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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Eternal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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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5.03.19 19:28
최근연재일 :
2015.09.19 11:13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9,020
추천수 :
275
글자수 :
201,957

작성
15.08.23 14:30
조회
247
추천
3
글자
9쪽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2)

DUMMY

얼리-아셰른. 대륙의 유일한 신성독립국가. 사랑의 신 아셰른의 가호를 받는 종교국가이기도 하다.

“신녀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네.”

아셰른의 신녀는 사뿐히 발을 옮겼다. 그녀의 앞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그녀의 신성한 모습을 우러르고 있었다.

최소한의 장식만으로 만들어진 순백의 드레스가 눈이 부시다. 그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성은 그보다도 더욱 아름다웠다. 묶어서 단정히 올린 머리 아래로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는 마치 인적 없는 소금 사막을 보는 것 같다. 그렇지만 건조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빗방울마저도 튕겨낼 법한 탄력 있는 피부였다. 몸에 딱 맞춘 드레스는 마치 장인이 만든 도자기처럼 몸의 유려한 선을 부각시켰다. 그녀의 백발은 무정한 색이라기보다는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설원의 눈처럼 포근한 색이었다.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게끔 만드는 숭고함과 절제된 미,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이 여자야 말로 아셰른의 신녀에 어울렸다.

샤드레아 현 아셰른.

아셰른의 이름을 허락받은 유일한 여성.

대재앙의 도래 이후 몰락의 일각에 위태롭게 서있는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다. 아니, 적어도 얼리-아셰른의 모든 이는 그렇게 여겼다. 흑운의 재앙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강성한 마법국가 가샤, 검의 고향 셀라멘투르, 지식의 보배 루야테르, 샨테, 다라트노... 이들 모두가 저항하거나 배반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걸어 멸망이라는 같은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오직 얼리-아셰른만이 믿음이라는 길을 택했다.

얼리-아셰른에게는 흑운의 재앙이나 대재앙이나 별반 다를 것 없었다. 그들에게는 재앙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믿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신성국가였다.

과연 그것이 옳은 길인가.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얼리-아셰른의 신도들은 믿었다.

지금 대재앙의 폭풍에 휘말려 인류의 팔다리가 찢어져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이렇게 무사할 수 있는 것은 아셰른의 가호가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실제로 얼리-아셰른은 대재앙이라는 거대한 적에게 단 한 번의 생채기도 입은 적이 없지 않던가!

신녀는 신도들의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신도들이 볼 수 있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양손을 가슴에 모아 조용히 기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도들 역시 그런 그녀에게 그 이상의 행동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 때로는 눈이 닿는 곳에서 함께 기도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 특히나 이런 암담한 상황이라면 더욱이.

1시간 남짓한 그들만의 예배는 신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신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람들은 기도의 여운을 음미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개중에는 남아서 더 오랫동안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보며 무어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칭찬도, 멸시도 없다. 누군가는 믿음을 위해 움직여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믿음을 위해 믿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신녀는 신탑으로 돌아와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은 다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신탑의 최상층. 이곳은 신녀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신성한 장소였다. 그녀의 생활공간도, 개인적인 예배실도, 창고도 있는 또 다른 거주공간이었다.

너머가 살짝 비치는 실크 레이스가 드리워진 넓은 침대에 살짝 걸터앉은 그녀는 작게 숨을 토해냈다. 하루에 세 번 있는 얼리-아셰른의 예배는 언제나 그녀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신도들에게는 하루 세 번의 예배가 부담을 덜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그녀에게는 하루에 세 번씩 모든 신도들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잠깐 기지개를 켜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문지르고 있을 때 문 밖에서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신녀님.”

“우로즈 경도 고생 많으셨어요.”

신녀의 호위를 책임지는 얼리-아셰른의 ‘최후 1선의 기사’, 우로즈 하벨부르였다. 언제나 신녀와 동행하기에 실상 최상층의 출입을 허락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음 예배까지 일곱 시간하고 삼십칠 분 남았습니다. 이동하실 때까지 대기하겠습니다.”

