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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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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5.19 19:32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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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18,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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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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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혼인, 중앙정보부 입사 (1962년)

DUMMY

그렇게 태룡은 동생과 신부가 지난 가을 내내 겪은 일들이 잔뜩 써져있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우리 형제에게 안식처란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것인가...’


차라리 잘 되었다.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그는 현실로 돌아왔다. 태룡은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이상향을 꿈꾸느니 지금 있는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사랑을 하면서. 그것은 새로운 연인에 대한 부부애이자 자신만을 의지하는 8살 어린 막내 동생에 대한 형제애인 것이다.


태룡은 월남 이후 정말 오랜만에 인간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김용덕의 방관(?) 아래서 그와 김혜린은 계속 깊은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연말이 되어 두 연인과 김용덕이 만났을 때 둘은 마침내 회장으로부터 정말 듣고 싶은 말이 나오는 걸 목도했다.


“그러면 회장님, 또 뵙겠습니다.”


“잠깐, 현태룡 대위.”


“네, 회장님.”


“굳이 회장님이라 부를 필요 없어.”


“네?”


“앞으로는 장인어른이라 부르라우.”


“!”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침내 그에게서 그토록 원하던 말이 나왔을 때 이 새로운 부부의 마음 속은 더욱 기쁨으로 가득 찬 것이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는 진실로 혼인의 겨울에 접어든 것이다.


그렇게 태룡과 혜린이 혼인 준비를 바쁘게 하고 있는 사이 현 대위는 방첩 부대(옛 특무부대)로 복귀하여 국가재건최고위원 겸 방첩대장이 된 김재천의 부관으로 근무했다. 바로 몇 달 전 자신이 총구를 겨눈 그 김재천 말이었다. 머리에 총 맞을 상황에서 새치 혀로 이광성을 설득해 자신까지 정변 가담자로 만들어 버린 그 사람 밑에서 일하는 지금의 자신을 보면서 현태룡은 인생이라는 게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월남, 가르니에와의 만남, 강제 징집, 육사 입학, 고문, 방원철과의 만남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직 짧은 인생의 주마등이 스치면서 현태룡은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면서도 새삼 두려웠다.


한편 김재천은 참으로 특이한 인물이었다. 정변의 가담자 정도도 아니고 주도자면서도 막상 군부의 정치 개입을 반대하는 인물이었다. 진심으로 군부가 소위 ‘혁명’만 하고 군의 본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노골적으로 정치 전면에 들어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김은 친밀하면서도 견제하는 미묘한 관계였다.


그랬기에 김재천은 올곧은 현태룡을 눈여겨보고 전속부관으로 기용했고, 김기전 역시 방첩대장 비서실장으로서 현 대위와 함께 김재천을 모셨다. 현태룡은 마음 한 구석에 정변 주도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으면서도 그의 밑에서 근무하는 것을 그다지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태룡이, 자네 결혼식인데 내가 주례를 봐줘야지 않겠나?”


현태룡이 혼인 얘기를 꺼냈던 걸 기억한 김재천이 그에게 말을 꺼냈다.


“아... 대장님께서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네다.”


“언제인지 정해지면 말만 하라고. 무조건 시간을 내줄테니.”


1962년이 되었다. 마침내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김용덕은 그동안 장가 보낸 첫째, 둘째 아들들의 결혼식에 신경 쓴 이상으로 막내딸의 결혼식에 온 힘을 쏟았다. 대미를 장식하겠다는 의도랄까? 미신을 믿는 성격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성을 보이겠다는 듯 이 남한 땅에서 제일 용하다는 무당에게서 받은 길일을 혼례식 날짜로 결정했다.


혼례식은 서울 시내 호텔에서 열렸다. 주례는 약속대로 김재천이 보았다. 사회는 현태룡이 그토록 아꼈던 1년 후배 오상호가 보았다. 오상호 역시 몇 년 전의 그 사건에서 겨우 살아남아 무사히 임관해 여기까지 이르렀다. 비슷하게 어울리는 사람들의 운명 역시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해야 할까. 그 역시 현태룡과 최진철처럼 얼떨결에 상관을 따라 ‘군사혁명’ 참가자가 되어버렸고 방첩대로 옮겨 근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같은 부대 동료인 그가 사회를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김용덕의 신분에 맞게 주요 기업인, 정치, 학계 인사 등 다양한 귀빈들이 결혼식에 모였다. 무엇보다도 박정희 의장이 김용덕과 친분이 두터웠기에 그 역시 결혼식에 참석했다.


“충성!”


