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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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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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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6.1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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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29화. 너도 내가 좋니?

DUMMY

“저기, 그게…….”

“…….”

안절부절 못하는 나. 나는 머뭇거리며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몸은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시선 또한 부자연스럽게 똑바르지 못하고 조금 옆을 향해 있다. 그도 그럴 게, 지은 죄가 있으니까 양심이 찔려 함부로 말을 못 하는 게지. 그래도 나, 청정한 양심을 지니고 있는 마음 착한(?) 애니까.

팔짱을 끼고,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 않고 다른 쪽에 시선을 돌리고 있는 성빈이. 이런 표정의 성빈이는 처음이라 굉장히 낯설다. 새침한 듯 약간 화난 것 같은 느낌으로, 내 시선을 외면한다. 그런 성빈이의 반응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베베 꼬았다.

이러고 있는 건, 저번 일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다. 그러니까, 성빈이가 내 자취방에 놀러 왔을 때, 우연치 않게 희세와 있었던 오해를.

……아니, 진짜 오해잖아. 왜 이렇게 돼야 하는데. 그러니까 그 일은, 순전히 희세가 벌레에 겁먹어서,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겁먹은 소녀가 돼 내 품으로 달려든 건데. 그게 하필이면 또 타이밍 안 좋게 희세가 날 뒤에서 끌어안은 걸 성빈이가 보게 된 거지. 참 팔자도 기구하지, 왜 그런 타이밍에 문을 여냐고. 신이 있다면 꼭 노리고 그러는 것 같다.

뭐, 그 뒤로는 희세도 자기가 한 짓이 부끄러운 짓인 걸 알고 짐짓 부끄러워하며 나에게서 떨어졌지만. ‘어, 아직 저기 있다.’ 하는 장난에 다시금 ‘으아아아앙!!’ 하며 다시금 나에게 꽉 달라붙었지만. 완벽하고 치밀할 것 같은 희세의 평소 느낌과는 다른 그 모습에 묘하게 희세가 귀엽게 느껴졌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오해 받은 건 오해 받은 거다. 애초에 오해라는 게, 사실을 정황 파악 없이 일방적인 생각으로 이해한 거니까. 제대로 된 상황을 말한다면 성빈이도 이해해주리라. 아닌 게 아니라, 성빈이, 착하고 이해심 넘치는 아이니까. 천사 같은 애니까. 말로 하면 다 들어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헌데 이게 뭐야. 기세부터가 전혀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은 눈치다. 이 느낌은, 그러니까 예전에 나를 벌레보듯 혐오하던 희세의 눈빛…… 그런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희세가 나를 그런 눈으로 볼 때엔 묘한 우월감과 한심하다는 느낌, 열등감, 하찮음 같은 무시무시한 감정들도 섞여 있었지. 지금 성빈이는 그 정도는 아니고 ‘나한테 다가오지 마, 이 변태.’ 하는 새초롬한 느낌. 다정하고 따뜻해서, 봄길 산들바람 같은 성빈이의 평소 분위기는 전혀 없고 쌀쌀한 가을 바람처럼 된 기분이다.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금 호흡을 정진했다. 이렇게 말도 못 하고 쩔쩔매기만 하면 남자가 아니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뭐?”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운을 떼며 성빈이의 눈치를 봤다. 성빈이는 새침한 표정으로 다른 쪽을 보다 내 말에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린다. 그러더니 자세를 고쳐 앉으며 팔짱을 끼고 나를 올려다본다. 단정하게 있던 다리까지 꼬고. 우왓, 우와아앗…… 지금까지의 성빈이에게선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던 이상한 느낌이다. 여왕님 오오라……! 이건, 이건 희세한테나 어울리는 거라구! 거기다 희세도 대놓고 이렇게 여왕님 포스를 풍긴 적은 없어!

“아으…… 그게, 그러니까! 자취방에서! 희세하고 그러고 있었던 거!”

“그러고 있었던 게 뭔데? 어머, 무슨 짓을 하셨기에…….”

“어우 야! 성빈이 너까지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희세가 말하는 것 같잖아!”

나는 성빈이의 말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쳤다. 말하는 투만 보면 정말 희세가 말하는 것 같다. 희세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성빈이가 이러면 정말 마음속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성빈이는 그러면 안 돼, 성빈이는! 제일 처음 말 걸어준 소중한 여자애인데! 내 안의 환상이! 으아아!

