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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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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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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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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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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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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5화. 개판(3)

DUMMY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적어도 현우가 있던 전장은 이미 분위기가 크게 기울었다.

본래의 마법이 갖는 그 압도적인 파괴력. 더군다나 다른 이들은 '아드리안의 바람'의 제한 조건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습격자들의 눈에는 손짓 한 번으로 그들의 쇠뇌를 무력화시킨 마법사가 다시금 각성했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말했다.

이미 현우의 돌풍에 열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충분히 그렇게 보일 만 했다.


"으..."

"당황하지 마! 다른 곳에서도 지원이."

"으랴아아!"


적들이 주춤거리는 틈을 타 키튼이 그 기백으로 마력탄을 쏘았다. 적들이 마법에 질린 그 틈을 노린 공격이었다.

평소라면 누비 갑옷의 방어력을 믿고 버틸 간단한 마력탄에도 그들은 기겁하며 마법을 피하기 위해 파비스로 달려가 숨거나, 아예 그것마저도 포기한 채 슬그머니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법의 주문은 평소와 달랐지만, 이미 그것 하나로 적들의 기세는 풀썩 꺾인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우는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여전히 얼음이 달라붙어 있는 양손을 허공에 고정하고선 새로운 주문으로 마법진을 그려냈다.


"차가운 얼음의 화살은 적의 숨통을 끊을 지어라, 아이스 애로우."


매끈하게 정련된 얼음 덩어리와 적을 향해 서있는 날카로운 촉.

이미 갈 곳을 정한 그 마법은 곧바로 가장 가까운 거리를 날아 적의 몸뚱어리에 박히기 시작했다.

물론 리넨(Linen, 아마포)으로 둘둘 감아 만든 갑옷은 역시나 똑같은 화살 형태의 마법에 대해 뛰어난 방호력을 보였다. 살이 뚫리고 고통에 몸부림칠 일은 없었다.


"끄아아!"

"사, 살려줘!"


그러나 자신의 몸에 화살이 박혔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했다

.

그들의 장으로 보이던 거한은 이미 차게 식은 육신만 전장에 남겨놓았고, 동료들 또한 하나 둘씩 제압당하거나, 저 미친 마법사에 의해 도륙 당했다.


파비스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쇠뇌병들마저 털썩 쇠뇌를 손에서 놓치는 이가 생겨났다.


"후퇴! 본대로 후퇴하라!"


마침내 이들은 무기를 버리고 서둘러 그들이 왔었던 본대로 합류를 선택했다.

이미 스러진 시체와 제압당한 이들, 그리고 덩그러니 놓여진 쇠뇌와 날붙이들, 대형 방패까지.

그것들만이 초고도의 흥분에 빠진 현우와 키튼, 패트릭 앞에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


"자, 장. 진정해!"


아직도 눈알을 희번덕거리는 현우를 향해 키튼이 박수를 치며 주의를 돌려놓는다.


"여기까지 오면서 저 사람이 저런 건 처음 보는데요."

"첫 살인이라 하더군. 아마 그래서 그럴 거야."


패트릭이 현우를 가만히 살펴보면서 다른 마법사에게 말을 걸었다.


"어떡하죠."

"일단은 진정시켜야겠지."


시체로 덮이지 않아 비교적 깨끗한 땅에 스태프를 박은 키튼은 두 팔을 벌려 아무런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그는 천천히 현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적과 아군을 분간할 수 있는 의사가 남아있던 것일까, 완전 해까닥 넘어가지 않았던 마법사는 마지막 남아있던 정신을 부여잡으며 키튼의 지시에 따랐다.


"천천히 심호흡을 해. 귀로 느껴봐."

"..."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지? 전투는 끝났어. 네가 이겼어."


가만히 현우를 진정시키던 맨손의 마법사는 그의 지척에 다다라서는 살포시 현우를 안아주었다.


"너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지금은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 있어."

"...네."

"포션, 가지고 있는 것 있나?"


현우는 주섬주섬 허리춤에 매단 천 주머니에서 포가 준 포션을 하나 꺼냈다. 그렇게 굴렀음에도 깨지지 않은 포션의 뚜껑을 '뽕'하고 열었다.


"드실래요, 아저씨?"

"너 먼저 먹는 게 순서에 맞는 것 같군."


일말의 불안하고 뜨거운 감정마저도 식혀버릴 청량감이 현우의 목을 타고 위장에 다다랐다. 마치 박하를 씹었을 때처럼 온몸으로 퍼지는 시원함이 일렁이던 폭풍을 가라앉혔다.


현우가 건넨 포션을 한 모금 들이킨 키튼이 그에게 물었다.


"이제는 괜찮니?"

