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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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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7.31 23:01
조회
861
추천
6
글자
22쪽

06화 - 4

DUMMY

“저기······ 웅도야.”

“어, 응?”



넌지시 나를 부르는 성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는 표정으로 성빈이를 본다. 저번 일로부터 며칠.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성빈이를 대하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지금처럼 지나치게 환히 웃으며 맞이하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어색한 것 같은데. 어쩔 도리가 없잖아. 나는 그렇게 포커페이스가 뛰어난 녀석이 아니니까.



“할 얘기가 있어서······ 잠깐 볼 수 있을까?”

“응, 그래.”



다소 진지한 표정의 성빈이. 눈치 채지 않게 침을 꿀꺽 삼키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며 성빈이와 함께 교실을 나섰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요즈음은, 성빈이를 대하는 게 많이 꺼려져서. 내가 당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성빈이 본인이 안정을 취해야 하는 때니까. 함부로 접촉했다가 나도 모르게 예전 일 같은 걸 말했다간 안 좋으니까.



“무슨 얘기······?”

“······.”



성빈이의 고민을 들어줬던 자판기 앞 쉼터. 그 때와는 달리 음료수를 마시지도, 자리에 앉아 훈훈한 분위기로 얘기하지도 않는다. 다만 성빈이는 나를 이 곳으로 데리고 와, 말없이 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견디다 못한 내가 질문했다. 그래도, 성빈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이 드는 찰나에 성빈이의 입이 열렸다.



“웅도, 요즈음 나 피하는 것 같아서.”

“에?! 에이,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피하는 거 맞지.”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정확하게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하는 성빈이. 그 말에 흠칫 놀란 건 나. 피하고 있는 걸 명확하게 알고 있는 성빈이. 그리고 그걸 정확하게 지목해서 물어보면,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피한 건 사실이니까.



“아냐 분명히, 분명히······ 웅도 나 피하고 있잖아.”

“······아니야!”

“모르는 사이에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기분 나빴던 거라도?”

“잘못은 무슨······ 그······.”



뭘 어떻게 말할 수가 없잖아. ‘네가 나 덮쳐서 그랭!’ 하고 말할 순 없잖아. 그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까. 지금도, 성빈이가 나에게 다가올까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질 치려고 하는데.


입술을 깨물며 난처함을 느끼고 있는 나. 사실을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거짓으로 무엇인가 꾸미기엔 내 순발력이 딸리고.



“피하는 거 맞아.”

“희, 희세야.”



뜻밖에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화악 고개를 꺾어 보니 계단 앞 입구에 서 있는 희세. 팔짱을 끼고,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나와 성빈이를 노려보고 있다. 성빈이는 다소 당혹스런 목소리로 희세를 쳐다본다.



“네가 웅도 덮쳤어.”

“엣······!?”



퉁명스러운 목소리의 희세. 기어이, 올 것이 온 건가. 결코 성빈이에게 말해선 안 되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희세. 성빈이는 흠칫 놀라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걸 대체 왜 말하는 건데. 희세야······! 내 여자친구이기 이전에, 성빈이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상황은······!



“기억 안 나는 것 같은데. 그 때 그대로 쓰러졌으니까. 웅도 방에서, 네가 웅도 덮쳤어. 어디까지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엣······ 엣!? 무, 무슨 소리야, 그, 그게 무슨 말이야!”



희세의 말에는 명백하게 적의가 담겨 있다. 평소의 성빈이와 친한 희세의 목소리가 아니다.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는 성빈이. 눈이 크게 흔들린다. 본인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인데, 그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고 하니까. 거기다, 그것도 좋아하고 있던 남자애한테 자기가 직접 했다니. ······아니, 아직 좋아하‘는’ 이라고 해야 하나.



“성별 바꿔서 생각해보면 엄청 큰일이거든? 좀 심하게 말하자면······ 「강간」이거든. 웅도가 남자애니까, 유야무야 넘어가는데. 난 그런 거 싫어하거든. 거기다 웅도는 내 남자친구고. 남자친구가 그런 거 당했는데, 남자애니까 그냥 넘어가는 건 좀 그렇잖아?”

“아······ 아니야, 그럴 리가······ 나, 난 그런 기억 없는데······?”