“푸하핫, 뭐야, 애기도 아니고. 생떼?”

“아니 아니 아니! 어쨌든 그만해 줘, 제발!”

“아하하, 알았어, 알았어.”

성빈이는 내 격한 반응에 깔깔 까르르 웃는다. 어라. 웃는다는 건 좀 긍정적인 반응이려나? 조금 움찔 하다 계속 밀어붙였다. 성빈이는 손을 내저으며 방긋 웃는 표정으로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아, 그래, 이게 성빈이지. 방금 전까지 마음 속에 있던 미묘한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럼, 말해줘. 그게 뭐였는지.”

“어…… 그게, 그러니까. 주말 오전에…… 희세가…….”

성빈이는 밝게 웃다 정색하고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살짝 소름 돋을 정도로 싹 표정을 바꾼다. 변명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어찌하랴. 오해를 풀려면 변명이건 뭐건 말을 해야하는데. 상세하게 주말의 사정을 말했다.

“……그래서 그 타이밍에 하필 네가 문을 열어서, 그렇게 된 거야.”

“음…… 그 말을 믿으라구?”

“아니이! 말 하면 믿어줄 것처럼 해놓고! 다 말하니까 안 믿는 건 무슨 경우야!”

성빈이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나는 억울함에 다시금 소리쳤다. 하지만 성빈이는 좀처럼 믿지 않는 눈치다. 애원해도 소용없나. 왜 꼭 이런 쪽에서는 예민한 건데. 아니, 별 거 없잖아! 그냥 희세가 벌레가 무서워 날 껴안은 게 뭐 어때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데?!

“너 또 내 욕하고 있었어? 정희가 내 욕한다던데.”

“아! 마침 잘 왔다. 뭐라고 좀 말 좀 해 줘봐! 나 죽겠어!”

“뭐, 뭐야, 징그럽게.”

깊은 절망에 빠져. 아니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성빈이의 눈살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볼멘소리로 마찬가지로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하고 이 쪽으로 오는 희세가 보인다. 굉장히 기쁜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희세 어깨를 탁 잡고 말했다. 희세는 당황해선 말까지 더듬으며 살짝 뒷걸음질 친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이렇게 희세에게 뭘 적극적으로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갑자기 애가 이상하니까 일견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겠지. 하지만 난 진지하다.

“주말에! 성빈이가 오해하고 갔잖아.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질 않아! 네가 좀 설명 좀 해 줘.”

“……내가 무슨 설명을 하라고.”

“아니! 오해라고! 알잖아, 오해인거! 그러니까 돈벌레 때문에, 무서워서 안긴거잖아.”

“내, 내가 언제 뭘! 무슨 이상한 소리 하는 거야?!”

희세는 발작적으로 몸을 떨며 나에게서 떨어진다. 그러더니 눈을 치켜 뜨고 불퉁한 태도로 말한다. ……이거, 진퇴양난인 거 맞죠. 왜 부정하는 건데. 창피해서?! 아닌 게 아니라 희세 얼굴은 살짝 상기돼 있다. 꾸욱 다물고 있는 입은 전력으로 그 때의 일을 부정하려는 느낌 가득이다. 나는 그런 희세의 표정을 보고 전의를 상실했다. 말 다 했다. 답이 없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당사자 희세마저 일을 부정해버리니 나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성빈이는 아까만큼 미심쩍은 표정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리 내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은 표정이다. 아아. 내가 평소에 성빈이한테 되게 못되게 굴었나. 아니, 충분히 잘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깊은 탄식을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침 쉬는 시간이 끝나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이 시작된다. 제대로 된 해명도 못 하고서.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멍하니 칠판을 바라본다. 딱히 집중을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딴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숨을 쉬고 있는 행위. 그냥 시간을 버리고 있는 짓이다. 이럴 거면 공부를 하지. 아니면 딴짓이라도 하지. 아니, 성빈이에게 오해를 풀었어야 하는데, 흐지부지하게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끝을 내서. 그것 때문에 이런 상태다.

희세가 전력으로 부정하는 건 그리 충격도 아니다. 희세야 원래 내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 여자애니까. 다만 성빈이가 내 예상대로 안 되는 건 좀 충격이다. 확실히, 솔직선언(?) 이후의 성빈이는 좀 예측 불능이긴 하다. 그래도 솔직담백 상큼발랄 이런 느낌까진 좋았는데, 희세처럼 새침하고 도도한 모습은 좀 아니다. 그런 건, 그런건 나의 성빈이가 아니야……!

