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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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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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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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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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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4화. 귀환하다(2)

DUMMY

아직 닭조차 제 목청을 가다듬는 시간이었다.

이미 어슴푸레한 세상은 간밤에 잃었던 고유의 색을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밤중에 비가 잠깐 왔는지 땅과 나무 기둥까지 모두 촉촉한 얼굴이었다.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은 액스가 창문을 통통 손가락으로 튕길 때마다 자기들끼리 뭉치더니 이내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유리가 깨지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파져요. 이런 숙소에서 쓰는 거면 그렇게 하급 품질도 아닐 겁니다."

"어, 일어났어? 꽤나 빨리 일어났네."

"안드레 씨의 리커버리가 꽤나 강력해서요. 지치긴 했는데, 회복력도 올려준 것 같아요."


포는 그들에게 2인실을 따로 잡아줬었다. 창문을 투과한 아침의 싱그러운 빛은 두 개의 침대와 각기 다른 침대에 걸터앉은 두 마법사를 비추고 있었다.


"결정하셨습니까?"

"좋아. 내게 원하는 건 그거잖아. 모든 사실을 털어놓길 바라는 거지?"


그저 그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현우의 모습에 그는 눈두덩이를 슬쩍 비비며 시간을 끌었다.


"어차피 너도 거의 유추는 끝내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내 말로 확증을 받고 싶겠지."

"부탁드려요."


부와 권세를 꿈꿨던 마법사는 이제는 한결 그 고집이 가신 상태였다. 아직 그는 목숨보다 돈을 위에 올려 놓을 생각이 없었다. 한숨을 몇 번 쉬고는 드디어 액스의 입이 열렸다.


"나는 니암 콜 마법학부장 일파의 지시로 너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어. 아, 물론 일부러 외부 의뢰에 참여했던 건 아니야. 정말로 내게는 필요한 일이었거든. 너는 모르고 있겠지만, 굳이 전투학부가 아니더라도 가끔 다른 학부에 소속된 이도 외부로 출장을 나갈 때가 잦아."

"예를 들면 약학부 쪽 학생들?"


액스는 고개를 끄덕여 이에 동의했다.


"다만 콜 학부장파의 권유로 에아렌 상행에 참여했지. 원래 내가 가려던 건 이쪽이 아니었다고. 다음 학기 지원금을 준다고도 했고, 그리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선택한 거야."

"누가 당신과 접촉했는지 얼굴은 기억하세요?"

"아니."


이상하게 그 자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액스는 말했다.


"아무래도 인식을 왜곡시키는 종류겠지. 그래서, 너는 어떤 결정을 내릴 거야?"

"굳이 대응을 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겠어요. 어차피 루크 선생님의 세력은 저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더 이상 세를 불리지만 않으면 자연스럽게 권력은 그쪽으로 넘어갈 텐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쪽에서 할 이야기는 없네. 그럼 마무리?"

"그렇게 해요. 그래도 직접적으로 사주를 받지는 않은 거라 다행이군요."

"응. 그냥 네 행동을 나중에 알려달라는 것 뿐이었어."


현우는 말 그대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그 쪽에서 직접적으로 자기에게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감시를 당하는 것 자체가 짜증나는 것이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만 선을 지켜준다면 충분히 감내할 만 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바로 앞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들키지 않는 선에서, 건물이나 수풀에 숨어 자신을 지켜볼 자들을 생각하면 현우는 그들에게 조금이지만 불쌍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그것보다는, 아까 느꼈던 것을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정말로 마무리 하실 건가요?"

"응?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액스 선배님. 제게 숨기는 것이 이제는 없으신가요?"

"그럼.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은 없단다."


아직 이르다면서 조금 더 잠을 청하겠다며 자리에 눕는 액스의 옆으로 현우는 슬쩍 다가갔다. 이불을 덮고 옆으로 누워있는 그의 귓가에 현우는 살며시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보셨죠?"


헉.


액스의 감았던 눈이 다시 활짝 떠졌다. 그 반응으로 현우는 그가 눈치챘음을 알게 되었다.


"숨기고 계신 것 맞잖아요."

"아, 아니. 그래도 그걸 누구에게 말하겠어, 하하."


목을 긁적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현우에게, 액스는 손까지 내저으며 자기의 입은 정말 무겁다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하... 심리나 정신 조작 마법은 익히지를 못했으니 선배의 기억을 잊게 할 수도 없고, 난감하네요. 정말로 약속은 지켜주시는 겁니다?"

