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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5.1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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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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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18,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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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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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중정 압수수색 쇼 (1964년 여름, 서울)

DUMMY

“어이쿠, 운전대 좀 부드럽게 돌릴 수 없네?”


“죄송합니다. 건너편에서 차가 오고 있어서 급하게...”


“하아 참...”


아스토리아 호텔 근방에서 김현욱이 탄 차가 좌회전을 하는데 운전사가 평소보다도 빨리 커브를 돌았다. 김현욱이 창 밖을 보니 그의 말대로 검은 트럭이 그들의 차 뒤를 휙 스쳐 충무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요즘 서울에 부쩍 차량이 늘었다우...’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해진 김현욱은 ‘회사’까지 올라가는 그 새를 못 참고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렇잖아도 전 날 검찰청 내부에 이번 사건 기소를 맡은 어떤 덩치 큰 검사 놈이 기소장을 올릴 생각은 안하고 게으름 피우고 있다는 첩보를 받은 참이었다. 김 부장은 이 자가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건지 머리가 복잡해져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일단은 부장실로 가서 방원철에게 무슨 일인지 보고를 받고 그 다음 일을 고민하려던 중이었다. 그러나 남산까지 올라가는 이 몇 초간의 언덕길이 끝나고 본부 초소 앞으로 들어서자마자 김현욱은 그 고민이 필요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거 뭐야? 검찰청 트럭이 여기 왜 있어?”


김현욱은 초소 앞에 떡하니 세워져 있는 서울지방검찰청 트럭을 보고 의아해했다. 김현욱이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보니 방원철이 웬 덩치 나부랭이랑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부장은 순간 그 나부랭이가 바로 방원철이 전날 말한 검사였음을 눈치챘다. 윤씨 성을 가진 그 검사였다.


“야, 당신 그만 하라우!”


방원철은 아침부터 벌어지는 이 실랑이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더워서 정신이 나갈 지경에 이 떡대 큰 검사가 감히 대 중앙정보부 앞에서 자신들을 상대로 실랑이를 벌이자 방 과장은 지금이라도 이 윤동석이란 자를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자들은 이 아침부터 벌어진 윤동석의 ‘간이 부은’ 행태를 지켜보며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만 하라니까?”


“법치국가에서 고문으로 가짜 진술을 받아 선량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윤동석은 방원철의 반말에 대답도 안했다. 오히려 그는 갑자기 존댓말로 말투를 바꾸었다. 오히려 방원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데려온 기자들을 향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듯 했다. 방원철은 순간 윤동석이 쇼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제기랄, 당했다!’


방원철이 다급하게 주변의 중정 감찰실 부하들을 보며 소리쳤다.


“카메라 뺏어!”


방원철의 지시로 직원들이 윤동석이 아닌 기자들에게 달려들어 카메라를 뺏으려 했다. 그러나 덩치가 큰 윤동석이 기자들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14년 전 6.25 사변 당시 윤동석은 끊어진 한강 인도교를 넘지 못해 서울에 남았다. 그렇게 피난을 떠나지 못해 인민군에 강제 징집, 낙동강부터 인천, 개성, 평양까지 여기저기서 전혀 원하지 않는 총질을 해야 했던 그의 고난은 국군에 잡혀 포로수용소에 갇히면서 더 격화되었다. 그 곳은 자신의 ‘조국’이었음에도 법이란 게 존재 안하는 곳이었다. 누가 누구를 때려죽여도 아무도 안 말렸다. 심지어 미군 장성인 수용소장까지 인질로 잡혀 흥정거리로 전락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공산포로와 반공포로의 격렬한 투쟁, 일명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윤 검사는 그 역사의 흔적 답게 몸이 아주 단단했다. 윤동석의 큰 덩치 뒤에 숨은 기자들은 윤동석과 중정 직원들의 대치 구도를 멋지게 잡아내었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일개 검사 따위가 위세를 부리네?”


차에서 내린 김현욱이 상황을 파악하고서 윤동석에게 다가갔다.


“당연히 알지. 중정부장이라도 예외는 없소. 당장 비키시오!”


“이 새끼, 건방져!”


‘남산 멧돼지’ 김현욱이 윤동석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비록 김현욱은 윤동석과 달리 비대했지만, 왕년의 가락이 있어서 몸이 민첩했다.


퍽!


윤동석은 김현욱의 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그런데 그는 쓰러지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뭔가 미소를 짓는 듯 했다. 그걸 보지 못한 김현욱이 윤동석을 구둣발로 밟으려 하자, 윤동석의 의도를 알아챈 방원철이 김현욱을 애써 말렸다.


“부장님, 그만하시라요. 경호실이랑 보안사 아새끼들이 보고 있습네다.”


중정 본부에는 중정 직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정이 다른 기관에 요원을 파견하듯, 청와대 경호실이나 보안사령부에서도 요원을 중정에 파견했다. 비록 중앙정보부의 힘이 막강했지만, 박정희는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중시했다. 어느 한쪽에 권한을 많이 주면 결국 자신에게 총부리를 들이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청와대 경호실과 방첩부대에 중정을 견제할 권한을 주었기 때문에 제아무리 중정부장이어도 경호실과 방첩부대 파견 요원들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방원철이 윤동석을 제지하려 할 때만 해도 없었던 경호실, 방첩부대 요원들이 어느새 나타나 김현욱이 윤동석을 구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에이 썅!”


