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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832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7.26 20:18
조회
819
추천
7
글자
22쪽

06화 - 2

DUMMY

“크헉, 자, 잠ㄲ······!”

“하아······ 하아······!”



덮쳐오는 엄청난 힘에,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벽을 기댄 채 침대에 처박혔다. 여자아이에게, 이렇게나 엄청난 힘이 있을 줄은. 어떻게든 저항해보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여자애는 물불 가리지 않고 나에게 계속 달라붙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건 아니야, 이건 꿈일 거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어, 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내 눈 앞에 있는 여자애가 성빈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헐떡이는 숨결. 빨갛게 상기된 얼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성빈이는 내 위에서 나를 깔아 뭉개고 있다.



“웅도야······♡”

“자, 잠깐만, 성빈아 이거 좀 놓고······ 읏······!”



성빈이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더해서 무척 서글픈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떻게든 성빈이를 진정시키려, 대화로 해결하려 하지만 이내 내 입은 간단하게 막혀버렸다. 성빈이가 이유를 불문하고 바로 입술을 덮쳐 왔기에.


부드러운 성빈이의 입술이 열리며 적나라하게 혓바닥이 들어온다. 우와아아아······! 잔뜩 흥분했는지 성빈이의 혀가 들이닥쳤다. 그와 동시에, 어쩔 줄 몰라하는 성빈이의 손길이 내 등판과 허리에 닿는다. 움찔. 간지러우면서 미묘한 느낌에 몸을 베베 꼴 수밖에 없는 나. 그나마도 성빈이의 무게로 누르고 있어 큰 저항은 못 하겠다. 아무리 성빈이가 가벼운 여자애라 해도, 40kg 정도는 넘어갈 거 아냐. 게다가 이런 상황이면, 누구라도 쉽게 저항할 수가 없······잖아.


순식간에, 신체의 어느 부위(?)에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한창 때의 남자 고등학생인 나에게, 이런 자극은 너무나 강하다. 게다가 여자애 쪽에서 먼저 이런 식으로 해 버리면. 성빈이의 허벅지에 닿고 있다. 그것 때문에 더욱, 가라앉을 줄을 모른다. 허벅지에 닿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는지 성빈이는 등판을 매만지던 왼손을 슬며시 그쪽으로 내렸다. 우와, 잠깐만, 그건! 야야야, 야 그건 희세랑도 아직! 우와아아앙?!



“웅도야······♡ 하아······ 하앗······♡”

“······.”



몇 분동안의 격정적인 키스가 끝나고, 성빈이는 입술을 떼고 나를 내려다본다. 완전히 풀려버린 눈. 숨을 헐떡이며, 야릇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성빈이. 그런 성빈이를, 나는 걱정스런 눈으로 보았다.


······이미 세워놓곤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니까. 자극에 의한 것일 뿐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걱정되는 건, 성빈이가 갑자기 왜 이러냐는 건지. 약 같은 거라도 잘못 먹었나.


성빈이가 내 거기를 만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결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더 이상 희세 이외에 다른 여자애들에겐 한 눈 팔지 않기로 했고, 성빈이는 이성이 아니라 친구니까. 무엇 때문에 성빈이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나는 그것이 걱정될 따름이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이 되고,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성빈이를 떼어 놓으려 했다. 아까는 성빈이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저항할 여력이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성빈이의 흥분이 가라앉아 괴력도 차츰 사그라들었기에. 성빈이는 얌전히, 내 가슴팍에 기대어 거친 숨을 고르고 있다. ······물론 요망하게도 왼손은 자꾸 거기를 만지고 있는 게 느껴지지만.



‘끼익.’

“뭐하는데 안 나오고 이렇게 늦······.”

“······!”



