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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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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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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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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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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62화. 경선 준비(1)

DUMMY

"여전히 탑주 자리에 오르는 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예?"

"허나, 이름을 빌려주는 정도라면, 그래. 그 정도는 괜찮겠지."


현우가 자세한 사정을 물으려는 찰나, 루크는 입술을 달싹이며 마력을 퍼트렸다.

퍼트린 마력은 선명한 색을 띤 고리가 되어, 시어도어의 세 제자를 감싸 안았다.


"바람의 마탑, 부탑주의 직위에 있는 자로서 마탑의 힘을 빌린다. 직권 이동. 14층, 루크의 연구실로."


우우웅!


루크의 스태프와 마탑 깊숙이 자리잡은 근원이 공명한다. 세 사람의 신형은 지하 공동에서 흐트러졌다.


"바로?"

"이런 게 있는 건 나도 처음 겪어보는 건데."


그들이 다시 꼭 감은 눈을 뜬 곳은, 십 층 이상을 건너 뛴 루크의 연구실이었다.


"공간 이동이 마법진이 없어도 되는 거였나? 블링크의 개념으로도 무리야, 이건."

"마탑을 보통의 공간으로 인지하면 제대로 된 마탑의 마법사라 할 수 없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대륙에 퍼져있는 다른 마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쪽에 직접 방문해본 적은 없다만."


이윽고 나타나는 광경은 현우가 몇 차례 겪었던 것. 잘도 어디선가 나타나는 탁자와 의자가 차곡차곡 회의에 적합한 형태로 배치되는 가운데, 루크는 나지막이 조소를 품었다.


"두 사람 다 마탑주 경선은 처음일 테지. 니암 콜을 저격하자고 말한 두 사람 모두가 여기에 문외한이라니, 정말 이들을 믿고 내 이름을 빌려줘도 되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하는군."

"그, 그거야 배우면 되는 거죠."

"적어도 오라버니보다는 젊으니까, 받아들이는 것도 오라버니보다는 빠르겠지."


루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허공에 무언가를 꺼내는 시늉을 보였다. 그의 손에 스르륵 잡히는 거대한 두루마리.


"아, 이건 보기가 힘드니, 이쪽이 낫겠군."


그는 다시 두루마리를 허공으로 돌려보내더니, 이번엔 책장을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책장의 가장 밑에 고이 잠들어 있던 가장 두꺼운 책이 움찔거렸다.

루크의 완드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책장의 나무틀과 가죽으로 마감된 책의 겉면이 마찰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곱게 쌓인 먼지를 벗어 던진 책이 휙 탁자로 날아 들었다.


"콜록, 콜록!"

"청소는 하는 거야? 연구실에 혼자 산다고 설마..."

"마법으로는 대강 쓸고 있다."

"에휴. 책장은 닦지 않나 보네."


에블린은 손가락에 얇게 저민 바람을 붙여, 루크가 가지고 온 책을 쓱 닦았다.

핸디드 매직 특유의 섬세한 마력 제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원 가죽에는 전혀 해가 없이 미세한 먼지 층만 제거하는 와중에서도, 결코 그 먼지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게 하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됐어. 이제 볼만 하겠네."


에블린의 다른 손이 책을 향했고, 겉이 말끔히 정리된 두꺼운 책은 입을 벌렸다.

스르르 넘겨지는 종이는 마드라드 이전의 바람의 마탑 때부터 정리되어온 탑의 규약을 담고 있었다.

왕국 유일의 전문 마법대학의 학장, 또는 총장이라고도 불리는 자리는 아직까지도 뚜렷이 마법학부로서 녹아있는 마탑의 주인과 동격.


"마탑주를 뽑는 본 경선은 마법학부 건물 3층 이상에 방을 가진 마법사들과 기타 명시된 자만이 참여할 수 있다."

"3층이요?"