여성우월주의가 아닌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희세 성격 상 분명 이의를 제기할만한 부분이긴 하다.


만약에 성빈이와 나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 반대의 경우였다면 엄청난 일이었겠지. 남자애가 기숙사에 있는 여자애 갑자기 덮쳐서 침대 위에 거꾸러뜨리고, 멋대로 키스를 하며 몸을 마구 만져대다 현장적발. ······그거, 소년원 정도로 끝날까. 실형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위대한 대한민국엔 청소년 보호법이 있으니까. 어쨌든 엄청난 파문이 일 것이다. 그대로 철컹철컹.


하지만 나와 성빈이의 경우엔 그러지 않았다. 물론 결정적 그것(?)까지 가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사건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내 의지도 있었지만. 어쨌든, 희세 표현대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희세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성빈이에게 따질 정도로.


성빈이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설마 자기가 나에게 그런 짓을 했으리라곤 상상도 못한 표정. 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눈에는 눈물까지 고이는 것 같다. 애잔해서 어떻게 견딜 수가 없다.



“기억이 안 난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 왜 피한다고 생각해? 피할만한 이유로는 충분하잖아? 그런 일이면.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충격 가시지도 않았을 텐데. 생글생글 웃으면서 예전처럼 대하길 바라는 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잖아? 정신적인 충격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닌데?”

“난, 난······.”



물론 희세는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니까.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정말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느냔 말이다. 희세 또한 분명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들었다. 성빈이에게, 너무 큰 충격을 주지 말라고. 그런데 지금, 이렇게 대놓고 뭐라고 할 건 아니잖아. 희세 말대로, 지금 당장은 내가 어색해서 성빈이를 잘 못 마주치지만, 시간이 지나 조금 치유되었다면 그 때 가서 천천히 말해도 되는 거잖아. 근데 그걸 꼭 지금······!


성빈이는 이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잔뜩 고인 눈물은 이미 또르르 떨어져 흐른다.



“······미, 미안해!”

“서, 성빈아!”



외마디 사과하곤 후다닥 달려가는 성빈이. 혹여라도 기억이 난 걸까. 아니면, 단순히 희세의 비난에 괴로워 그런 걸까. 달려가는 성빈이를, 나는 감히 붙잡을 수가 없다.



“왜 그랬어. 대체 왜!”

“뭐.”



갈 곳 없는 막막함과 답답함을, 짜증으로 변환해 희세에게 내뱉는 나. 잔뜩 험상궂은 표정이 돼 희세를 쳐다보며 말한다. 성빈이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팔짱을 낀 채 뾰로통한 표정인 희세.



“나중에 얘기해도 됐잖아, 꼭 지금 해야 돼?! 충격 받았잖아 성빈이!”

“그럼 뭐. 언제까지 이러고 있게. 지금 성빈이가 물어본 게 왜 자기 피하냐는 거잖아. 계속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있다가, 결국엔 성빈이랑 멀어지는 거. 뻔한 정웅도 스토리 아니야? 그런 성격이잖아, 넌.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악역 맡을 테니까. 내가 악마 같은 년이 되어도, 차라리 불태워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나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건 아니잖아······!”



희세의 말에 콱 말문이 막히는 나. 희세는 내 우유부단한 성격은 탓하고 있다. 악역을 자처하는 희세.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희세를 두고, 황급히 성빈이를 따라 나섰다.












--












“리유야. 혹시 성빈이 어디 간지 봤어?”

“응? 방금 화장실 들어갔어! 우는 거 같던데! 싸웠어?!”



허겁지겁 계단에 올라온 나. 희세와 잠시동안 말다툼을 하느라 성빈이의 종적을 놓쳐버렸다. 마악 계단에서 모퉁이로 도는 사이, 리유의 모습이 보인다. 황급히 리유의 양 어깨를 잡고 추궁하듯 물었다. 리유는 눈이 동그래져선 대답한다. 어쩐다. 화장실은 명백한 금남의 구역, 내가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다.



“저기, 리유야. 잠깐 화장실 가서, 여자애들 있는지 확인해줄 수 있어?”

“에? 3년 만에 드디어 변태짓 하려는 거양?”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 성빈이 울린 것 같애서. 사과해야 할 거 같아서.”

“응응, 그러면 얼른 가볼게.”



