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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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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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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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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3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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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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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8쪽

07화 - 4

DUMMY

“기다렸어?”

“아니. 한 30분 정도.”

“많이 기다렸네! 미안.”

“으으응, 내가 먼저 와 있었는데.”



허겁지겁 달려온 민서. 뾰로통한 표정의 현기가 보인다. 뭔지 모르게 큰 배낭을 잔뜩 싸매고 있는 현기. 엄청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수수한 복장. 민서는 평소보다 훨씬 더 꾸미고 나왔는데. 교복이 아니면 치마를 잘 안 입는 편인 민서지만 최대한 신경 써서 치렁치렁한 치마도 입고 나왔는데. 괜히 자기만 신경 쓰고 있는 건가, 괜히 부끄러워지는 민서다.


그도 그럴 게, 처음으로 남자애랑 노는 거니까. 그러니까······ 데이트? 꺄아~~! 하고 혼자 망상하며, 민서의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가보면 알아.”

“응? 알려줘~?”

“됐어. 버스 왔어.”

“피이.”



민서의 질문에도, 현기는 근엄한 표정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왜 안 알려줄까, 하면서도 민서는 현기를 따라 버스에 탄다. 옆자리에 앉아 재잘재잘 떠드는 민서. 문득 자기가 이렇게 말이 많았나 싶다. 그냥, 딱히 누구한테고 말은 하는데, 잘 모르겠다. 현기는 얘기를 잘 들어주니까. 들어주는지 어쩐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터라 좀 그렇긴 하다만.



“어디 가는데에?!”

“······안 알랴줌.”

“아아앙~!”



자기가 말하고도 스스로 흠칫 놀란 민서. 누구한테 앙탈 부리듯 말하는 건 민서에겐 거의 없는 일이다. 부모님한테나 그러는데, 그걸 남자애한테 그러다니. 조금 겸연쩍어졌다. 현기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창밖을 본다.







“에······ 바다?!”

“응.”



고속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허름한 시골 버스 정류장. 그제서야 어디 가는지 알려주는 현기. 바다를 간댄다. 흠칫 놀란 표정의 민서를 보고, 현기는 살짝 걱정스런 표정이 되었다. 자칭 연애의 고수인 친구 녀석이, ‘네가 동생이니까, 의존적이 되지 말고 도리어 더 박력있게 리드해야지! 그래야 누님들이 확 달라붙지!’ 하고 조언해준 것 때문에 일부러 말하지 않고 무턱대고 온 건데. 불안불안, 힐끗힐끗 민서 눈치를 살핀다.



“바다 놀러가고 싶었는데! 잘 됐다!”

“······응.”



약간 불안해하는 현기의 눈을 보고, 민새ㅓ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라 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여름 내내 바다에 못 가기도 했고, 즐거울 거 같기도 하다. 다만 남자애랑 단 둘이 가는 게 조금, 어색하고 당혹스러울 뿐이지. 그래도 현기와 함께 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



“가자.”

“응.”



바닷가까지 가는 시골버스. 큰 배낭을 맨 현기와 귀여운 차림의 민서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꽤나 사람이 많았다. 아마 다들 바다를 놀러가는 것인지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젊은 학생들이 많이 있다. 자리가 다 차 있어 앉을 자리가 없기에, 둘은 손잡이를 잡고 섰다.



‘끼익!’

“읏!”

“!”



털털거리는 낡은 버스. 시골길을 잘 가던 버스는 갑자기 급정거를 한다. 휘청거리는 버스. 그 버스와 마찬가지로 휘청거리는 사람들. 민서는 멍하니 있다 크게 휘청했다. 그대로 거의 쓰러질 뻔한 민서를, 얼른 손을 뻗어 붙잡는 현기. 다행히 쓰러지지 않았다.



“고, 고마워.”

“······응.”



현기 덕분에 쓰러지지 않은 민서. 얼굴을 붉히며, 민서는 대답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현기. 그대로,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어쩌다 잡은 손이지만, 결코 놓고 싶지 않다. 작고 보드라운 손. 그 손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현기는 잠깐 눈을 꼬옥 감았다 뜬다.