"덕분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마법사에게, 앞서서 이 길을 걸었던 선배의 입장으로 호방한 웃음을 지은 사내는 현우의 손을 잡았다.


"지금은 한 가지만 생각하래도."

"하지만요. 저는 그 사람보다도 더 못한 존재가 되어 버렸는걸요."


감정이 다시 격해진 것일까, 심정을 토로하는 현우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주변의 정리를 대강 끝낸 패트릭이 검을 들고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키튼은 마법을 이용해 물을 만들었고, 패트릭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흐르는 물에 검을 씻었다. 말라붙은 피가 다시 풀어지며 물이 붉게 물든다.


그 앞에서 현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안네라고 했어요."

"이제는 지키지 않는 이가 더 많은 용병계의 불문율 중 하나다. 적어도 자기가 목숨을 끊을 상대에게는 이름을 밝히는 것이 도리지. 나는 그런 것에 얽매이진 않지만."

"그 사람은 여태까지 자신이 죽인 자들의 이름을 계속해서 기억한다고 했지요."


착잡한 심정을 여실히 드러낸 현우의 입가는 어딘지 모르게 비틀려 있었다.


"저는 이미 수많은 이들을 처리했는데, 이 손으로 건질 수 있는 건 안네라는 이름 하나뿐이군요."

"다들 그런 것들을 겪었으니까...라는 말로 네가 겪은 그 아픔을 낮추진 않을게."


키튼은 현우의 상태가 보기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서둘러 아직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곳으로 지원을 가야 했다.

허나, 지금 받쳐주지 않는다면 쓰러지고 말 것이 눈에 선했다.


"일단은 눌러두는 게 좋더라. 방금 일로 일단 크게 터졌으니까 눌러두어도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해."

"그런 편...인 것 같네요."

"쓰라린 상처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건 사제의 축복 같은 게 아니라면, 결국엔 자연 치유에 기댈 수 밖에 없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시간 뿐이란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패트릭마저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 저야 뭘 알겠습니까. 슈타인 상단에 소속되면서 돈 벌어 밥 빌어먹고 사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 저도 처음 제 동료가 죽고 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날 밤은 술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럼 패트릭 씨는 지금은..."


애써 입가의 근육을 당기며 패트릭은 의연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건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습니다. 알란이 죽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요. 그래도 버티는 겁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도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많잖아요."

"네."


딱히 손을 꼽아 말해보라면 입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마드라드에서 만났던 이들을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현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도 먹여 살려야 할 처와 자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당당히 슈타인 상단의 일원으로 검을 빼 들은 거고요. 그리고 하나 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현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패트릭은 그를 꼭 안아주었다. 숨이 막힌 현우가 등을 탕탕 치고 나서야 팔을 푼 그가 말했다.


"키튼 씨도 저와 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 아픔 자체를 줄일 수는 없어요. 누구든 마찬가지겠죠. 그래도 그 여파는 시간이 줄여줄 수 있다는 것을 장,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거에요."

"대충 그런 말이다."


헝클어진 머리를 바람으로 대강 넘긴 현우는 정신을 차려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의 눈동자에 다시 총기가 감돌았다.


"두 분 말대로 일단은 더 이상 그 생각은 하지 않을게요."

"일단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서둘러 이동하지. 다른 쪽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군."


그들은 고요해진 전장을 벗어나 그들의 마차가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황이 일단락되기 까지 시간이 꽤나 소모되었기 때문에, 현우 일행은 불안한 마음으로 처음 그들이 맞붙었던 공터에 도착했다.


여전히 이곳 저곳에 소규모의 난전이 펼쳐지긴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거의 정리가 된 듯 싶었다.


"키튼, 장. 어디 갔다가 오는 거지?"


얼음 송곳으로 도망치던 적의 어깨를 꿰뚫은 루테가 수풀을 헤치고 온 두 마법사와 호위 한 명을 보고 말했다.


"말하자면 깁니다. 이곳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대강 상황은 정리되었습니다. 적들의 쇠뇌병의 전력이 이곳에 없어 다행이었지요. 아직 후방에 있던 흑마법사 등의 무리가 남아있긴 하지만, 우리 쪽의 승리입니다."

"사상자는 얼마나..."


루테는 대답 대신 슬쩍 턱으로 브링턴을 가리켰다.

한쪽에는 여러 포션과 약초 등을 쌓아 논 브링턴은 부상자들에게 응급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엔 용케 살아남은 서기가 장부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여진 사람들의 얼굴 위에는 아마포 하나씩이 놓여져 있었다.


"절반 쯤 다쳤고, 다시 그 중에서 삼분지 일은 사망했네."

"...부디 사랑하던 이들의 품으로 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군요."

"얼음 마법은 이런 류에도 유용한 편이라서. 최소한 시신은 온전히 그들에게 돌아갈 거다."


