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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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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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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번외01 - 2

DUMMY

뭐, 그랬었다. 그랬던 게 며칠 전 얘기고─ 지금은 평상시랑 똑같이 대하고 지내고 있다. 당장 사귄다고 뭔가 바뀔만한 그런 나이는 아니지만. 웅도 녀석은 확실히 바뀐 것 같은데. 그 동안 어색한 척 하느라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아냐고 앙탈 부리면서.

“그래도, 확실히 해야할 건 확실히 해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선 티 내면 안 돼.”

“네, 그건 저도 잘 알아요. 누·나♡”

“……하지 말라니까!”

“아하하하하하.”

저녁을 먹으면서 한 마디 했다. 녀석은 눈을 찡긋거리며 방긋 웃는다. ……하아. 제대로 알아 듣는 건지 모르겠다. 그치만 저렇게 귀엽게 웃는데 어떻게 뭐라고 하겠어. 거기다 녀석이 ‘누나’라고 말해버리면, 왠지 뭐가 어떻게 되던 다 상관 없을 것만큼 행복한 기분이 들어서…… 짜증을 부리다가도 어쩔 도리 없이 녀석을 다정한 눈으로 쳐다본다. 맛있게도 먹네. 많이 먹어라, 많이 먹고 많이 커야지. 한창 클 때인데. ……이건 이성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모성애인가. 좀 혼돈스러운데.

저녁을 먹고서는 그 뒤론 각자의 시간이다. 나는 기숙사에서 자기계발이나 밀린 업무를 하고, 웅도는 야자를 하러 간다. 헤어지는 것까진 아니지만 같이 할 수 없으니까 좀 아쉽긴 하다. 그래도 야자 끝나곤 기숙사로 돌아오니까, 그 때 볼 생각으로 참는 거지.

“아~ 야자 하기 진짜 싫다.”

“공부 좀 해. 야자시간에 딴짓 좀 하지 말고. 다른 선생님들이 너 은근 주시하니까.”

“아 그러니까요. 남자애라곤 저밖에 없으니까 괜히 저만 보잖아요. 야자 때 딴짓을 못 하겠어요, 딴짓을.”

“흐흥.”

툴툴대는 녀석도 어찌나 귀여운지. 단 세 시간 못 보는 건데 꽤나 괴로운 심정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괴로운 건 웅도와의 만남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 알아, 아는데…… 양지에 드러내놓고 말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지금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렇게 다정하게 말하고 훈훈한 눈빛으로 녀석을 쳐다보는 거지, 다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하고 싶지도 않지만 금세 쌀쌀한 눈빛으로 웅도를 쳐다봐야 한다. 웅도도 나도, 그게 서로에 대한 연기인 건 알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걸…….

“웅도야.”

“네? 아하하, 왜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고 그래요. 심장 쿵쾅 거리게.”

“……아니야.”

“에? 뭔데요, 뭔데 또 말하다 말아요~”

나, 정말 너 좋아해 하고 말하려다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그냥 말하지 않았다. 좀 중증인 것 같다, 나도. 스물 아홉 살이나 먹어서, 어른이 돼서 어른스럽게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이렇게나 빠져버리다니. 처음엔 장난 같았는데.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얘한테 점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점점 더 위험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에 ‘됐으니까, 얼른 가버려.’ 하고 말했다. 녀석은 또 걱정스런 표정으로 ‘에…… 저 뭐 잘못했어요?’ 하고 묻는다. 아휴, 착해 빠져가지고. 또 자기가 잘못한 줄 안다. 어쩔 도리 없이 애써 웃으면서 ‘아니야, 화나거나 삐지거나 한 거 아니니까. 야자 잘 하고 와.’ 하고 말해줬다. 그제야 조금 표정이 풀린 웅도. 활기차게 웃으며 ‘그럼, 갔다올게요!’ 하고 달려간다. 뛰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살피다 기지개를 쭉 펴고 사감실로 들어갔다.


야자는 7시에 시작해서 10시에 끝이 난다. 그 시간동안은 조용하게 내 일을 보다, 10시를 기점으로 다시 기숙사는 시끄러워진다. 사감을 맡은 지 몇 년이나 됐지만, 나는 으레히 입구에 서서 돌아오는 애들을 하나하나 쳐다본다. 기지배들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내 기숙사에서 청춘을 보내는 녀석들인데, 조금은 걱정되기도 하니까. 정말 큰 일이 있지 않는한은 늘 계단 문턱에 서서 애들을 쳐다본다. 요즈음은 서 있는 이유가 하나 더 늘긴 했지만.