"그, 그럼."


* * *


의뢰를 받기 전, 루크가 자신의 제자에게 준 돈은 충분히 두 사람을 스완베리에서 포트란까지 이동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현우는 남은 돈의 일부를 액스에게 쥐어주었다.


그에게 말하길, 무거운 돈주머니는 입을 함부로 열리게 하지 않는다 했다. 얼마인지도 모르는 다수의 은화와 동화를 주머니에 나눈 채, 무작정 액스의 손에 들이민 것이었다.


안드레아의 시험을 통과하며 얻은 성취를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예로부터 실력의 일부는 숨겨 드러나지 않은 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으니까. 현우 또한 적이 생긴 입장에서 괜히 풀을 건드려 뱀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이 지나 오랜만에 대학에 돌아온 현우는 제일 먼저 마법학부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뢰를 완료했다는 증서를 내야만 학교 행정상으로 외유가 인정되기 때문이었다.


"외부 의뢰 때문에 왔습니다. 의뢰 완료 증서 쪽을 제출하려면 여기로 제출하면 된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까?"

"네. 완료 증서와 관련 서류를 가지고 오셨나요?"

"예. 여기 있습니다."

"결과 보고서는 가지고 오지 않으셨나요?"


아. 현우는 입술을 씹어가며 머리 속으로 기억을 떠올렸다. 집을 나올 때 무언가 놓친 것만 같은 허전한 느낌이 이것인 듯 싶었다. 직원의 눈치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것이 없으면 수락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없으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죠? 꼭 필요한가요?"

"네. 맞습니다. 결과 보고서를 반드시 제출하라고 되어 있거든요. 혹시 쓰긴 쓰셨나요?"

"아... 아니요. 어제 복귀한 지라."


접수처의 직원은 옆에 있던 서류를 몇 번 뒤적이더니, 현우에게 서류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자요. 여기 보시면 복귀 예정일 이후 3일 안으로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반드시 자필로. 대필은 안됩니다. 표준 용지 규격으로 3장 정도 쓰시면 되요."

"아, 그렇다면 내일 다시 제출해도 괜찮을까요?"


가지고 온 서류를 다시 챙겨가려는 그에게 직원이 서류 위에 손을 덮었다.


"가지고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따로 보관할 테니, 내일 저를 찾아서 결과 보고서만 추가로 제출하면 한꺼번에 처리하도록 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가장 급한 일을 해결한 현우는 그 다음 계획을 위해 부유 장치로 향했다.

목표는 14층, 그의 스승이 있는 곳이었다.


의뢰 선택을 위해 올라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현우는 루크의 연구실 앞에서 마력을 흘려 보냈다. 제자를 위해 스승의 연구실은 그 입구를 활짝 열어주었다. 안쪽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업무 때문에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시간대를 놓친 건가."


함부로 루크의 물건을 건드렸다간 그때처럼 혼이 날 것이 분명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결과를 굳이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손님용으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 현우는 눈알만 굴리며 루크를 기다렸다.


그의 비밀 창고가 어디에 있고,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런 유혹에 쉽게 흔들리기엔 이미 그의 정신은 한층 성숙해져 버렸다. 원래부터 그건 잘못된 행위였기는 했다.


"뭐야, 현우였나."

"오랜만이에요, 루크 선생님."


잠시 후 문을 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선 루크는 손님을 한 명 동반한 채로 앉아있던 현우를 맞이했다. 오히려 손님이 앉아있고, 주인이 연구실에 들어오며 환영하는 모양새가 이상했지만 뭐 어떤가, 중요한 것은 사제 관계로서 그들이 제법 긴 시간 이후에 만났다는 것이었으니.


"다른 손님이 같이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자리를 비켜 드릴까요?"

"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이라고 했죠? 당신이 들어도 되는 이야기이니 걱정 마세요. 물론, 당신도 같이 듣기를 저는 바라고 있었지만요. 하지만 당신이 외부 의뢰 때문에 자리를 비워서 만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하하. 제가 너무 튀었나 봅니다. 저는 알지 못하는 분이 저를 만나고 싶어할 줄은 몰랐네요."


