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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837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7.19 01:57
조회
796
추천
6
글자
21쪽

05화 - 3

DUMMY

“나는 가고 싶어, 너와 함께!”

“······!”



눈을 질끈 감고, 나는 말했다.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는 나를 보며, 희세는 입을 다물었다. 멍하니 그런 나를 보고 있는, 희세 어머님.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걸까.

희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잘 하는 것 하나 없는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다. 공부도 못할 뿐더러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다. 무슨 대학을 갈지, 무슨 과를 갈지, 무슨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무런 비전도 없는 그런 녀석이다. 거기다 공부도 잘 안 한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정말 소중한 희세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은 생각이 안 나지만, 그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희세와 함께 학교를 다니고 싶다. 희세와 함께 지내고 싶다. 비단 지금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대학생 때도, 아~주 나중에도. 난 희세랑 꼭 같이 있고 싶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지, 열심히 노력해야지. 그리고,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가발은 왜?”

“······여장하려고.”

“흐엥. 그-런 거야 웅이?”

“······그-런 거야.”



뭐가 그런건데. 오해를 사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이게 낫다. 그냥 내가 여장벽 있는 변태로 오인 받는 게 낫지. 희세의 머리에 대한 걸 함부로 말할 순 없으니까.


밥 먹으면서 넌지시, 가발에 대한 걸 애들에게 물었다. 어디서 파는지 모르니까, 가발은. 보통 살면서, 남자애가 가발을 살 일은 대게 없을 테니까. 리유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마음에 상처.



“가발이라면, 시내에 가발가게에 있지 않을까?”

“미용실에서 파는 거 아니었어?”

“미용실에선 가발 안 팔죠! 오빠는 참.”



성빈이의 말에 대답하는 나. 미래는 씨익 웃으며 딴죽을 건다. 미용실에서 파는지 어쩐지, 별 상관은 없다. 어디서 파는지만 안다면 됐다.



“가발 살꺼야 웅이?? 변태!”

“아니야. 안 사.”



리유의 장난스런 말에 피식 웃음짓는 성빈이. 괜히 부끄럽다. 민서도 유진이도 싱글벙글 웃는 것 같고. 희세 가발 때문에 졸지에 변태취향이 되는구나. 사람 이렇게 가는구나.



“뭐, 오빠 나름 반반하게 생겼으니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끔찍한 소리 하지도 마.”



악마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내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미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는 질색을 하며 대답했다. 고추 달린 다 큰 남자가 여장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이니?



“그러고 보니깐 오빠, 여고 다니는 주제에 여장 한 번 안 했네요?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니에요?”

“날로 안 먹으면 뭐. 여고 다니면 의무적으로 여장을 해야하는 법도 같은 거라도 있간.”



미래는 무척이나 끔찍한 말을 계속한다. 그 얘기 나올까봐, 축제기간만 되면 전전긍긍 했는데. 대체 여자애들은 왜 멀쩡한 남자애를 여장시키려고 하는 건지. 수컷 웅에 길 도, 남자의 길을 걷는 나에게, 그런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웅도, 여장하면 의외로 귀여울지도.”

“유진이 너까지 왜 그래! 안 해, 안 한다고!”



유진이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놀리는 유진이는 장난이겠지만, 그걸 실제로 당할 수도 있는 내 입장에선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내가 다니는 이 고등학교가 여고이기에 더욱 소름돋는다. 막말로, 여장을 강제로 당한다면 어떤 환경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당할 수 있는 게 지금 내 상황이니까. 여자애들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여고니까.



“어쨌든, 난 그런 거 안 해. 할 생각 없어, 돌아가.”

“에~ 가발 얘기는 오빠가 먼저 꺼냈거든요~?”



두런두런 얘기하며 점심시간은 흘러간다. 희세만 빼고 전부 있는데. 희세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응, 그 희세 때문에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잖아. 희세 가발을 사기 위해.











--












“오빠?”

“어?! 어! 안녕!”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 얼굴을 확인하곤 퍼뜩 놀라 얼른 뜬금포로 인사한다. 이렇게 길거리를 지나다니는데 나에게 ‘오빠’라고 할 만한 애는 두 명밖에 없지. 컨셉오빠충(?)인 미래와, 정말 후배인 시아. 그리고, 지금 나와 마주친 녀석은 후자. 시아다.

가발을 사러 나온 길. 다른애들에게 들키면 뭔가 기분이 좀 그러니까, 혼자 몰래 빠져나왔다. 혼자 나오는 건 꽤나 쉬웠다. 예전 같으면 리유나 미래가 징징댔을 텐데, 요즈음의 나는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 시기니까. 혼자 돌아다니면 ‘아 저 녀석 방황하고 있나보다’ 하곤 이럭저럭 넘어가는 편이니까.