“왔지요!”

“닥치고 들어가기나 해.”

“피이. 바보.”

“어유어유…… 꼬꼬마 여고생 다 됐네? 귀여워서 어쩌나?”

“여고생이라뇨! 아무리 그래도, 그건! 흥흥!”

웅도는 잔뜩 귀여움을 가득 담은 눈망울로 내 쪽에 가까이 오자 깡총 뛰어 귀엽게 말한다. 마음 같아선 포옥 껴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잖아. 평소에 하던 대로 시큰둥한 태도로 조롱조로 말하니 웅도 역시 평상시와 비슷한 반응으로 툴툴댄다. ……근데 좀 너무 여성스럽게 말하는데. 오죽하면 옆에 지나가던 여자애들이 역겹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잖아. 내 눈에는 확실히 귀엽다만…… 여자애들 입장에선 그렇겠지. 에휴, 저것들이 어려서 그렇지. 지금이야 일진처럼 까지고 쎈 척 하는 애들이 좋겠지. 니들도 나이 먹어봐라…… 착하고 귀여운 남자가 최고다─ ……나보다 어리면 더 좋고. 푸흡. 머릿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에 스스로도 우스워 웃음이 나온다.

“아핳하, 하하핳하하!”

“음─.”

애들 씻게 하고, 점호까지 다 마치고 나면 11시가 훌쩍 넘는다. 일은 예전에 끝냈으니까, 12시 조금 넘도록까진 내 개인 시간이다. 개인 시간이라고 해 봐야, 여학교 선생님인 내가 뭐 대단한 걸 하겠어. 그냥, 인터넷이나 한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침대에 웅도가 누워있다는 거.

웅도는 휴대폰으로 예능 프로를 보면서 바보처럼 헤헤거리며 웃고 있다. 웅도는 웅도대로 할 거 하고, 나는 나대로 인터넷을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뭐, 자취방도 아니고 사감실이니까 뭘 하고 놀기도 애매하긴 하다. 옛날, 대학생 정도만 됐어도 남자애가 같은 방에 있으면 신경 쓰여서 아무것도 못 했을 텐데…… 새삼 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낀다. 녀석을 보면, 그냥 귀엽기만 하다. 덩치만 커서 한참 어린애니까.

“뭐해요?”

“인터넷.”

“놀아줘요!”

“내가 재롱 떨어야겠니? 네가 재롱 떠는 게 맞지.”

“에에? 언제는 또 나이 많이 먹은 대접 하지 말라고 해 놓고는요. 이럴 때에만 나이 대접 하는 거에요?”

“……하여튼 입은 살아가지고.”

“에헤헷.”

가만히 인터넷으로 소설을 보고 있는데 심심한지 녀석이 와서 말한다. 쳐다보지도 않고 냉정하게 대답하니 녀석의 찰진 도발이 귓전으로 들려온다.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웅도 얘는 좀 안 맞아서 안달난 것 같은 느낌이다.

“뭘 하고 놀……!”

“에헤헷. 저 자러 갈게요!”

“야…….”

신경 쓰이게 하니까, 고개를 돌리고 신경질적으로 말하려는 찰나, 바로 내 얼굴 앞에 있는 웅도의 눈과 시선이 딱 맞았다. 웅도는 그대로 내 볼에 뽀뽀를 하고 빠르게 나에게서 떨어진다. 흠칫 놀란 나. 웅도는 잔뜩 빨개진 얼굴로 엄청 수줍어하면서 휴대폰을 챙겨서 방문을 나선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대로 나가버린다. 나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방금 전 뽀뽀를 한 장면을 생각했다. ……아, 진짜. 너무 풋풋해서 어떻게 견딜 수가 없잖아. 저 녀석, 도대체 나를 얼마나 더 가지고 놀려고…… 이러다간 정말 저 녀석한테 푹 빠져서, 내 쪽에서 견딜 수 없게 돼 버릴 것 같은데. 살짝 부끄러우면서 은밀한 기쁨에 웃음이 절로 번진다. 그래도 한참 나이 많은 여자 심장 두근거리게 할 줄도 아는구나. 어쩌면, 키우는 맛(?)도 있을 지도. 아, 이건 좀 위험한 발언 같다.