순진하던 리유도 나와 미래와 어울리며 드립력이 많이 늘었다. 당장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것 같은 내 기세에 리유는 싱긋 웃는다. 급박하고 진지한 내 태도에 리유는 장난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화장실에 들어갔다.



“······마음에 안 들어.”

“뭐.”



리유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소리없이 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희세가 날 따라온 모양이다. 그녀를 볼 면목이 없어, 아직도 화난 척 성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보면 성빈이를 더 위하는 것 같단 말이지.”

“지금은 그것보다 이게 더 중요해.”

“······하아. 그래,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해.”



깊은 한숨을 내쉬는 희세.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느니, 어쨌든 뭐든 하겠다. 희세에게 미안하지만.



“아무도 없엉. 한 칸만 잠겨 있는데, 울고 있는 거 같애. 비니 맞아?”

“······크흡.”



금세 확인하고 나오는 리유. 잠겨 있는 칸은 성빈이가 들어가 있겠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는 나. 3년동안 한 번도, 여자화장실을 들어간 적은 없는데. 그래, 이제와서 뭘 망설이냐. 이미 변태 소리 듣고 있는 난데. 그것보다 이게 중요하다. 표정 하나 안 찡그리고,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흑!”



성빈이는 울고 있다. 변기 커버를 내리고, 거기에 앉아서 고개를 떨군 채.


너무 싫다. 모든 상황이.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고.


그걸 따지고 있는 희세에게 생겨나는 억울함과 배신감, 질투심,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자신이 더욱 싫어지고.


최근에 있었던 모든 힘든 일들이 일시에 생각나 더더욱,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오르지 않는 성적도,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고자 하는 발버둥도,




모든 애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는 압박감도,




좋아하는 남자애에 대한 짝사랑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도,




가장 친한 친구이자, 좋아하는 남자애의 연인이 된 그 애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도,




전부.



“······성빈아.”

“······!”



한참을 슬픔을 삭히며 훌쩍이고 있는 때. 문득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고에서 들리는 남자애의 목소리는 단 한 명 뿐. 웅도가 문앞에 있음을 인지한 성빈이는 애써 울음을 삼켰다. 어깨가 들썩거리지만 가녀린 손으로 입을 막고 겨우 울음을 그쳤다.



“그······ 요즈음 피해 다녀서 미안해. 사실이었어. 인정하지 않은 것도 미안해. 정말, 미안해.”

“······.”



웅도의, 어색해하면서 겸연쩍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솔직한 그 사과에 성빈이의 감정은 더욱 들끓었다. ‘아니야, 괜찮아’ 하고 대답하고 싶지만 지금 손을 떼고 말했다간 대번에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성빈이는 계속해서 입을 틀어막았다.



“그 때 그 일······ 음······ 응, 나 되게 당황하긴 했는데.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었으니까. 별 거 아니었어. 그냥, 쇼크가 좀 커서 그러니까.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



여전히, 성빈이는 대답하지 못 한다. 자신을 배려하며 말을 아끼는 웅도가 너무 고맙다. 마음 같아선 괜찮다고, 오히려 내가 사과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말할 수 없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끓어오른다.









‘철컥.’

“······성빈아.”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성빈이. 얼굴은 온통 빨개져서, 눈물범벅. 어깨를 들썩이며, 가녀린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간신히 참고 있는 모습. 가련해서 어떻게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문을 열고 나왔다는 건 내 사과를 받아준다는 뜻이겠지. 천천히, 성빈이의 이름을 부른다.



“······웅도야······♡”

“앗······?!”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그럴진데 진짜 자라를 또 마주친다면. 달착지근한 성빈이의 목소리는 그 때의 그 목소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풀린 눈과 상기된 얼굴조차. 그대로, 나를 벽으로 밀치는 성빈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갑자기 벌어지는 턱에, 나는 그대로 밀쳐져 벽에 부딪혔다. 남자가 무슨 깡도 없이 여자애에게 밀쳐지냐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상태의 성빈이, 믿겨지지 않을만큼 힘이 강해서. 가녀린 성빈이 몸에 대면 거의 괴력 수준으로 힘이 강하니까.



“미안해······♡ 고마워······♡ 좋아해······♡”

“서, 성빈아, 이러지마 이러면······!”