현우의 물음에 루크는 손가락으로 내용을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1층은 안내와 강의실이 있지 않느냐. 마법학부의 2층은 대학 전체의 행정과 회계를 담당하고 있지. 마법사가 아닌 이들도 있기 때문에 새겨진 규정이란다."


셈을 다루는 것은 여간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닌지라, 영지 등에서 일하는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더불어 회계와 같은 일들을 보는 경우가 잦았다.

허나 세상은 모진 기류를 만들어내니, 여러 이유 등으로 마법사가 되지 못하는 이들 중에서도 머리가 좋은 이들은 더러 있음이라.


현우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타 여러 규정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읽어보길 바란다. 본선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표는 모두 동일하지."

"마탑은 마법사들의 공동체. 마탑주가 우리의 대표이자 얼굴로 활동하는 것이니, 구성원들인 마법사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거지."

"애블린 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좀 이상하게 들리네요. 우리의 대표라니..."


현우가 던진 우스갯소리에 에블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시끄러워! 너에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준 거잖아. 나야 지금은 부외자인 셈이니 투표권은 없어. 내가 살아있다는 게 밝혀지긴 했으니 말은 많겠지만 말이야. 루크 오라버니, 내 방은 사라진 건가?"

"아직 남아있을 거다."


벌써 몇 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방이 남아있는 거냐며 대꾸를 하려던 에블린은 '그럼 그렇지 뭐'라는 태도로 짧게 혀를 찼다.

하기야, 그녀가 가지고 있던 학생증이 아직도 인식이 되는 것을 보면 말은 다한 셈이니.


"보고서를 받은 후, 뭔가 싶어 점검을 하던 도중에 알게 되었다. 모종의 일로 몇 년간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복귀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학적을 담당하던 곳에서도 지우지 않고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하더구나."

"오라버니가 탑주가 되면, 제대로 뜯어 고쳐야겠어."

"어쨌든 네 방은 남아있다. 원한다면 너도 여기에 표를 행사할 수 있겠지."

"과연 그럴 지는 모르겠는데..."

"저기, 그렇다면 저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마탑에 거주하는 마법사 분들의 표를 끌어 모으면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어쨌든 무리를 이루어야 한다는?"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루크가 아닌, 다른 사람 쪽에서 나왔다.


"아니야, 현우야. 마탑주를 뽑는 일이 그렇게 단 한번에 이루어지진 않거든."

"몇 번의 절차를 더 거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더군다나 이미 마드라드는 마탑의 수준을 벗어났으니까."


탁자 위로 원을 그린 루크는 그 바깥에 더욱 큰 원을 하나 더 그렸다. 바람의 마탑을 감싸 안는 대규모의 공동체.


"마드라드는 대학이다. 교육 기관이기도 해. 그리고, 마드라드 대학의 장은 당연히 학생들을 위한다는 기조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 그건 나도 몰랐네. 하기야 학생일 당시에, 시어도어가 가끔 직접 학생들과 대면하는 회의를 몇 차례 열기도 했었지."


에블린이 탁자에 턱을 괸 상태로 루크의 말에 동조했다.


"학생들 또한 어엿한 마법사. 마탑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어쨌든 마드라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들에게 붙을 테니까.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거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마탑주는 이번과 같이 자기가 사임하는 경우가 아니면, 본래는 종신이니까.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가 제일 높은 사람이잖아? 반란을 일으킬 일도 없을 뿐더러, 권력자들이 스스로 권력을 손에서 놓는 걸 봤어? 앞으로도 해 먹으려면 미리 밑을 잘 깔아두어야 하는 거야."

"비하하는 어조가 느껴지는구나, 에블린. 그럴 생각은 그만 두어라."

"어조가 아니라 원래 그런 건데."

"흐음..."


둘의 시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얽히고 얽혀 어느 시선이 누구에게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뿌리는 둘 다 일종의 적의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바깥에서 갈등을 지켜보는 현우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뭐가 더 있다는 말씀이시죠? 두 분께서 말씀하려는 것은요."