말 속에 은근히 뼈가 느껴졌다. 루크와 같이 왔던 마법사는 헛기침을 하더니 현우의 옆에 앉았다. 루크는 이 방의 주인으로서, 간단한 간식을 챙겨 탁자에 놓았다. 적당히 달달한 주전부리와 차가운 장미수가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하고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 제자 분께서는 제 이름을 모르실 테니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마탑 5층에 거주하고 있는 마법학부 소속 빌 에반스라고 합니다. 에반스라 불러주시면 감사합니다. 제가 루크 님께 말씀 드릴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탑에 틀어박혀 연구에만 몰두한다는 마법사들 치고 빌 에반스는 비교적 단정한 용모를 하고 있었다. 거뭇거뭇한 수염은 상당히 길렀다가 최근에 다듬은 것으로 보였고, 올려 쓴 안경의 알 또한 최근에 바꾼 것인지 긁힌 흔적이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최근에서야 마음속으로 큰 결정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후우.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루크 님의 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자도 들이신 것을 보면,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는 계획이 아니십니까? 그렇기에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제게 합당한 것들만 준비해준다면야..."

"요즘 대학의 분들은 다 여기에 정신머리가 쏠려 있는 모양인가요? 외부 의뢰에 같이 갔던 사람도 그렇고, 에반스 씨까지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충분한 의심이 갑니다."


엄밀히 말해 현우는 루크의 제자이기는 하나,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에반스가 왜 이리 세력에 집착하는 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마탑과 대학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점이었다. 대학에 소속된 학생이어도 이들 중 '마탑'이라는 예전 공동체의 소속을 더욱 중시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반스 씨. 다시 한번 말하고, 다른 분들께도 널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대학 총장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전 마탑주였던 시어도어 님을 모실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 땄었던 자리였고요. 애초에 부탑주 자리도 두 명이나 있던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네? 시어도어 할, 아니, 총장님 성함이 시어도어였어요?"


루크는 아차 싶었다. 그에게 아직 이 비밀을 알려주기엔 시기상조였다. 다행히도 현우는 시어도어의 이름을 듣고도 크게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침묵을 유지하는 가운데, 빌 에반스는 침묵을 끊고 현우의 질문에 답했다.


"아직 신입생이라 모르실 수도 있지요, 암. 루크 님은 시어도어 볼티모어 님의 제자이니까요. 첫 번째 제자가 니암 콜님, 세 번째가 루크 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정통성으로 따지자면 루크님 또한 콜님에게 밀리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렇게 여러 번 말씀하셔도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에반스 씨. 외람된 말씀이지만, 막말로 당신이 끄나풀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장현우님!"

"장! 손님께 무슨 망발이냐! 어서 사과하게!"


어깨를 으쓱거린 현우는 루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서 루크는 한치의 자만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렷이 스승을 바라보는 제자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자를 믿지 못하면 이름뿐이라 한들 스승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는 생각했기에, 한번쯤은 현우를 믿어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거기엔 더 이상 이 논쟁에 자신은 끼기 싫다는 소망 또한 끼어 있었다.


"아뇨.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루크 선생님. 저를 믿어보시죠."

"흐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에반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에반스 씨를 영입한다고 칩시다.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뛰어난 연구 실적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마법 실력이 뛰어난 쪽인가요?"

"그것은 말하자면 깁니다. 그런 고로..."

"아직까지 다른 파벌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루크 선생님의 파벌이 되고 싶다 하시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어요. 더군다나 실력이 있는 분이 아니신 걸요."

"그렇게 저를 무시하시면 곤란합니다, 후배님. 적어도 당신보다는 훨씬 뛰어난 마법사입니다. 세월을 무시하지 마세요."


원하던 반응을 이끌어 낸 마법사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정 합류를 원하신다면, 저랑 대련을 해보시겠어요? 어떠세요? 저와 겨뤄서 이기신다면 저는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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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용의 시험(1) 19.09.25 67 1 13쪽
70 70화. 안드레와의 대담(2) 19.09.24 67 1 14쪽
69 69화. 안드레와의 대담(1) 19.09.23 68 1 14쪽
68 68화. 안드레의 초대 19.09.21 81 1 13쪽
67 67화. 개판(5) 19.09.20 77 1 14쪽
66 66화. 개판(4) 19.09.19 62 1 14쪽
65 65화. 개판(3) 19.09.18 68 1 13쪽
64 64화. 개판(2) 19.09.17 75 1 13쪽
63 63화. 개판(1) 19.09.16 69 1 14쪽
62 62화. 오분 전(2) 19.09.12 6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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