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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Eternal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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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5.03.19 19:28
최근연재일 :
2015.09.19 11:13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9,053
추천수 :
275
글자수 :
201,957

작성
15.07.12 15:43
조회
208
추천
4
글자
13쪽

3장 < 영웅들 > (3)

DUMMY

이벨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이 곧 지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리첸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미래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온갖 기괴한 형상의 새카만 괴물들이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들이 도망가다가 떨어뜨린 횃불에서부터 풀로, 나무로, 집으로 불이 번져 주위에 새카만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사람의 몸보다도 큰 손으로 서넛의 사람을 한 번에 낚아채 자신의 몸 안으로 우겨넣는다. 그리고 괴물의 안으로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조용히 괴물의 일부가 되어 사라진다. 괴물에게 먹힌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 전례는 없다. 만약 그랬다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을텐데...

이벨은 자신의 오른손에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애검, ‘은하수’였다. 아... 그제야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이것은 꿈이다. 하필이면 대재앙이 도래한 이후 가장 끔찍했던 기억의 파편이었다.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은하수를 난잡하게 휘두르며, 괴물들을 차례차례 베어나가며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렸다. 그의 눈에는 오로지 반쯤 폐허가 되어 무너진 가샤 왕성만이 들어왔다. 그의 은하수에 서린 빛이 베어가를 때 괴물들은 마치 먼지가 흩날리듯 바스러져 사라졌지만 그는 괴물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괴물들은 너무나 간단히 스러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몇 분 후면 멀쩡하게 원래 모습을 되찾아버린다.

죽일 수 없는 적과의 사투.

이는 유라제이 던 호크도, 가르포르 륜 샤릇테 가샤도, 이벨 카샤르도... 단 한 번도 조우한 적 없는 적이었다. 괴물들 앞에서는 압도적인 힘 따위는 무력했다. 그들은 압도적인 시간으로 그들을 짓눌렀으니까. 그 탓에 이미 괴물의 첫 번째 목표가 된 가샤는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르... 이 멍청한 자식이!!’

그 가샤의 왕성에는 아직 자신의 나라를 포기하지 못한 멍청한 국왕님이 버티고 있다. 이벨은 그 국왕님을 반쯤 죽여서라도 가샤에서 끌고 나올 각오였다.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간 그는 왕성의 벽을 부숴가며 다르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달려갔다. 그가 있을 곳이야 뻔했다. 가샤 왕성의 1급 비밀 장소, 격리의 방. 언제나 이벨이 식량을 빼먹고 잠자리를 해결하는 등 제 멋대로 사용했던 예의 그 곳이었다. 격리의 방의 천장을 뚫고 내려와 착지하자마자 주위를 살폈다. 친우는 그곳에 있었다. 오른손에는 대검을, 왼손에는 단검을 든 채 꼿꼿이 서있었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대체 여기에서 뭘 하는 거야!”

이벨의 외침에 다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아, 왔나.”

“왔나,는 무슨! 이미 국민들은 다 대피했다고! 이제 너만 피하면 끝나. 빨리 빠져나가자!”

거칠게 다르의 팔을 잡고 끌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벨은 그의 의지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머지 검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양손으로 다르의 멱살을 잡았다.

“뭐 하는거야... 빨리 튀어야 한다니까.”

다르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난 갈 수 없다.”

“분명 국왕은 나라를 버릴 수 없느니 그딴 말이나 지껄이겠지! 16년 전에 있었던 일을 벌써 잊어버린거냐? 넌 분명히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겠다고 했어. 이제 와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는 않겠지?”

“물론 기억한다. 다만, ‘왕이 되기 위해서’ 살아남겠다. 그렇게 말했다.”

이벨이 격양에 찬 목소리로 그의 면전에 대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넌 이제 왕이 아니야! 지금 이 꼬라지를 보라고! 네가 지켜야할 나라는 이제 더 이상 아무데도 없어! 넌 더 이상 왕이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다르는 이벨의 손을 가볍게 누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 눈과 마주한 순간 이벨은 그가 절대로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살아남겠노라고 했던 그 때의 눈빛과 같다. 다만 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정반대의 결심을 하고 있을 터였다.

“대체! 왜! 이따위 다 무너진 왕성이, 국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거야!?”

“뭐... 별 것 아닌 이유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여기에서... 누굴 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에 이벨은 화들짝 놀랐다. 그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지내온 몇 년 동안 그가 웃는 모습을 보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또한 동시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너... 설마 아직도......”

