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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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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연재수 :
2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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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0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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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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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4화. 개판(2)

DUMMY

마치 대형 마수를 사냥하는 것처럼 현우를 습격해온 사람들은 적절히 거리를 벌리며 그들을 노렸고, 키튼은 그에 맞추어 대형 마수처럼 날뛰며 패트릭과 현우를 지켰다.


"라이트닝 볼트!"


허리춤에 찬 물병을 깨부숴 물을 흩뿌린 키튼이 그대로 전격을 땅에 뿌려진 물에 쏘았다.

전기가 삽시간에 퍼지며 축축한 땅을 밟은 자들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패트릭이 그 틈을 노려 검으로 적들을 베었다.


수많은 전장에 참여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키튼은 철과 피 앞에서도 판단력을 잃지 않은 채 철로 마감된 스태프의 끝으로 날을 튕겨내며 다른 손으로 마력탄을 쏘아 견제를 날렸다.


현우가 단단히 마법으로 적들의 원거리 지원을 차단하고 있는 한, 그들은 결국 근접전을 강제당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용병으로 이골이 난 키튼을 막기 버거워했다.


돈을 풀어 솜씨 좋은 용병을 확보한다는 슈타인 상단의 계획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계속 이렇게만 유지한다면 이들만으로 적의 공세를 한 뭉텅이 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현우의 뒤쪽으로 다가오는 검은 손길이 현우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악!"


상완의 옷이 갈라지며 피가 살짝 튀었다. 쓰라린 팔뚝을 부여잡은 현우는 다행히 '아드리안의 바람'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기습의 정체를 파악한 현우가 끓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되뇌었다.


"에레보스..."


헥쉴즈 마을의 언덕에서 보았던 검은 털의 마수가 그를 향해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정체는 파악했지만 현우는 그것을 향해 별다른 대응을 내릴 수 없었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들을 둘러싸는 바람의 가호를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근처에 있는 두 명의 사람은 이미 적들과 손이 얽혀있는 상태,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 받은 키튼이 지원을 올 것이란 건 이미 그와 이야기된 상태였기에 가능했지만, 과연 추가로 다른 쪽에서 이곳을 도와주러 올 것인가.


결국 현우는 한가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는 점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바람의 기류가 다시금 바뀌었다는 것을 빠르게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현우가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 테니.


마법을 멈춘 현우는 급히 마력탄을 쏘아 에레보스를 견제했다. 검은 늑대는 지난 날의 기억을 잊지 않은 듯 마법사의 스태프에서 나오는 휘황찬란한 빛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아아!"


기합과 함께 현우는 바람을 한 곳으로 끌어 모았다. 단순한 마력탄으로는 녀석의 움직임만 제한시킬 뿐,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기압탄 발사!"


아이들이 차고 노는 공 수준의 크기로 모여진 기압탄이 검은 빛을 쫓아 현우의 스태프에서 터져나갔다.


"크허엉!"


에레보스는 기압탄을 슬쩍 피하고서는 다시 송곳니를 드러내며 현우의 목을 노렸다. 멀찍이 날아오른 늑대를 향해 현우는 스태프의 아래를 잡고는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마력까지 더해져 강화된 스태프가 늑대의 배에 작렬했다.

마수였어도 그 구조는 일반적인 동물들과 비슷한지, 강철같이 뻣뻣한 털도 배 부분을 완전히 보호하지는 못한 듯 했다.

끼깅거리는 소리와 함께 멀찍이 날라간 마수는 공중에서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무언가 날아오는 낌새에 현우는 황급히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조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날카롭게 떼어진 돌멩이가 '퍽' 소리와 함께 땅에 박혔다.


돌멩이를 던진 것이 누군가를 지금 상황에서 찾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동일했다. 지금은 그의 앞에 서 있는 에레보스를 먼저 처리해야 함이 옳았다.


다이어 울프 무리를 상대했을 때와 같이 그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싶은 마법사가 스태프에 마력을 피워 올린다. 그 때, 갑작스레 에레보스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크르릉' 소리와 함께 검은 늑대는 현우를 피해 멀리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 겪었던 경험이 그에게도 각인이 된 것일까.


차라리 다른 이들을 노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듯, 현우를 향해서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은 채로 검은 늑대는 다른 사냥감을 물색하러 모습을 감췄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마법사에게 이 전장은 숨을 고를 시간조차도 주지 않았다.

또 다른 위협이 현우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팔뚝에 솟아오른 털에 현우는 서둘러 실드 마법을 쳤다.


그리고 다가오는 충격에 실드가 부서지며 현우는 주르륵 밀려났다.