“저기…… 선생님.”

“응?”

교무실에서,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누군가 머뭇거리며 날 부른다. 2학년 3반 반장. 약간 낯을 가리지만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는, 귀여운 녀석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애인데. 엄청 예쁜 건 아니지만 수수하게 귀여워서, 나중에 대학교 가서 꾸미면 인기 많을 것 같은 애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한테 먼저 말을 걸다니. 예전에도 말했지만, 난 여자애들은 질색이라 여학교에 다니면서도 정말 몇 명 마음에 드는 애 빼고는 정을 붙인 적이 없거든. 같은 여자니까. 뭐, 그렇다고 애들한테 엄청 매몰차게 대하는 건 아니고. 근데 얘가 왜 나한테 먼저 말을.

“여쭤보고 싶은 말 있어서…… 잠깐 시간 되세요?”

“어, 그래.”

누가 들으면 내가 중년 여선생님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솔직히, 10살 내외로 차이나는데 이런 극존칭은 듣기가 좀 그렇다. 아아, 뭐 그건 내 입장이겠고, 애들 입장에선 똑같이 선생님이고 사회인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애들 사이에서 소문이, 이상한 얘기가 자꾸 돌아서…….”

“응?”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학교 뒤편 으슥한 곳으로 안내한 여자애는 말을 걸 때와 마찬가지로 머뭇거리며 말한다. 하지만 막상 말하는 건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직구. 본론부터 바로 말해줘서, 나는 듣자마자 이 여자애가 하려는 말이 뭔지 대충은 알게 됐다.

“선생님이, 1학년 그 남자애하고…… 사귄다는 소문이…… 애들이 다 그 얘기만 해요.”

“……아아.”

그 애의 떨리는 목소리에 마음 속 무언가가 훅 떨어지는 기분이다. 결국엔 소문이 퍼졌구나. 세상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주위 배경은 다 어두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고, 학생들이고 선생들이고 전부 수군거리며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최면이라도 걸린 듯 나를 경멸하는 듯 쳐다보며 지껄이는 그 모습들은 평상시의 착하고 귀여운 학생들이 아니라, 인자하고 선배로서 이끌어주던 선생님들이 아니라 차라리 하나의 악귀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도저히 그 시선을 감당할 수가 없다. 도저히 그 눈빛을 마주할 수가 없다.

“선생님, 그거 정말 아니죠? 그냥, 그냥 같이 다니는데 애들이 오해하고 있는거죠? 애들, 헛소문 많이 내니까…… 자기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러는 걸 거에요, 그쵸?”

충격과 혼돈 속에 멍하니 있는데 여자애의 목소리 덕분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여자애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말한다. 머뭇거리며 말하며 그 말은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처럼 확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응, 그래, 거짓말이야’ 하고 대답하고 싶지만 선뜻 그럴 수가 없다. 여자애의 눈빛 너머에 있는 불안한 느낌의 그것, 그게 정말이니까. 사귀고 있는 게 진실이니까.

“응, 웅도 말하는 거지. 선생님이 걔랑 몇 살이나 차이 나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걔가 남동생처럼 귀엽게 구니까, 같이 놀아주는 거야. 선생님, 남동생 없거든.”

“응, 그런 거죠? 하여튼, 애들 성격 이상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분 나쁜 가십거리가 뭐 재미있다고…… 애들한테 제대로 말해야 겠어요. 정말 아니라고.”

“응. 선생님 걱정해준 거야? 고마워.”

“네, 네…….”

입을 떼면서도,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여자애의 순박하고 해맑은 미소. 내 입으로 나오는, 더러운 거짓말로. 저 순수한 애의 귀를 더럽히고 있다. 순수하게 내 걱정 돼서 찾아온, 소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면서…… 또 지금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여자애는 수줍어하면서 ‘저, 그럼 가 볼게요’ 하며 종종걸음으로 간다.

“하아…….”

한숨을 푹 쉬면서, 잠깐 하늘을 올려다본다. 담배 필 수 있으면 담배라도 피우고 싶다. 어릴 때에는, 거짓말 하는 거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면서 막상 거짓말은 못 했는데. 지금은 거짓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면서 역설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제, 또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겠지.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교장, 교감, 교무주임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그리고, 그리고…… 웅도한테도.

