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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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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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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은 거지새끼잖아요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DUMMY

며칠 후, 마티뇽 대로와 가브리엘 대로가 교차되는 지점 근처 르가브리엘(Le Gabriel) 레스토랑 앞에는 세미 정장 차림의 동생과 양복에 버버리코트를 걸친 형이 서 있었다. 엘리제궁(대통령궁) 바로 인근에 위치한 이 곳은 라 레세브흐(La Reserve) 호텔 건물에 속해있는데 숙성된 비둘기 구이와 코티지 치즈 라비올리가 자아내는 깊은 풍미로 유명했다.


현태준은 형이 약속한 대로 만남 상대인 최현영 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동양인인 것도 있었지만 워낙 인물들이 훤칠한 탓에 행인들의 이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현태준은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워낙 형이 지난 며칠 동안 자신에게 또다시 ‘식사 교육’을 엄격하게 시켰기 때문이었다. 현태룡은 아직도 동생을 믿지 못하는 듯 동생의 ‘자신감’을 확인하려 애쓰는 눈치였다.


“잘할 수 있겠지?”


“어.”


“진짜야?”


“진짜라니까?”


“너만 믿는다. 내가 직접 몇 번을 가르쳤는데. 또 형 실망시키지 말고.”


“제발 좀..”


현태룡의 극성스러운 모습에 현태준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애써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아참, 급작스러워서 내가 미처 얘기 못했는데 사실은 전출 일정이 당겨져서 내일...”


서독 지부와의 조율 과정에서 현태룡이 미리 앞당겨 다음 날 바로 출국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하루 빨리 현태룡을 보내고 싶어 한 방원철의 농간 덕이었다. 그래서 전날 이삿짐을 급히 포장해야 하는 덕에 태준에게 미리 말을 못했고 바로 이 자리에서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어머, 현태준씨 되시죠? 안녕하세요.”


그러나 태룡이 그 말을 하려는 찰나 최현영이 도착하고 말았다. 형제는 뒤에서 말을 건네는 현영을 쳐다봤다.


“벌써 오셨네요. 현태룡 영사님은 어쩐 일로?”


최현영의 오빠가 현태룡과 같은 대사관 동료라 둘은 구면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약속 장소 근처라 가는 길에 태준이 좀 여기 데려주고 가려고요.”


약속 장소가 근처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현태준이 소위 ‘마마보이’, 아니 정확히는 ‘브라더보이’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태준아, 인사해야지.”


태룡이 태준을 쳐다보며 눈치를 줬다. 현태준은 머뭇거리다 현영에게 다가가 어설픈 프랑스식 예절로 인사했다. 형의 엄격한 교육에 태준이 어설프지만 정확하게 예법을 구사하자 그 모습이 귀여웠던 현영이 꺄르르 웃었다.


“저번에 잠깐 뵈었던 것 같은데.. 그때보다 더 잘생기지셨어요.”


“네? 아, 감사합니다...”


현태준은 칭찬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제 동생 좀 잘 부탁드립니다. 어수룩해보여도 착한 아이예요.”


“아유, 별 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그럼 저는 이만.”


가기 직전 현태룡은 태준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건넸다.


“태준아, 이따 끝나고 돌아와서 얘기할게.”


자신이 내일 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마저 전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태룡은 태준에게 응원의 윙크를 날리고 자리를 떠났다. 동생은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형이 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현태룡은 태준과 현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는 여기 처음인지라 태준씨가 안내해주실래요?”


“아, 네...”


매우 적극적인 현영의 모습에 어수룩한 태준은 힘겹게 그녀를 ‘모시고’ 있었다. 그렇게 두 남녀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 나무 뒤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떤 사내 역시 레스토랑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동생을 못 믿는 현태룡이었다.


...


“어서 오십시오. 예약하셨나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지배인이 물어보자, 태준이 불어로 답했다.


“네, 미셸 현이란 이름으로 예약했는데요.”


“아, 미셸 현 박사님.”


일전에 연구 과제 논의 때문에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과 같이 식사하러 끌려온(?) 현태준을 지배인이 바로 알아봤다.


