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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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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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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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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DUMMY

주프랑스 대사관이 프랑스 외무부와 함께 공동으로 주최한다는 행사는 한불 복교 1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마침 이날이 토요일이기도 해서 시의적절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조불수호통상조약(1886년)이 체결된 시점을 한불 수교 시기로 간주하는 양국은 뜬금없이 이 시점에 복교 15주년(1949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유가 있었다. 몇 주 전 프랑스와 중국과의 수교로 불안감을 내비치는 한국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자신의 한반도에서의 유일 합법성을 재확인받고 싶어 매달린 것도 있었고, 프랑스는 그런 한국을 달래야 했다. 그래서 양국은 상징적인 시기를 하나 찾아내 행사를 주최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화려한 곳에서. 바로 파리 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대표적인 오페라 극장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였다.


그리고 화려한 자리에는 화려한 화제가 되는 손님이 하나 필요했다. 때마침 한불 양국에 딱 적절한 화제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현태준 ‘박사’ 역시 초청되었다. 사실은 그게 제일 중요했다. 명목상 복교 15주년 기념 행사였지만 사실상 그의 박사학위 취득을 기념하는 만찬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대사관 행사에 급작스레 초대받은 태준은 초대장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이 중요한 행사에 초대받았다는 자부심보다도 하필 장소가 가르니에 신부와 똑같은 이름이 붙은 오페라 하우스란 사실에 웃음부터 터졌다. 그 자리에 있던 현태룡은 영광스럽게 생각하라며 주의를 줬지만 동생의 계속된 천진난만한 웃음에 형마저 어이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2월 15일 토요일 저녁, 현태준은 형수 김혜린과 같이 팔레 가르니에 앞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 현태룡이 김기전에게 믿을 만하다고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이자 현태준의 형수였다.


“어후 안 열리네.. 형이었으면 그냥 열었을 텐데.”


태준은 택시에서 내렸다. 파티용 예복 차림의 현태준은 혜린이 편하게 내릴 수 있도록 반대편으로 가서 문을 열어주려 했다. 그런데 택시 문이 잘 열리지 않자 낑낑댔다. 정확히는 잘 열리는 게 아니라 신형 차의 문 여는 방식을 제대로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만찬이었건만 정작 대사관 직원인 형은 일 때문에 오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주인공이면서도 형을 대신해 형수를 보조해야 했다.


“도련님, 비키세요.”


계속 낑낑대던 태준을 차 안에서 보고 있던 혜린이 결국 직접 문을 열고 내렸다. 예복 차림의 숙녀가 직접 문을 열고 내리는 광경을 본 프랑스인들이 의아한, 혹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결혼한 여자는 취직이나 은행 계좌 개설도 남편의 동의 없이는 절대 못하는 이 나라에서 예복 차림의 동양인 숙녀 혼자서 차량 문을 여는 건 신기한 광경이었다. 파리지앵들은 그녀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길거리를 걸어갔다. 혜린은 전혀 개의치 않고 태준의 팔짱을 꼈다. 둘은 오페라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형수님, 옷 안 불편하세요?”


태준인 꽉 끼는 예복을 입고도 불편한 기색을 하나도 내비치지 않는 혜린이 신기했다.


“별로요. 도련님은 불편한가요?”


솔직히 혜린 역시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이긴 했다. 그러나 이제 갓 성인에 박사까지 됐지만 아직은 어리면 어리다고 할 도련님에게 예법을 가르치고자 아무렇지 않은 체했다.


“저는 이런 옷이 익숙하지 않아요. 처음 입어 보는 거라..”


“앞으로 이런 옷 입을 일이 자주 있을 건데, 지금부터라도 익숙해져야죠. 옷 말고도 도련님이 갖춰야 할 예절은 무궁무진해요.”


태준은 형처럼 엄하게 말하는 형수의 모습이 낯설었다.


“저는 그런 거 필요 없는데. 형은 왜 이런 쓸데없는 데 참석하라고 성화를.. 정작 대사관에서 일하는 자기는 안 오면서..”


“도련님.”


