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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5.19 19:32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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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
추천수 :
238
글자수 :
418,165

작성
24.02.0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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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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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상견례 (1961년 겨울)

DUMMY

“아니..”


“음. 현태룡 대위로군...”


“안녕하십니까...”


반도호텔 레스토랑에서 현태룡이 마주 친 사람은 다름 아닌 쓰리피스 정장을 입은 채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고 있던 김용덕이었다. 그는 막내 딸이 오자 담배를 막 끄려던 참이었다.


“혜린 씨. 이게 어떻게 된...”


“오늘 기말고사 끝나는 날이라 아버지가 저녁을 사주신다고 하셨거든요. 아버지, 잘 아시는 분이죠?”


김혜린이 아버지를 쳐다봤다. 김용덕은 당황한 듯 하면서 침착해보였다.


“기렇지... 아주 잘 안다우. 잘 알아...”


“시험 보고 나오니까 현태룡 대위 이이가 절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이’라는 표현은 보통 남편을 가리킬 때 쓰는 것이었다.


“반갑네, 현 대위. 근데, 언제부터 우리 딸을 만나고 있던 기야?”


“아버지,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저번에 사무실로 찾아간 이후로 처음으로 본 거예요.”


김용덕은 눈을 껌뻑거리다가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김 회장의 자비 덕에 가벼운 ‘데이트’가 갑자기 상견례로 변해버렸다. 현태룡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김 회장이 잠시나마 당황한 모습을 보여줬다 수락하는 행동에 기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허허. 저돌적이군 기래. 사내가 기런 맛이 있어야디. 일단 앉으라우. 왔는데 문전박대 할 수 없는 법이디. 안 기런가?”


김용덕의 말투는 묘했다. 겉으로 보이게는 현태룡이 온 것을 전혀 예상 못해 당황했다는 어투였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은근한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여러 사람을 대면하고 조사하고 대화해 본 현태룡은 그런 미묘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김기전이 급작스레 저돌적인 ‘명령’을 한 것도 다시 떠올랐다.


현태룡은 자신의 ‘승리감’이 젊은 혈기의 ‘착각’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닳고 닳은 어른들의 세계는 자신의 단순한 생각보다 훨씬 복잡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게 지금 자신에게 손해는 절대 아니었다. 어른들의 큰 그림 덕에 자신이 지금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태룡은 누군가의 ‘형’에서 누군가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얻는, 새로운 인생사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웨이터가 물을 따르며 메뉴판을 건네자 김혜린이 최고급 코스를 주문했다. 그렇게 김용덕과 현태룡은 조사하는 자, 조사 받는 자의 신분 관계에서 벗어나 좀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이렇게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우. 처음에는 조사자와 피조사자, 그리고 보름 정도 만에 지금은 이렇게 우리 딸아이의 애인, 아니 남자친구로.”


현태룡은 김혜린을 처음 만난 지 몇 달, 그리고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한 지 한나절도 안 된 참이었다. 그는 그렇게 김 회장에 의해 남자친구로 공인되었다.


“죄송합네다.”


“아냐, 우리 딸이 사내 볼 줄 알아서 다행이다우. 다른 사업가들은 정략결혼한다고 자녀들에게 배필을 어릴 적부터 지정해주지만, 나는 다르게 하고 싶었디. 자식들이 연애하고 싶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 연을 맺고 싶다면 부모는 기걸 막지 않는게 맞다고 생각했다우. 기래서 우리 막내 딸에게 가타부타 말을 안 했어. 기런데 대학 졸업할 때가 다 되도록 아무 남자도 만나지 않아 걱정되었다우.”


김용덕은 오늘 이 자리가 참으로 다행이라는 어투였다.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들자우.”


웨이터가 음식을 세팅하자 김용덕이 포크를 들어 먹었다. 현태룡은 사관학교에서 배운 대로 예절을 갖춰 식사를 했다. 김용덕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식사를 참 품위 있게 하는군.”


현태룡의 각 잡힌 식사 습관에 김용덕이 감탄했다.


“사관학교에서 품위 있게 행동하라고 배웠습니다.”


김혜린과 데이트하면서 생긴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현태룡은 다시 표준어를 구사했다.


“사관학교에서 가르친다고 다 그런 건 아니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사관학교 출신이 한 트럭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많다우. 아주 난장판으로 식사해서 보기 안 좋았던 친구들이 몇 있다.”


“네.”


“아 참, 아버지 친구분 중에 사관학교장 하신 분 계시지 않으세요? 그분이 군대 제대하시고 불란서에서 외교관 하셨다고 하신 것 같은데. 태룡씨 동생이 불란서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김혜린이 박성민과 현태준의 얘기를 꺼냈다.


“아아, 불란서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현 대위 동생이었구만. 내 딸이 말하는 친구는 박성민 대령이디. 나이로는 내가 열네 살 위지만은 배울 게 많은 사람이라 존경하는 친구디. 그 친구가 사관학교장은 아니었고, 그 아래에서 생도들을 관리하는 생도대장이었디. 자네도 잘 알디?”


“박 대령께서는 제 은인입니다. 그 분 덕에 사관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6.25때 태룡씨에게 사관학교 진학을 권유하셨다는 상관이 그 분이세요?”


“6.25때 참전했었나? 내 듣기론, 이런 표현하기는 미안하네만, 고아들은 징병에서 제외되는 게 맞지 않디?”


김용덕 역시 막내딸 뿐만 아니라 그 나름대로 군의 높은 사람들로부터 이 젊은 장교의 과거 얘기를 대충 알고 있었다.


