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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Eternal Dream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5.03.19 19:28
최근연재일 :
2015.09.19 11:13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9,028
추천수 :
275
글자수 :
201,957

작성
15.08.19 13:54
조회
254
추천
5
글자
8쪽

4장 < 사인회 > (8)

DUMMY

희아와 경수는 미리 집에 가서 파티 준비를 하고 있겠다며 돌아가고 예슬 씨도 사인회의 뒷정리를 돕겠다며 4층으로 올라가버린 지금 난 혼자 사인회장에 남아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다. 뭐랄까... 이런저런 일도 많았지만 오늘 같은 날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웃고 떠들고 신나게 뛰어다니고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일이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여운을 느끼고 있는 찰나, 누군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한 남자였다. 외모도 분위기도 평범하기 이를 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사인회는 이미 다 끝났는데 누가 왔는가 싶었다.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늦게 온 사람인 모양이었다. 마침 이 여운의 마무리를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던 차였다. 난 최대한 밝게 웃으며 사인 용지와 펜을 꺼내들었다.

「물론이죠.」

사인 용지에 사인을 적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씩 되새겼다. 가짜 성현 이벤트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긴장할 새 없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여기에서 실레이 님과 아만 님을 만난 것도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현실에서의 만남은 신선하고 낯설었기에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경수의 코스프레는... 말문이 막혔지만 원래 그런 놈이었으니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희아의 참가가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도 몰랐고 설마 내가 모르는 곳에서 회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정말 깜짝 놀랐다. 정말이지. 그 애는 나하고 관련된 일이면 너무 과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니까... 나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루를 곱씹으며 사인을 완성하고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제 이 사인이 그에게 전해지는 순간 오늘 내 할 일은 끝이 나는 것이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경수와 희아, 예슬 씨와 함께 신나게 뒷풀이나 하고 행복감에 젖은 채 잠에 들면 된다.

그야말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며 즐거이 웃으며 말이다.

아, 큰일 났다. 상상했더니 얼굴이 형편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되지. 이런 모습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 이 남자가 사인을 받기만 하면...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사인을 안 받는 거지?

내가 그에게 사인 용지를 내민지 거의 2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그는 손을 뻗을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단 둘이 있는 공간, 바스러져가는 석양, 점차 납빛으로 식어가는 벽, 숨을 옥죄여오는 적막과 그늘진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모습에 팔뚝의 솜털이 곤두섰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내 몸을 감싸오기 시작했다.

석양을 등에 지고 홀로 사인회장을 찾은 남자.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보는듯한 눈빛과 보일 듯 말 듯한 섬뜩한 미소가 내 몸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있었다. 이 감각만큼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의 음침한 분위기가 더 익숙한 느낌마저도 들었다. 이 남자... 어디선가...

“오늘... 즐거우셨습니까?”

「아, 네.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이렇게 팬이 찾아와주는 작가는 행복할 수밖에 없지요.」

“그것 참 다행이네요. 물론 나는 완전히 별개의 의미로 너의 팬이지만.”

「별개의 의미로... 라니요?」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쪽의 팬이라는 뜻이란다.”

내게는 소설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다른 방면으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 다른 쪽의 팬? 이 사람은 대체 뭐지?

남자는 양손으로 얼굴을 지그시 누르고 짓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벌써 잊어버린 거니? 왜 잊어버린 거야? 언제 잊어버린 건가? 그보다... 어떻게 잊어버린 겁니까?”

「제가 뭘 잊어버렸다는 건가요?」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지금이 마음에 들었나보구나.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달콤한 꿈에서 깨워주고 싶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구려. 좀 더... 좀 더 때가 무르익어야만 해.

「당신은 대체...」

“어쩔 수 없네.”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내가 내민 사인 용지 위에 작은 메모지를 살짝 올려놓았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그는 손바닥 크기의 조그만 칼을 머리 위로 높게 쳐들고 단숨에 두 장의 종이를 내리찍었다.