--











“바다다─!”

“응. 바다.”



버스에서 내려, 후다닥 달려 푸르른 바다를 쳐다보는 두 사람. 아직까지 버스에서 잡은 손은 놓지 않고 꼬옥 잡고 있다. 현기를 쳐다보며 싱긋 웃는 민서. 현기 역시, 무표정한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답답한 여름, 방학 내내 학교에만 갇혀 있다 이렇게 바닷가에 놀러오니 감회가 새롭다. 얼른 바다에 들어가 첨벙거리며 놀고 싶다.



“어······ 근데 어떻게 놀지. 갈아입을 옷 같은 거 안 가져왔는데······.”

“음.”



그 말대로. 현기가 바다로 놀러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바닷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치렁치렁한 예쁜 치마를 입고 온 민서다. 말해줬다면, 평범한 반바지 입고 갈아입을 속옷과 옷들도 가져왔을 텐데. 평범한 데이트인줄 알고 평범한 가방만 가져온 민서다.



“좀 알려주지, 바다 온다고! 자기만 바리바리 싸들고 오고!”

“······잠깐만.”



현기를 흘겨보며, 민서는 살짝 앙탈을 부리듯 말했다. 다시금 자신의 귀여운 척에 스스로 흠칫 놀라며. 과연, 현기는 큼직한 배낭을 메고 있다. 아마 갈아입을 옷 같은 게 있겠지. 현기는 힐끔 그런 민서를 보며 배낭을 풀어 헤친다. 민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가방을 뒤지는 현기의 손을 바라본다. 갈아입을 옷 챙겨온 걸까?



“이거······ 선물.”

“에······ 엣?! 이, 이거 입으라고?!”



뜻밖에 현기가 꺼낸 것은 수영복. 붉은 빛이 감도는, 꽃무늬 같은 느낌의 비키니 수영복. 민서는 눈이 튀어 나올 만큼 놀랐다. 남자애를 만난 게 고3, 19살이 되어서야 처음인만큼 얌전히 살아온 민서. 이날 이때껏 이런 수영복을 입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상상은 해 봤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비키니를 입고 당당하게 바다를 행진하는, 그런 모습. 하지만 부끄럼도 많고 수줍음 제왕인 민서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최근까지, 비교적 통통한 체형이던 민서이기에. 언감생심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입어.’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솔직히 살은 빠졌지만 이런 걸 입을 수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민서다.



“······너무 뜬금없나?”

“아니, 그······ 어······ 고마워! 일단은······ 어······.”



급격히 당혹스러워하는 민서를 보고, 마찬가지로 급격히 당혹스러워하는 현기. 민서가 당황하면 현기는 몇 배로 더 당황해한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민서는 우선 허둥대며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어떻게, 입을 엄두가 안 난다. 하지만 벌써부터 동요하는 현기의 눈빛이 보인다. 「선물」이라고 가져와서 준 건데, 입지 않겠다고 하면. 풀이 탁 죽어서, 시무룩한 현기의 표정이 상상된다. 그건 싫다.



“그, 그럼 입고 올게!”

“어······ 응.”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현기가 내민 수영복을 낚아채듯 받은 민서. 수영복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너무 창피해 얼굴이 빨개진다. 현기는 얼떨떨해서 고개를 끄덕인다. 후다닥 공중화장실로 달려가는 민서. 현기는 잠자코 그런 민서를 보다 마찬가지로 남자화장실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어······ 어때?”

“······.”



수영복을 입고 온 민서. 현기는 반팔 반바지로 갈아 입은지 오래다. 주뼛거리며, 너무 부끄러워 목덜미까지 빨개진 민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애매하게 팔꿈치로 가슴을 가리고, 다른 쪽 팔로는 아래쪽을 가려보려 노력하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수영복 사이즈는 딱 맞는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민서는 너무 부끄럽다. 부끄러워 미쳐버릴 것 같다. 게다가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기가 쳐다보다니. 어떠냐는 질문에 현기는 대답하지 않고 침을 꿀꺽 삼킬 뿐이다.