“네. 행정적인 절차가 잘못돼서 잠시 병사로 복무했었습니다. 그때 연대장님이 박성민 대령이셨는데, 제가 부상당했을 때 의가사전역시켜주시고 대신 사관학교에서 공부하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관학교 들어갔을 땐 생도대장으로 부임하셨습니다.”


“기래.. 그 친구가 생도들 복지를 챙겨달라면서 날 찾아왔길래 작은 돈이나마 기부했었디.”


“아.. 기억납니다. 제가 회장님 장학금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사관생도들은 전액장학금에 생활비까지 국가에서 받았지만, 현태룡과 같은 우수 인재들은 김용덕 회장이 기부한 돈에서 나오는 장학금을 추가적으로 받았다.


“하하. 또 이런 인연이 있었구만.”


“내가 박정희 장군하고도 그 형님을 매개로 친분이 두텁지만, 박성민 대령이 군에 계속 남아 장군으로 있었다면 군인들이 민주 정부를 전복하는 일은 없었을 걸세. 참 유능하고 강직한 친구였는데, 아쉽디. 김창환이놈 공작에 걸려드는 바람에.. 사람의 죽음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놈은 잘 죽었다우. 군바리 놈이 민간 기업들에도 개입하려 드는 바람에 내 사업에도 많은 차질이 생겼었디.”


“생도대장님께서 헌병대 계셨을 때 특무대의 잘못을 바로잡으시려다가 특무대의 공작으로 생도대장으로 옮기시고, 또 그들이 생도대장님을 노리고 저를 비롯한 저희 태권도부 생도들을 잡아 가뒀었습니다.”


“이북 노래 불렀다는 이유로 연행됐던 사건 말인가. 그게 또 자네와 연관 있었군. 자유당 실세 의원 아들이 그 사건 때문에 신세 망치고 김창환이 오른팔 안해를 쏴죽였디..”


“네..”


현태룡은 박광세를 생각하자 침울해졌고 방원철이 다시 떠오르자 새삼 불쾌해졌다. 복잡한 감정에 현태룡은 수저를 휘저었다.


“아버지, 어두운 이야기 그만하시지요. 우리 밝은 이야기 해요.”


혜린이 분위기를 띄우고자 끼어들었다.


“기래, 좋은 식사 자리에 씰데없는 소리를 했다우. 근데 말이야.”


김용덕은 음식을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현 대위 자네가 우리 국군 최고의 인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딸 가진 사람으로서 내 딸을 만난다 하니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네.”


“아버지..”


“그래서 물어볼 게 있는데 괜찮겠나?”


“하문하십시오.”


“첫 만남에 성급한 질문이네만, 자네, 내 딸 고생 안 시킬 수 있나?”


“아니, 아버지..”


“저희가 첫 만남이지만은 만약에...”


현태룡이 머뭇거렸다.


“만일에 혼례를 치른다면, 제가 가진 게 없어 물 한 방울 못 묻히게 살겠다는 것은 자신하지 못해도 떳떳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떳떳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라.. 말이 나왔으니까네, 자네가 내 사위가 된다면, 자네 상부에서 우리 회사의 부정을 찾아오라 했을 때 어떻게 할 텐가.”


현태룡은 고민없이 바로 대답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않겠습니까.”


“그 상황에서 나를 잘 봐달라는 것이 아니야. 우리 혜린이 말이야. 윗분들이 혜린이와 이혼하하지 않으면 군대를 나가라 할 게야. 근데, 사위까지 이용해서 우리 회사를 털 정도라면 나도 개털 돼서 내 딸을 먹여살리기 힘들 거란 말이디.”


“아버지, 왜 이렇게 극단적이세요.”


김혜린이 얼굴을 찡그렸다.


“나같이 큰 사업하는 사람은 최악의 최악까지 고민해야 하디.”


“군에는 저 말고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결혼한다면 혜린씨에게는 저밖에 없습니다.”


현태룡이 잠시 말을 멈췄다.


“기래서?”


“그 한 사람을 위해 살겠습니다.”


“하하, 기게 사내디. 기만하면 됐디. 나는 이만 먼저 가볼 테니, 둘이 더 있다 가게. 혜린아, 오늘 밤 늦어지면 내가 방 하나 잡아줄 테니까네 거기서 묵고 가라. 방이 크니까네 현 대위도 함께 묵어도 좋고.”


김용덕은 그 시대 아버지답지 않게 개방적이었다.


“하하, 네...”


불란서를 동경하는 혜린 역시 개방적이었다.


“아..”


태룡만 부끄러웠다. 그러나 잠시였다. 두 사람은 서울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깊은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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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김백영의 월북 (1964년 11월, 일본 니가타 & 한국 충남 대전) +2 24.05.06 5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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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빨간 마후라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5 2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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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태권도 연습 (1964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4.28 23 3 11쪽
72 중정 압수수색 쇼 (1964년 여름, 서울) 24.04.28 34 3 9쪽
71 별들의 순간-검사 윤동석 (1964년 여름, 서울) 24.04.21 242 3 8쪽
70 서울, 1964년 여름(인민혁명당) (1964년 5월, 서울) 24.04.21 26 3 7쪽
69 수상한 사내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1쪽
68 수상한 사내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3쪽
67 팔레 가르니에 연회 4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5 2 10쪽
66 팔레 가르니에 연회 3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4 3 14쪽
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3 2 9쪽
64 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6 2 11쪽
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5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2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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