저번과 같은 상황. 괴력으로 나를 제압한 성빈이는 그대로, 내 귀에 마치 바람을 불어넣듯 간질간질한 느낌으로 속삭인다. 금세 볼 쪽에 ‘쪽’ 하고 뽀뽀하는 성빈이. 평소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적극성이다. 온몸에 전기가 관통하는 것처럼 짜릿하다. 트라우마 같은 것일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겨우 고개를 움직여, 힐끔 눈치를 본다.



“가관이네.”

“······!?”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팔짱을 낀 채 아니꼬운 시선으로 나와 성빈이를 보고 있는 희세. 리유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본다. 금세 경계의 눈빛이 되는 성빈이. 처음 성빈이에게 덮쳐졌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너······ 너······!”

“뭐.”



나에게서 떨어지는 성빈이. 희세를 보고 극도의 적개심을 느끼는 듯, 몸을 부들거리며 희세를 쳐다본다. 희세는 세상 누구보다 당당하다. 고고한 표정으로 성빈이를 바라보는 희세.



“네가 제일 싫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싫어!”

“······.”



갑작스런 험담. 거의 저주에 가까운, 토해내는 듯한 성빈이의 말에 희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너만 아니었으면······! 웅도, 세상 누구보다 좋아하는데! 너 때문에······! 그런 주제에 나랑 친구하고······! 싫어, 너무 싫어!”

“······.”

“성적도 엄청 잘 나오면서······! 누구 놀리는 거야!? 난 하고 싶어도 그렇게 안 나오는데, 죽어라 공부해도 성적 안 나오는데! 하향지원?! 진짜 싫어!”

“······.”



반쯤 이성을 잃은 채로, 계속해서 말하는 성빈이. 쥐어 짜내듯 말하는 성빈이의 말을 담담히 듣고만 있는 희세. 삐딱한 표정으로 반발하기 딱 좋은 각도지만, 웬일인지 희세는 반박하지 않는다.



“그리고······ 흑! 친구한테 이런 감정 느끼는 나도······! 세상에서 제일 싫어······!”

“······.”



그대로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지며 오열하는 성빈이. 잔뜩 격앙된 감정으로 싫어하는 것들을 나열하다 결론은 자기학대. 성빈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일면을 조금은 보게 된 것 같아 더욱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런 것들 때문에 혼자 힘들어하고 있었구나.



“······엇. 에엣.”



눈물을 뚝뚝 흘리던 성빈이. 문득 느낌이 달라졌다. 정신이 돌아온 걸까. 소스라치게 놀란 성빈이. 멍하니, 나와 희세, 리유를 쳐다본다.



“아······ 아아······!”

“성빈아!”



극도로 혼란스러운 눈이 된 성빈이.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한 듯 정신이 나간 듯한 그녀의 모습. 방금 전에 자신이 한 말, 기억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방금 전에 나를 벽에 밀친 것까지도 기억이 나는 것일까. 견디지 못하고, 성빈이는 그대로 화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소리치며 쫓아가는 건 희세. 리유 또한 따라간다. 나도, 얼떨떨해 하다 두 사람을 따라 성빈이를 쫓는다.












--












“성빈아!!”

“······.”



옥상. 높아서 바람이 훨훨 부는 장소. 왜 이런 위험한 장소가 잠겨 있지 않은 것일까. 만화나 드라마 보면, 안전을 위해서인지 펜스 같은 것도 있던데. 왜 우리학교 옥상은 그런 것 없이 달랑 난간 하나 뿐일까. 위험하게. 성빈이가, 그 난간을 붙들고 서 있는데.


다급한 마음에 얼른 성빈이를 불렀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성빈이. 그대로, 난간을 넘어 바깥쪽에 서려 한다. 더욱 다급해진 마음.



“성빈아!! 안 돼!!”

“······미안해, 웅도야.”



목이 터져라 외치니 성빈이는 그제야, 난간을 넘어서기 직전에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본다. 슬픈 눈망울. 바람에 머리칼과 치마가 마구 흩날린다. 너무 위험하다. 본인이 그럴 의지가 없다 해도, 갑자기 화악 돌풍이 불어 어어 하는 사이에 떨어질 수도 있다. 5층이란 높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높이가 아니다. 잘못하면, 정말 큰일날 수도 있다.