그것만은 싫은데. 웅도에게만큼은 거짓말하고 싶지 않은데, 꾸며 말하고 싶지 않은데.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그 어린 모습에 나까지 동화돼서, 조금은 의지하고 조금은 솔직하게 어른의 모습을 취하느라 힘든 내 안의 어린 모습을, 조금이라도 솔직하게 꺼내서 지내고 싶었는데. 꿈결 속을 헤매다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놀러 왔어요─☆ 데헷.”

“…….”

어떻게 해서든, 웅도를 피하려고 했다. 점심시간엔 미리 휴대폰으로 정자하고 점심 약속 있다고 해서 피하고, 저녁 때 역시 일 때문에 저녁 못 먹는다고 핑계를 댔다. 마주보지도, 전화로 목소리로 말하지도 않고 오로지 문자로만…… 매일매일 기숙사 앞에 서서 야자 끝나고 돌아오는 웅도를 기다렸는데, 오늘은 사감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점호도, ‘선생님 아프니까 대충 할게’ 하는 공공연한 핑계로 엄청 빨리 끝냈다. 머릿속이 피곤하고 어지럽다. 그냥 빨리 자고 싶다. 평상시에는 새벽 1시나 되야 잠자리에 들었지만 오늘은 그냥 잠들고 싶다. 11시도 체 안 됐지만 불을 끄고 누웠다. 하지만 기어이 피할 수 없이 들리는, 녀석의 목소리.

“우와, 벌써 자요? 학생들도 12시 넘어서 자는데, 어쩌다 선생님이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셨어요?”

“…….”

“에…… 주무세요?”

“…….”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그 모습 봐 버리면, 그 목소리 들어 버리면, 더 어떻게 할 수 없잖아. 그치만 또, 매몰차게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몸을 벽 쪽으로 돌리고 귀를 막았다. 녀석의 약간 기죽은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애써 무시.

“선생님? 어디 아파요? 기분 안 좋아요? 불 켜도 되요?”

“……들어오지 마.”

“에…….”

‘철컥.’

‘틱.’

하지만 무정하게도, 녀석은 내 바람과는 다르게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한다. 어째서, 귀를 꼬옥 막았는데도 저 다정한 목소리는 계속 들리는 건데. 참다 못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제발 나가줘, 부탁이야…… 더 내 마음 복잡하게 하지 말고, 제발……. 하지만 녀석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내 말을 안 듣는다.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틱 하고 불이 켜졌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정말 아파요? 목소리가 완전 다 죽었는데…….”

“가라고, 가라니까……!”

“……선생님.”

다정하면서도 걱정스러운 중저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그 목소리에, 견딜 수가 없어 소리쳤다. 드라나마 소설에서, 여주인공들이 혼자 끙끙 앓으면서 정작 남주인공한테 말하지 않아서 답답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지금 내가 꼭 그 꼴이다. 날 여주인공에 비유하겠다 그런 농담이 아니라. 말할 수가 없잖아.

어른으로서의 자존심. 선생이라는 사회적 위치. 그 두 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웅도와의 사랑은 포기해야 하니까. 매몰차게 거절할 용기는 없으니까, 이유불명인 상태로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사이가 안 좋아져서 제풀에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제대로 끝맺음 안 되고 끈적끈적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것이지만, 그러면서 정작 내가 이런 결말을 내고 있다.

‘화악.’

“!”

“……왜 울어요.”

웅도는 아무 말도 없다. 가만히 날 내려보고 있으려나.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거센 힘에 의해 몸이 화악 일으켜진다. 동시에 화악 하고 눈이 부시다. 웅도가 억지로 나를 일으켜 앉혔다. 베개는 눈물로 젖어 있고, 눈가도 잔뜩 눈물로 젖어 있다. 웅도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진지하면서 살짝 골이난 듯 무서운 얼굴. 창피하다. 이런 못난 모습 보이기 싫다. 피하고 싶다. 그리고…… 정말 너무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아서, 좋아…….

“왜 우냐구요. 말 안 해줄 거에요? 무슨 일 있었어요?”

“……됐어, 이제 끝내…….”

“뭐, 뭘…… 뭘 끝내요.”