신랑 뿐만 아니라 사회자, 그리고 결혼식에 온 그들의 육사 동기 선후배들은 박정희가 나타나자 전원 기립하면서 박력 있게 경례했다. 마치 왕마냥 결혼식 분위기를 휘감아버린 박 의장은 김용덕의 안내를 받아 현태룡에게로 다가왔다. 중앙정보부장이 된 김종일 등 최측근들과 함께였다.


“자네가 현태룡 대위군. 많은 이들에게서 자네 이야기를 들었어.”


“대위 현태룡!”


사실대로 따지자면 현태룡은 정치 군인을 제일 싫어했다. 그렇기에 그는 무력으로 민주 정권을 뒤엎어버린 박정희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현태룡은 이제 ‘혁명 정부’의 일원이 되었고 박정희는 공적으로 그의 최고 상관이었기에 예를 다했다.


“제가 중앙정보부로 데려가고자 했는데, 김재천 대장이 먼저 부관으로 찜해갔습니다.”


김종일이 뻐드렁니를 환하게 드러내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자신을 중정으로 데려가고 싶어했다는 얘기를 들은 현태룡은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 무척 놀랐다.


“제가 중앙정보위원회 만들 때 이 친구가 실무를 기가 막히게 잘했습니다. 하하.”


이후겸이었다. 그는 다 아는 대로 79호실 실장이자 중앙정보위원회 위원장이었고 현태룡의 상관이었다. 그는 5.16 군사정변 직후 반혁명세력으로 몰려 구금되었지만 금방 풀려난 뒤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종일과 이후겸의 말에 박정희는 뭔가 생각에 빠진 표정이었다.


“음.. 군에만 썩히기 아까운 인재인데...”


김재천이 박정희를 쳐다보았다. 그 역시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마치 큰 틀에서 박정희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표정도 아른거렸다.


“이 친구가 신혼여행 다녀오면 한번 같이 보직 문제를 논하지. 괜찮지, 김 대장?”


“물론입니다.”


“아니면 지금 잠깐 얘기를 하든가.”


“물론입니다.”


박정희와 김재천은 김용덕의 안내를 받아 VIP룸으로 떠났다. 현태룡은 오늘 결혼식에서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짐작했다. 현 대위는 일단 신랑 대기실로 돌아갔다. 혼인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그의 머릿 속을 휘감고 있었다.


‘과연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을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박정희 등을 귀빈실로 안내한 김용덕이 신랑 대기실로 돌아왔다. 여비서와 함께였다. 여비서는 잘 포장된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사위, 이거 받게.”


김용덕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여비서가 상자를 현태룡에게 건냈다. 현태룡은 얼떨결에 상자를 받았다.


“이게 뭡니까? 장인어른?”


“자네가 열어보게. 내가 주는 선물은 아닐세. 단지 여기까지 무사히 오는데 도움을 줬지.”


김용덕이 너스레를 떨었다. 장인의 알쏭달쏭한 말에 태룡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는 일단 상자를 열어보았다.


“아니, 이건...”


상자 안에는 프랑스산 고급 화장품과 스킨로션 등이 들어있었다. 현태룡은 누가 보낸 건지 바로 눈치챘다. 김용덕은 형제의 우애에 감동했는지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


“자네 동생이 며칠 전에 파리에서 직접 보낸 것이디. 불란서에서 혜린이에게 책 보낸다는 친구를 어떻게 알고서 편지를 보내 부탁했다우. 요즘 혁명 정부에서 사치품 단속한다고 다들 물건을 땅에 묻고 난리 법석이잖네.”


혁명 정부는 검소한 생활과 의식을 장려한다는 명분 하에 화려해보이는 결혼식장들을 습격해 신랑신부와 하객들을 번번히 체포하곤 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박살내는 혁명 정부의 강력한 방침은 물론 그 혁명 정부의 수뇌부는 예외였다. 김용덕 역시 그냥 넘어갈 수는 있었지만 그는 철저한 성격이었다. 괜히 트집을 잡히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모든 상황을 대비하는 습관이 있었다.


“내가 통관 거부 안 당하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화 좀 돌렸어. 그래서 저 친구들이 못 보게 따로 주는 것이구. 편지도 들어있으니까네, 한번 읽어보라.”


현태룡은 미소를 지으며 현태준의 편지를 읽었다.


‘태룡이 형, 결혼 축하해. 형도 이제 유부남 되네. 시간 참 빨라. 잠시라도 한국에 돌아와서 결혼식에 꼭 참석해야 했는데... 내가 지금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어서 돌아오기가 어렵게 됐어. 너무 미안해. 대신 비싼 선물 준비했으니까 용서해줘. 형수님하고 같이 나눠서 써. 그랑제콜 다니니까 생활비를 올려주더라. 그래서 그 돈 모아서 산 거야. 가르니에 신부님과 같이 골랐으니까 다 좋은 것들이야. 나는 여기서 공부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여기 생활은 어려운 거 없어. 부모님하고 누님들이 형 결혼을 못 보는 게 아쉽지만... 괜한 소리를 썼네. 볼펜으로 써서 지우지도 못하네...’


