 (1965년 중순, 프랑스 파리 & 한국 서울) +2 24.05.11 55 2 13쪽
78 김백영의 월북 (1964년 11월, 일본 니가타 & 한국 충남 대전) +2 24.05.06 54 3 13쪽
77 아바이 잘가오 (1964년 10월 중순, 프랑스 파리) 24.05.05 20 2 11쪽
76 빨간 마후라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5 27 2 15쪽
75 페르노 (1964년 가을, 파리) 24.05.04 18 2 10쪽
74 태권도 시합에서의 도발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1 89 3 17쪽
73 태권도 연습 (1964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4.28 24 3 11쪽
72 중정 압수수색 쇼 (1964년 여름, 서울) 24.04.28 34 3 9쪽
71 별들의 순간-검사 윤동석 (1964년 여름, 서울) 24.04.21 242 3 8쪽
70 서울, 1964년 여름(인민혁명당) (1964년 5월, 서울) 24.04.21 26 3 7쪽
69 수상한 사내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1쪽
68 수상한 사내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3쪽
67 팔레 가르니에 연회 4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5 2 10쪽
66 팔레 가르니에 연회 3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4 3 14쪽
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3 2 9쪽
64 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6 2 11쪽
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5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2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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