“그래,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이벨... 기억하고 있나? 나는 흑운의 재앙에서 2가지 약속을 했고, 그 약속에 의지해 살아남았고 아직까지도 그것을 붙잡고 살아있다.”

다르가 이벨의 어깨를 살며시 밀어내고 대검을 둘 사이에 세웠다.

“하나는 너와의 약속. 반드시 살아남아라. 그리고 왕이 되어라.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왕이 되어라.”

이어서 무릎을 꿇고 대검 바로 옆에 단검을 바닥에 찔러 넣었다.

“다른 하나는 유츠와의 약속. 돌아오면 꼭 내가 왕이 된 가샤에서 최고급 와인을 죽기 직전까지 마셔보자... 라는 약속.”

유츠... 그리운 이름이다.

이벨은 고개를 들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이름을 잊고 지냈는지를 생각했다. 거의 15년 가까운 세월동안 잊었던 이름을, 그는 아직까지 잊지 못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약혼녀를. 하지만 이벨도 다르도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틀림없이 흑운의 재앙 당시 이벨과 다르가 없는 틈을 탄 마족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감정이 집착인가. 혹은 사랑인가.

어느 쪽이든 같으리라.

“이벨. 이벨 카샤르.”

“...왜 임마.”

이대로 친우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분한 듯 고개를 떨어뜨린 채 주먹이 새하얘지도록 꽉 쥐고 있는 이벨을 보며 다르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 두 개의 검 중 하나를 가지고 가라.”

“뭐라고?”

“나는 단검을 추천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너에게는 더 이상 마법 같은 것이 필요 없겠지만 대검보다야 단검이 네가 사용하기에 더 유용하겠지.”

이벨은 그의 말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의 대검은 가샤 왕족에게만 내려오는 유서 깊은 검, 수성검守成劍. 이름 그대로 가샤를 지키기 위한 검. 가샤 왕국의 국보이자 가샤가 발전시킨 마법을 대대로 새겨온 뛰어난 마법 검이다. 단검은 가르포르 륜 샤릇테 가샤가 흑운의 재앙 때 직접 만들어낸 것으로 방운검埅雲劍이라 한다. 흑운의 재앙에 맞서기 위해 그가 익힌 인륜에 벗어난 마법들을 집약시켜 놓은 단검이다. 세간에는 다르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검으로 악명이 높다.

둘 다 감히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높은 검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자신의 각오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숭고한 정신에 검사로서 감히 먹칠을 할 수 없었다.

이벨은 이를 악물고, 목에 힘을 주어 겨우겨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럼... 방운검으로...”

한 뼘 반 정도 되는 단검을 잡은 그를 보며 다르가 옅게 웃으며 대검을 잡았다.

“그래.”

두 개의 검을 사이에 두고 선 두 명의 검사는 묵언으로 서로의 뜻을 주고받았다.

‘약속이다, 다르.’

‘그래.’

그리고 이벨은 지체 없이 뒤돌아 매섭게 달려 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박찰 때마다 손에 쥔 마검이 달콤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봐, 이대로 괜찮아? 너의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를 남겨둔 채 도망가고 있잖아.’

그는 이가 으스러지도록 악문 채로 왕성에서 빠져나왔다. 겨우 그것뿐이었는데도 이벨은 전신의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무력감과 후회와 죄책감의 세 줄기 사슬이 그의 몸을 무겁게 옥죄고 있었다. 결국 그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정말 반강제적으로라도 그를 끌고 나왔어야 했나?

그곳에 남아 함께 싸웠어야 했나?

분명히 남아 있었을 선택지가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이라도 그 선택지를 물고 늘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주위의 괴물들이 점차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상태로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벨은 고개를 꺾은 채 망연히 중얼거렸다.

“야... 다르... 이젠 나도 모르겠다.”

바로 그 때였다.


“아직까지도 얼빠진 채로 있었군. 가짜 녀석.”


허리가 꺾일 정도로 강력한 돌풍이 몰아쳤다. 그의 주위에 있던 괴물들은 모조리 바람과 함께 날아갔지만 이벨은 간신히 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몸의 균형을 잃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파할 새도 없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보다도 거대한 대검을 등에 짊어진 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리첸드로에게 전부 들었다. 네가 이벨 카샤르고 그런 너를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이라고.”

사내는 이벨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미안하지만 아직도 네가 이벨 카샤르라는 점은 동의할 수 없군. 내가 아는 이벨 카샤르는 적을 앞두고 그 따위 나약한 모습은 보인 적이 없으니까.”

“호크...”