현태룡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역시 두고 온 가족들과 집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는 계속 동생의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나는 금방 학위 딸 것 같아. 형도 형수님과 함께 꼭 한번 파리로 와. 아름다운 도시야. 그러면 곧 만나자. 다시 한번 결혼 축하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 되길 바라. 형의 사랑하는 동생, 태준.’


태룡은 편지를 접었다. 눈가에 살짝 눈물이 글썽였다.


“형제의 우의가 각별하다우.”


“여러모로 도움 주셔서 감사합네다.”


“허허, 이런 것을 가지고.”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재천이었다.


“김 대장, 식은 좀 이따 하는데..”


“식까지 시간이 남아서 들어왔습니다. 아까 의장님께서 하신 말도 있고 해서..”


“아.. 그럼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겠디.”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알겠소.”


김재천이 현태룡을 쳐다봤다.


“현 대위.”


“네, 대장님.”


“혹시, 자네... 중앙정보부에서 일할 생각 없나? 아까 전에 박 의장님 등과 얘기를 나눴다우.”


현태룡의 인생에 있어 또 다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제가 감히 어찌 대장님을 두고..”


“사실은 김기전 실장도 중앙정보부로 함께 보내려고.”


“아, 그렇습니까?”


“그래. 아까 김종일 부장도 말했지만, 원래 자네는 중앙정보위원회 실무 경력도 있고 해서 중앙정보부 창설 부원으로도 고려가 됐었거든.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김종일 부장은 군부의 정치 개입을 주장하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자네하고는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내가 부관으로 데려갔지.”


김재천 역시 이미 정변 직후부터 현태룡의 내심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네나 김기전 실장 같은 사람이 중앙정보부에 있는 게 우리나라를 위해서 더 나은 것 같아. 방첩대는 우리 국군 내부의 간첩을 잡는 일이 목적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정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한다고. 이제 우리나라도 해외에서 방첩 활동을 해야 할 때가 됐어. 그래서 혁명 정부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중정을 새로 만든 거고.”


“...”


“간첩 색출은 물론 국제정세, 산업, 과학기술 관련 정보들까지 모두 수집하거든. 이 나라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찾아내 활용하는 거지. 자네는 불어에도 능통하고 기계공학도 전공한 공병 장교라 기술에도 일가견이 있지 않나.”


현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세계라.. 잘하면 태준 군하고 같이 생활할 수도 있겠디.”


김재천의 말을 듣던 김용덕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자네를 굳이 중정에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김재천이 잠시 뜸을 들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김종일 부장과 같은 정치개입론자들의 과격한 행위를 할 수 있는 한 막아달라는 것도 있어. 물론, 일개 부원이 부장급에서 하는 일을 완전히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네만.. 최소한 감시와 기록만이라도 해달라는 거야.”


현태룡은 말없이 김재천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박 의장과 함께 혁명을 일으켰을 때는 뿌리부터 썩은 나라를 조속히 치유하고 정상화하자는 취지에 동감해서였어. 그래서 내가 그동안 박정희 의장이나 다른 인사들에게도 누누이 강조했지. 군인이 할 일은 혁명을 하고 잠시 정세를 안정시키는 선에서 그쳐야 하고 그 이후에는 신속하게 민정 이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김재천은 그냥 박 의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현태룡 앞에서 무언가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털어놓는 눈치였다.


“그런데... 아직은 박 의장을 믿고 싶지만 요즘은 이 박사 때와 다를 바 없어지고 있다는게 느껴진다고. 그래서 최소한 중정 직원만큼은 올곧은 사람이 하면 좋겠다 싶어서 박 의장이 자네를 중정으로 보내라 할 때 옳거니 했지.”


“네. 그럼 저는 전역하는 겁니까?”


“자네도 잘 알지만, 자네 육사 선후배들 중에 일부는 전역하지 않고 현역 군인 신분으로 중정에서 근무하고 있지. 하지만, 나는 자네랑 김 실장이 전역하면 좋겠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요?”


전역을 권유하는 김재천의 제안에 김용덕이 태룡을 대신해 질문했다.


“회장님. 현 대위가 군인 신분으로 근무하면, 언젠가는 다시 군으로 복귀해야 하거든요. 현 대위가 훌륭한 육군 장교이고, 방첩대에서도 가장 뛰어난 요원이지만, 중앙정보부에 남는 게 현 대위 개인에게나 우리나라에나 모두 도움 될 겁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디.”