"어디서 한눈을 파는 거지?"


한 손에는 방패를, 다른 손에는 철퇴(Mace)를. 현우는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히 축제에서 카인이 보여준 것과 비슷한 광경이었다.


"흐아아!"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깔았지만 아무래도 여성인 듯 그 특유의 목소리를 내지르며 습격자는 그대로 현우를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으읏!"


휘둘러지는 둔기를 막을 것은 오직 양손에 쥐어진 막대기 뿐이었다.

육중한 둔기에 비하면 가냘픈 스태프였지만 현우는 그것으로 그녀의 공세를 막았다.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스태프를 타고 흘러 드는 충격에 손목이 아렸다.


"마법은 끊겼다!"


이미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상태임을 알아서였을까, 여성 용병은 뒤쪽의 무리를 향해 중요한 사실을 알렸다.


"기압탄 발사!"


충분한 준비과정 없이 발사된 기압탄을 그녀는 손목에 장비한 타지 실드로 막았다. 마법으로 세공이 되어있는 지 기압탄이 터지며 발생하는 바람의 충격파마저도 수월히 막아낸 여성이 다시 한번 팔을 흩뿌려 메이스를 휘둘렀다.


'깡!'하는 소리와 함께 마력을 머금은 스태프와 메이스가 부딪혔다.


"용병의 불문율이니 내 이름을 밝히마. 내 이름은 안네. 내게 죽은 자들에게 내 안부를 전해라."

"아직 전 살 겁니다."


안네의 외침을 들었던 자들이 파비스의 보호 아래, 다시 쇠뇌에 화살을 장전하고 있었다. 급히 키튼이 다시금 불꽃의 장벽을 통해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그조차도 모르나, 어쨌든 임시방편으로나마 원거리 저격을 피할 시간을 벌었다.


현우가 위험한 것을 파악한 패트릭이 그에게 다가가려 시도를 해보지만 다른 이들의 무기에 검이 막히며 공방이 이어진다. 그렇게 현우는 혼자서 안네를 상대할 수 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마법사가 옆에서 몰아치는 둔기의 일격을 실드로 막는다. 마력이 둘러진 메이스가 실드를 가볍게 찢었다. 그리고 바로 안네의 왼손을 휘두른 그 주먹질에 현우의 턱이 돌아갔다.


털썩.


공중에서 핑그르르 한 바퀴를 돌며 현우는 땅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여성이라고 얕본 것은 아니었다. 용병이라 자신을 일컬은 안네가 그녀의 완력을 보조해줄 수 있는 둔기를 너무나도 잘 다루는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요인이었다.


"자, 이제 끝을 내지."


터벅터벅 한 걸음씩 옮겨가는 안네를 멈추게 한 건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현우의 목소리였다.


"아직도 살아있었나."

"요 근래 험한 일을 많이 당해서인지, 정신이 웬만한 일로는 나가지 않네요."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거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피를 봐야 하나요!"


마법사의 외침에 안네는 그저 코웃음만 쳤다.


"어린 새끼구만. 완전히 애송이야? 아까 그 놈처럼 너도 마드라드에서 온 녀석이냐?"


현우는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안네가 왼손에 메이스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돈을 주니까 처리를 하는 거다. 애초에 네 녀석처럼 따질 거였다면 여기에 투신하는 게 아니었지."

"그래서. 당신은 생전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묻으려는 건가요?"

"잡담은 그만. 이제 보내주마. 마법사란 연놈들은 조금의 기회만 있어도 바로 떠벌대니까 말이야."


멀찍이 쓰러진 현우에 거의 다가선 용병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하늘 높이 올린 둔기를 그대로 바닥에 누워있는 그를 향해 내려쳤다.


"으아아!"


무릎을 꿇은 채로 엉거주춤 일어선 현우가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스태프로 둔기를 막는다. 부들부들 떨리는 대치가 이어진다.


우지끈-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스태프를 동강낸 메이스가 그대로 현우의 무릎을 스치고 지나갔다.


"으아악!"


서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이나, 핏물과 살짝 뭉개진 살점이 후드득 옷에 번졌다.

쓰라리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고통이 그를 덮쳤다.


일어서려던 현우가 다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던 이유 중 하나였다.


"자, 이제 마지막 유언을 해보지."

"그, 그래서요. 기억이라도 하시게?"

"그래. 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목숨을 거둔 자들의 마지막 말은 기억하고 있지. 그게 내 나름대로의 추모다."


그녀의 처리 대상이었던 마법사의 앞까지 온 안네가 조용히 마지막 휴식을 내리려는 때였다.


"저기. 용병계에선 그런 말이 없나 봐요."

