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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840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4.10 21:34
조회
2,143
추천
50
글자
21쪽

25화 - 3

DUMMY

“으흐으응!!”

“어.”


독특한 하이톤의 목소리.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려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리유다. 리유가 평소의 애교 많은 목소리가 아닌, 맑지 않은 이상한 느낌의 목소리로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온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것 같은 표정으로. 리유는 내 쪽으로 오더니 냅다 내 가슴팍을 작은 주먹으로 팍 때린다. 물론 전혀 아프진 않지만.


“뭐야, 뭔데.”

“왜 오늘 하루종일 나랑 안 놀아줘? 서, 설마 나 피하는 거야?!”

“그럴 리가, 기분 탓이겠지.”


가만히 있는데 가슴팍을 치니 대답을 안 할 수가 없다. 리유는 새침하게 말하다가 갑자기 저 혼자 흠칫 놀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말한다. 얼굴은 흙빛이 됐다. 조금 뜨끔 하는 느낌이 든다. 리유 따돌림 해결을 위해 계속 리유를 피해 일을 짜고 있었는데. 눈치 없는 리유라도 그것은 눈치 챘나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흥흥! 그치만 전혀 놀아주지 않는걸? 평소 같으면, 평소 같으면!”

“그래, 사실 나 너 질렸어. 이제 그만 하자. 너 지겨워. 구질구질해.”

“…….”


리유의 생떼에 나는 약간 성이 난 듯 냉정하고 무감각한 눈을 하고 리유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물론 숫제 장난이다. 정색하고 이렇게 말하다 리유가 덜컥 놀라면 방긋 웃으며 ‘장난이지롱~’ 하려고 했다. 하지만 리유는, 정말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그 표정 그대로 굳은 체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어, 어어, 자, 장난이야, 장난! 야…….”

“…….”


뭐야, 뭐야 이 반응. 여기선 받아 줘야 하는 대목이잖아. 이렇게 갑자기 울어 버리다니! 엄청 당황스럽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리유 앞에 섰다. 리유는 멍하니 서서 나를 쳐다보고 눈물을 줄기줄기 흘린다. 우는 기색도 소리도 없이 그냥 눈물만 흘리고 있어서 주위 애들은 리유가 어쩐지도 모른다. 도리어 내 과장된 당황한 반응에 이목이 집중된다.


“미안, 미안. 장난이 너무 지나쳤지. 장난이야, 장난. 괜찮아? 우는…… 우는 거 맞아?!”

“이히히히…… 다행이다, 장난이라.”

“무섭잖아, 이렇게 확 바뀌면.”


리유를 내려다보며 안정시키는 말을 하니 리유는 표정이 전혀 없던 얼굴에서 엷은 미소를 드러내며 웃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눈물은 또 한 줄기 흐른다. 내가 말한 그대로, 좀 무서울 정도다. 우는 거랑 별개로 웃고 있잖아. 나는 괜히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 체로 손을 뻗어 리유 얼굴의 눈물을 닦아 줬다. 리유는 내 손길을 느끼며 배시시 웃는다.


“저기, 웅도야.”

“응?”

“잠깐 도와줄 수 있어?”


리유에게 굉장히 미안해져서, 맘 같아선 껴안고서 달래주고 싶지만 다른 애들 보는 눈도 있으니 그냥 손으로 리유 눈물을 닦아주며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채영이가 주볏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와 말한다. 무언가 곤란하고 미안한 표정. 비굴한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의 어색함과 미안함이 혼재된 얼굴. 아아, 이런 건 많이 겪어 익히 잘 알고 있지. 여자애들이 나를 부르며 이런 표정을 짓는 건 거의 대부분 한 가지의 결과로 귀속된다. 바로, 무엇인가 부탁할 때. 그것도, 여자애들이 하기 힘든, 육체 노동 같은 것. 예를 들자면, 책을 든다거나, 무언가 무거운 걸 옮기다거나.