“그만 해.”

“······.”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 건 의외로 미래. 언제 따라왔는지, 희세와 리유와 함께 서 있다. 심유한 눈빛으로 성빈이를 바라보고 있는 미래.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안 돼. 아무리 슬퍼도, 그것만은 안 돼. 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



미래의 말에 성빈이의 얼굴엔 당혹감이 서린다. ‘남겨진 사람’이라는 말이, 미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기에. 성큼성큼, 성빈이에게 다가가는 미래. ‘잠깐만’ 하는 말이 입 안에 맴돌지만 그걸 내뱉기도 전에, 미래는 거의 달려가는 속도로 빠르게 성빈이 앞으로 다가갔다.



‘짝!’

“!”

“바보야. 정신 나갔어. 왜 이딴 짓을······!”



난간 바로 옆에 서 있는 성빈이의 뺨을 찰싹 때리는 미래. 행여라도 성빈이가 휘청 해서 떨어질까 다른 손으론 동시에 성빈이 팔을 붙들고서. 성빈이는 뺨을 맞아 고개가 돌아가곤 여전히 당혹스런 표정으로 미래를 본다.


평소엔 온갖 드립과 말장난으로 나사 두세개 빠진 모습만 보여주는 미래. 하지만 적어도, ‘죽음’ 앞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너무나 뼈저리게 새겨진 그녀이기에. 멍한 상태의 성빈이를, 미래는 손목을 질질 끌고 우리 쪽으로 데리고 왔다.



“······미안해. 미안해, 모두.”



나지막이 말하는 성빈이. 그만큼이나 울었는데도, 또 눈물이 나올 여지가 있는지 두 볼을 타고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웅도도, 희세도, 정말 미안해, 나······ 흑······!”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돼. 힘든 게 사실이니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탁 말문이 막히는 성빈이. 그 말을 끊고 말을 꺼낸 건 희세. 아까부터 성빈이의 불평이나 사과에 말 한 마디 하지 않던 그녀가, 이제야 말을 꺼낸다.



“누구라도, 머리 터질만큼 고민하는 게 고3이니까. 나도 그랬고. 웅도 녀석도 그랬고. 다른 애들도 다 그러니까. 그치만, 우린 친구잖아. 혼자만 속으로 삭히려고 하지 말고, 조금은 이야기 해도 괜찮잖아. 그렇게 감정 추스르는 거지. 미안해할 필요 없어.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응?”

“······흑! 흐윽! 아아앙─!”



희세의 말에 성빈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품에 쓰러지듯 기댄다. 희세의 품에 안겨, 한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성빈이. 하아. 보고 있는 내가 다 기운이 빠진다. 그만큼 성빈이의 일이 나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만히 잔잔한 눈으로 그런 성빈이를 보고 있는 미래. 리유마저도 천진난만한 모습을 감추고 슬픈 눈망울로 성빈이를 바라본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던 성빈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감정을 한번에 토해내서 그런 지 그 다음 검사 때엔 다중인격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일시에 사라질 수 있는 건가 싶지만. 마음 한구석의 응어리진 덩어리들이 해소됐으니 그랬던 걸까.


나는 다시 한 번, 성녀와도 같은 희세에게 깊은 감동을 느끼고. 공부한다. 또 공부한다. 우린 고3이니까.



“그치?”

“응!”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성빈이. 이제는 더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하기로 한 성빈이. 바보 삼남매와 희세와 함께, 스터디 그룹을 이뤄 공부하고 있다.



“그래에~ 어차피 한 번 왔다 한 번 죽는 인생, 재미있게 살아야지~”

“······네가 그런 얘기 하면 기분 이상하다니까.”

“아핳☆”



미래는 죽음 가지고 또 고인드립을 치려 한다. 성빈이의 최악의 상황을 제때에 막아준 일등공신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드립은 좀, 그렇다.



“열심히는 하되, 안 되면 그냥 성적 맞춰서 적당한 데에 갈래. 헤헷.”

“와. 뭔가 성빈이가 그런 불성실한 말 하니까 되게 느낌 이상하다.”