마악, 가발가게에 들어가려는 찰나, 지나가는 시아가 아는 척을 해서 모든 것이 망했다. 시아는 친구 한 명이랑 같이 지나가고 있었는지 시아 친구로 추정되는 여자애가 힐긋 나를 쳐다본다. ······가발가게로 들어가려는, 여고 유일의 변태 한 녀석을. 아니, 억울해서 못 살겠네. 딱히 여자애 가발을 사서 하앜하앜! 이러려는 의도가 아니라! 희세 줄 거라니까!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미춰버리겠네.



“먼저 가 있어, 나 오빠랑 얘기할 거 있어서~”

“으응, 가 있을게~”



친구와 정답게 인사하는 시아. 되게 오래간만에 보는 거 같은데. 이 녀석도 멀쩡히 친구 있구나. 하긴, 없을 이유는 없구나.



“뭐해요? 안 들어가고?”

“어, 응.”



자연스럽게 가게로 나를 인도하는 시아. 얼떨떨해서 우선 대답하곤 가게로 들어갔다.



“오빠가 그런 취향이실줄은 몰랐는데. 뭐,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는 거니까.”

“아니 시아야, 네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는 알겠는데, 나는 그런 이상한 취향이나 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

“됐어요.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되요. 오빠의 취미를 말할 수 없어도, 전 다 알 수 있으니까요.”

“······하아.”



역시나, 내가 예상한 대로. 심각하게 상황을 곡해하고 있는 시아. 정말 진지하게, 희세에 대한 걸 말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지. 무슨 일이 있어도,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희세의 자라나라 머리머리에 대한 비밀을 말해선 안 돼.



“오빠 혼자 끙끙 앓고 있느니, 제가 도와드리는 편이 낫잖아요? 어느 머리가 마음에 드세요? 제가 어드바이스 해드릴게요!”

“······그러면, 하아.”



졸지에 시아의 여장 코칭을 받게 생긴 나. 시아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뭘 어드바이스 해주겠다는 거야.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니야, 참자, 참아. 다 희세를 위해서야. ······그냥 가발, 인터넷으로 살 걸 그랬나. 오늘 바로 가져다주려고 가게 온 거 였는데. 망했어.



“오! 잘 어울리는데요? 생각보다 훨씬 여자애 같아요.”

“······여자애 같이 되고 싶지 않아.”

“왜요? 오빠가 하고 싶은 게 이런 거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거, 이런 거 아니야. 난 긴 생머리 희세랑, 알콩달콩 이러쿵 저러쿵 해서, 음. 하핳. 아니, 대학교 가서. 아니! 어떻게! 아핳! 에헿! 크흠. 그런 거. 그런 걸 하고 싶다고.


가발을 씌우곤 좋아라 하는 시아. 나는 굉장히 불쾌하다. 남자새끼가 가발 쓰고 불퉁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고추 떨어질 거야, 아마. 이제 됐어, 대충 사고 돌아가자 이 이상 있다가는, 내 멘탈이 부서져버릴 것만 같아.


가발을 사고, 겨우 간신히 시아를 떼놓고 희세네 가는 길. 왜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어딜 가냐고 묻는 시아에게, 희세 만나러 간다고 하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는 시아. ‘여자친구한테 그런 취향까지 다 말하는 변태에요?’ 하고 쏘아 붙이곤 귀여운 포즈로 달려간다. ······그런 오해까지 받고 싶진 않았는데. 아니 뭐, 나는 먼 미래에 희세랑 그런 취향까지 공유하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긴 하지만. 으헿! 이힣!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누구세요.』

“저······ 접니다. 정웅도.”

『뭐야, 왜 왔어 이 시간에. 부모님도 계신데.』

“그······ 그냥 왔어.”

‘철컥.’



아니,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집에 찾아갈 수도 있는 거지, 이렇게나 불퉁하게 할 일은 아니잖아. 시무룩해서 말하니 문이 열린다.



“왜 왔어.”

“······담판 지으러.”

“뭐?”



여전히, 반짝반짝 민머리의 희세. 하루만에 머리카락이 자랄 리가 없으니, 당연한 건가. 나는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희세를 보며 대답했다.



“우선 이거.”

“어······?”



종이가방에 들어 있는 가발을 꺼내 희세에게 건넸다. 움찔 놀라는 희세. 내가 준 가발을 손에 들고선 얼떨떨한 표정이다.



“누구 왔니?”

“나는 가고 싶어, 너와 함께!”

“······!”



