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1967년 시점
1. 방원철(35세/남) :
1932년 7월 31일 평안북도 박천군 동남면 맹중동 33-1번지 출생. 예비역 육군 중령 출신 중앙정보부 요원. 박천의 유력 지주였던 방경훈의 아들로 광복 직후 북한 토지 개혁 당시 그의 밑에서 일하던 소작농들에 의해 가족이 모두 몰살당하고 혼자만 살아남아 월남한다. 이후 서북청년단원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우익 테러에 가담했고 6.25 전쟁에도 참전하며 갑종 장교로 군문에 들어선다.
전후 특무대에 있으면서 온갖 군 공작을 담당했고 이때 본격적으로 현태룡과 대면한다. 사실 현태룡의 아버지 현승호는 방경훈의 소작농이었지만 그의 살해에 가담하지 않았는데 이를 모르는 방원철은 현태룡이 현승호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 형제를 증오한다.
이후 현태룡과 군, 중정에서 계속 충돌을 일으키면서 경력에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인맥을 통해 중앙정보부에 들어오고 간첩 조작 등 협잡의 달인으로 승승장구한다. 그 후 유럽에서도 온갖 공작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사춘기 시절 가족이 공산당에게 몰살당하는 참극을 겪으며 제대로 된 성숙의 기회를 놓친 채 뒤틀린 심성에 증오가 이성을 앞서는 성격. 감성이 이성을 압도하는 특유의 성격으로 인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계속 자신의 신세를 망쳤고 어느 순간 방원철은 그러한 자신의 성격 결함이 주는 불이익을 깨닫고 나름 자제하고 이성적인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실상 그 이성마저도 좋은 의도가 아닌 오로지 자신의 성공, 타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2. 윤동석 (38세/남)
1929년 만주 길림성 장춘 출생. 대한민국 검찰청 소속 검사.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 대구가 고향인 부모가 성공을 위해 만주로 이주했을 때 태어났으며 16살이던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만주국이 멸망하자 부모와 함께 대구로 돌아왔다. 부모가 일본 돈을 금으로 바꾸고 몰래 국내로 귀환한 덕에 다른 만주 출신 한인들과 달리 유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946년 10.1 사건 시점에서 학교 선배 서종태(이후 월북)의 권유로 들어간 서클이 남로당 계열로 드러나면서 사상범으로 몰려 고초를 겪고 퇴학되어, 독학으로 1950년 조선정치학관(현 건국대)에 입학한다. 곧이어 6.25가 발발하자 피난을 가지 못해 인민군에 징집되고 부모는 전쟁 중 고향에서 실종(보도연맹 학살사건)된다.
윤동석은 국군에 포로로 잡혀 거제도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석방되어 대구로 돌아왔지만, 마을 주민들로부터 부모를 죽였다는 비난을 받고 서울로 떠나 어릴 적부터 꿈인 외교관이 되고자 고등고시 행정과 외무 직렬 시험을 치르고 합격한다. 우수한 성적임에도 자신보다 낮은 성적의 고위층 자제에게 임용 순서에서 밀리자, 이듬해, 합격과 동시에 임용되는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하여 ‘정의를 구현’하고자 검사가 된다.
1958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용되자마자 ‘진보당 사건’ 수사팀에 합류하여 조봉암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여주지청으로 좌천된다. 이때 자유당 의장 이기붕과 사이가 틀어진 이천(여주 옆) 출신 정치깡패 이정재 일가를 수사함으로써 권력실세의 눈에 들었다. 1964년 현재 서울지검에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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