콰아앙!!

둔탁하고 소름끼치는 소음과 진동이 내 이성을 마비시켰다. 지금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칼...? 뭐야, 이거. 현실감이 사라진다. 이 순간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와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죽음은 어쩌면 아직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난 당신을 죽이지 못해. 겨우 저와 만난 것 정도로 너의 죽음을 확정시킬 수는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생각을 멈추지 말고,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서......”

기억해내라.

그리고 남자는 왔을 때와 같이 조용하게 사인회장에서 걸어 나갔다. 난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도 계속 멍하니 그가 사라진 출입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 저 문으로 돌아와 나를 죽이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저히 눈을 땔 수가 없었다. 난 예슬 씨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같은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슬 씨가 내 어깨를 잡아 흔들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큰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오감이 마비된다고들 하는데 내가 딱 그런 상황인 듯하다.

난 적막의 세계에서 가만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남자가 남기고 간 흔적을 살폈다. 단검과 메모. 난 책상에 깊숙이 박힌 단검을 뽑지 않은 채 메모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글자는 없었다. 너무나 단순한 도형이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유치원생도 쉽게 따라서 그릴 수 있는 수준의 그림.

문이었다.

세로로 길쭉한 문 두 짝이 굳게 닫혀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문 사이를 단검이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아니... 단검은 문 따위를 꿰뚫고 있지 않다.

정확하게, 내 미간을 꿰뚫어버린 것과 다름없다.

내 가슴 깊은 속에 잠들어 있던 그 날의 감정이,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려 한다.


‘벌써 잊어버린 거니? 왜 잊어버린 거야? 언제 잊어버린 건가? 그보다... 어떻게 잊어버린 겁니까?’


남자의 말이 골 전체에 울려 퍼진다.

이를 악문다.

손이 새하얘지도록 세게 쥔다.

핏발이 서도록 눈을 부릅뜬다.

한순간이라도 눈을 감으면 돌이킬 수 없다.

난 예슬 씨를 거칠게 뿌리치고 건물을 박차고 나갔다.

다리가 저리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발 디딜 곳이 사라져간다.

사람들을 이리저리 밀치며 죽기 위해서 쉬지 않고 달렸다. 사람? 사람인가? 내가 방금 오른손으로 밀쳐낸 ‘것’이 사람이던가? 내가 왼발로 밟아버린 발이 사람의 것이던가? 난 달리기를 멈추고 턱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지면에 고정시켰다. 지금... 주위를 돌아볼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지금 내 앞에, 뒤에, 옆에 무엇이 있을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외면이라는 선택지조차 주지 않았다.

<자... 가르쳐줬잖아?>

하수구의 오물처럼 끈적하고 텁텁한 목소리가 귓가로 미끄러지듯 흘러들어왔다. 바로 옆에서 무시할 수 없는 스산한 기척이 느껴졌다.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그’의 존재가. 내 정신은 그의 목소리와 함께 녹슨 철의 세계로... 서서히 끌려들어가고 있다.

‘오른쪽 뺨’이. 인두에 지져지는 것처럼... 뜨겁고... 무섭고... 너무너무 아파서...

<날 죽여. 그래야 네가......>

주위 풍경이 한순간에 수백 번 회전하는 부유감을 느끼며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만일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행복하세요~


작가의말

 엄밀히 말하면 이제부터 시작이네요 ㅎㅎ


 ‘첫번째동화’님 항상 감사해요!!


 댓글, 추천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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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5장 < 빛을 허락받은 곳 > (1) 15.08.22 277 4 7쪽
» 4장 < 사인회 > (8) +2 15.08.19 255 5 8쪽
40 4장 < 사인회 > (7) +2 15.08.16 295 4 9쪽
39 4장 < 사인회 > (6) +2 15.08.15 269 6 7쪽
38 4장 < 사인회 > (5) +2 15.08.12 273 4 9쪽
37 4장 < 사인회 > (4) 15.08.09 237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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