혜린과 태준 주변으로는 재불 교민 사회에서는 알만한 유명인들이 연회장으로 가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거기에 저 위층에는 연회를 주관한 백선협 대사와 김기전, 그리고 프랑스 측 고위 인사들이 나와 있었다. 이 엄격한(?) 형수님은 발랄한 시동생‘님’이 사람들 보는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자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대사님이 도련님을 특별히 지명해서 초대하신 건데, 감사하게 생각하셔야죠. 그리고 형님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오신 거예요. 형님 대신 제가 동행한 걸 다행으로 여기셔야죠. 형님이 저보다도 훨씬 예의범절을 중시하는데..”


“...”


태준이 보기에는 예의범절 중시하는 건 태룡이나 혜린이나 똑같았지만, 아니라고 했다가는 더 혼날 것 같아 더 이상 첨언하지 않았다.


“도련님이 여기 초대받았고 또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 오신 것은 도련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우리 재불 교민 사회가 인정했다는 걸 의미해요. 도련님이 오늘 주인공이니까 주눅 들지 말고 가슴 쭉 펴고 당당히 걸어가요.”


“네...”


“도련님, 잠시만.”


혜린은 연회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웃으면서 살짝 흐트러진 태준의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형수에게 살짝 혼나서 주눅 들어 있던 태준 주변에는 사람들이 이미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수군거리거나 손가락으로 태준을 가리키기도 했다. 찬탄의 의미였다. 평소에 태준은 그런 모습에 관심이 없었지만 왠지 오늘만큼은 다른 감정을 느꼈다. 이미 연회장 주변으로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듯한 많은 사람을 보고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혜린은 그런 태준을 보며 살짝 불안해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박사님이니 어련히 하시겠지.’라고 생각해 겉으로는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금빛 장식물에 온갖 회화, 샹들리에로 장식된 연회장 내부를 보고 현태준은 또다시 흥분했다. 시각적인 화려함 외에도 연회장 안에서는 오페라 하우스답게 고풍스러운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몇 분 전만 해도 이런 연회가 쓸데없다던 태준은 이 화려한 곳에서 열리는 연회가 결국은 자신을 위해 열렸다는 사실에 다시 감격해하고 있었다. 양국이 교류의 장을 마련할 계기를 찾고 있던 차, 때마침 시의 적절하게 현태준이 그랑제콜에서 대표 학생으로 박사학위를 딴 것이 계기가 되어 전격 열리는 연회였기에 그가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초대한 대사관에서도 결국 그런 계기로 열린 거라고 언질을 주기도 했다. 어느 새 무언가 나사가 풀린 듯한 현태준의 표정에 불안감이 점점 커졌지만 김혜린은 뭐 이런 화려한 모습을 처음 보면 당연히 그런 모습이 나올 거라고 애써 자신의 불안감을 누르며 합리화했다.


“도련님.”


연회를 주관하는 주불 대사 백선협과 그의 아내 노진숙이 외교가를 대표해서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대화 나누고 있었다. 혜린은 태준을 백 대사 부부에게로 이끌었다. 둘이 백선협 부부에게로 다가가자 한국인, 프랑스인을 막론하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수군거렸다. 현태준의 용모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김혜린 역시 빼어난 미인였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잘생긴 용모로 유명했던 미청년 현태준의 외모는 어느새 김혜린의 그 범위마저 넘어서버렸다.


“안녕하십니까, 대사님. 사모님.”


백선협이 김혜린을 알아보고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김혜린양. 작년에 현 참사관과 대사관에서 본 후로 정말 오랜만에 뵙는구려.”


현태룡이 대사관에 부임 신고하던 날 김혜린도 함께 갔었다.


“잘 지내고 있죠?”


노진숙 역시 김혜린을 반갑게 맞이하며 안부를 물었다.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 회장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같은 평남 출신인 백선협이 아버지 김용덕의 안부를 묻자 김혜린이 미소를 지었다.


“네, 덕분에 잘 지내시고 계십니다.”


“기런데 현태룡군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저를 대신 보냈습니다.”


“아 그래 맞다우. 아쉽지만 지금도 최전선에서 묵묵히 일하니 젊은이가 참 존경스럽구려.”


현태룡 칭찬을 하던 백선협은 그제서야 현태준을 쳐다봤다.


“아, 그러면 이 친구가 바로?”


“아, 제 시동생 현태준 군입니다.”


“아, 맞다우. 정작 연회의 주인공을 못 알아봤군 기래. 미안합네다. 내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 해서. 현 참사관이 대사관에 부임 신고했을 때 어디서 낯이 익은 거야. 그래서 내가 빤히 쳐다보니, 사실은 자기가 몇 년 전에 내 공관에 공관병으로 잠입한 그 젊은 친구였다는거야.”