"무슨 이야기지?"

"키튼 씨도 저런데, 제가 어리다 해서 방심하신 건가."


조금 전에 부서졌던 스태프의 나무 중심에 박혀 있던 마석 부스러기들. 현우는 그것을 쥔 손을 펼치며 안네의 눈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플래시!"


환하다 못해 맨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을 화려한 빛이 번쩍이다가 사라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안네는 눈을 감고 고통스러워하며 이리저리 메이스를 휘둘렀다.


"이 자식!"


멀찍이 거리를 벌린 현우가 제대로 된 자세는 아닐지언정 일어서서 말했다.


"제 쪽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뭣이!"

"당신의 이름을 꼭 기억할게요, 안네."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시계에 몸부림치는 안네를 바라본 현우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이제는 그리 많이 남지 않은 마력을 다시 끌어올린다.

사실 마법을 쓰는 것에 한정한다면, 스태프보다야 지금처럼 양손이 편하긴 했다.


"바람의 검이여, 적의 공세를 꺾고 사기마저도 베어낼 질풍의 편린이여!"


봄꽃을 부르는 노래, 적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일격,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마법까지.


"불어라, 그리고 베어라! 그리하여 이 전투를 끝낼 것이라!"


그가 만들었던 단 하나의 마법을 제외하면, 직접적으로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마저도 그는 적의 의지를 꺾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으니, 현우는 마법으로 인간의 생명을 취할 셈은 추호도 없었다.

다이어 울프를 베긴 했었지만, 그것과 이것은 이야기가 다른 것이라.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마수나 괴물들에게는 그리 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에블린의 경우도 겪긴 했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노리지는 않았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오늘 아침까지만 하여도 함께 웃고 지내던 사람이 한 순간에 목을 꿰뚫렸다. 생전 처음 보는 이가 가볍게 자신을 죽이려 들었다.


사람의 목숨 앞에서, 현우는 입을 들썩거리며 한 마디의 말을 내뱉는다.


"칼날 돌풍."


스태프에서 뜯겨진 마석을 매개로, 순식간에 현우의 앞에 모여든 바람이 회전을 시작했다. 그에게 루키란 칭호를 얻게 해준 그 칼날은 순식간에 위로 치솟아,


털썩.


안네의 가슴 쪽을 베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초점을 잃은 그녀의 눈이 탁해졌다. 그대로 풀썩 쓰러지는 신형 너머로 악에 받친 마법사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첫 살인이었다.


그의 마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양손을 뻗어 주변의 바람을 모은 현우가 심상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마음의 공간에서 불어나오는 차가운 서릿바람이 두 손에 엉겨 붙었다.


"바람의 검이여, 적의 근육을 찢어 발기고 뼈를 도려낼 질풍의 편린이여!"


그의 감정으로 발휘되는 마법의 주문은 그 전의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베고 부숴라. 그대의 이름에 적들은 공포에 잠기리라."


마법의 주문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그 뒤로는 다시 사용하기가 어려움을 현우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쏘아진 화살은 되돌릴 수 없었고 지금 그의 마음도 그러했다.


"너의 이름을 드러내라, 칼날 돌풍!"


서릿바람은 그대로 맹렬히 회전해 추상과도 같은 칼날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쏘아진 현우의 마법이 뒤에서 패트릭을 덮치려는 자의 팔을 그대로 도려낸다.

키튼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의 칼과 목을 베고도 그대로 날아간 바람의 검날은 멀찍이 떨어져 있던 파비스마저 두 동강 내었다.


"뭐, 뭐야. 전에 봤던 거랑은 뭔가 달라."


키튼의 독백이 어느새 주변에 쓰러진 적들에게 퍼졌다. 그러나 독백이 왜 독백이겠는가. 단지 허공만 두드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의 원인인 당사자는 손을 부들부들 떤 채로 서 있었다.


"하아아."


마치 짐승과도 같은 숨을 토해내는 현우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다음 적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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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용의 시험(1) 19.09.25 67 1 13쪽
70 70화. 안드레와의 대담(2) 19.09.24 67 1 14쪽
69 69화. 안드레와의 대담(1) 19.09.23 68 1 14쪽
68 68화. 안드레의 초대 19.09.21 81 1 13쪽
67 67화. 개판(5) 19.09.20 77 1 14쪽
66 66화. 개판(4) 19.09.19 62 1 14쪽
65 65화. 개판(3) 19.09.18 68 1 13쪽
» 64화. 개판(2) 19.09.17 75 1 13쪽
63 63화. 개판(1) 19.09.16 69 1 14쪽
62 62화. 오분 전(2) 19.09.12 60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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