“너, 너무 야하지 않나······?”

“너무 야해.”

“그, 그럼 왜 사줬어!”

“너무 야하고, 예뻐.”

“피이······.”



현기의 지나치게 솔직한 평에 민서는 더더욱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민서. 살짝 가슴을 펴본다. 너무 부끄럽다. 너무 살이 많이 드러난다. 가슴이 보인다. 속옷이랑 차이가 없다. 이런 걸 입고 다니는 거, 공공외설이다. 어떻게 움직일 수가 없다.



“가자.”

“어어······ 어.”



창피해서 움직이지 못 하는 민서의 손을 덥썩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현기. 민서는 잔뜩 창피해하며, 어쩔 수 없이 현기를 따라 바닷가로 향한다.



“아, 시원해.”

“응.”



참방참방,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두 사람. 신발을 포함한 짐들을 모두 맡기고 왔기에, 두 사람은 거리낄 것 없이 첨벙첨벙 물에 들어간다. 한참 더운 여름,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맡기니 너무 시원하다.



“······근데 뭐 하고 놀아야 돼?”

“······공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두 사람 다, 연애에는 쑥맥이다. 이런 식으로 노는 것 또한 전혀 모른다. 둘 다, 친구들이 놀자고 하면 적당히 보조 맞춰서 노는 타입이지, 적극적으로 놀이를 주도하는 타입은 아니니까.



“······물 같은 걸 뿌리나?”

“이렇게?”

‘촤악!’

“푸헑!”



잠자코 드립을 치는 현기에게, 방긋 웃으며 천진난만하게 물을 뿌리는 민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에 바닷물을 한움큼 마셔버렸다. 비릿한 짠맛과 얼큰한 느낌. 현기의 눈에 불이 붙는다.



‘촤학!’

“우와아! 너무 진심 아니야?!”

“선제공격 했으면 응당 공격받을 것도 예상 했어야지!”



한 번 불붙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타입의 현기. 진심으로 민서에게 물을 뿌려댄다. 민서는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물을 피하려 한다. 한데 엉겨 물장난을 한다.






“재밌었다!”

“이제 배고파. 뭐 먹자.”

“응! 뭐 먹을까?”

“음······.”



한바탕 물에서 놀던 두 사람. 물 뿌리기도 하고, 해파리처럼 둥둥 떠서 해류의 흐름을 느끼기도 하고. 괜히 흙장난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짓거리를 하기를 몇 시간. 이제는 놀만한 건 다 논 것 같다.


물 안에서 놀면 평소보다 더 배가 고프다. 뭔가 따뜻한 걸 먹고 싶어진 민서. 마침 현기도 배고픈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물어보는 민서. 현기는 힐긋, 바닷가 근처의 가게들을 살펴본다.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저런 거 사먹을 텐데, 돈이 없으니까. 라면 먹으러 가자.”

“풉. 나도 돈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우리 학생이니까. 저런 건 못 먹지?”

“아르바이트 같은 거라도 할 걸.”

“괜찮아~ 라면 먹자 라면!”



괜히 현기가 기죽어하는 것 같아 민서는 얼른 말했다. 당장 고3인 자기도 학생이라 별다른 돈은 없는데, 17살인 현기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 연상연하 개념을 떠나서, 두 사람 다 학생이기에, 돈이 별로 없다. 터벅터벅 편의점으로 향한다.





“후루룩!”

“다 튀어. 애도 아니고. 닦어.”

“아······ 하핫.”



맛나게 라면을 먹는 민서. 원래도 먹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통통한 체형이었지만. 요즈음은 살 뺀다고 많이 먹지 않지만, 이런 날까지 먹는 걸 통제하진 않는다. 라면 하나 정도, 어때서 하는 느낌으로 맛있게 먹는 민서. 국물이 여기저기 튄다. 하필이면 가슴에 튀어서 난감한 느낌.