‘스윽.’

“?”

그렇게 혼자 마음속으로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언가 내 시야를 건드린다. 책 위로 올라온 하얀 쪽지. 힐끔 고개를 돌려 성빈이를 보니 성빈이는 시치미를 뚝 떼고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웃음이 피식 나올 것 같다.

─아까 그건 장난이야! 화났어? 미안 미안 ㅠ

아무렇지도 않게 시치미 떼고 있는 성빈이가 귀여워 한 번 웃고, 쪽지 내용 또한 귀여워 두 번 웃었다. 선생님 눈치를 보며, 나도 슬쩍 쪽지를 써 넘겼다. ‘아냐 괜찮아 ㅋㅋ 오해 풀렸으면 다행이지 ㅎ’ 하고 적었다. 선생님 눈치를 보며 흘긋 성빈이 표정을 살폈다. 성빈이는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동태를 살피며 감쪽같이 쪽지를 읽는다. 그리곤 나를 보고 살짝 눈웃음 짓는다. 그리곤 다시 쪽지를 적는다. 스마트폰이 있는 스마트한 이 시대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지만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게 더 나은 것 같애! 바로 옆에 있으니까 반응도 살필 수 있고, 선생님 눈치도 보는 스릴도 있잖아! 가끔은 아날로그가 더 좋을 수 있구나.

게다가 뭐랄까. 이런 행위(?)는 성빈이한테 더없이 잘 어울리니까. 그게, 그러니까 이런 짓(?)은 뭔가 청순? 아니 수업시간에 쪽지 주고받으면서 노는 게 결코 청순한 건 아닌데…… 그냥 성빈이가 해서 청순한 건가. 그치만 희세나 리유가 하면 결코 이런 두근두근하고 설레는 느낌은 안 들 것 같다.

─부탁이 하나 있어. 들어줄 수 있어?

‘오해가 다 풀린 건 아니야.’, ‘아니 그럼 뭔데……?’, ‘그렇게 쉽사리 믿을 순 없지, 그런 장면을 봤는데.’, ‘사람 말 좀 믿어줘 제발 ㅠㅠ’ 하는 쪽지를 거쳐 온 답변. 그러니까 이 말은, 맥락 상으로 보자면 ‘부탁을 들어주면 내 말을 믿고 오해를 풀겠다’는 뜻인가? 음…… 잠시 생각에 빠졌지만 이미 이건 답이 정해져 있다. 이 상황에서 정색하고 ‘아니, 나한테 왜 이래? 부탁은 무슨 부탁.’ 할 수도 없잖아. 그리고, 성빈이 성격상 그렇게 엄청 무리인 걸 부탁할 리가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응, 들어줄게. 뭔데?’ 하고 쪽지를 보냈다. 성빈이는 쪽지를 보고 잔잔하게 웃는다. 그리곤 다음 쪽지를 준다.

─그건 다음 쉬는시간에~ ㅎㅎㅎ☆

“…….”

뭔가 김 빠지는 기분인데. 성빈이는 놀리는 듯한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그래도 놀린다는 표정인데도 성빈이는 청순하고 예쁘다. 나도 마주보며 웃었다.


“그래서, 뭔데?”

“흐흥.”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은 끝났다. 나는 조금 기대하는 표정이 돼 몸을 성빈이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나를 마주본다. 책을 정리해 책상서랍 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매점 가자, 매점.”

“응? 그래, 뭐.”

자꾸 말해주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일단 수락했다. 그러고 보니 성빈이랑은 매점 가는 게 처음이구나. 그보다 성빈이는 매점 가는 모습을 잘 못 봤는데. 매점에 제집인 양 들르는 애는 역시 미래하고 리유지. 희세는…… 그리 가는 것 본 적 없고, 성빈이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 성빈이를 따라 일어났다.

“별 건 아니구, 곧 중간고사잖아.”

“응, 그렇지. 아아…….”

“히힛.”

복도를 걸으며, 성빈이는 말한다. 나는 그 말에 잘 대답하다 급격하게 풀이 죽었다. 내 반응에 성빈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그래, 중간고사. 그나마 축제 끝나고 있는 게 다행이네. 왜 학교는, 매번 중간고사·기말고사를 못 봐서 안달인걸까. 그렇게 사람들을 줄을 세우고 번호를 메기는 게 즐거울까?! 사회는 정녕 그런 걸 원하는 걸까?! 마냥 놀아야 할, 때 좋은 학생들에게, 이런 더럽고 치졸한 경쟁사회를 벌써부터 가르치려 하다니……!