“이쪽으로 오시죠.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지배인이 태준과 현영을 웨이터에게 안내했다. 그가 두 사람을 구석 자리에 앉혔다. 웨이터가 수첩을 든 채 태준에게 질문했다.


“아베리티프(식사 전 식욕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음... 술이요?”


태준이 메뉴판을 보다가 현영을 쳐다보자 현영이 미소를 지었다.


“현영씨는 뭐 드시고 싶으세요?”


“태준씨가 주문하는 걸로 할게요.”


‘교육’에도 불구하고 술에 무지해 최현영이 말하는 술 종류를 바로 말하려던 현태준은 최현영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 그러면... 샴페인으로 주세요.”


“어느 샴페인을 드릴까요?”


이번에는 웨이터의 말에 또다시 당황했다.


“네? 어느 샴페인이냐고요? 음...”


현태준은 동료나 정부 관계자, 혹은 형 부부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일행들이 시켜주는 대로 그냥 먹었다. 쇠고기, 굴, 생선, 바닷가재, 혹은 풀떼기나 술 심지어 음료수까지 그가 선택 안했다. 다른 사람들이 주문하면 먹고 주문 안하면 안 먹었다. 이제 이 미청년은 자신이 직접 샴페인부터 골라야 할 상황이 되자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음식에 대한 무지는 게걸스러운 식사 예절과 더불어 태준의 뛰어난 외모와 지성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수차례 가졌던 여성들과의 만남 자리가 제대로 안된 원인이기도 했다.


“여기 보시면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돔페리뇽 아니면 골든...”


결국 웨이터가 직접 추천해주기에 이르렀다.


“돔페리뇽으로 주세요.”


현태준은 바로 첫마디에 말을 끊고 주문했다. 웨이터는 태준의 다급한(?) 선택에 살짝 놀랐지만 베테랑 답게 놀란 기색 없이 주문을 받아나갔다.


“알겠습니다. 블랑과 로제 중에는 무엇을 드시겠어요?”


“블랑이요.”


“블랑... 아페리티프는 이렇게 하시고 앙트레(전채 요리)는 어떻게 하실까요?”


“하아..”


또다시 난관에 부딫힌 현태준은 결국 입을 손으로 막은 채 울상인 표정을 지었다.


“태준씨, 웨이터 분께 추천해달라고 하셔도 돼요.”


보다못한 최현영이 직접 나서기에 이르렀다.


“특별히 추천해 주실 게 있으신가요?”


“오늘은 메인요리로 구운 비둘기가 아주 좋습니다. 혹시 앙트레 같은 게 선택이 어려우시다면... 여기 구운 비둘기에 어울리는 코스가 있는데 이걸로 하셔도 됩니다.”


웨이터가 직접 추천해주자 현태준은 마치 구원을 받은 듯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면 그걸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최현영은 뭔가 나사 빠진(?) 현태준의 모습이 귀여운 듯 웃고 있었다. 태준은 그런 현영을 당황과 묘한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멀리 구석진 테이블에는 홍차 세트를 주문해놓은 현태룡이 혼자 앉아 신문을 읽는 척하며 둘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이 불안스러운 자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


일단 배움이 헛되지 않은 듯 시작은 잘 되가고 있었다. 태준은 어색하게 조신한 나이프질을 하며 조용히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다. 최현영은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일부러 뽐내듯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세흔(CERN)에서 연구는 잘 되세요?”


음식을 삼킨 최현영이 입을 열었다.


“네, 이번 주부터 서독의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어요.”


현태준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얘기가 주제로 등장하자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재밌을 것 같아요.”


태준이 입 안에서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말하고 말았다. 곧바로 예의를 중시하는 현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현영은 자신의 언짢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른 쪽을 쳐다보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그런데 교민 분들이 얘기 나누는 거 혹시 들으셨어요?”


“어떤 얘기요?”


“태준씨가 그런 데서 일하기보다는 좀 쓸모 있는 거 개발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얘기가 돌아서요.”


“저도 잘 알죠. 근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시는지?”


현태준은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그 얘기가 또다시 이 자리에서 튀어나오자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냥 떠올랐어요.”