“여보.”


백선협이 현태룡이 정보요원으로서 자신의 방에 잠입했던 과거를 이야기하자, 노진숙이 주의를 주었다. 백 대사의 옆에 있던 프랑스 외무부 관리들은 자기네 통역관을 통해 백 대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해 듣고 있었다. 그들은 백선협이 부끄럽다면 부끄러울 과거 얘기를 당당하게 꺼내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입?”


“도련님.”


태준이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혜린도 태준에게 주의를 주었다.


“허허,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먼 기래. 인사가 늦었소 현태준 군. 내래 백선협이오. 불란서 대사지.”


백선협이 태준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태준은 한 템포 늦게 백선협의 손을 잡았다. 전쟁영웅의 손에는 기운이 넘쳤고, 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허허, 어린 친구가 힘이 좋구먼기래.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형을 닮아서인지 기운도 좋아. 하하.”


백선협이 손을 놓았다. 김혜린이 표정으로 눈치를 줬지만 현태준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래 대사로 와서 자네 같은 천재를 만나게 되어 영광일세. 스무 살에 이공 박사라.. 그것도 불란서 최고 명문 교육기관에서 말이야. 초대를 받아줘서 고맙네. 한불 양국이 자네를 굉장히 주목하고 있다우. 그 비상한 머리로 대한민국뿐 아니라 인류사회에 기여하게나.”


“하하. 네.”


“저기, 도련님.”


태준이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할 것 같자, 혜린이 다시 한번 작게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연회가 시작될 시간이군. 저기가 헤드 테이블일세. 같이 앉지.”


백선협이 멀리 헤드 테이블을 가리켰다. 현태준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김혜린은 불안감이 배가된 표정으로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1. 프랑스의 기혼 여성이 남편의 동의 없이 계좌 개설과 직업활동을 하는 것이 허용된 시기는 1965년이다. 경구 피임약이 합법화된 시기는 1967년이며 완전한 피임 자유화 법안은 1974년에 통과되었다.


2. 1965년에 개봉한 007 시리즈의 4번째 작품 썬더볼(Thunderball)에는 프랑스에 잠임한 제임스 본드가 범죄조직 스펙터의 일원 부바르(Bouvar) 대령의 미망인이 스스로 차량의 문을 여는 것을 지켜보고 그가 여성이 아닌 사실 사망한 척 위장한 부바르 대령 본인임을 알아차리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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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 24.05.19 13 2 10쪽
85 인사 없는 작별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9 12 2 7쪽
84 뱃속은 거지새끼잖아요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8 14 1 18쪽
83 그놈의 식사 예절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12 2 8쪽
82 골칫거리는 잘 씹어삼켜야 한다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14 2 12쪽
81 기습 (1965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15 15 2 10쪽
80 마타도르(Matador)의 도착 (1965년 9월, 프랑스 파리) 24.05.12 31 2 13쪽
79 전사(戰士)는 기쁨을 위해 싸운다 (1965년 중순, 프랑스 파리 & 한국 서울) +2 24.05.11 55 2 13쪽
78 김백영의 월북 (1964년 11월, 일본 니가타 & 한국 충남 대전) +2 24.05.06 54 3 13쪽
77 아바이 잘가오 (1964년 10월 중순, 프랑스 파리) 24.05.05 20 2 11쪽
76 빨간 마후라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5 27 2 15쪽
75 페르노 (1964년 가을, 파리) 24.05.04 18 2 10쪽
74 태권도 시합에서의 도발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1 89 3 17쪽
73 태권도 연습 (1964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4.28 24 3 11쪽
72 중정 압수수색 쇼 (1964년 여름, 서울) 24.04.28 35 3 9쪽
71 별들의 순간-검사 윤동석 (1964년 여름, 서울) 24.04.21 242 3 8쪽
70 서울, 1964년 여름(인민혁명당) (1964년 5월, 서울) 24.04.21 27 3 7쪽
69 수상한 사내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1쪽
68 수상한 사내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3쪽
67 팔레 가르니에 연회 4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5 2 10쪽
66 팔레 가르니에 연회 3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4 3 14쪽
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3 2 9쪽
» 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7 2 11쪽
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5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2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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