“응, 그 때, 너희 집에서 공부해도 되?”

“……어?”

혼자 막막한 이 사회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고 있는데 나지막이 성빈이의 말이 들린다. 퍼뜩 정신이 들어 성빈이를 쳐다봤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살짝 상기된 성빈이의 볼이 보인다. 이거, 설마.

“안 돼?”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굳이 우리 집에서 공부를 하려구? 도서관이나 이런 데가 더 좋지 않나?”

“그, 그야…….”

나는 물론 좋다. 성빈이랑 같이 공부한다면, 내가 모르는 것 물어볼 수도 있고. 성빈이는 자기 시간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나한테 자세히 알려줄 테고. 하지만 그건 성빈이한테는 완전히 손해잖아. 게다가, 나도 알고 성빈이도 아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같이 공부하면 효율이 완전 바닥이라는 거. 작정하고 공부하려는 스터디 그룹 같은 거라면 모를까, 평소에도 놀고 먹는 우리 사이인데 아무런 동기 부여도 제재도 없는 완전 자유 구역 내 자취방에서 둘이 있으면 참 공부가 잘 되겠다. 1학기 때에 그건 몸으로 직접 체험했었지. 아, 물론 그 땐 사람이 좀 많긴 했다.

게다가, 이렇게 성빈이가 말하면 나는 또 이상한 상상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왜?’ 하는 의문이. 구태여 왜 우리 집에서 공부하겠다는 건데. 그거, 그냥 ‘명분’ 아니야? 사실은 나랑 있고 싶어서, 나랑 놀고 싶어서! 꺄아앗─! 그러니까 성빈이, 지금 날~~!!

……지랄도 참 풍년이다. 항상 생각하지만, 난 망상 하나는 잘 하는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머리를 살짝 도리도리 저으며 성빈이를 본다. 성빈이는 약간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을 잇는다.

“너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볼 수 있잖아. 너한테도 좋은 거 아니야?”

“어, 난 좋아, 난 좋은데. 그럼 네 시간 뺏잖아.”

“에이, 무슨! 너한테 알려주면, 나도 머릿속에서 정리되고 해서 더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아. 웅도 너, 요즘 공부 안 하잖아? 중간고사 잘 볼 수 있겠어?”

“아아…… 그건 확실히.”

근데 어째, 성빈이 대답은 내 예상하고 비슷한데? 거기다 뭔가 당황한 듯 얼버무리는 말도 그렇고. 하지만 이내 길게 이어지는 성빈이의 말에 나는 현실을 자각했다. 그 말이 사실이니까. 희세 덕에 자취를 해도 다시금 균형 잡힌 삶을 회복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건 전혀 아니니까. 수업시간도 그렇고, 야자 때도 그렇고, 요즈음은 영 공부를 안 했으니까. 축제 분위기에 휘말려 그런 걸까. 그리고 수업시간이나 야자 때나, 옆자리에서 늘 봐 온 성빈이니까, 누구보다 내가 공부를 안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뒷머리를 긁으며, 약간 얼굴을 찌그리는 것 같은 기분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좀…… 이건 내 쪽에서 부탁해야겠네. 우리 집에서 공부 좀 가르쳐주라. 이번 주말에.”

“응응! 그렇게까지 부탁하면 어쩔 수 없지. 내가 가 줘야지.”

“푸흐흥. 엎드려 절 받기네.”

“에헤헤.”

내 말에 성빈이도 조금 멋쩍은 지 배시시 웃는다. 매점에선 간단한 빵이나 사서 먹었다.


─“그렇게 해서 공부하기로 했는데.”

“호오? 단 둘이서만?”

“뭐…… 지금 계획 상으로는.”

