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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Eternal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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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5.03.19 19:28
최근연재일 :
2015.09.19 11:13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9,026
추천수 :
275
글자수 :
201,957

작성
15.08.26 14:05
조회
164
추천
3
글자
9쪽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3)

DUMMY

아셰른의 신녀에게는 예배 이외에도 움직여야 하는 일이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도’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규 예배 시간에 얼리-아셰른의 대로를 순회하는 단순한 일일 뿐이다. 얼리-아셰른은 엄밀히 말하자면 도시국가이므로 영토가 넓지는 않다. 도시를 꽉 채우듯 굽어진 대로를 따라 한 번 순회하는 데에 2시간 정도가 소요될 뿐이다.

샤드레아는 대부분의 예배 시간을 꺼려하지만 이 ‘순례’ 시간만큼은 좋아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누릴 수 있는 ‘외출’과도 다름없었으니까.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신녀는 신탑에서 나올 수 없다. 그래도 힘든 시기에 국민들을 다독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에 가능한 외출이었다. 대재앙의 이전에는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했었다.

“신녀님은 항상 순례할 때만 되면 기분이 들뜨시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래 보이나요?”

여신도의 말 따라 샤드레아의 들뜬 표정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외출이기는 해도 단순히 도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언젠가는 자신도 마을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물건도 사고 축제도 즐길 수 있게 되는 날을 상상하며 걷고 있노라면 절로 행복해졌다.

예배를 위한 옷으로 갈아입고 신탑의 정문으로 향했다. 신도들은 이미 순례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로즈 경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위치에 섰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신탑의 정문의 열렸고 바로 신도들과 함께 순례를 시작했다.

신탑의 정문에서부터 시작되는 대로는 얼리-아셰른의 정문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했다. 성문까지 갔다가 다시 신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일반 신도들은 행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길의 양옆에 줄지어 앉아 샤드레아의 모습이 보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깨끗하게 정돈된 길을 따라 걷는 순례자들의 걸음은 숭고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숭고함에 신도들은 순례자들이 자신의 앞을 지나갈 때면 조용히 고개를 숙여 그들을 맞았다.

한편 샤드레아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조금씩 고개를 움직여 마을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술집의 처마 밑에 자리를 잡은 거미줄이나 골목에서 털을 고르고 있는 고양이, 과자 부스러기를 운반하는 개미의 행렬, 아주 잠깐 지붕에 앉았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새들, 누군가 장난으로 쌓아놓은 듯한 돌멩이 탑 하나하나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가 생기를 띠고 살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웠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빛보다 빠르게 스쳐가는 법이다.

순례는 어느덧 성문에 도착해 기사 단원을 위한 기도를 짧게 해준 후 다시 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조금 아쉬웠지만 다음 외출을 기약하며 자신을 달래는 수밖에 없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일단은 지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조금 더 느껴볼 생각이었다.

“어, 어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소리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지붕 위에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아마도 순례자들을 더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보고 싶다는 어린 마음에 지붕으로 올라간 듯 했다. 문제는 그 지붕 위에는 상자나 빨랫대 등의 잡동사니들이 있다는 점이다. 상자 위에 올라가있던 어린 아이가 균형을 잃고 주변 물건들과 함께 아래로 떨어지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에는 샤드레아가 있었다.

“위험해!”

“피하세요, 신녀님!”

다른 신도들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 때에는 이미 다소 위험한 물건들까지 샤드레아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하지만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눈을 감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의연하게 서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겁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우당탕!

온갖 잡동사니들이 바닥으로 추락해 부서져 주변으로 파편이 튀었다. 먼지구름을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신도들은 모두 아연 질색하여 망연한 표정이 되었다. 어떤 신도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처럼 무서운 기세로 지붕 위로 뛰쳐 올라갔다. 순례자들이 먼지구름을 헤치며 신녀의 안위를 확인하려 모여들었다.

먼지가 걷히고 신녀가 멀쩡하게 서있는 것을 확인한 신도들은 일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내 존경의 눈빛으로 그녀의 옆에 서있는 우로즈 경을 바라보았다.