어수룩해보여도 현태준은 백건용에게 주먹을 날린 전적이 있었다. 다시 말해 언짢은 일이 있으면 거칠게 표현할 줄 안다는 의미였다. 자신에게 불편한 화제를 꺼내고 말을 얼버무리는 현영의 태도에 기분이 언짢아진 태준이 포크를 세게 내려놓고 말았다.


“그냥 떠오른 게 어딨어요?”


현영에 대한 호감과 태룡의 신신당부로 인해 억누르던 태준의 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제껏 유한 모습만 보여주던 태준의 단호한 어투에 현영은 당황했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역시 백건용과의 그 싸움이 떠오른 태룡이 순간 자신이 그들 눈 앞에 띄면 절대 안되는걸 망각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지하려다 자신의 역할(?)을 깨닫고 다시 앉았다. 씩씩거리다 겨우 감정을 내려 앉힌 현태준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저하고도 친한 분인 이원기 대령님마저도 종종 그런 얘기하시고요. 형이나 신부님은 그런 말 전혀 개의치 말고 하고 싶은거 계속 하라고 하고 저도 똑같은 생각인데 요즘 계속 그런 말 들으니까 마음이 편치는 않죠.”


“물론 세흔이나 국립 연구소가 경력으로는 정말 대단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조금 그렇잖아요. 비슷한 얘기 많이 들으셨겠지만 거기서 연구하는 걸로는 당장 산업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이 짧아요. 학문에 쓸모를 따지기 전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야 하는데, 기초는 그냥 외우라 하고 쓸모 있는 것부터 찾으러 다니니.. 그러니 한국 과학기술이 그 모양인 거예요. 그렇게 하다가는 한계에 부닥쳐서 쓸모없는 것만 만들어낼 걸요.”


“네...”


더 거친 얘기를 하려던 태준은 자신이 자리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얘기를 하며 화를 풀려 애썼다.


“그렇다고 제가 기초 과학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물리학도, 공학도 다 좋아하거든요. 어느 하나만 딱 하나 집어서 연구해야 한다는 법 없잖아요?”


“아, 그러시군요.”


당황과 더불어 역시 살짝 기분이 상한 최현영 역시 영혼이 없어져가는 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자랑은 아닌데 SNA나 르노, 알스톰에서 지금도 가끔 제안이 들어오기는 해요. 일해볼 생각이 있냐고요. 다쏘도 그렇고.”


‘Société Nationale d'Aérospatiale’는 SNA라는 약어로 더 유명한 국영 대기업이었다. 컴퓨터로 가공하는 정밀 부품용 수치제어공작기계, 일명 CNC에 전투기와 여객기, 그러나 그보다도 미사일, 로켓을 만드는 명실상부 프랑스 최고의 기업이다. 프랑스인, 그리고 유럽인들 누구나 다 들어가고 싶어했지만 당연히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한국인 여성 교민이 2명 있다 했지만 그들은 연구직이 아닌 말단 행정직이었다. 하지만 말단 신세인 그녀들이 어깨에 힘주고 다닐 정도로 그 회사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그리고 그 자존심 강한 대기업이 먼저 현태준에게 구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술에 무지한 최현영은 그 회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CERN도 현태준 때문에 관심이 생긴 거지 과학 기술에 관심이 있어 안게 절대 아니었다.


“르노, 알스톰은 들어봤는데 SNA하고 다쏘는 뭐하는 데에요? 회사에요?”


“아, 다쏘는 전투기 만드는 데고 SNA는 전투기에다가 미사일하고 항공기도 만드는 곳이에요. 공작기계도 만들고.”


“프랑스가 미사일과 항공기도 만드는구나. 여기 살면서도 지금 알았네.”


“모르셨구나? 프랑스도 무기에 비행기도 잘 만드는 나라에요.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현태준은 어느새 신이 나 있었다. 그는 말하느라 목이 탔는지 와인 잔을 들어 물마시듯 꿀꺽거리며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트림을 했다. 그 모습에 최현영은 정나미가 떨어져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모르는지 현태준은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한결 나아진 표정을 지었다.


“크. 이제 좀 낫네.”


“...”


“카라벨 아세요?”