매몰차게 말하지 못하겠지만, 정말 안 되겠지만 난 결국 말하고 말았다. 절대 꺼내지 말아야 할 그 말을. 내 입으로 내뱉고서도, 마음 안쪽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도저히 웅도를 쳐다볼 수가 없다. 웅도, 얼마나 당황했는지 금세 엄청 풀죽은 목소리가 돼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일말의 불안감을 품은 목소리. 아파 죽겠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다. 더 이상 끌어선, 더 이상 피해선.

“처음부터 안 되는 거 알았으니까…… 이제 끝내. 내가, 내가 나쁜 년이니까…… 너 가지고 논거야. 그러니까…… 헤어져.”

“…….”

얼이 빠진 듯 멍한 표정.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간신히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나를 보는 웅도의 표정이다. 정말 혼이라도 빠져나간 것처럼 멍한 표정이다. 웅도의 어떤 반응도 읽을 수 없지만, 나는 이미 마음 안이 갈기갈기 찢긴 듯 아파서, 감정을 추스르느라 정신이 없다. 누군가 톡 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누나.”

“…….”

“누가 뭐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손가락질 했어요. 누나랑 저랑, 사귄다고요.”

“……!”

“괜찮아요, 괜찮아요. 제가 더 티 안나게 할게요. 누나한테 폐 안 끼칠게요. 학교에서도, 기숙사에서도, 아무 말도 안 하고 냉전처럼 지내도 되니까, 그러니까……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마요. 제가 얼마나…… 누나 좋아하는 지 알잖아요.”

“……!!”

웅도는 ‘누나’라고 낮게 말하고 그대로 내 머리를 자기 가슴으로 품듯이 껴안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무덤덤하게 말한다. 감정을 추스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런 말 들어버리니까 나도 모르게 설움이 복받쳐 오른다. 눈물이 줄줄줄 흐른다. 간신히 울음을 틀어 막고 눈물만 흘리는데, 계속해서 들려오는 웅도의 말에 어떻게 감정을 컨트롤 할 수가 없다. 결국엔 울음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바보야! 흑! 그런 게, 그런 게 아니라고……! 하아, 하아……!”

“…….”

나는 웅도를 떨쳐내고 말했다. 이미 얼굴은 엉망진창, 아이처럼 눈물범벅이다. 자존심이고 뭐고 완전히 내팽겨쳤다. 지금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저, 이 바보같을 정도로 맹목적으로 내가 좋다고 하는 웅도가 너무 좋아서,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 복합적인 것들 때문에 감정을 컨트롤 할 수가 없다.

“왜, 흑! 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흑! 너는, 너는…… 흑! 정말 그렇게 멍청이처럼 착하기만 한 건데! 바보야, 바보야…… 나쁜 건 다른 사람들인데…… 나쁜 건 선생님이 나쁜데…… 흑!”

“…….”

이만큼, 타인 앞에서 봉인을 풀고 내 자신의 모습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성숙해 보이려고, 어른처럼 보이려고 남들 앞에선 제대로 나를 표현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 정말 친한 친구 두셋 빼고는, 다 꾸며진 가식의 나였으니까. 차라리 알몸을 보이는 게 나을 정도로, 너무너무 창피하다.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해서, 온 몸이 녹아버릴 것 같다.

“어쨌든 미안해요, 내가 누나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내 고집이니까. 정말 미안해요, 누나 아프게 해서.”

“……흑! 흐윽……! 하아…… 하아…… 흑!”

웅도는 다시금 나를 포옥 껴안아주면서 말한다. 그 달콤한 목소리는 어린아이처럼 정신이 약해져 있는 나에겐 너무 치명적인 목소리다. 품이 따뜻해서 좋아. 중저음의 막 변성기 온 목소리도 좋아, 조금 거칠지만 소년 특유의 풋풋한 피부도 좋아. 그냥 전부, 전부 좋아.

“나도, 흑! 나도 네가 너무너무 좋아…….”

“……누나.”

결국 결론은 이렇게 돼 버린다. 포기할 수 없다. 너무 좋아서, 내가 우려했던 대로 완전히 이 녀석한테 빠져버려서 헤어 나올 수 없다. 꼭꼭 숨겨두었던 마음 안 쪽 문까지 활짝 열어버리고, 웅도를 맞이해 버렸다. 죽을만큼 창피한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 웅도는 줄곧 진지한 표정이었다 내 솔직한 대답에 은은하게 미소가 번진다. 그러더니 평소대로 개구쟁이처럼 신이 나서 활짝 웃는다. 하아, 귀여워. 좋아.


