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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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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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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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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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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경선 준비(3)

DUMMY

리즈, 본명은 엘리자베스 스탠튼.

최근에 마드라드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으레 알만한 카인 하인츠와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그녀 자신도 스탠튼 백작가의 공녀인 데다가, 앞을 바라보면서도 뒤쳐진 이들을 잊지 않는 성품으로 학교 내에는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가 어느 정도 있었다.


파벌이라 하기엔 그리 주종이나 군신 사이와 같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지인 사이라 보기엔 또 그 수준을 넘은 단계.

모인 이들의 수가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나, 어쨌든 현우는 지금을 헤쳐나갈 비책으로 이것을 꼽았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두어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우리 무리가 얼마나 될 줄 알고 이런 제안을 하는 거야?"

"수가 많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저번에 제게 스탠튼 선배의 편지를 줬던 사람, 그 사람도 알고 보니까 선배 분이셨죠? 에릭 형이 나중에 말해줬어요."


현우는 리즈의 뒤편에 서 있는 여학생을 향해 눈인사를 했다. 그녀 또한 답례로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까딱거린다.

단 한 번 본 사이였지만 대강 아는 척을 하는 건지, 혹은 정말로 기억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녀는 현우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었다.


"스탠튼 선배가 편지를 부탁할 정도면 그 관계는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낼 사이는 아니겠지요. 그런데... 저 분은."

"마리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성은 없어. 이런 말 하기도 좀 그렇지만, 나는 평민이니까."

"아, 그런가요. 크흠, 계속 할게요. 마리 선배는 2학년, 스탠튼 선배는 3학년.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본 거에요. 스탠튼 선배를 따르는 2학년들이 있을 거다, 라고요."


현우의 설명이 끝나고, 스탠튼은 싱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점잖게 박수를 쳤다. 만약 슈테판이 현우에게 저런 행동을 보였다면 분명히 깔보는 의미가 분명했겠으나, 리즈는 말 그대로 현우의 논리에 대한 경탄만을 담고 있었다.


"나를 따르는 고마운 아이들이 있는 건 맞아. 그러면 다수란 사실은?"

"그건 그냥 감으로 찔러본 거에요. 혹여 스탠튼 선배를 중심으로 한 무리의 인원 수가 적다고 하면, 다른 곳도 들려야 하겠지만서도... 일단은 사람을 모으는 첫 걸음부터 잘 떼어야 하죠."

"흐음. 그렇다면 말이지."


아직 턱을 괸 팔을 풀지 않은 채, 리즈는 갈고 닦은 눈빛으로 현우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단순히 친분만으로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셈이었다.


"루크 부탑주님, 아니지, 이건 너무 딱딱하니까, 루크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 그걸 듣고 나서 나는 판단하겠어."

"스탠튼 선배의 말이 맞습니다. 1차 경선은 학생들에게 권리가 있는 셈. '마탑'이라는 그들만의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아도, 총장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권리입니다."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지지도 없다, 이 말씀이시군요."

"이미 니암 교수님 쪽이랑, 메트리 교수님 쪽은 소책자를 만들어서 나누어 주던걸? 예전부터 생각해오신 것들인지 꽤나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셨던 데."


그래서 요즘 종이가 부족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현우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후자의 이름은 현우로서는 처음 듣는 교수였지만, 리즈가 알고 있다면 그 교수 역시 1차 경선 정도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만한 저력을 갖추고 있으리라.


"혹시 소책자, 지금도 가지고 계신가요?"

"응. 왜? 한번 보고 싶어서? 나야 이미 정책 쪽을 다 봤으니까, 내 것을 가져가도 좋아."


가방에서 책자를 꺼낸 리즈는 현우의 앞으로 그것을 스윽 밀었다. 처음에는 담담하던 그녀의 표정은, 이어지는 현우의 행동에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뭐 하는 짓인지 물어봐도 될까? 어째서 마력으로 그 책자를 휘감는 건지 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은데. 영문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 그런 짓을 서슴없이 했다간 몰매 맞기 십상이야."

"혹시나 해서 말이에요. 잠시 대화의 물꼬를 돌리자면, 선배는 뒤에 계신 저 세 분을 얼마나 믿으시나요?"


현우의 말에 그녀는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담담히 답했다.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후배들이야. 대학 내외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지 않으면, 난 정말 나쁜 마법사가 되고 말겠지. 이 정도면 답변이 될까?"

"목숨의 위협보다도요?"


순간 현우를 향해 겨누어지는 하나의 완드. 구스타프 오만은 조금 전과는 다른, 전혀 기세를 죽이지 않은 거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다시 말해보거라."

"이 반응으로 여러분들이 스탠튼 선배를 배신하지 않으리란 건 잘 알겠어요."

"무엇을 노리고 말한 거지? 우리를 협박으로 내몰아 연판장에 서명을 시킬 생각이라면 그만 두는 게 좋을 게다. 단순한 서명이 아니라."