문이 열리고,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하는 여자애. 희세. 밤에는 불편하다고, 가발을 벗고 있어 짧은 머리가 인상적이다. 내 심장은, 멈춰버릴 듯 크게 뛰었다. 이 장면, 명백하게 오해를 사기 딱 좋은 광경이잖아. 아니, 오해랄 것도 없이, 그냥 봐도 그렇잖아. 방에서, 침대 위에서, 여자애가 남자애 위에서 남자애 몸 더듬고 있는데. 그걸 여자친구가 현장에서 발견한, 그런 상황인데.



‘끼익, 쾅.’

“······.”



얼른 문을 닫는 희세. 표정이 굳어져 있다. 성빈이는 아직 희세가 온 걸 모르는지 여전히 내 가슴팍에 기대고 있다. 요망한 손놀림 역시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멘탈이 거의 파괴될 기세로, 희세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Aㅏ······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나와 희세의 관계는. 그리고, 내 3년의 고등학교 생활 역시 마찬가지로.












--












“괜찮아? 별로 상태 안 좋아보이는데.”

“어? 응, 괘, 괜찮아.”



간만에 밖에 나와서 밥을 먹고 있는 때. 유진이가 문득 성빈이를 보고 말한다. 모두의 시선이 성빈이에게 꽂혔다. 과연,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성빈이. 한눈에 보아도,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니 성빈이는 겸연쩍은지 손과 고개를 동시에 내저으며 웃는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 아파 보인다.



“감기라도 걸렸어?”

“아니이, 그냥 더워서 그래. 엄~청 덥잖아. 더운데 떡볶이도 먹고 있고.”

“그런가.”

“그럼 우리 다 그래야지! 너만 그러는 게 어디 있어.”



내 물음에 성빈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한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더운 것을 강조한다. 미래는 떡볶이를 우적우적 씹으며 유쾌하게 말한다. 하긴, 덥기는 매한가지지. 분식집엔 에어컨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름의 뜨거운 기운을 다 잠재우긴 힘드니까. 펄펄 끓는 떡볶이가 눈앞에 있기도 하고. 아닌 게 아니라 성빈이만 땀을 뻘뻘 흘리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더워하고 있으니까.



“정말 더워서 그런 거니까, 괜찮아.”

“음······.”



땀을 뻘뻘 흘리며 말하는 성빈이. 아무렇지도 않은 걸 증명이라도 하듯 떡볶이를 집어먹는 그녀. 나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런 성빈이를 쳐다봤다. 희세도 리유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성빈이를 봤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뭘 어떻게 하겠어. 엄청 괴로워하는 게 아닌 걸 보면 여름 감기라도 걸렸나보다. 자양강장제 같은 거라도 사 줘야겠다.






“······후우.”



수업시간. 가느다란 한숨을 쉬는 성빈이. 계속 그 모습이 눈에 밟힌다. 교실은 에어컨을 틀어서 쾌적한 편. 그럼에도, 성빈이는 식은땀을 조금씩 흘리고 있다. 상태가 이상한 것이 분명하다. 아까 전엔 가스레인지 앞에 있었고, 가게 안이 습해서 그런가 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성빈이의 상태가 이상함을 알 수 있다. 숨결이 고르지 못한 것도 분명하고.


그럼에도, 성빈이는 묵묵히 공부를 하고 있다. 고3, 6월이 지난 이후의 수업은 별다른 게 없다. 수업보다는 대부분 자율학습이 주로 이루어진다. 이제는 수업보다는 수능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하기에.


자율학습이라고 떠들거나 하는 애들은 없다. 수능이 100일 대 앞으로 다가왔는데, 누가 감히 떠들겠는가. 평소에 수다스럽고 장난치기 좋아하던 여자애들조차, 숨죽여 공부하는 추세. 그런 분위기이니, 교실 안은 무척이나 조용하다. 성빈이 또한 그런 분위기에 취해, 아픈 몸을 이끌고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리라.



“저, 선생님.”

“······아앙.”



마침 선생님도 사감 선생님. 나름대로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선생님이니, 나는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께 다가갔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기에.