현기는 티슈를 꺼내 민서에게 건넨다. 마음 같아선 닦아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좀 그러니까. 민서는 방긋 웃으며 튄 국물을 닦는다.



“아~ 진짜 재미있었어!”

“으응. 나도.”



샤워장에서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나온 두 사람. 뭔가 개운하고 가뿐한 느낌이다. 잔뜩 놀아서 뭔가 몸이 무거운 느낌이기도 하고. 살짝 피곤하다. 이대로 버스 타면 그대로 잠들 것 같은 느낌. 재미있게 놀았던 것들을 재잘거리며 이야기하는 민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현기. 엄청 재미있었다, 다음엔 또 어디 놀러갈까, 그런 얘기들을 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안 오네?”

“그러게.”



꽤 기다린 것 같은데, 버스가 오질 않는다. 우선은 시골버스를 타고 시골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고, 거기에서 고속버스 타고 돌아가야 하는데. 어째 영, 버스가 오질 않는다.



“학생들. 지금 버스 기다려?”

“네? 네.”



쭈글쭈글한 느낌의 할머니. 이야기하는 민서의 말을 가로채 묻는다. 얼떨떨한 느낌으로 대답하는 민서. 모르는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었으니 살짝 당혹스럽다.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버스 읎는디.”

“······에?”

“막차가 아까 갔어. 여기 버스 몇 대 없어서.”

“에?! 에에, 그런 게 어디있어요!”

“뭘 어디있어. 여기 있지. 시골이라 버스가 몇 대 안 댕기는디.”

“어······ 어떡하지?!”



할머니의 심드렁한 말에 멘탈붕괴 상태가 된 민서.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홱, 현기를 바라본다. 현기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문다. 이런 경우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말로, 어떤 사심이 있어서 이런 데에 데리고 온 게 아니라. 친구인 현우 녀석이 추천해준 바다였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저, 절대 넘어오면 안 돼······?”

“으, 응.”



이 무슨 70년대 에로 영화에서나 나오던 상황과 대사인가. 하지만 현실. 어째 배경도 70년대 같긴 한데. 작고 좁은 시골방.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골방, 그런 데에서라도 잘 수 있는 걸 감지덕지 여겨야 하는 두 사람이지만. 두근두근, 이런 상황은 참, 어떤 때라도 난감하다.



버스도 끊기고, 그렇다고 성수기의 비싼 여관이나 팬션에 들어갈 수도 없는, 학생 신분의 두 사람. 둘 다 갖고 있는 돈을 탈탈 털어도 2만원 남짓. 이 정도 돈이면 찜질방 정도는 간신히 갈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시골 바다. 그런 건 없다.


어떻게 어떻게, 현기가 말을 잘 걸어서, 막차 끊겼다고 하는 할머니네서 신세를 질 수 있게 되었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할머니가 손수 저녁밥도 지어주시고 방도 주셨다.



“둘이 뭐시여? 애인이여?”

“아······ 어······ 으······.”

“친척누나요. 친척동생이요.”

“이~ 어쩐지 닮은 것 같드만. 안 그래도, 남는 방이 쫍은 거 하나밖에 읎으서, 주기 좀 민망시렀는디. 친척잉게 괜찮겄네.”



저녁을 먹고, 민감한 사항을 물어보는 할머니. 민서가 어버버 대답하지 못 하니 현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 상황을 모면한다.


저녁을 먹고, 잠시 바깥으로 나가 밤바다를 구경하던 두 사람. 너무 어둡고, 벌레도 많고 해서 금방 들어왔다.


시골의 밤은 금방 찾아온다. 피곤하기도 하고, 두 사람은 얼른 이불을 펴고 누웠다. 17년, 19년 평생 이런 날이 언제 있었을까. 민서는 있었다. 예전에, 웅도와 함께.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때는 오히려, 민서가 적극적으로 웅도에게 다가갔었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너무 부끄러워서 말도 제대로 못 하겠다. 방이 좁아서 그런가.