거실에 계셨는지 현관 쪽으로 나오는 희세 어머님. 타이밍 맞춰, 나는 큰 소리로 희세에게 말했다. 가발을 줄 때와 마찬가지로 움찔 놀라는 희세. 많이 당황한 표정으로, 어머님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는 희세 어머님. 물론 희세 어머님은 내가 누군지 안다. 남자친구인 것 정도는 아시니까. 몇 번 본 적도 있고. 하지만 그 남자친구란 녀석이, 갑자기 집에 쳐들어와선 빼애액 소리를 치는 경우는 생각도 못 하셨을 테니까.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뛴다. 긴장된다. 말로 다 표현을 못 하겠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내가 희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냐고 한다면. 나는 오지랖이 넓다. 내 앞가림도 못 하면서, 다른 사람 걱정까지 한다. 그게, 내 유일한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 희세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내 ‘여자친구’니까!



“희세 너랑 학교 가고 싶어. 희세 너랑, 같은 대학교 가고 싶어. 그러니까, 같이 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자!”

“······.”



뭐랄까, 다시 고백하는 것 같은 기분 비슷한 느낌. 예전에, 희세한테 어떻게 고백했는지, 벌써 까먹고 생각도 안 나는데. 고백할 때, 이만큼 떨리지 않았을까 싶다. 헛된 망상인 것 같지만, 얼토당토않은 일 같지만. 난 희세랑 같은 대학교를 가고 싶다. 같은 대학교 가서, 지금처럼 재미있게 같이 지내고 싶어. 솔직한 마음이야. ······내가 희세 성적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는 별개의 문제지만.


희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머님도, 이 상황이 대체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어머님 옆에 케이나인이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들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

“······.”



3자대면. 부엌 식탁에서, 마주하고 앉은 나와 희세 어머님. 희세는 내 옆에 앉았다. 무거운 분위기에 그대로 질식해 숨이 끊어질 것만 같다. 잠자코 눈치를 보던 나. 이런 무거운 분위기에서는, 내가 드립을 쳐서······!



“따님을 주십시오, 어머님!”

“응, 그래. 결혼해. 어쩔 수 없지, 아이를 가졌다면.”

“뭐, 뭔 소리 하는 건데 둘 다!?”



아. 아줌마 너무 좋아. 드립을 더한 드립으로 막다니. 그럼 지금 상황극 상으로는 내가 희세를 임신시킨 건가. 해본 적(?)도 없는데 임신이라니. 희세는 예수님을 잉태한 거야. 드립이 끝도 없구나.


이 밑도끝도 없는 드립에 괜히 희세만 부끄러워하며 중간에서 벌컥 화를 낸다. 어머님은 ‘아니 왜 좋잖아~ 벌써부터 딸 달라고 하는 남자친구도 있고~’ 하고 좋아하신다. 저 같은 잉여인간을 그렇게 좋게 봐주신다니, 장모님······! 아, 장모님은 너무 에반가.



“그······ 그러니까요, 제가 뭘 말하러 온 거냐면, 그······.”

“말할 거면 똑바로 말 해! 바보처럼 얼버무리지 말고.”

“어······ 응, 미안······.”

“잘한다 우리 딸. 남편이 바보같으면 와이프가 잡아줘야지.”

“아씨! 뭐가 남편이고 뭐가 와이프에요!”



막상 얘기를 하려니까 참, 말이 잘 안 나온다. 내가 이렇게 바보처럼 구는 걸 참 싫어하는 희세는 옆에서 날 닦달한다. 좋아하시는 어머님. 어머님부터가 이미 희세 놀리기에 전력을 다하시는데? 거기에 이미 나는 남편감이 돼 있고. 아니, 좋은 게 좋은 거긴 한데. 희세는 잔뜩 부끄러워하며 어머님에 맞서 항거한다.



“······희세 꿈에, 더 왈가왈부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희세 꿈?”



순식간에 얼어붙는 분위기. 방금 전까지의 장난스런 공기는 한순간에 날아갔다. 희세는 얼굴이 훍빛이 됐다. 설마 내가 그런 얘기를 꺼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지. 어머님은 방금 전까지의 장난스런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싸늘한 얼굴이 되셨다. 긴장돼서 침을 꿀꺽 삼켰다.



“희세가 결정한 진로입니다. 희세도 고민하고, 열심히 생각해서 내린 진로에요. 그걸 무작정 꺾어버리고, 부모님 마음대로 강제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제로 머리까지 밀어버린 건, 그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흰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세상 사는 게, 그렇게 자기 하고 싶은 것만, 꿈만 쫓아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



더듬거리지 않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좋게 풀어 말할 수 있는데. 긴장해서 그건가, 말이 두서가 없게 나온다.