유라제이 던 호크가 대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러 다시 한 번 주위의 괴물들을 날려버렸다.

과거 ‘폭풍의 기사’로 불렸던 그가 일으킨 바람은 시퍼렇게 번뜩이는 칼날처럼 매서웠지만 바위처럼 묵직했다. 그야말로 폭풍이다.

“주군은... 안에 있는가?”

그의 질문에 이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곁눈질로 이벨의 대답을 본 호크는 길게 한숨을 쉬고 다시 대검을 어깨에 얹었다.

“예상은 했지만 끝까지 바보로군.”

“어, 동감이다.”

“흥!”

크게 콧김을 내쉰 그가 이번에는 대검으로 힘차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온몸의 근육을 잔뜩 부풀리고 전투 태세를 갖추고 전방을 향해 함성을 내질렀다.

“허나 그렇기에! 내가 주군으로 모실 가치가 있는 분이다! 크아아아아아!!”

용맹하게 괴물들에게 돌진하는 호크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벨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녀석이구만.’

이벨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두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양손의 검을 고쳐 쥐었다. 저 검과 충성 밖에 모르는 우직한 바보 덕에 자신 역시도 지금껏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검을 휘두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그 때는 검을 휘두르는 데에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어.

깊이 생각하더라도 남은 사람들을 위해 금세 털어버리고 제일 앞장서서 달려 나갔다.

그는 최대한 숨을 들이 마시고 목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리고 외쳤다.

“야아아아!!! 나도 껴줘, 이 자식아아아아아아!!!!!”



“으으음...”

잠에서 깬 이벨은 멍한 표정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소리내어 하품을 했다.

“품위 없어, 이벨.”

옆에서 아헬리아가 가볍게 타박을 주었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몰라도 자신이 자고 일어날 때까지도 책상에 붙어 마법진을 손보는 아헬리아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우러나왔다.

“아침이야?”

“그런 구별이 쓸모 없어진지가 언젠데 그런 말을 하는거야?”

“아, 그렇지 참.”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빨리 밖에 나가봐. 슬슬 유라제이 경과 교대해 줄 차례야.”

“알았어. 으랏챠!”

괴상한 기합과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인사도 없이 창문을 통해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밖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곧장 뛰어내렸다. 땅이 울릴 정도의 진동과 굉음을 동반한 추락 후에도 이벨은 상처 하나 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양손에 든 검을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리며 소풍이라도 나가는 듯 한없이 가벼운 태도로 전장으로 향했다. 피로에 찌들어 있던 기사들은 이벨이 돌아온 것을 보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입가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자! 오늘도 딱 오늘 하루만 버텨 볼까나?”

오늘도 그의 오른손에는 은하수를, 왼손에는 그의 ‘친우’를 쥔 채 시선은 괴물의 군세에게 향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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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4장 < 사인회 > (3) 15.08.08 307 5 15쪽
35 4장 < 사인회 > (2) 15.08.05 302 5 9쪽
34 4장 < 사인회 > (1) 15.08.02 376 3 9쪽
33 3.5장 < 필생즉사 必生卽死 > 15.08.01 238 4 14쪽
32 3장 < 영웅들 > (10) 15.07.29 196 5 8쪽
31 3장 < 영웅들 > (9) 15.07.26 228 3 6쪽
30 3장 < 영웅들 > (8) 15.07.25 232 3 10쪽
29 3장 < 영웅들 > (7) 15.07.22 197 3 6쪽
28 3장 < 영웅들 > (6) 15.07.19 199 4 12쪽
27 3장 < 영웅들 > (5) 15.07.18 231 3 8쪽
26 3장 < 영웅들 > (4) 15.07.16 166 3 7쪽
» 3장 < 영웅들 > (3) 15.07.12 209 4 13쪽
24 3장 < 영웅들 > (2) 15.07.11 193 5 6쪽
23 3장 < 영웅들 > (1) 15.07.08 198 4 5쪽
22 # 1, 2장까지의 진실 ( 작가의 말 포함 ) 15.07.08 234 3 2쪽
21 2장 < 다른 어딘가의 이야기 > (10) 15.07.07 302 5 9쪽
20 2장 < 다른 어딘가의 이야기 > (9) 15.07.05 238 3 6쪽
19 2장 < 다른 어딘가의 이야기 > (8) 15.07.03 257 4 7쪽
18 2장 < 다른 어딘가의 이야기 > (7) 15.07.01 256 5 13쪽
17 2장 < 다른 어딘가의 이야기 > (6) 15.06.28 33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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