교탁 쪽으로 다가가니 선생님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진짜 개막장이잖아. 아무리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이 하실 게 없다고 해도 그렇지. 나지막한 내 부름에 선생님은 고개를 털며 천천히 눈을 뜬다. 짜증이 역력한 표정.



“팔자 좋게 졸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선생님이.”

”······아우으······ 네가 밤늦도록 밀린 업무 해 봐. 그나마 요즘은 가르칠 거 없어서 행복한데. 왜. 뭐 물어볼 거라도 있어?”



선생님 입에서 ‘가르칠 거 없어서 행복한데’라는 말이 나와도 되는 겁니까. 참. 격무에 시달리고 계신 선생님인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얼른, 아이들 몰래 성빈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성빈이가, 아파 보여서요. 양호실 데려다주고 와도 될까요?”

“······여친도 있는 놈이 어디서 수작질이야. 왜, 한 여자로는 만족을 못 하겠어?”

“아니이······ 그런 게 아니잖아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나를 보며 말씀하시는 선생님. 숫제 농담인 걸 알고는 있지만 나도 모르게 빼액 소리쳤다. 억울하잖아, 이런 취급은. 애초에 여긴 여고, 친구가 있다면 전부 여자인데. 나름대로, 친구로써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이런 식의 오해는 곤란하다. 뭐, 그런 걸 고려해주실 선생님이 아니지만.



“그래 뭐. 아파 보이긴 하네. 여자애들은 아픈 것도 참고 공부하니까. 독하거든. 네가 좀 데려다 줘라.”

“넵.”



힐끔 성빈이의 상태를 살피곤 대답하시는 선생님. 여고에서 오래 근무하셨고, 본인 또한 여고 출신이실 테니 성빈이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아시는 모양이다. 어깨를 툭툭 치며 말씀하시는 선생님. 이제는 아예 교탁에 엎드려 편하게 잠을 청하신다. 참. 참 교육자시다. 학생들이 자율학습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친히 정신을 로그아웃 해주시다니.



“성빈아, 성빈아.”

“······어?”



조심조심 걸어, 성빈이 책상 앞에 선 나. 쪼그리고 앉아, 성빈이를 올려다보며 말을 건다. 아픈 상태에서 무아지경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지, 성빈이는 잠시 뒤에 멍청한 느낌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대답하다 시선을 나에게 돌린다.



“양호실 가자.”

“양호실······? 아, 나 괜찮아.”

“전혀 안 괜찮아 보이거든. 얼른 일어나.”



의아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성빈이. 내 말에 손사래를 치며 완강히 거부하지만 나는 거의 강제로 일으키다시피 성빈이 손목을 잡고 일으켰다. 아픈데 안 아픈 척 하고 있는 성빈이 모습이 참 안쓰러워서.


희세가 뭐라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랑 희세는 이미, 그런 사이는 넘어섰고. 나와 희세 사이 뿐만 아니라 성빈이랑 희세 또한 절친이니까. 아프다면 오히려 희세가 나한테 시켜서 양호실 데려다주라고 했겠지. 같은 반이 아니라 그러진 않았지만.






“38.2도. 열 있잖아.”

“응······.”



양호실. 나는 성실하게, 성빈이를 꾸짖고 있다. 양호실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는 성빈이. 열을 재보니 확실히 미열이 있다. 그제야 자기가 아픈 걸 인정하는 성빈이. 내 닦달에 해열제를 먹고 이불에 누웠다. 땀을 빼는 게 좋을 것 같아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하고. 체육복은 내가 가져왔고.


대한민국 학교 양호실엔 늘 아무도 없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보건 선생님 있었던 거 같은데. 적어도 중학교, 고등학교 와선 양호실에 아무도 없다. 뭐, 내가 아는 양호실의 용도는 생리통이 심한 애들이 간혹 내려와 쉬는, 그런 용도이다. 물론 남자인 내가 생리통을 겪을 일은 없으니, 양호실과 나는 별로 연이 없다.



“······웅도야?”

“응.”

“안 갔어?”