내 말에 잠시 침묵하시곤 말을 시작하시는 어머님. 지극히 전형적인 어른의 말이다.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어머님의 말을 경청한다.



“희세 공부 잘 하잖아. 그 성적으로 그런 데 가는 건 낭비지. 사람은 기회와 때라는 게 있어. 나중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때와는 같은 결실을 내지 못 하는. 지금 학생 때가 그런 때야. 유치원 선생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

“아니 내가 유치원 선생님 하고 싶다는데 왜 엄마가 뭐라고 해?!”

“넌 가만히 있어. 엄마아빠 말 뭐 들었어?”



중간에 끼어들어 투닥이는 희세. 어머님은 희세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한다. 나는 감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 생각이 한데 꼬인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생각한 것을 말해본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단, 무엇이라도 얘기하는 게 나으니까.



“저는 꿈도 뭣도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에요. 공부도 못 하지만, 공부할 명분도 못 찾겠어요. 왜 공부해야 하는지, 어째서 이렇게 달려가야 하는지도. 하지만, 희세는, 적어도 누구보다 확고한 목표가 있어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생각과, 본인의 의지가 있어요. 그런 거면 뭐가 어떻게 되었든 상관 없는 거 아닌가요? 행복의 척도가 높은 대학, 많은 돈, 좋은 성취 뿐인가요? 저희 부모님은 그렇게는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돈을 벌 수 있을 때 벌어야겠지만, 그렇다고 계속 돈에만 매달리면 나머지를 모두 잃는다고, 해외출장가신 아빠가 늘 말씀하시는 거에요. 미안하다고, 가족들하고 같이 못 있어줘서. 그러니까, 희세는. 누가 과외 시켜주고, 학원 주렁주렁 다니게 해서도 못 따라갈만큼 공부 엄청 잘 해요. 서울대 의대 얼마든지 갈 수 있을 정도로. 그치만, 그건 희세가 한 거잖아요. 희세 삷이잖아요. 희세 꿈이잖아요. 그것까지 못 하게 하고, 마음대로 머리 밀어버리고 강제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흥분해서 우와아아아앙? 하고 말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화내거나 시무룩한 것도 전혀 아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하게, 논리도 두서도 없지만, 가감없이 내 의견을 말할 뿐이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길게 말한 적이 있을까. 그것도, 내 일이 아니라 타인의 일 때문에.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처음인 것 같아.


어머님은 가만히, 내 말을 듣고 계신다. 희세는 어째서인지 울적한 분위기. 힐긋 살피니 상기된 얼굴로 눈물이 고여 있다. 자신에 대해 이렇게까지 변호해준 것 때문일까. 아니, 난 사실대로 느낀 걸 말한 거니까. 정말 대단하고, 내 여자친구지만 멋지고, 자랑스러운 희세니까. 그렇게나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생각하는 희세를, 마냥 어린아이 취급하고 의견을 마구 무시하는 건. 그건 좀 아닌 것 같으니까.



“······어쨌든, 나와 희세 아빠 의견은 그래.”

“······.”



하지만 사람 생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른일수록 더욱, 보수적이 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이 있으니까, 그대로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실 테니까. 그것 또한 틀린 것은 아니기에, 함부로 뭐라 할 수 없다. 함부로 뭐라 했다가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생때로 전환될 뿐이니까.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는 나. 고인 희세의 눈물이 양 볼을 타고 또르르 흐른다.



“······그래. 멋진 남자친구네. 우리 희세에 대해서, 부모님보다도 더 낫게 생각해주는 것 같은데.”

“······희세가 더 멋지죠.”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시는 어머님. 비꼬는 투는 아니다. 그럼 정말 나를 칭찬해주시는 건가. 잠자코 대답한다. 희세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훌쩍이고 있다. 어째 어머님도 조금 서글퍼하시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엄마가 희세 생각은 안 하고 내 생각만 했어. 희세 얘기 들을 생각도 안 하고.”

“······.”



분명 희세는 말했을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말했겠지만 어머님은 들으시지 않았겠지. 남인, 타인인 나에게 희세에 대한 얘기를 듣고서야, 조금은 희세의 마음이 전달된 모양. 희세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끅! 끅!’ 하며 울음을 간신히 삼킨다. 어머님이 일어나 희세의 어깨를 감싸주니 이제는 더 참지 못하고 ‘앙앙’ 소리내어 운다.


나는 그런 희세를 보며, 덩달아 숙연해졌다. 많이, 힘들었겠지. 많이 괴로웠겠지. 희세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그동안의 서러움을 온전히 털어낼 기세로.