"마법사의 서명이 찍혀 있어야 하니까요."


구스타프는 그대로 고민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더니, 어느새 그의 손에 있던 완드를 다시 허공의 틈으로 돌려 보냈다. 리즈가 그의 옷깃을 슬며시 붙잡아 제지한 탓이다.


"어서 말해봐. 난, 아직 너를 믿고 있어."

"단지 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후배이기 때문에서인가요?"

"너랑 여러 가지에 얽혀있었으니까. 그래서 네 성정의 일면 정도는 엿보았다고 자부하니까."


크흠 소리와 함께 목을 가다듬은 현우는 왜 그가 조심스럽게 리즈에게서 소책자를 받아들였는지를 설명했다. 지금도 마력을 불어넣은 실드로, 그것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는 이유를.


"키노시타 선배는 교류제에서 보았지만, 스탠튼 선배는 그 때 만날 수 없었어요. 선배는 이번 교류제에는 가지 않은 거죠?"

"그래, 맞아. 올해 가을에 있었던 루고와의 교류제라면 가지 않았어. 내가 가면, 분명히..."


말끝을 흐리는 그녀였지만, 현우는 능히 그 숨겨진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박에 교류제의 이목은 딴 데로 쏠리리라. 카인과 엘리자베스, 두 사람 다 곤혹을 치를 게 분명했다.


"교류제에 작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건 들었어. 그리고 범인으로 몰렸다가, 스스로 누명을 푼 사람이."

"네, 저에요. 마법공학부에서 만들어낸 마도구를 훔치려는 자가 있어서, 한바탕 싸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잘 모르지만 루고 아카데미잖아요. 선배의 미래 배우자가 있는."


리즈의 얼굴이 다소 붉어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우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를 키워냈을 정도로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는 루고 아카데미의 방비가 어째서 쉽게 무력화가 되었는가. 원인은 연회에 나온 음식에 있었죠."

"음식?"

"섞이지 않으면 독성 반응을 보이지 않은 두 가지의 독물을 이용한 중독으로 결론이 났어요. 저는 그렇게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마드라드에서는 들을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리즈는 물론 뒤에 있던 세 사람까지 현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단박에 슈테판에 대한 말을 꺼낼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목숨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핵심 정보를 공개하는 일이니.


"제가 알고 있는 정보원에 따르면, 슈테판 씨의 취미가 버섯을 수집하는 거라 하더군요."

"버섯 수집? 잠깐만. 장현우, 너는 혹시..."

"스탠튼 선배님, 저건 허튼 소리에요. 저 후배의 행동은 마드라드 내의 경쟁으로 보기엔 너무나 날카롭습니다. 이건 마치... 원수를 봤을 때와 같은 적대감이잖아요."


구스타프의 말이 동아리 방을 울렸다. 허나 그의 경고는 리즈에게는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손을 들어 친애하는 후배의 반박을 저지했으니.


"단지 버섯을 수집하는 것만으로, 그걸 독과 연관을 짓는 건 논리적으로 너무 비약을 시킨 게 아닌가요?"

"잠시만 멈춰줘, 오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이 아이는 단순한 제 변덕으로 남을 헐뜯는 마법사는 아니니까."


그 대답에 현우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완전히 밝힐 수는 없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보이는 행동의 목적은 단 하나.


"내 동아리 후배가 슈테판 리에 대한 의심을 밝힌 건, 마탑의 정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저는 단지."

"내게 다른 마법사들을 불러 검진을 해보라 넌지시 권유를 하는 거겠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 이미 중독되었을 거잖아. 그리고 너희들도."


리즈는 가지고 있던 수첩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더니, 이내 그 장을 찢어 뒤의 사내에게 주었다.


"부탁할게."

"네."


그가 동아리 방을 나간 후, 리즈의 뒤에 서있는 이는 구스타프 오만과 마리, 두 사람 뿐.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한 리즈는 다시 턱을 괴며 현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일단 처리는 끝났어. 그러면 다시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겠지. 물론 네 말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정말 감사할거야. 이제는 루크 선생님 쪽에서 어떤 방식으로 마드라드의 학생들의 이익을 도모할 것인지를 듣고 싶어."

"네. 그러니까 저희가..."


현우는 가지고 온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었다. 간결하다기 보다는, 최대한 자세한 과정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그들의 약속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설명했다.

공갈을 남발하느니, 차라리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러니까, 매년 1회에 걸쳐 마드라드 학생들의 완드와 스태프를 무료로 점검을 해준다 이거야?"

"네."


현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식 완드를 떠올렸다. 마법을 직접적으로 발현하는 도구인 만큼, 각종 불꽃이나 번개, 독이나 얼음에 가장 맞닿아있는 개체.