"크흠."


잔기침을 한 루크는 마지막으로 에블린을 흘긋 보고는 현우에게 말을 건넸다.


"누구나 후보로 나올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난잡해질 수 있다. 그래서 1차 경선을 통해 예비 후보들을 거른다."


루크의 거친 손이 책의 종이를 팔랑팔랑 넘겼다. 종이의 질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손가락이 베일 수도 있었으나, 이미 잔 상처가 많은 그의 손은 그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듯 했다.


"여기 있구나. 예비 경선의 조건. 마드라드의 장이 되려는 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 * *


"끄으으..."


어제 너무 오래까지 연구실에 붙들려 있었다. 현우는 기지개를 쭉 피며 한 건물을 향해 걸었다.

그가 몇 번 가봤었던 건물. 소속 학생이 아님에도 눈 감고도 방향을 알아 맞출 수 있으리라 자신하는 곳이었다.


삐이이거억.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네. 어서 와, 현우야."

"그 동안은 안녕하셨어요?"

"그리 안녕치는 못해. 요즘 한창 바쁠 시간이니까."


거대한 문이 열리고, 조용히 입장한 현우에게 윤화가 말을 걸었다.


"여긴 어쩐 일로? 이번에도 정보를 주는 쪽? 아니면."

"뭣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어, 현우네? 오늘은 혼자 온 거야? 항상 벤이나 다른 아이들이랑 같이 오지 않았었어?"


푹신한 의자에 앉아있다가 사람이 옴을 확인한 에릭이 빼꼼 눈만 위로 올려 현우를 바라본다. 윤화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음을 확인한 현우는 윤화에게 다가가려는 손을 냉큼 감췄다.


"하아..."


털썩 자리에 앉은 현우에게 윤화가 깃펜과 양피지를 가지고 앉았다.


"이번엔 종이가 아니네요?"

"구비해두고 있던 게 마침 다 떨어졌지 뭐야. 크게 한 꾸러미로 구해야 하긴 하는데, 최근에 대학 내에서 종이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내가 다니고 있을 때에 대학장이 교체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어. 볼티모어 학장님이 계신지도 꽤나 시간이 지났으니까."


에릭은 슬쩍 책장에서 서류 뭉치를 하나 꺼냈다. 양피지로 쓰여진 서류 뭉치는 세월의 파편을 많이 맞았는지 여기저기가 때가 타고 구멍이 나 있었다.

깃펜으로 여기에 글을 적었던 사람도 고생을 꽤나 했으리라. 구멍 자리를 피해 글을 적어야 했을 테니까.


"몇 십 년 전의 기록에 시어도어 볼티모어가 마탑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어. 정말 예전 기록이라 나머지는 읽을 수 없는 쓰레기야. 그래도, 마탑주에 대한 증거니까, 이름 모를 선배에게는 감사해."

"확실히, 쌓아 올려진 기록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는 거군요."


서류 뭉치를 감싸고 있던 잠금 장치를 다시 잠근 에릭은 다리를 착 꼬더니 현우에게 눈짓했다.


"너도 그거 때문에 온 거지? 이번에 루크 씨도 나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보네."

"네, 맞아요. 설득에 성공했어요."

"크크... 하하하!"


얼얼해서 붉어질 정도로 손을 탁자에 내리치며 웃어대는 에릭은 내버려둔 채, 윤화는 현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두 부탑주가 전부 지원을 하는 거구나. 그렇다면... 너도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알고 있지?"

"네. 그래서 이카루스에 정식으로 정보를 요청하려고 해요."


루크와 에블린이 말했던 1차 경선. 그냥 들어서는 간단한 조건이었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성별과 나이, 심지어 국적도 다른 마법사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의 지지를 받는 일이 쉬울 리가.

거기에 그 수도 오십 명.