“응.”



죽은 듯이 눈을 감고, 가냘프게 숨을 고르고 있던 성빈이. 문득 살며시 눈을 뜨곤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나.



“너 잠들면 가려고. 갑자기 팍 아프면 어떡해.”

“······고마워.”

“뭐 고마울 것까지야. 땡땡이도 칠 수 있고, 좋잖아.”

“······그러다 희세한테 혼날 텐데?”

“아하하. 수업시간까지 어떻게 관여할 순 없잖아. 우리랑 반이 다른데.”



앞에 말한 이유보다 뒤에 말한 이유가 더 큰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무리 희세 덕에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공부하는 게 좋아질 리는 없다. 성빈이가 아프다는 적절한 명분도 있고, 조금만 쉬는 거야, 조금만. 뭐 어때. 성빈이 잠들 때까지만 있을 건데. 엄한 일 할 것도 아닌데.



“······웅도는, 착하네.”

“뭐, 착하다기보단 오지랖이 넓은 거지.”

“······그게 착한거지.”



내 대답에 성빈이는 싱긋 웃으며 말한다. 뭐, 사실이 사실이니까. 착하다기보다는 오지랖이 넓어서, 낄 데 안 낄 데 다 껴선 이런저런 일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딱히, 착한 사람은 아니라구.



“······이러고 있으면 희세가 오해할 지도 몰라?”

“전혀~ 그럴 리가 없지~”

“······그렇구나.”



내 걱정을 해주는 성빈이. 예전의 나와 희세였다면 그랬겠지만. 실제로 유진이의 계략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나와 희세 사이엔 이제 완연하고 굳건한 신뢰가 자리잡고 있으니까. 내 대답에 성빈이는 잠자코 눈을 감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성빈이.



“······.”



가만히, 아무 말도 안 하고 눈을 감고 있는 성빈이. 이제 잠들었나보다. 잠시동안 정갈하게 눈을 감은 성빈이를 빤히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 땡땡이 쳤으면 이제 돌아가야지. 시간 너무 낭비해도, 이제는 죄의식을 느낀다. 가서, 한 글자라도 더 봐야지.



“······좋아해. 웅도야.”

“······?!”



마악, 양호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들리는 성빈이 목소리. 흠칫 놀라 뒤돌아 성빈이를 쳐다본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성빈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기에, 얼른 뒤돌아 성빈이 앞으로 되돌아왔다.



“······아.”

“성빈아. 방금······”



인기척을 느꼈는지 성빈이는 반짝 눈을 뜬다. 열로 붉게 상기된 얼굴. 방금 전 성빈이의 말을, 난 그냥 넘길 수 없기에 잠자코 말을 꺼냈다. 흠칫 놀라는 성빈이. 허둥지둥 반쯤 몸을 일으킨다.



“······아, 나 방금 뭐라고 했어??”

“좋아한다고······ 했는데. 나.”

“엣? 엣?! 아읏······.”



퍼뜩 정신을 차린 듯 허둥대며 물어보는 성빈이. 뭐지, 하며 대답하는 나. 열 때문에 정신 오락가락 하나? 무의식중에 말이 나온 거? 성빈이의 지금 반응을 보자면 그렇다. 그리고, 그러면 더욱 안 되는 것이고. 무의식중에라도, 날 좋아하고 있다는 얘기니까.



“그, 그, 방금 전 그 얘기는, 실수······야.”

“아직, 나 좋아해. 성빈아?”

“······.”



내 눈을 피하며 겨우 말하는 성빈이.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빈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쩔 줄 모른 채, 고개를 푹 숙이는 성빈이. 잠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나, 이젠 정말 희세만 좋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희세밖에 보이지 않아. 나 같이 못나고 이상한 남자애, 좋아해주는 건 정말 엄청 고맙지만. 난, 그 마음에 대답해줄 수가 없으니까.”

“······응, 알고 있어. 그러니까, 실수야.”

“······.”