작가의말

크흠, 흠... 사실 어제 올렸어야 하는데, 갑자기 그날따라 한 자도 글을 쓰기가 싫어져서... 삼국통일(?)만 실컷 했네요. 2001년에 나온 코에이 삼국지 8.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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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88 사카나상
    작성일
    14.07.01 16:01
    No. 1

    이제 가장 중요한 섹.....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1 17:53
    No. 2

    후후후후후... 세크... 밍나 세크...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코드명000
    작성일
    14.07.01 18:10
    No. 3

    본편은 아직 안읽고 아겨두고 있지만 번외는 보고 있죠
    가장 좋아하는 사감선생님과의 로맨스라서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말했지만 한 십년전쯤이라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서 이정도나이차이는 주위사람들도 좀 흥미끌뿐이지 금단이니 좋지 않는 시선이니 그런것은 별로 없죠 오히려 능력 좋다고 주위에서 부러워 하면 했지 말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1 19:55
    No. 4

    그래도, 정말 보자면 12살 차이는 그렇죠. 아직까지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는 한국이라면. 웅도 20살 되면 선생님은 32살... 주위에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며 태클 들어올 것이며... 결혼해서 애 낳으려고 해도 군대 크리... 웅도 취직하려면 대졸기준 최소 26살... 그 때 선생님은 38... 으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8 사카나상
    작성일
    14.07.01 18:45
    No. 5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리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1 19:55
    No. 6

    리유는... 사랑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7.01 22:54
    No. 7

    사감사감감감감~~사합니다! 난 사감썜을 원햇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1 22:58
    No. 8

    제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 실제 사감은 50대의 까만 피부가 인상적인 아저씨였습니다. 네, 남고니까, 남고니까...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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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5 18:17
    No. 9

    아아악 남자 사감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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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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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번외03 - 3 +13 14.07.05 1,442 46 20쪽
128 번외03 - 2 +9 14.07.04 1,515 40 23쪽
127 번외03. 제일 예쁜 우리... - 1 +10 14.07.04 1,767 34 19쪽
126 번외02 - 3 +7 14.07.03 1,693 34 18쪽
125 번외02 - 2 +3 14.07.03 1,704 43 18쪽
124 번외02. 나 같은 애가 좋을 리가 없잖아!! - 1 +13 14.07.02 1,855 31 21쪽
123 번외01 - 3 +14 14.07.01 2,158 38 21쪽
» 번외01 - 2 +9 14.07.01 2,162 32 20쪽
121 번외01. 금단이지만 금지는 아니니까... - 1 +16 14.06.29 2,272 36 22쪽
120 29화 - 4 +22 14.06.28 1,927 36 23쪽
119 29화 - 3 +9 14.06.27 1,840 43 20쪽
118 29화 - 2 +13 14.06.21 1,887 34 21쪽
117 29화. 너도 내가 좋니? +21 14.06.15 2,281 43 20쪽
116 28화 - 4 +17 14.06.07 2,830 56 24쪽
115 28화 - 3 +19 14.05.30 3,544 147 20쪽
114 28화 - 2 +19 14.05.27 3,025 45 19쪽
113 28화. 나만의 그녀 +23 14.05.26 2,161 51 19쪽
112 27화 - 3 +13 14.05.24 2,031 49 22쪽
111 27화 - 2 +7 14.05.22 1,950 46 20쪽
110 27화. 그만 할게. +13 14.05.18 2,084 44 15쪽
109 26화 - 4 +10 14.05.10 1,700 42 15쪽
108 26화 - 3 +7 14.04.29 2,057 46 23쪽
107 26화 - 2 +9 14.04.26 1,872 41 21쪽
106 26화. 소녀 할 수 없사옵니다. +9 14.04.24 2,018 52 22쪽
105 25화 - 4 +15 14.04.17 2,782 115 18쪽
104 25화 - 3 +16 14.04.10 2,148 50 21쪽
103 25화 - 2 +24 14.04.05 2,317 52 16쪽
102 25화. 다시 한 번, 친구로! +19 14.03.26 3,107 64 19쪽
101 누락된 편입니다 +6 14.03.25 1,939 49 1쪽
100 24화 - 4 +16 14.03.24 1,969 4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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