"학생 오십 명의 지지가 담긴 연판과 학부생 전체를 위한 학술 지원책... 물론 시간은 부족하니까, 대충 니암 교수님 쪽에서 어떤 방법을 마련했는지를 알고 싶어요."


가장 편한 방법은 남의 것을 보고 비슷한 거를 유추하는 게 아닌가. 두 번째 경선부터는 마탑 내의 사람들만 관여하는 것이니, 일단은 경쟁 상대와 비슷한 쪽으로 방법론을 짜자는 게 어제 회의에서 마련된 계책이었다.


그 순간.


"다녀왔어요!"


꽝!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에이미가 허리춤에 여러 주머니를 매달고 나타났다.


"잘 받아왔어?"

"평소에도 지금처럼만 이렇게 활발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중에 한 명은 정말... 언니도 놀랄 거에요."


척 하고 에이미는 탁자에 서너 개의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묵직한 소리가 들리는 게, 돈이 어마한 양으로 모인 것 같았다.


윤화는 제일 작은 주머니를 휙 열더니, 거기서 무언가를 꺼내 에릭이 열어놓은 주머니에 넣었다. 손의 위치가 절묘해, 현우는 제대로 그 광경을 볼 수 없는 시야에 있었다.


"아, 현우야. 자, 여기."

"이건 뭐에요?"

"일종의 대금이야."


윤화와 에릭이 넘겨준 주머니를 열었다. 주머니를 묶었던 무명 끈이 풀리고, 안을 들여다본 현우의 눈은 빛나는 금화를 찾았다.


"금화? 저한테 딸려오는 대금이 이렇게나 많아요?"

"말하지 않았었나? 원래 사람에 대한 정보는 가격이 비싼 법이야."

"사건과 장소는 움직이지 않지만, 사람은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잖아. 당연히 그에 해당하는 정보료는 비싸단 말씀."


금화의 찬란한 빛에 현혹되는 것도 잠시. 현우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금이라는 의미. 무언가에 대한 대가로서 받는 돈이다.

그걸 자신에게 준다는 것은.


"혹시, 윤화 선배와 에릭 형. 제... 정보를 파신 거에요?"


그들이 판 무언가가 자신과 연관되어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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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7화. 은인께 드릴 것은(3) 20.02.27 36 0 13쪽
176 176화. 은인께 드릴 것은(2) 20.02.26 33 0 14쪽
175 175화. 은인께 드릴 것은(1) 20.02.25 36 0 14쪽
174 174화. 귀인이 되어(3) 20.02.24 32 0 13쪽
173 173화. 귀인이 되어(2) 20.02.21 32 0 13쪽
172 172화. 귀인이 되어(1) 20.02.20 35 0 13쪽
171 171화. 언제까지 그늘만 바랄 것인가(3) 20.02.19 38 0 13쪽
170 170화. 언제까지 그늘만 바랄 것인가(2) 20.02.18 31 0 13쪽
169 169화. 언제까지 그늘만 바랄 것인가(1) 20.02.17 37 0 14쪽
168 168화. 레이야마, 벚꽃과 장인이 있는 마을(3) 20.02.14 36 0 14쪽
167 167화. 레이야마, 벚꽃과 장인이 있는 마을(2) 20.02.13 35 0 14쪽
166 166화. 레이야마, 벚꽃과 장인이 있는 마을(1) 20.02.12 39 0 14쪽
165 165화. 경선 준비(4) 20.02.10 32 0 13쪽
164 164화. 경선 준비(3) 20.02.07 38 0 13쪽
163 163화. 경선 준비(2) 20.02.06 49 0 13쪽
» 162화. 경선 준비(1) 20.02.05 41 1 13쪽
161 161화. 해를 품은 바람(6) 20.02.04 37 1 13쪽
160 160화. 해를 품은 바람(5) 20.02.03 39 1 14쪽
159 159화. 해를 품은 바람(4) 20.01.31 46 1 14쪽
158 158화. 해를 품은 바람(3) 20.01.30 4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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