한솥밥을 먹던 동료였지만, 얼음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는 애써 치미는 감정마저 꽁꽁 얼렸다. 완전히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


"포 씨는 어디 갔나요?"


현우의 눈을 바라본 루테는 어느덧 그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앞에서 아이나 뮬과 대치 중이다. 너, 뭔가..."


루테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음에 불구하고, 그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현우는 무작정 포와 뮬이 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현우의 눈 앞에 새로이 나타난 풍경은 흑마법사가 뮬을 붙잡은 채로 포와 다른 용병들과 대치중인 장면이었다.


"아이나 뮬을 내려 놓고 말하지. 흑마법사."

"내 안전을 보장해 주시오."


아이나 뮬의 팔뚝은 얕지 않은 자상이 그어져 있었다. 흘러내리는 핏물이 똑똑 떨어졌다.


"자네도 우리를 공격한 일행에 포함되지 않나? 지금 항복한다면 신변의 구속만 할 것을 상인으로서 보장하지."

"세상에나 칼을 들고서 계약을 운운하는 머저리를 믿는 마법사가 있답니까!"


피가 충분히 모였다 생각한 흑마법사는 그것에 자신의 마력을 섞어 마법을 발동시켰다.


"이리 오라! 피에서 태어나 피에 굶주린 마수여. 여기, 정결한 여성의 피가 있으니 이를 제물로 삼아 그대를 부르리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피는 이내 끈적해지며 네발 달린 동물의 형상을 이룬다. 온통 암적색으로 이루어진 피부 너머로 그보다 더 붉은 안광이 비췄다.


피를 흘려 정신을 잃은 아이나 뮬을 내버려둔 마법사는 다시 소환한 검은 늑대의 옆에 새로이 부른 핏빛 마수를 두었다.


"이번엔 다를 거다. 에릭 포."

"다른 상단에서 자네를 고용할 정도로 간절했던 건 아닐 것 같군. 네 배후가 누구냐."

"그것을 알려줄 것 같았으면 진작에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겠지! 가라, 에레보스! 블루트!"


* * *


"이 때다."

"이제야 말입니까?"


어딘가에 있는 마법사의 공방, 녹색 머리의 마법사가 눈을 빛내며 지금이 적기라 말했다.


"준비는 되었겠지."

"예."


마법사는 손가락을 튕겼다.

이미 그 특유의 마력을 추적한지 오래.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자신의 부하를 옮겼다.


"자, 어서 빨리 가져 오도록 해."


* * *


갑자기 발 밑이 크게 울렸다. 이미 기절한 상태의 아이나 뮬을 제외하면 살아있는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혹여 지진이나 산사태일수도 있어 현우는 급히 다른 곳을 둘러본다. 그러나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가라! 내 마수들이여! 네 앞의 적들을 모조리 물어뜯어라!"


다른 이들이 정신을 차리기 앞서 흑마법사는 먼저 선공 명령을 내렸다. 그의 충실한 마수들이 포 일행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이었다.


단단했던 땅이 갈라지며, 거대한 무언가가 우뚝 솟아오른다.

반짝이는 결정의 광석은 필시 마석이 틀림없었다. 수레에 있던 것들과는 양과 질 모두 그 궤를 달리했다.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마석 하나하나가 쉬이 찾아볼 수 없는 크기와 밀도를 자랑했다.


"고, 골렘."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던 던전의 수호자가 현우 일행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골렘의 머리에서 녹색 안광이 번쩍 빛났다.

그것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발 밑을 어슬렁거리는.


콰직-


블루트 한 마리를 발로 짓이기는 것이었다.


단순히 발로 슬쩍 눌렀음에도 핏빛 마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골렘의 발에 묻은 끈적이는 피의 흔적만이 그것이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뭐, 뭐야 저건."

"주인님의 명을 받들어 골렘 '이나', 여기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골렘은 팔과 다리의 관절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숨죽여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던 탓에 엄청난 시간이 흘러간 것만 같았다.


"목표물 확보를 시작하겠습니다. 순순히 내놓으시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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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용의 시험(1) 19.09.25 6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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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화. 안드레와의 대담(1) 19.09.23 69 1 14쪽
68 68화. 안드레의 초대 19.09.21 81 1 13쪽
67 67화. 개판(5) 19.09.20 78 1 14쪽
66 66화. 개판(4) 19.09.19 62 1 14쪽
» 65화. 개판(3) 19.09.18 69 1 13쪽
64 64화. 개판(2) 19.09.17 75 1 13쪽
63 63화. 개판(1) 19.09.16 69 1 14쪽
62 62화. 오분 전(2) 19.09.12 61 2 14쪽
61 61화. 오분 전(1) 19.09.11 5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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