방원철의 말에 수긍한 김현욱은 윤동석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윤동석은 침을 닦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러분, 보셨습니까? 헌법기관인 현직 검사를 구타하고 그 얼굴에 침을 뱉는 게, 이 나라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짓입니다. 이렇게 무력으로 법의 힘을 꺾으려 드는 자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이상, 이 나라에서 검사의 존재는 무의미합니다.”


윤동석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자켓 안주머니에서 사표를 꺼내 들었다.


“그래서 저 윤동석을 위시한 검사 4인은 부득이하게 검찰청으로 돌아가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치는 오늘로 끝이 났습니다.”


기자들이 일제히 사표를 든 윤동석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에미나이... 정치 놀음에 당했다우.”


김현욱이 중얼거렸다.


“저놈도 엮어버리겠습네다.”


“일단 기다리라우. 저놈 하는 양을 보아하니 뒷배가 있는 기다.”


순간 욱하는 성미가 있어 주먹을 쉽게 휘두르기는 하지만, 김현욱은 중정부장 자리를 고스톱으로 따낸 것이 아니었다. 비록 방원철의 도움이 컸다지만, 그가 박정희의 신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도 나름 정무 감각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했었다.


...


김현욱이 평검사에게 농락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민주공화당의장 김종일, 비서실장 이후겸, 경호실장 박종구, 검찰총장 신직순 등 정권 실세들은 김현욱만 빼놓고 선화각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직전 중정차장이었던 신직순은 중정에 재직할 당시 김현욱에게서 ‘샌님’이라면서 무시당한 것 때문에 김현욱을 벼르고 있었다.


“하하하, 돈까스 놈 한 방 먹었구만!”


준위 전역자이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 때부터 박정희를 경호하여 김종일이나 김현욱, 이후겸 보다도 박정희의 신임을 크게 얻고 있던 ‘피스톨 박’ 박종구가 멧돼지 김현욱을 ‘돈까스’라 지칭하며 호쾌하게 웃어댔다.


“신직순 개새끼야!”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김현욱이 들어왔다. 중앙정보부장답게 정권 실세들이 자기만 따돌리고 술자리를 벌인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이었다.


“이야, 중정부장 맞네, 돈까스.”


김현욱이 신직순에게 총을 겨눴는데도 박종구는 ‘너 따위가 뭔데?’라는 식으로 김현욱을 대했다.


“윤동석 그 간나새끼 서울에서 쫓아버리라우. 안 그러면 내가 너네 다 쏴죽여버리갔어!”


김현욱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윤동석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중정의 압력으로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들은 기소되었다. 방원철이 검찰청 숙직실에 쳐들어가 숙직 검사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기소장 서명을 요구한 덕이었다. 새벽의 갑작스러운 침공에 숙직 검사는 어쩔 수 없이 기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윤동석은 언론 플레이에서 성공했다. 그가 김현욱에게 구타당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언론으로 보도된 것이었다. 사건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김현욱은 국회로 불려 나와 질타를 받아야 했다. 언론에서 불을 켜고 사건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게 되면서 재판부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서 판결을 내려야 했다.


결국, 사건 관련자들은 기껏 기소까지 갔음에도 아예 공소가 취하되거나 (재판받지 않게 됨), 내란음모죄가 아닌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와 같은 혐의로만 재판받고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방원철과 김현욱은 용두사미가 된 이 사건에서 패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윤동석 역시 승리자는 아니었다. 김현욱이 난리를 쳤고 또 그가 다른 실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들 윤동석의 돌발 행위는 이 군사정권의 실세 그 누구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검찰과 중정이 타협한 덕에, 만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이 ‘보헤미안’ 윤동석은 서울지검에서 쫓겨나 좌천되었다. 그와 연고가 전혀 없는 충청도와 전라도를 전전하게 된 것이다. 이 싸움에도 승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직 패배자들만 있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아스토리아 호텔은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1959년 1월에 개장했으며 군사 정권 당시에는 근처에 위치한 중정에서 온 요원들이 조사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2024년 현재는 기존 건물을 허문 자리에 새로운 호텔 브랜드가 들어선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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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전사(戰士)는 기쁨을 위해 싸운다 (1965년 중순, 프랑스 파리 & 한국 서울) +2 24.05.11 55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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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아바이 잘가오 (1964년 10월 중순, 프랑스 파리) 24.05.05 20 2 11쪽
76 빨간 마후라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5 27 2 15쪽
75 페르노 (1964년 가을, 파리) 24.05.04 18 2 10쪽
74 태권도 시합에서의 도발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1 89 3 17쪽
73 태권도 연습 (1964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4.28 24 3 11쪽
» 중정 압수수색 쇼 (1964년 여름, 서울) 24.04.28 35 3 9쪽
71 별들의 순간-검사 윤동석 (1964년 여름, 서울) 24.04.21 242 3 8쪽
70 서울, 1964년 여름(인민혁명당) (1964년 5월, 서울) 24.04.21 26 3 7쪽
69 수상한 사내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1쪽
68 수상한 사내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3쪽
67 팔레 가르니에 연회 4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5 2 10쪽
66 팔레 가르니에 연회 3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4 3 14쪽
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3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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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5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2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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