선을 긋는 나. 진심이다. 이제는 정말, 한눈팔지 않을 거니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성빈이는 잠자코, 내 말을 들으며 간신히 고개를 든다. 눈물이 고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뭐가 기분 탓이야. 눈앞에서 눈물 가득 고인 성빈이 눈이 보이는데. ‘에, 뭐라고?’ 하고 넘길 수는 없는 거다.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그 바람에 한껏 고인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또르르 흐른다.



“웅도는 착하니까, 웅도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정리가 안 돼서 그래. 응, 잘 아니깐. 고마워. 이제 가 줘.”

“······미안. 가볼게.”



잘 말을 못 하는 성빈이. 더듬거리는 건 아니지만 머뭇거리며, 한 마디 한 마디 이어간다. 얌전한 축객령에 나는 잠시 성빈이를 쳐다봤다. 우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성빈이. 굳은 표정으로 인사하곤, 양호실 문을 나섰다.


착찹하다. 어릴 적 철없는 생각으론, 뭐 그래봐야 중학교 때지만. 그 때만 해도 ‘아~ 여자애들이 다 나 좋아했으면 좋겠다~ 하렘부대가 전부 날 빤다~ 헤헷~’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지냈는데. 정말 현실은, 너무 힘들고 괴롭다.


카사노바도 바람둥이도 아니다. 그럴 능력도 안 되고, 능력이 되도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서 더욱 힘들다. 여고에 다니는 나는, 어쩔 도리 없이 갖춰지는 인맥이 전부 여자애들인데. 그 중에 몇 명, 나를 좋아하는 애들이 있다면. 힘들다. 괴롭다. 성빈이는 더 괴롭겠지.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내가 눈에 띄는 게 더 고문이려나. 하지만, 어쨌든 같은 학교 같은 반인데 마주치지 않는 건 불가능하고. 참, 힘든 일이다.


아직까지 좋아하고 있었구나, 성빈이가 나를.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 미묘하다. 아니, 안 돼. 그런 생각 하지마. 받아줄 생각 없어, 돌아가. 나는 오로지 희세만을 바라보기로 이미 마음 먹었으니까. 그럴 순 없어. 암, 그렇고 말고. 평생 희세 마나님만을 바라보고 살 테다. 다시금 마음을 굳게 다잡곤 교실로 올라간다.














--













“미래 너 공부 안 해? 네 미래를 생각해.”

“아아~ 망했어요. 어차피 내 미래는 망했어~ 준이가 간 순간부터~ 망했어~~ 에헤헤헿.”

“미친······ 그, 그런 얘기 하지 말고. 그 얘길 갑자기 왜 꺼내.”

“에헤헤헿. 너 당황하는 거 보려고☆”



근미래는 못 말린다. 그녀의 드립, 특히 저 고인드립을 능수능란하게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나 정도만이 어느 정도 대처하는데, 그것조차도 완벽한 대응은 아니다. 그냥 ‘미친년아!’ 하고 꾸짖는 것 뿐.


하물며 미래의 평소 드립에도 완벽하게 대처하지 못 하는 희세는. 미래의 고인드립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혹스러워한다. 저 녀석, 진짜 정상 아니라니까. 송준이 만나러, 다같이 납골당 가서 그렇게나 울어 재끼던 녀석이. 극복한 건 좋지만, 극복 정도가 지나치잖아. 그거 가지고 유흿거리로 삼다니. 과연, 정상적인 멘탈은 아니다 싶다.


저녁시간. 365일 24시간이 공부시간인 고3이지만, 그나마 밥 먹는 시간만은 자유로운 편이다. 그것까지 통제당하면 진짜 사람 숨막혀서 못 살 걸. 중세 농노조차도 이렇게 힘들게 살진 않았을 거야.



“어차피 인생사, 될놈될 안될놈 안될. 떨어질 팀은 떨어지게 돼 있는 법. 나는 안 될 놈이야. 안 될 놈은 빠르게 포기하는 게 좋지. 그냥 실업계 갈 걸 그랬어.”