“흠..”


태룡은 병사 또는 생도로 복무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십 년 가까이 몸담은 군대를 떠난다 생각하니 아쉬웠다.


“자네가 군인 신분으로는 자네 동생 태준 군을 만나는 데 제약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이북에 계신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해. 하지만, 중정 요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해외로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심지어 때로는 상관들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나갈 수 있는 일을 할 테니까.”


김재천의 말에 현태룡은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말인데 우리가 북괴를 쓰러트려야 하지만, 그럼에도 저 자들과 대화 테이블에 올라앉아야 할 때 역시 있기 마련이야. 그런 일은 민간 정보기관이 하지, 군에서는 하지 않네. 군대가 그러지 않는게 맞고. 북괴 뿐만 아니라 중공과 소련 같은 적성국들과 접촉 할 때도 마찬가지지. 안 그렇나?”


“맞는 말씀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일의 순간이 다가오면 중정 요원들이 활약해야 할 걸세. 자네가 중정 요원이라면, 그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지. 그러면 자네와 태준 군, 그리고 회장님도 모두 금의환향할 수 있겠지. 자네의 활약 덕에.”


태룡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뒤일지, 수 십년 뒤일지는 모르겠지만 현태룡은 문득 머릿 속에 그가 꿈꾸는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형제가 웃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리하여 그리운 부모와 누님들 그리고 이미 탄생했을지 모르는, 얼굴도 모르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과 포옹하며 재회의 기쁨을 맛보는 바로 그 순간 말이었다.


“고개 끄덕이는 걸 보니 내 말이 먹혀들었나 보군.”


김재천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위, 결심한 건가?”


“물론입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 것을 축하하네.”


그렇게 김재천의 새로운 제안을 현태룡이 받아들인지 얼마 안되어 식은 시작되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지면서 김혜린이 김용덕의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하였다. 현태룡은 김용덕으로부터 혜린의 손을 건네받아 함께 주례석 앞으로 갔다.


“이렇게 새롭게 맺어진 가정 앞에 행복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김재천은 간단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주례사를 마쳤다.


“신랑 신부는 사랑의 입맞춤을 해주세요.”


오상호의 주문에 혜린이 먼저 태룡에게 입맞춤을 했다. 김혜린의 저돌적인 모습에 하객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


그렇게 김기전과 현태룡은 각각 대령과 소령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전역하고 중앙정보부에 입사했다.


명동에서 충무로 방면으로 뻗어있는 대로 오른쪽에 난 샛길을 따라가면 길 모퉁이에 세워진 파출소를 지나치게 된다. 그 왼쪽 방면으로 꾸불꾸불 나 있는 도로를 다시 걷다 보면 보이는 것이 바로 새로 새워진 중앙정보부 청사였다.


중정은 서울 시내를 ‘굽어살피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의 위에 있었다. 건물만이 아니라, 사람도 그 아래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니 ‘하대’하고 감시할 수 있는 구조였다.


두 사람은 남산 중정 청사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현 소령,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린 것이 기대되나?”


“물론입니다.”


김기전과 현태룡은 중앙정보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부장실로 들어갔다.


“왔는가? 중앙정보부 입사를 환영하네.”


“충성!”


“자네들, 전역했잖나. 여기 군대 아니야. 하하.”


김기전과 현태룡이 박력 있게 경례하자 김종일 부장이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김기전은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으로, 현태룡은 감찰1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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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전사(戰士)는 기쁨을 위해 싸운다 (1965년 중순, 프랑스 파리 & 한국 서울) +2 24.05.11 55 2 13쪽
78 김백영의 월북 (1964년 11월, 일본 니가타 & 한국 충남 대전) +2 24.05.06 54 3 13쪽
77 아바이 잘가오 (1964년 10월 중순, 프랑스 파리) 24.05.05 20 2 11쪽
76 빨간 마후라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5 27 2 15쪽
75 페르노 (1964년 가을, 파리) 24.05.04 18 2 10쪽
74 태권도 시합에서의 도발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1 89 3 17쪽
73 태권도 연습 (1964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4.28 24 3 11쪽
72 중정 압수수색 쇼 (1964년 여름, 서울) 24.04.28 35 3 9쪽
71 별들의 순간-검사 윤동석 (1964년 여름, 서울) 24.04.21 242 3 8쪽
70 서울, 1964년 여름(인민혁명당) (1964년 5월, 서울) 24.04.21 27 3 7쪽
69 수상한 사내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1쪽
68 수상한 사내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3쪽
67 팔레 가르니에 연회 4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5 2 10쪽
66 팔레 가르니에 연회 3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4 3 14쪽
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3 2 9쪽
64 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7 2 11쪽
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5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2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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