여자애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여자애가 남자애보다 힘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책 하나 못 들 정도로 힘이 없는 건 아니니까. 실제로 선머슴 같은 성격의 정희나 남자애에게 지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희세 같은 애들은 책걸상이나 책더미 같이 남자애들이 들기도 좀 무겁다 싶은 걸 번쩍번쩍 잘도 들고 옮긴다. 여고에서 꽤나 생활한 나이니, 그런 모습을 봐 와서 그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 세상살이가 그렇게 각박하게 모든 일을 자신이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늙은이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젊은이가 도와주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자애가 낑낑거리며 무거운 것을 들고 있으면 얼를 달려가 도와주고 싶은 게 남자의 말로 표현 못할 묘한 감정 같은 게 아닐까. 거기에 그 여자애가 예쁘다면 더욱. 음. 뭔가 결론이 이상한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다. 거기에 내가 스스로, 학기 초부터 반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캐릭터를 잡았기에 그러하다. 불평이나 불만할 것도 없다, 내가 스스로 자처한 거니까.


“어떤 건데?”

“응, 선생님이 시키신 건데, 도서관 가서…….”


잠시 리유에게 눈짓으로 기다려달라고 눈을 찡긋 했다. 리유는 고개를 끄덕인다. 반장은 묵묵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나를 보고 여전히 약간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말만 들으면 나한테 전부 시킬 것 같지만 사실 반의 일 때문에 이런 부탁을 제일 많이 하는 게 반장인지라, 누구보다 미안해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 주려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생각이 한 가지 퍼뜩 지나갔다.


“응, 도와주는 건 도와주는 건데. 난 좀 바빠서 리유한테 부탁했으면 좋겠는데.”

“어…… 리유?”

“엣……?!”


빙글빙글 웃으며, 나는 멀거니 리유를 쳐다본다. 리유는 흠칫 놀라 나를 올려다본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리유는 작은 키를 발돋움하며 항의하듯 나를 쳐다 본다. ‘어째서!!’ 하는 강한 항의의 눈빛. 그것대로 귀여워 나는 리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하지만 리유는 여전히 당황하여 얼굴까지 빨개진 체 나를 본다. 그러다 힐끔 채영이와 눈이 마주친다.

채영이는 그런 리유를 보고 조금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냥 무표정한 얼굴이라 그리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안경을 올려 쓰더니 나를 올려다 본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이건 누가 봐도 수작질인 게 뻔히 보인다. 전혀 바쁘지 않고, 일을 권하고 있는 그 리유랑 놀고 있는데 무슨 바쁜 일이 있단 말인가. 이거는, 그러니까 리유에게 친구를 만들게 하기 위한 전초전인 것이다. 어색하더라도, 이렇게 계기를 만들어야 조금씩 찬찬히 나아갈 수 있겠지.


“응, 그럼 리유…… 도와줄 수 있어?”

“…………응.”


채영이는 조금 웃던 얼굴을 바르게 하고 다시금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리유에게 말한다. 리유는 빨개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 채영이를 보다 안절부절 못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간신히 대답한다. 뭔가 억울하고 불쌍해보이는 표정으로, 리유는 채영이 뒤를 따른다. 나는 그런 리유가 마냥 귀여워 쳐다본다. 마냥 둘 순 없기에, 나 역시 채영이와 리유 뒤를 따라갔다.


“응, 그 책은 이 쪽에.”

“어, 응.”


도서관에 도착해, 선생님이 시키신 일을 하는 채영이와 리유. 나는 멀거니 의자에 앉아서 둘을 구경하고 있다. 채영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쁘다며, 웅도.’ 하고 말하지만 나는 천연덕스럽게 ‘아, 바쁠 만한 일이 취소돼서.’ 하고 말하곤 자리에 앉아 일하는 여자애들을 구경하고 있다. 좀 쓰레기 같나. 리유 역시 그런 나를 보고 눈을 흘긴다.

두 사람은 전혀 친하지 않다. 아니, 아예 모르는 사이라고 하는 게 낫겠지. 서로 소닭 보듯 멀거니 쳐다만 보는 사이 정도가 맞겠지. 책을 나르고 정리하면서, 조금씩은 친밀해지는 느낌이 든다. 똑똑하고 단정한 언니와 말 잘 듣는 여동생을 보는 것 같은 기분. 리유는 생긴 것과 하는 짓과 일맥상통하게 일도 전혀 잘 못하지만,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채영이의 말을 듣는다. 그러니까 더 귀여워 보인다. 변태처럼 웃으며 두 여자애를 쳐다본다.