희세의 울음이 그치고. 저녁을 안 먹은 나는 염치없이 밥도 얻어먹고 저녁 늦게 나왔다. 뭔가 좌불안석인 기분. 어머님이 나를 보는 눈빛이 너무 호의적이 돼서 도리어 부담스럽다.



“괜찮지.”

“어. 뭐. 많이 울어서.”



문 앞에서 헤어지는 인사. 내 물음에 희세는 한참 울어서 아직까지 퉁퉁 부은 눈으로, 시무룩해진 태도로 말한다. 아무래도 심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을 희세니까. 내 억지와 오지랖으로, 어떻게든 그럭저럭 해결되었으니.



“그럼 내일부터 학교 오는거지?”

“어. 가발 사줬으니까, 갈 수 있지. 고마워, 잘 쓸게.”

“아니야, 학교 올 수 있으니 내가 더 좋지.”



내 물음에 선선히 대답하는 희세. 고맙다는 말에 싱긋 웃으며 답한다. ······잠깐, 그럼 내가 가발 안 사줬으면 계속 학교 안 나온다는 얘기? 가발 때문에? 에이, 아니겠지.



“······한 번 써볼까?”

“어, 응. 한 번 써 봐.”



되게 간만에 보는, 수줍어하는 희세. 아니, 희세가 수줍어하는 적이 있었나 싶은데. 늘 당당하고 의젓한 희세였으니까. 오늘 거의 처음으로, 나한테 약한 모습 보인 희세다. 그래서 의기소침한 기분의 희세다.



“······어때?”

“예뻐.”



잠시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희세. 단발머리 가발. 딱히 내 취향은 아니다. 그게 가성비가 괜찮아서. 근데 4만원. 으앙 내 용돈.


자라나라 머리머리 상태라서 뭔가 외계인 같은 느낌이었던 희세. 다시금 누구보다도 예쁜 미소녀로 돌아왔다. 단발이라 평소의 긴 머리와는 또 색다른 느낌. 다른 매력이 있다. 어려보인다고 해야하나. ······입밖으로 꺼내진 말아야지.



“······너무 형식적인데. 정말?”

“응, 정말. 귀여워.”

“······응, 고마워.”



너무 빨리 ‘예뻐’ 라고 대답하니 눈을 흘기는 희세. 아 ! 너무 예쁘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니 싱긋 천사처럼 웃는 희세. 나도 절로 미소가 걸린다.



“내일 봐.”

“응, 내일 봐!”



홀가분한 마음으로, 희세의 배웅을 받고, 인사하고 몸을 돌려 걷는다. 굉장히 가뿐해진 마음.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정웅도~!!!”

“어?!”

‘쪽!’



큰 소리로 날 부르는 희세.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는 순간 기습뽀뽀. 움찔 놀라서 눈이 커진 순간 희세가 몸을 뒤로한다. 방긋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는 희세.



“······가!”

“어, 응······!”



‘가’라고 하며 내 등을 떠미는 희세. 무안한 모양.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얼른 뛰어서 도망치듯 달려간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멀리 ‘고마워!’ 하는 희세의 두 번째 감사의 말이 들리는 걸 애써 무시한 채, 달리고 또 달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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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6.11.15 15:19
    No. 1

    그건 그렇다치고 아무리 그래도 여자친구 어머니한테 왈가왈부하지 마라고 하는건
    지나친거 아닌가요?
    김태신 작가 궁디 팡팡!!!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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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번외 - 대학교에선, 뭘 해- 2 +2 16.11.16 837 7 20쪽
264 번외 - 대학교에선, 뭘 해? +1 16.11.04 894 8 15쪽
263 08화 - 4 +6 16.10.20 835 7 22쪽
262 08화 - 3 +1 16.09.18 880 7 17쪽
261 08화 - 2 +4 16.09.12 970 7 19쪽
260 08화. 고3에게 물놀이는 사치인 것 같지만 몰라, 놀아! +1 16.09.07 952 7 20쪽
259 07화 - 4 +4 16.08.31 829 7 18쪽
258 07화 - 3 +2 16.08.27 863 7 17쪽
257 07화 - 2 +3 16.08.23 776 8 20쪽
256 07화. 소개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 16.08.15 1,133 7 17쪽
255 06화 - 4 +3 16.07.31 862 6 22쪽
254 06화 - 3 +5 16.07.28 772 6 20쪽
253 06화 - 2 +3 16.07.26 820 7 22쪽
252 06화.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니까……! +1 16.07.23 946 6 20쪽
251 05화 - 4 +5 16.07.20 856 7 6쪽
» 05화 - 3 +1 16.07.19 797 6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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