“아하하하핫!”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 희세 또한 싱긋 웃는다. 그래, 친구니까─ 힘들고 고된 고3생활이지만, 우린 다같이 있으니까. 뭔가 일본 애니 같은 교훈이지만, 그게 사실이니까. 친구니까! 같이 있으니까, 행복하고 계속 할 의지가 생긴다.





자, 공부하자! 계속 공부하자!


작가의말

8월 한 달 정도, 잠시동안 연재를 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공모전 준비하려구요.
다른 신작, “너와 나의 섹슈얼리티 표류기”를 정리해야 돼서요.
1권 분량은 바로 준비돼 있지만, 날 것 그대로 낼 수는 없으니까요. 거의 리메이크에 가깝게 다듬고 수정해서 내야지요.

그것도 있고 뭐랄까, 요즈음 생각만큼 잘 써지질 않아서요.
우학변을 쓰기 시작해서, 이제까지 많은 글들을 써 왔는데. 조급함만 앞서고, 실질적인 재미나 흥밋거리는 점점 더 사라져가고. 이제는, 이렇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난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건가, 이걸 써서 대체 뭘 하려는 건가. 글도 안 써지는데 심란한 생각들 뿐이 안 듭니다.

약한소리 해 봐야, 별 도움 안 되는 건 알지만. 이제는, 초창기의 신선함과 병맛 등의 재미마저 없어진, 양만 꾸준히 증식하는 암세포가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성장 원동력을 잃은 대한민국 경제 같은 상황이랄까요. 대한민국만큼 성장하지도 못 했지만. 한, 동남아 정도 될까요. 어머, 저도 모르게 동남아 비하 발언을...... 죄송합니다.

어쨌든, 그런 심란한 심사에 잠깐동안 휴재에 들어갑니다. 죄송합니다.


※ 3줄 요약
· 한 달 연중 (공모전 때문에)
· ······글 때려 치울까.
· 발전 가능한 피드백을 요청드립니다. 한 마디 한 마디 소중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여러분! 우학변은 안전합니다! 안심하시고 계속 선작을 눌러주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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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55 비행병아리
    작성일
    16.08.08 16:38
    No. 1

    발전 피드백이라기 보다는 헛소리만 주저리 주저리 써봅니다

    1. 글의 전체적인 흐름이 너무 시간에만 묶여있는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만 글이 흐르다 보니 고3 한국 시간 이 삮여서 이야기거리가 될게 너무 한정적이 되는거 같습니다
    차라리 코난이라는 만화처럼 시간을 잊고 이야기를 진행하는것도 나쁘진 않을꺼 갇습니다

    2. 캐릭터성이 확립되었으니 일상 치유물도 어떨까 싶읍니다
    끼리끼리 또는 여자들끼리만 혹은 커플들키리만 모여서하는 만담이라든지 등등... (건어물여동생 우마루 짱 , 농림등)

    3. 예전 사건을 추억식으로 꺼내거나 xxx서건이 있었을 때입니다 라늘 설정으로 사건에 나오지않은 인물들의 사이드스토리도 어떨까요?

    4. 작가는 if 스토리를 계속 진행하라 !!!

    5. 리유x희야 미래x성빈, 등등의 백합꽃 피는 이야기도 진행을... 쿨럭.

    6. 전형적인 러브하렘코메디를 따라가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합니다.
    지금은 일부일처제에 주인공이 엮여 있지만 하렘이나 다처제도.....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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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6.08.15 18:24
    No. 2

    최대한, 말씀해주신 의견을 반영해서 잘 써보도록 노오오오력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죽으나 사나, 어쨌든 우학변은 우학변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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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6.11.15 18:06
    No. 3

    웅도의 변태력이 떨어져가고 있슴~
    예전의 웅도였으면 성빈이가 덮치면 고맙습니다~ 하고 앙~ 했을텐데~ ㅋㅋㅋㅋ
    이렇게 되면 우학변 제목부터 갈아엎어야 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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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번외 - 대학교에선, 뭘 해? +1 16.11.04 894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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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화 - 4 +3 16.07.31 862 6 22쪽
254 06화 - 3 +5 16.07.28 772 6 20쪽
253 06화 - 2 +3 16.07.26 820 7 22쪽
252 06화.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니까……! +1 16.07.23 945 6 20쪽
251 05화 - 4 +5 16.07.20 856 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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