“캐러맬?”


“SNA에서 만드는 제트 여객기요. 보잉 707 같은거요. 가끔 타실 것 같은데.”


“저는 모르죠...”


“영국에서 만든 코메트는 사고가 너무 많아 얼마 전에 단종되었어요. 설계에 금속 피로를 고려하지 못한 결함이 있었거든요. 카라벨은 잘 만들었어요. 엔진을 동체 후미에 붙여서 객실 소음도 줄이고 공기 흐름도 부드럽거든요. 저는 물리학이 가장 재미있지만 그런 것도 한번 해보고 싶긴 해요. 비행기건 미사일이건 더 잘 만들 자신은 있는데. 그렇지만 미립자, 중성자 연구하는 게 정말 재미있단 말이죠.”


최현영은 그런 얘기는 관심도 없었다. 현태준이 계속 마음에 들었으면 관심을 조금 가질까 말까 했지만 그에게 점점 정나미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렇겠죠. 그것도 재미있으시면 기업들에서 제안하는 거 그냥 받아들이시는게 어때요?”


“말씀드렸잖아요. 입자가속기 돌리면서 연구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요. 어차피 지금 당장 거절해도 계속 제의가 들어오니 싫증나면 그때 고르면 되요. 싫증 날 일은 없겠지만.”


“...”


“비둘기구이 나왔습니다.”


웨이터가 메인 요리인 비들기 구이를 내놓았다.


“으, 배고파. 현영씨도 빨리 드세요.”


한껏 열을 받은데도 자기 혼자 떠들어대다 기분에 취해버린 태준은 웨이터가 떠나자마자 포크를 들어 비둘기구이를 게걸스럽게 헤집어 먹기 시작했다. 태준이 포크와 나이프를 금속 접시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태룡에게도 들릴 정도로 커서 현영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저, 태준씨, 제발...”


태준은 현영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면서 계속해서 요리를 ‘들이키고’ 있었다.


“나 이거 참!”


참다 못한 현영이 기어코 포크와 나이프를 내동댕이치고 일어났다. 현태준이 놀라 최현영을 쳐다봤다. 현태룡과 주변의 손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안 되겠어요. 저 그냥 갈게요. 우리 인사도 하지 말아요.”


“현영씨,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아니, 그 얼굴은 귀공자면서 정작 뱃속은 거지새끼잖아요. 얼굴만 보고 그런 인간하고 같이 밥 먹는 내가 한심하다 한심해..”


현영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또 다시 자리를 망쳐버린 탓에 태준은 기분이 울적해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형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리를 애써 굴리려는 모양새였다. 이를 지켜본 태룡 역시 실망해 고개를 가로젓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때였다.


“형?”


순간적으로 현태룡이 태준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태준 역시 형에게 사건을 들켰다는(?) 당황과 여지껏 자기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충격이 몰아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태룡에게로 갔다.


“...”


“형이 대체 왜 여깄어?”


“그게..”


“날 감시한 거야?”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널 도와주려 한 거야.”


“도움? 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애로 보여? 내가 이런 걸로 형 눈치 봐야 할 나이야? 기분 나쁘게!”


현태준이 고함을 쳤다. 형에게 그런 식으로 분노에 차서 고함치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태준이 언성을 높이자 레스토랑 내의 사람들이 모두 형제를 쳐다봤다.


“태준이 너 형한테 왜 소리를 지르냐. 그리고 너 말 잘했다. 너 스무 살 넘었지. 그런데 하는 짓은 전혀 나이답지 않잖아. 하는 짓이 어른 같지 않으니 형으로서 도와야 하는 거 아니니? 동생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확인하고 돕는 게 형의 책무다 책무.”


“하, 참... 어이가 없어가지고.”


형 역시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이놈 봐라. 그게 형한테 할 소리냐. 이거 몸만 컸지 예절은커녕 정신머리도 없어가지고... 그러니까 그 잘생긴 얼굴 가지고도 여자가 없는 거 아니냐.”


“내 인생이야, 신경 꺼!”