나는 성빈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성빈이는 어째서인지 입술을 깨물고 적대적인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성빈이 눈치를 본다. 아니 왜…… 희세는 그런 나와 성빈이를 보고 뭔가 사악한 느낌으로 씨익 웃는다. 리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우리 셋을 보고, 미래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니까, 다섯 명이서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있었다. 희세가 지나가는 말처럼 ‘이번 중간고사 공부는 어떻게 하게? 너 공부 안 하잖아.’ 하고 물었다. 뭔가 자존심 같은 게 상한 나. 희세가 보기에도 내가 공부 안 하는 것처럼 보이나보다. 하지만 뭐, 성빈이가 특강 해주기로 했으니까. ‘응, 문제없어. 성빈이가 알려주기로 했거든.’ 하고 말했다. 흠칫 놀라는 희세. 그러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남편이 저녁부터 새벽까지 어딜 들렸나 꼬치꼬치 캐물으며 바가지 긁는 아내 같은 느낌으로 엄청 물어본다.

이제 오해 받는 건 질색인 나인지라, 있는 그대로 다 말했다. 주말에 성빈이가 우리 집에 와서 공부하기로. 좀 뭔가 꺼림칙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제 이 다섯 명은 그런 이상함을 느낄 정도로 안 친하지 않잖아? 나도 점점 여자애들 사이에서 동화돼 가고 있고. 아, 여자애처럼 된다는 말은 아니고. 좀 수다스러워지는 것 같긴 하지만 기분 탓이겠지. 여튼 그렇게 다 말 하니까 희세는 의기양양하면서 악랄한 미소를 짓고, 성빈이는 내가 희세에게 사정 얘기 할 때부터 표정이 굳더니 지금은 나를 원망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본다. 나는 중간에서 뭐가 뭔지 몰라 난처한 표정이 됐다.

“흐흥, 그럼 나도. 나도 주말에 가서 공부할래.”

“어…… 그, 그래도 되려나? 성빈아?”

“왜 성빈이 허락을 맡아? 네 집인데? 성빈이가 네 엄마야?”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둘이 공부하기로 했으니까.”

“헤에─ 둘이 공부하면 그게 데이트지, 공부야? 으흥흥.”

“…….”

희세는 비꼬는 것 같은 말투로 말한다. 성빈이 눈치를 보며 말하니 단박에 내 말을 잘라내며 말한다. 성빈이는 이번엔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눈빛으로 희세를 본다. 희세 역시 지지 않고 성빈이를 마주보며 말한다. ……뭔가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희세 목소리가 무척 얄미워서 한 대 때려주고 싶다. 희세는 양 팔을 벌려 미국인 같은 제스처를 취하며 눈을 살짝 감았다 치뜨고 말한다.

“상관없지? 나도 끼어도.”

“어…… 상관없어.”

희세의 물음에 성빈이는 이를 악 물고 말하듯 낮게 깐 목소리로 말한다. 우와, 무서워…… 성빈이가 이렇게 무서운 분위기로 말하는 건 처음 본다. 그 기세에 눌려 가만히 구경하던 리유까지 겁먹은 표정으로 성빈이를 본다. ‘나, 나는 안 갈래, 그냥 시험 못 볼래…….’ 하고 소심하게 말한다. 원래는 자기도 끼어들고 싶었나보다. 하긴, 이런 분위기에선 누구도 끼어든다고 할 수 없으리라. 미래는 겁은 안 먹고 다만 밝은 표정으로 ‘저도 안 끼어들게요. 이런 자리에 눈치 없이 끼다뇨.’ 하고 말한다. 괜히 나만 더 난처하다. 뭐 잘못 말했나 싶기도 하고. 밥 먹는 내내, 성빈이와 희세 덕분에 굉장히 껄끄러운 분위기가 됐다. 덕분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 모르게 먹었지. 체하겠다야.

‘우우웅.’

“음?”

밥을 다 먹고 이제 수업이 시작하려는데 문득 휴대폰이 울린다.

「멍청이!」

「뭐가.」

「몰라 꺼져! 멍청이 멍청이!!」

성빈이한테 문자가 와 있다. 바로 옆에 있는데 웬 문자. 곁눈질로 보니 성빈이는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보고 있다. 답변을 보내니 바로 또 답장이 오는데, 온갖 폭언이다. 「왜!! 또 뭣 때문에!!」 하고 격정과 흥분이 섞인 문자를 보냈지만 성빈이는 이후로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수업을 들을 뿐. 쪽지 같은 것도 안 하고. 내가 또 뭐 실수해서 삐치기라도 했나. 아아, 모르겠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하고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ㅠㅠㅠ

하지만 시험기간이 끝나지 않았다구 Boy♂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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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5화. 다시 한 번, 친구로! +19 14.03.26 3,101 6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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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24화 - 4 +16 14.03.24 1,965 4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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