샤드레아는 솔직히 이제 끝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저런 상자에 머리를 부딪친다면 피를 조금 흘리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자에 깔리기 바로 직전에 자신의 눈앞을 가리는 커다란 손을 보았다. 그 손은 거대한 상자를 옆쪽으로 가볍게 던져버렸고 뒤이어 떨어지는 물건들도 척척 튕겨내 버렸다. 그녀는 그 손이 누구의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우로즈 경.”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고마워요.”

우로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번쯤은 자신의 감사를 받아주었으면 좋을 텐데. 그녀는 마음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지붕 위를 보았다. 몇몇 신도들이 아이들을 잡아 윽박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와 주세요.”

샤드레아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짙었다. 지붕에 있던 신도들은 총 다섯 명의 아이를 샤드레아의 앞에 데려와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어리다고는 해도 얼리-아셰른에서 신녀의 중요성, 위치, 존경을 모를 수는 없는 일이다. 실수였다고는 해도 자신들이 신녀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이제 곧 그에 합당한 처벌이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앞에 아이들을 앉히고 아무 말 없는 신녀의 행동에 아이들은 더욱 더 안절부절 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아이가 갑자기 넙죽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애들을 데리고 올라갔어요. 신녀님을 좀 더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그랬구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을 테니까 다른 애들은 용서해주세요!”

“그럴 필요는 없단다. 난 너희들에게 모두 같은 벌을 줄 생각이니까.”

그녀의 말에 비장하게 용서를 구한 아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용서받지 못했다. 그 소년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 모두 울기 직전의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울지는 않았다. 그만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샤드레아는 양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나이가 많은 소년에게 말했다.

“자, 이쪽으로 오겠니.”

“네, 읏, 네...”

아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애써 감추듯 빠르게 그녀의 앞에 섰다. 하지만 벌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언제나 어른은 아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을 알고 있으니까. 두려움에 몸이 떨리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물론 샤드레아가 주려는 벌도 아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녀는 나긋하게 양손을 뻗어 소년의 몸을 감싸 안았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소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샤드레아는 소년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팔에 힘을 주어 소년을 안은 뒤에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면 그렇게 말하면 돼. 옆에 있고 싶다고, 손을 잡아달라고, 안아달라고 말하면 돼. 너희들이 말해주는 것을 듣고 이뤄주는 것이 내 역할이니까. 자,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내 얼굴은 어떠니?”

“괴, 괴괴굉장히! 아름다우세요...”

“어머, 고마워라.”

샤드레아는 소년의 머리칼을 상냥하게 쓰다듬어준 다음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안아주고 웃어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로즈 경도, 순례자들과 신도들도 말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지금의 샤드레아의 모습은 누구도 의심을 품을 수 없는 성모의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이 부서져가는 세계에 남은 순수였으니까.




즐겁게 읽으셨나요? 만일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행복하세요~


작가의말

댓글, 추천은 언제나 환영해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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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7장 < 그리고 이야기는 가속된다 > (5) 15.09.19 293 2 10쪽
52 7장 < 그리고 이야기는 가속된다 > (4) 15.09.16 135 2 7쪽
51 7장 < 그리고 이야기는 가속된다 > (3) 15.09.12 161 2 6쪽
50 7장 < 그리고 이야기는 가속된다 > (2) 15.09.09 301 2 8쪽
49 7장 < 그리고 이야기는 가속된다 > (1) 15.09.06 198 2 7쪽
48 6장 < 아헬리아의 실험노트 > (2) 15.09.05 207 3 8쪽
47 6장 < 아헬리아의 실험노트 > (1) 15.09.02 272 2 7쪽
46 # 지금까지의 진실 (2) 15.09.01 207 4 3쪽
45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4) 15.08.29 264 4 13쪽
»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3) 15.08.26 165 3 9쪽
43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2) 15.08.23 248 3 9쪽
42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1) 15.08.22 277 4 7쪽
41 4장 < 사인회 > (8) +2 15.08.19 254 5 8쪽
40 4장 < 사인회 > (7) +2 15.08.16 295 4 9쪽
39 4장 < 사인회 > (6) +2 15.08.15 269 6 7쪽
38 4장 < 사인회 > (5) +2 15.08.12 272 4 9쪽
37 4장 < 사인회 > (4) 15.08.09 237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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