“아하하하! 여기 내 자리!”

“흣, 오늘은 좀 잘 하겠어?”

“흐흥, 여전히 입만 살았네. 저번에 나한테 16:9로 져 놓곤?”


나른한 오후, 체육시간. 예전에 말했듯, 여고의 체육시간은 남자애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그닥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애들이다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도 운동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여자애들 중에도 운동 좋아하는 애들은 꽤 있는 편이니까. 특히 그 중, 우리 반, 아니 학년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활동력 넘치는 한 명이 있으니. 바로 정희. 지금도 나에게 한창 시비를 걸고 있다.

요즈음 정희는 배드민턴에 푹 빠져 있다. 어느 날인가부터 강당에 가 애들하고 배드민턴을 한다. 정희와 어울리는 애들 중에서도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는 몇몇 애들은 빠지고, 자기들끼리 체육시간마다 재미있게 놀고 있다. 그것까진 좋은데, 애꿎은 나까지 끼는 게 문제지.

여자애들은 기본적으로 운동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희세 정도라면 운동신경이 정희 만큼 뛰어나기에 충분히 상대가 될 수 있지만 희세는 또한 자의식이 강한 터라 정희의 기세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길을 걷는다. 단체 운동이 아니라면 희세는 그저 앉아서 가만히 책을 본다. 그런 식이라면 남는 상대는 나밖에 없다.

나는 축구나 농구 정도는 곧잘 하는 편이지만 배드민턴에는 그다지 소양이 없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애니 금방 배웠지만, 나보다 전부터 배드민턴을 치는 정희 역시 만만치 않다. 전혀 여자애로 생각되지 않는 육체적 능력에 승부욕 또한 강해서 정말, 배드민턴 칠 때마다 힘들다. 솔직히 이젠 체육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힘이 부친다. 처음엔 나도 재미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좀…… 마치 신혼이 끝나고 점점 아내에게 힘이 부치는 남편 같은 기분이랄까. 그 남편이 무슨 기분일지는, 상상에 맡겨야지.


“……2대 2로 치자!”

“엥? 2대 2?”


정희는 잠시 네트에 선 체 강당 구석 쪽을 보다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보며 말한다. 뜬금없는 말에 나는 조금 당황하여 말했다. 지금까지 줄곧 나를 쓰러뜨리기 위해 분투하던 정희인데, 뜬금없이 2대 2로 하자니. 그럼 승부 보기도 애매해지잖아. 다른 애가 끼게 되니까. 정희는 악동처럼 씨익 웃으며 말한다.


“응, 너는 아무나 붙들고 해. 나는 공평하게…….”

“……??”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정희. 나에게 그렇게 말하곤 네트를 벗어나 강당 구석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천천히 걸어가는 정희가 멈춰선 곳은 리유 앞. 리유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자기 앞에 서 있는 정희를 보고 어리둥절해서 정희를 올려다본다. 키도 나만큼이나 훌쩍 커서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정희. 환히 웃으며, 리유에게 말한다.


“같이 배드민턴 치자!”

“……나, 나?”

“응!”


정희는 굉장히 쾌활한 목소리로 말한다. 여자애지만 굉장히 훈훈하고 부드럽게 말해 남자인 내가 봐도 되게 멋있다. 리유는 얼굴이 왈칵 붉어지며 눈을 크게 뜬다. 리유 입장에선 그렇겠지. 지금까지 리유가 체육시간에 운동 비슷한 행동을 한 번이라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운동신경도 둔한데다 리유 본인 자체가 운동을 병적으로 싫어하니까. 괜히 운동하기 좋아하는 나를 귀찮게 하거나 뾰로통한 표정으로 내 주위에 앉아 있는 게 체육시간에 하는 일의 전부다. 지금도, 배드민턴 치는 내 모습을 보려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것인데.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정희가 말을 걸어오니 리유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뭐해, 얼른 나오지 않고!’ 하곤 정희는 리유의 손목을 잡아 반강제로 일으킨다. 이 쪽으로 오며 나를 보고 눈을 찡긋 한다. 채영이나 지선이와는 다르게 정희에겐 내 계획을 말했기에, 이렇게 티 나는 짓을 하는 것 같다. 나 보고는 오지랖 넓다고, 바보 같다고 해 놓고는 정작 이렇게 나를 도와준다. 나 역시 피식 웃음이 나와 눈웃음을 지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구경하고 있는 정희 친구에게 가 같이 치자고 말했다. 리유 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당황하는 여자애. 절대 안 친다고 하지만 정희가 ‘아, 에지간히 하고 나와! 그냥 대충 치게!’ 하고 아저씨처럼 말한다. 결국 정희 친구 역시 못 이기는 척 나오게 됐다.