“야 임마, 현태준. 진짜 이러기야? 당분간 또다시 떨어져 사는 게 아쉬워서 너 좀 챙겨보겠다고 신경쓴 게 그렇게 화낼 일이냐? 이딴 생각으로 나 없이 어떻게 타국살이 할 거야? 응?”


“형 없이도 잘 살았어! 형 도움 없이도 힘든 유학 잘 마쳤다고! 방해나 하지 마. 형 때문에,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들하고 엮였었잖아!”


기어코 형제 간의 감정이 폭발해버렸다. 태준은 태룡을 지나쳐서 지배인에게 지폐 뭉치를 대충 집어 던지며 식사비를 결제했다. 지배인은 완전히 거칠어진 분위기에 항변도 못하고 그 뭉치를 그냥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거칠게 레스토랑 문을 박차고 떠났다. 태룡 역시 지배인에게 지폐 뭉치를 대강 건넨 뒤 태준을 따라 뛰어갔다.


...


“현태준!”


태준이 레스토랑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태룡이 막 닫히려는 문을 붙잡았다.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이냐? 기껏 도와줬더니 이런 식으로 나와? 너 대체 왜 그래? 뭐가 문제야?”


형을 노려보던 태준은 말없이 문을 쾅 닫았다. 택시는 야속하게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어디 가는 거야. 집은 반대로 가야 하는데.”


태준이 탄 택시가 동생의 집과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차가 멀어지는 걸 한참 바라보던 태룡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길 건너에 주차한 자신의 차로 갔다.


작가의말

1. 가상의 대기업 SNA의 모티프가 된 두 기업 중 쉬드 아비아시옹(Sud Aviation)은 코메트, 보잉 707 등과 함께 제트 여객기 붐을 일으킨 SE210 카라벨(Caravelle) 여객기(1955년 초도 비행)를 제작한 회사다. 나머지 하나인 노르드 아비아시옹(Nord Aviation)은 대함 미사일 엑조세(Exocet)를 개발했다. 1970년 두 회사가 합쳐져 아에로스파시알(Aérospatiale)로 재출발했으며 2000년 EADS로 개편, 그리고 2014년 에어버스(Airbus) 그룹 자회사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 코메트: DH-106 코멧은 영국의 드 하빌랜드(De Havilland)사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이다. 1949년 초도 비행을 했다. 금속 피로 등 설계 결함으로 인해 공중분해 사고가 잇달아 일어나 시장의 외면을 받았으며 1964년 단종되었다.


3. 보잉 707: 미국의 보잉사가 개발한 중장거리용 협동체 여객기. 1957년 초도비행을 했으며 1979년 단종될때까지 총 1,010대가 생산되었다.


4. CNC: 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컴퓨터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장착한 공작기계(기계를 만들어내는 기계). 컴퓨터를 이용해 정확한 수치로 절삭 공구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제어해 정밀 부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1952년 미국의 MIT가 최초로 개발했다. 한국에서는 KAIST 등의 연구로 1977년에 최초로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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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눈물젖은 두만강 (1965년 늦가을, 서독 에센) 24.05.25 19 1 17쪽
88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1965년 늦가을, 서독 에센) 24.05.24 20 1 7쪽
87 독일인 여자 (1965년 늦가을,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24.05.19 27 2 12쪽
86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 24.05.19 20 2 10쪽
85 인사 없는 작별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9 17 2 7쪽
» 뱃속은 거지새끼잖아요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8 19 1 18쪽
83 그놈의 식사 예절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15 2 8쪽
82 골칫거리는 잘 씹어삼켜야 한다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20 2 12쪽
81 기습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19 2 10쪽
80 마타도르(Matador)의 도착 (1965년 9월, 프랑스 파리) 24.05.12 3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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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김백영의 월북 (1964년 11월, 일본 니가타 & 한국 충남 대전) +2 24.05.06 5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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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태권도 연습 (1964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4.28 2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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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서울, 1964년 여름(인민혁명당) (1964년 5월, 서울) 24.04.21 28 3 7쪽
69 수상한 사내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1 2 11쪽
68 수상한 사내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2 2 13쪽
67 팔레 가르니에 연회 4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7 2 10쪽
66 팔레 가르니에 연회 3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32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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