“네, 항상 감사해요.”

“감히 제가 신녀님께 감사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둘의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이었다. 정말 필요한 말 외에는 나누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5분 넘게 이야기했던 것이 아마도 8년 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침대까지 길게 온기를 뻗어오는 ‘햇빛’을 따라 발코니로 향했다. 창을 열어 밖으로 나가 따사로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에서 햇빛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치인지를 알고 있었다. 얼리-아셰른에 있기에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축복이었다.

밖을 둘러보면 얼리-아셰른의 성벽 밖으로는 빛 한줌도 허락하지 않는 암흑의 공간이다. 마치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얼리-아셰른의 하늘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흑운의 재앙과 비슷한 광경이었다. 세상이 흑운에 뒤덮여 있을 때에도 얼리-아셰른은 빛을 허락받았었다. 이것으로 유추했을 때 흑운의 재앙 당시에 있었던 구름이 지금의 구름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몸을 숙여서 발코니의 난간에 양팔을 겹쳐 얹고 그 위에 왼쪽 뺨을 올렸다.

그리고 시선을 약간 아래로 향했다. 신탑이 거의 성벽에 밀착해 있었기 때문에 발코니의 바로 아래는 성벽이 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공간. 그녀는 이내 시선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왔다. 발코니는 그녀가 싫어하는 곳이었다. 원치 않아도 현재의 상황을 되새기게 되어버린다.

괜히 나갔다고 생각하며 찝찝함을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욕실이라고는 해도 더운 물로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는 장소일 뿐이다. 얼리-아셰른이라 해도 물은 귀했다. 목욕이라는 사치스러운 행동을 할 수는 없다. 몸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아무 것도... 할게 없네요. 좀 더 여유롭게 했어야 되는 걸까요.”

신성국가도 누군가는 나라를 꾸려가야 한다. 아마 지금도 상위 신도들은 역할을 나눠서 국가에 필요한 업무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정작 아셰른의 신녀라고 칭송받는 그녀가 이렇게 혼자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봐서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 상위 신도들이 가져온 문서를 최종 결정하는 것도, 그들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그녀였다. 문제는 너무나 우수한 나머지 누구보다도 빨리 일을 처리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시간이 남아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불만이었다. 좀 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상위 신도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부담을 지울 수는 없다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정말로 불만이었다.

아무리 얼리-아셰른을 위해, 신도들을 위해 움직여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자신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알 수 있다면 이렇게 공허하지는 않을 텐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 ‘무언가’의 정체를 조금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우수하니까. 그래도 그녀는 그 정체를 확실히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확정해버린다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또 다시 그녀는 스스로 공허함에 빠져버리고 만다.

“정말로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만일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행복하세요~


작가의말

 헤헤~ 추천, 조회, 댓글이 늘어서 행복한 작가 나부랭이입니다. 헤헤.


 댓글, 추천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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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7장 < 그리고 이야기는 가속된다 > (3) 15.09.12 160 2 6쪽
50 7장 < 그리고 이야기는 가속된다 > (2) 15.09.09 300 2 8쪽
49 7장 < 그리고 이야기는 가속된다 > (1) 15.09.06 197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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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6장 < 아헬리아의 실험노트 > (1) 15.09.02 271 2 7쪽
46 # 지금까지의 진실 (2) 15.09.01 207 4 3쪽
45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4) 15.08.29 263 4 13쪽
44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3) 15.08.26 164 3 9쪽
»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2) 15.08.23 248 3 9쪽
42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1) 15.08.22 277 4 7쪽
41 4장 < 사인회 > (8) +2 15.08.19 254 5 8쪽
40 4장 < 사인회 > (7) +2 15.08.16 295 4 9쪽
39 4장 < 사인회 > (6) +2 15.08.15 269 6 7쪽
38 4장 < 사인회 > (5) +2 15.08.12 272 4 9쪽
37 4장 < 사인회 > (4) 15.08.09 237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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