“아얏!”

“으앙!”

“바보야, 그냥 가져다 대라고 했잖아!”

“미, 미안…….”


2대 2 배드민턴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애초에 전혀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경기다. 나와 정희는 그럭저럭 잘 치는 편이지만, 리유와 정희 친구는 아예 배드민턴을 한 번도 쳐 본 적 없는 애들. 번갈아 치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경기가 계속된다. 특히 리유는. 배드민턴을 한 번도 안 쳐본 과거와는 상관 없이, 아주 절망적인 운동실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떻게 해도 전혀 한 번도 못 치고 있다. 지금도, 계속해서 정희에게 혼이 나고 있다. 정희는 정말 화가 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말한다. 승부욕 강한 정희이니 진심으로 화를 낼 지도 모른다. 리유는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맨다. 뭐, 배드민턴을 전혀 못 치는 건 이쪽 정희 친구도 마찬가지라, 실제로는 전혀 경기가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세 번 이상 주고 받지를 못 한다.


‘퉁!’

“오오! 그거야, 그렇게 치면 되잖……”

‘핑.’

“훗, 리유가 쳐냈다고 너무 방심한 거 아닌가? 너와 내 배드민턴 실력은 완벽하게 상하관계에 있다!”

“……으으, 진짜! 개새끼야! 알려주고 있었잖아!”


정희 친구가 서브를 쳤다. 리유는 눈을 질끈 감고 아무렇게나 배드민턴 라켓을 휘둘렀다. 소 뒤로 걷다 쥐 잡은 격으로, 셔틀콕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 몇 번에 걸쳐 겨우 쳐 낸 리유를 보고 정희는 불타오르는 눈으로 희열에 잠겨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정희가 방심한 틈을 타 재빨리 셔클콕을 쳐냈다. 강하게 땅으로 내리꽂히는 셔클콕. 정희는 늦었지만 반사적으로 움찔 그 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이미 셔틀콕은 땅에 나뒹굴고 있다. 비웃는 듯 도발하는 말을 하니 정희는 잔뜩 성을 내며 내 쪽으로 와 라켓으로 팡팡 나를 때린다. 나는 ‘어어, 때리는 건 좀 아니지! 실력으로 하라고!’ 하며 도망다녔다. 씩씩거리며 정희는 ‘그래, 좋아! 어디 한 번 해 보자고! 그딴 식으로 나온다 그거지?!’ 하며 대답한다.



‘꿀꺽 꿀꺽 꿀꺽’

“키야아아아!! 아, 살겠다.”

“아아, 더워 죽겠네. 남고였으면 등목이라도 했을텐데.”

“할까? 너도 나 해 줄래? 어머, 부끄러워?”

“돌았냐, 좀 정신 좀 차리고 말해.”


체육시간이 끝나고 정희와 함께 음료수를 들이킨다. 9월은 가을이지만 아직까지 충분히 덥다. 온통 땀 범벅이지만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여고잖아. 내 말에 정희는 씨익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억지 웃음을 지으며 정희를 보고 말했다. 정희는 나보다 더 더워 보인다. 머리가 기니까. 짧은 숏컷이라 오히려 묶지도 못하고 땀 범벅이 되 장난 아니게 더워 보인다. 그래도 쾌할하게 웃는 정희이지만. 운동하고 난 정희는 매력이 3배 정도 더 폭발하는 경향이 있다. 더위로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 활기찬 웃음을 짓는 정희는 누구보다 건강해보인다.