“잘 자.”

“응.”



민서의 말에 대답하는 현기. 방은 이미 깜깜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 너무 긴장돼서,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싶다. 자꾸만, 현기가 신경 쓰인다.



“쌔근쌔근.”

“······.”



막상 엄청 빨리 잠드는 민서. 낮에 바닷가에서 격렬하게 놀아서 피곤했는지, 민서는 금세 잠들었다. 오히려 현기가 잠들지 못 한다. 한창 때의 남자 고등학생이, 여자애와 한 방에서 자라고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현기는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성교육 시간에 배운 어떤 행위를 해도 되는지. 이런저런 생각들과, 도덕적 가치관과, 자신의 남성성과, 여러 가지들이 머릿속에 한데 섞여 혼돈·파괴·망가가 되었을 때. 그는 결심했다.



“으으음~”

“!!!”



집에서 잘 때, 평소에 껴안는 베개를 꼬옥 껴안고 자는 민서. 습관적으로, 옆에 있는 현기를 베개로 착각해 꼬옥 껴안는다. 여러 가지로 혼란 상태인 현기에게, 그것은 아마 결정타이리라. 민서의 가슴에 현기의 얼굴이 푸욱 파묻힌다. 쌔근쌔근 민서의 숨소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보드라운 촉감. 은은한 바디워시 냄새. 현기의 남성성은, 다른 어떤 때보다도 폭☆발 하고 있다.



참아라.

참아야 하느니라.

······으아아아!!









“잠 잘 못 잤어?”

“······누난 잘 자데.”

“응! 피곤해서. 헤헿. 나 때문에 못 잤어?”

“······그렇지. 누나 때문에 못 잤지.”



상쾌한 아침. 민서는 개운한 얼굴로 방긋 웃으며 말한다. 현기는 온통 짜증스런 얼굴. 눈 밑에 다크서클이 완연하다. 딱 봐도 한숨도 못 잔 것 같은 얼굴에, 민서는 살짝 미안해졌다. 다리를 걸친다든가 해서 현기 자는 걸 방해한 것 같아서.



“잘 가구, 또 놀러와이!”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이이~ 그려.”



하루 만에 정다운 고향의 할머니처럼 친해진 사이. 민서는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현기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이제, 버스 타고 집에 가면 된다.



“아─ 그래도 재미있었네.”

“······김민서.”

“······어?”



아침의 시골 버스 정류장. 이런 시간 대의 버스 정류장엔 아무도 없다. 이쪽으로 오는 버스에는 젊은이들이 꽉꽉 타 있겠지만, 돌아가는 사람은.


문득, 갑자기 이름으로 민서를 부르는 현기. 흠칫 놀란 민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민서를 이름으로 부른 적 없는 현기인데. 그보다, 자기가 누나인데 이름으로 부르다니. 심장이 쿵쾅거린다. 말은 친구처럼 편하게 하지만, ‘김민서’라고 이름이 불리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좋아해. 사귀자.”

“······!”



갑작스런 고백에 움찔 놀란 민서. 눈이 커진다. 현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민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나는 말도 부정적이고. 생각도 그렇고. 뭐든 삐딱한 안 좋은 성격인데. 너를 만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돼. 더 좋아지고 싶어져. 그래서······ 좋아해. 많이 좋아해. 사귀자.”

“······응.”



너무너무 창피하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까지 고일 것 같지만 민서는 겨우,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민서도, 현기한테 조금은 감정이 있었으니까.



“응, 알았어. 사귀자.”

“······.”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벅차오르는 감정에 딱 세 마디만 하는 민서. 현기는 얼굴이 벌게져선 더 말도 못 한다. 덥썩 민서 손을 잡는 현기. 온통 얼굴이 빨개진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버스를 기다린다.


작가의말

......저렇게 쉽게 사랑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신상의 소란 때문에, 제가 얼마나 공상적인 이야기를 쓰는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아아~ 사랑은 힘든 것.

저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기에,

그렇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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