처음에 단단히 만들어진 도구다 한들, 시간이 지나면 마석이나 선단 부분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새 것을 사기에는 완드의 가격도 무시할 수 없다. 에블린의 말마따나, 안에 들어간 심재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를 수 있는 게 완드니까.

거기에, 훨씬 더 기다랗고 커다란 스태프의 경우는... 몇 주는 커녕 학기를 통째로 물만 마시고 살아야 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도중에 점검을 해서 수리를 받으면, 나중에 마도구를 다시 사야 하는 주기를 훨씬 늘릴 수 있겠죠. 그리고, 마도구에 관해서라면... 다른 곳보다 이 마드라드가 가장 확실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흐음... 그 말에는 동의해. 나 같은 귀족들 뿐만 아니라, 마드라드의 학생들은 평민 출생인 이들도 많으니까. 미안해, 마리. 결코 너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야."

"알고 있어요, 스탠튼 선배."


현우의 말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는지 스탠튼은 입꼬리를 슬쩍 올린 채였다. 앞으로 한두 번만 더 설득하면, 그녀는 충분히 현우에게 찬동을 할 것만 같았다.


"그래. 잘 알았어, 장. 솔직히 완드나 스태프를 손봐준다고 하는데, 그건 학생들의 출신에 상관없이 모두 다 도움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 좋은 공약이야. 그렇다면 루크 선생님의 다음 공약은 뭐야?"

"...그게."

"응? 왜 그래?"

"아직은 이것밖에 없어요."


머리를 긁적이는 현우에게 리즈가 의아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왜? 아직 준비가 덜 된 건가?"

"당연하죠. 사실, 지금 이것도 꽤나 무리해서 밀고 있는 거라..."

"원래 루크 선생님은 학교 자리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하셨지. 그래서 그렇구나."

"장현우 후배님은 아마, 제 생각이 맞다면 어제 조로 루크 선생님이 마드라드 총장에 도전하도록 설득한 후, 급박하게 경선을 위한 공약 준비 등을 했다는 게 되겠군요."

"어제 급조한 공약 치고는 꽤나 그럴 듯해. 평소에도 생각했던 것과 잘 섞은 모양이야."

"그렇죠."


이제는 오히려 현우 쪽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니, 리즈는 도대체 이 대화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갈피가 잘 잡히지 않는다.


"솔직히 말할게. 공약이 하나만 더 있더라도 나는 연판에 지지를 표했을 거야."

"스탠튼 선배님!"

"학생들이 다른 후보에 지지를 표했더라도, 당선된 총장은 반대 후보를 지지했던 학생들에게 어떠한 불이익을 끼칠 수 없어. 만약 그렇다면, 당장에 총장을 지지했던 학생들도 발을 돌리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무리라는 말씀이신가요?"


리즈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현우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현우의 반응을 기다렸다. 과연 그는 그녀가 인정할 수 있을만한 다른 방책을 꺼낼 수 있을까.


리즈가 본 현우는 단 하나의 방식만 고집하지 않는 이, 정확히는 제 몸을 지킬 계책은 여러 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카인과의 교류제 대련에서, 그는 부서져 쓸 수 없는 완드를 오히려 공격수단으로 삼아 기사를 압박했었다.


나중에는 마법 창조라는 도박수까지 써서 끝내 카인에게서 승리를 쟁취하는 그 모습을, 리즈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현우의 입술이 찬찬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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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7화. 은인께 드릴 것은(3) 20.02.27 36 0 13쪽
176 176화. 은인께 드릴 것은(2) 20.02.26 33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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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172화. 귀인이 되어(1) 20.02.20 34 0 13쪽
171 171화. 언제까지 그늘만 바랄 것인가(3) 20.02.19 37 0 13쪽
170 170화. 언제까지 그늘만 바랄 것인가(2) 20.02.18 31 0 13쪽
169 169화. 언제까지 그늘만 바랄 것인가(1) 20.02.17 37 0 14쪽
168 168화. 레이야마, 벚꽃과 장인이 있는 마을(3) 20.02.14 36 0 14쪽
167 167화. 레이야마, 벚꽃과 장인이 있는 마을(2) 20.02.13 35 0 14쪽
166 166화. 레이야마, 벚꽃과 장인이 있는 마을(1) 20.02.12 38 0 14쪽
165 165화. 경선 준비(4) 20.02.10 32 0 13쪽
» 164화. 경선 준비(3) 20.02.07 38 0 13쪽
163 163화. 경선 준비(2) 20.02.06 49 0 13쪽
162 162화. 경선 준비(1) 20.02.05 40 1 13쪽
161 161화. 해를 품은 바람(6) 20.02.04 37 1 13쪽
160 160화. 해를 품은 바람(5) 20.02.03 39 1 14쪽
159 159화. 해를 품은 바람(4) 20.01.31 46 1 14쪽
158 158화. 해를 품은 바람(3) 20.01.30 4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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