“여, 꼬맹이도 잘 했어.”

“우우…… 꼬맹이 아니야!”

“아하하, 그치만 작잖아. 운동도 못 하고.”

“……운동 못 하는 건 맞지만……!”


정희는 옆에서 풀이 죽어 있는 리유의 등짝을 팡팡 치며 말한다. 리유는 골이 잔뜩 난 표정으로 얼굴이 빨개져서 말한다. 운동 때문에 상기된 거겠지만. 사감 선생님도 리유더러 꼬맹이라고 하던데, 정희도 그렇게 부른다. 뭐, 꼬맹이 맞긴 하지만. 리유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정희를 쳐다본다. 정희는 그런 리유를 보며 ‘아유~~ 귀여워 죽겠어!’ 하며 리유를 번쩍 들어 껴안으며 볼을 부빈다. 꼭 친척동생에게 하는 것처럼. 아무리 리유가 작고 가벼워도, 30kg는 넘을텐데 그런 애를 번쩍 들다니, 정희도 정상적인 여고생은 아닌 것 같다. 리유는 잔뜩 수줍어하면서 ‘으우우…… 이거 놔!’ 하며 말한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며 훈훈하게 웃는다. 둘이 친해진 것 같네.



체육시간이 끝나고 바로 가정시간. 가정 선생님은 무언가 잔뜩 가져다 놓으시고 말씀하신다. 오늘이 개학하고 첫 수업인데 첫 수업부터 의욕적으로, 무엇인가 하고자 하시는 모양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2인 1조로 쿠션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재료는 앞에 다 있고, 지금부터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둘이 하나되어(?) 만들라고 하신다.


“같이…… 할래?”

“아, 아니! 솔직히 이런 건 내 전문인데?! 나, 나랑 같이 해야지!”

“오빠는 인기가 너무 많네요. 그치만 저도, 감히 한 번 말하고 싶어요. 부족한 몸이지만……♡ 부탁드려요.”

“어이어이, 부족한 몸은 뭔데.”


어째 나는 시작하자마자 애들에게 둘러 쌓여 움직을 수 없게 됐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성빈이가 조심스럽게 말하기가 무섭게 희세가 와 툴툴거리는 투로 말하고, 그 옆으로 미래가 와 말한다. 저번 요리 건도 그렇고, 왜 나 같은 애랑 같이 하려고 하는 거지. 가정 쪽은 전혀 모르는데. 솔직히 방해만 될 게 뻔한데 말이지.

사실 같이 한다고 하지만 둘이서 한 쿠션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쿠션 만드는 재료는 개인당 하나씩 주셨다. 다만 이런 것을 금방 이해하고 잘 하는 애가 있는 반면, 몇 번을 알려줘도 소질이 없어서 잘 못 하는 애가 있을 수 있으니까, 잘 하는 애 못 하는 애 같이 알려줘 가며 정답게 쿠션을 만들으라는 거겠지. 그렇다면 뭐, 답은 뻔히 나오네. 성빈이 아니면 희세. 미래는 자연스럽게 제외한다. 나랑 비슷한 센스를 지니고 있을 것 같거든.


“지선아.”

“응?”


나는 가만히 내 앞의 세 여자애를 보다 문득 지선이가 보였다. 내 앞 자리에서 쿠션 만들기는 고사하고 들어오자마자 꾸벅꾸벅 졸고 있는 리유를 보고, 퍼뜩 생각이 났다. 지선이는 내 부름에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본다. 성빈이와 희세, 미래는 순식간에 표정이 찌그러지며 나를 쳐다본다. 아마 내가 전혀 예상치도 않게 지선이를 간택(?)한 줄 알고 그러겠지. 그런 의도는 전혀 없는데 어째 이상하게 자기들끼리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지선이에게 다가가 작게 말한다.


“딱히 할 애 없지?”

“아니, 있는데.”

“그렇다면 리유랑 하는 건 어때? 적극 추천할게. 바느질 잘 해?”

“뭐,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럼 더더욱! 리유는 아무것도 못 하거든. 네가 잘 보살펴 줘야겠다.”

“……내가 왜??”


지선이는 불퉁한 태도로 대답한다. 좀 무안하지만 난 계속해서 장난치듯 말했다. 얘도 어째 불퉁한 태도지만 계속 말은 이어 한다. 더욱 무안해진다. 뭔가 강제할만한 명분도 없는데. 성미는 그런 나와 지선이를 힐끔 보더니 씩 웃는다. 나에게 눈짓을 살짝 보낸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성미의 눈빛을 받고 마찬가지로 눈을 찡긋 했다.


“우리, 헤어져.”

“어?! 뭔 소리야.”

“난 다른 애랑 할래.”

“에, 하기로 했잖아!?”

“너 이제 질려. 난 이제 갈게.”


갑자기 헤어지는 연인이라도 되는 양, 성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쌀쌀맞게 말한다. 지선이는 정말 당황한 연인처럼 토끼눈이 돼 성미를 본다. 성미는 그러더니 씨익 웃고 나를 본다. 내 계략을 알고 저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내 말 듣고 지선이 물 먹이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지선이를 본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리유랑 하는 수밖에.”

“아니, 어째서! 누구 맘대로 그렇게 되는 건데!”

“리유도 사실 너랑 친해지고 싶어하거든. 부끄럼이 많아서 그렇지만.”

“……으으, 정말.”


내 말에 지선이는 얼굴까지 살짝 빨개져서 억울한 표정이 됐다.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리유에게 다가간다. ‘일어나, 뭐 하는 거야 수업시간에.’ 하며 리유를 깨운다. 리유는 침을 스흡 삼키며 깜짝 놀라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아까 전 체육시간 덕분에 피로한 리유는 영문도 모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선이를 본다. 지선이는 힐끗 내 눈치를 보며 얼굴이 빨개져서 리유를 다그친다. ‘자, 우선 바늘부터 잡고!’ 하고 말하는 지선이. 리유는 아까 정희가 배드민턴 가르쳐 주는 때처럼 잔뜩 얼어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바늘을 든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누구랑 하겠다고?!”

“얼른 정해 주세욧!”

“아니, 왜 나만 가지고 그래……!”


훈훈한 마음으로 흐뭇하게 리유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희세의 볼멘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성빈이와 희세와 미래가 여전하게 날 기다리고 있다. 분명 누구 한 명만 고르면 틀림없이 나머지 두 명이 엄청 뭐라고 할 텐데. 진퇴양난에 처한 것 같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굉장히 오래간만에 올리네요. 죄송하다는 말로는 사죄할 길이 없네요.


네, 솔직히 쓰기 싫어서 안 썼어요. 쓸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는데. 아무래도 봄바람이 든 모양입니다. 물론 봄은 안 왔지만... 그냥 노는 게 마냥 좋아서. 죄송합니다. 최대한 심기일전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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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28화 - 4 +17 14.06.07 2,828 56 24쪽
115 28화 - 3 +19 14.05.30 3,540 147 20쪽
114 28화 - 2 +19 14.05.27 3,019 45 19쪽
113 28화. 나만의 그녀 +23 14.05.26 2,156 51 19쪽
112 27화 - 3 +13 14.05.24 2,027 49 22쪽
111 27화 - 2 +7 14.05.22 1,945 46 20쪽
110 27화. 그만 할게. +13 14.05.18 2,080 44 15쪽
109 26화 - 4 +10 14.05.10 1,696 42 15쪽
108 26화 - 3 +7 14.04.29 2,052 46 23쪽
107 26화 - 2 +9 14.04.26 1,868 41 21쪽
106 26화. 소녀 할 수 없사옵니다. +9 14.04.24 2,014 52 22쪽
105 25화 - 4 +15 14.04.17 2,780 115 18쪽
» 25화 - 3 +16 14.04.10 2,144 50 21쪽
103 25화 - 2 +24 14.04.05 2,311 52 16쪽
102 25화. 다시 한 번, 친구로! +19 14.03.26 3,101 64 19쪽
101 누락된 편입니다 +6 14.03.25 1,934 49 1쪽
100 24화 - 4 +16 14.03.24 1,965 4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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