“이제 와서 그딴 소리 하지 말고. 공부해야지. 공부 하면 늘어. 확실히.”

“헤엥~ 희세 네가 말하니까 전혀 신빙성 안 가거든~”



이제는 자포자기 모드가 된 미래. 빙글빙글 웃으며 잔뜩 희세에게 떽떽댄다. 말은 그렇게 해도 미래, 요즈음은 꽤 개과천선 했다. 저번 모의고사 성적도 꽤나 올라서, 전교 순위가 한 40등 정도 올랐지, 아마? ······워낙 밑바닥이라 그만큼이나 올라도 별 성과가 없는 건 비밀이지만.



“비니 기분 안 좋아? 표정 안 좋은데.”

“응······ 하윽······ 자, 잠깐만······!”

“에??!”



이 와중에 말없이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는 성빈이. 심상치 않은 성세를 리유가 간파했다. 가만 보니 다른 애들은 거의 다 먹은 도시락을 성빈이는 몇 젓가락 먹지도 않았다. 불쾌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성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다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성빈이를 바라본다. 희세가 잽싸게 따라갔다.



“우웨에엑. 우욱. 후으······ 후읏······.”



변기를 잡고 토하는 성빈이. 괴롭다. 단순히 아파서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상황이, 견딜 수 없이 전방위로 압박해오기에, 수용범위를 넘어선 상황에 저절로 구토가 나온다. 먹은 것도 별로 없어 토할 것도 없다.



“괜찮아? 성빈아?”

“우우욱······ 후욱······ 응, 하앗······ 아, 아파서 그런 것 같애······ 괜찮으니까······ 하읏······.”

“안 괜찮은 거 같은데. 괜찮아 정말?”

“······응, 괜찮아.”



괜찮으니까, 제발 가. 죽을 것 같으니까, 제발.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다시금 구토가 나온다. 모든 것을 토해버릴 기세로.

몸이 아프고, 연정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성적도 떨어지고, 질투마저 생길 것 같은 심리에 성빈이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변기를 붙들고 토할 수밖에 없다.










--











“아아.”



야자가 끝나고. 다른 여자애들은 씻고 상쾌하게 공부하러 열람실에 올라갈 수 있지만, 나는 씻을 수 없다. 여자애들 샤워하고 씻는데 어찌 올라갈 수 있겠어. 나는 여자애들 씻는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간신히, 그것도 열람실만 갈 수 있다. 뭐, 여자 기숙사에 남자애가 세들어 사는데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지.


뭐, 나는 털털한 편이라 안 씻어도 괜찮다. 는 개뿔, 여름엔 그것도 참 괴롭다. 학교 건물 가서 씻고 올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귀찮다. 희세 올 때까지 휴대폰이나 보고 있어야지. 하루 중 유일하게 느긋한 시간이다.



‘끼익.’

“?”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희세 씻는 데 꽤 걸리는데. 랄까, 나 아직 내 방 들어온지 10분도 채 안 됐다고. 벌써부터 열람실 가자고 재촉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 앞에 있는 사람은 전혀 의외의 인물. 성빈이다.



“성빈아······?”

‘철컥.’



문을 닫는 성빈이. 헌데, 상태가 이상하다. 살짝 숨을 헐떡이는 성빈이. 아직도 아픈 것 같다. 얼굴은 빨갛게 상기돼 있고, 눈은 풀려 있다. 힐끔 나를 쳐다보는 성빈이.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안 돼?”

“······에?”



마치 좀비라도 된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움직이며 나를 쳐다보는 성빈이. 의아해서 물어볼 틈도 없이, 성빈이는 갑자기 내 품으로 뛰어든다. 그 바람에 침대에 앉아 있던 나는 그대로 쓰러져 성빈이에게 덮쳐졌다.



“뭐, 뭐야 성빈아, 잠깐만?!”

“하앗······ 웅도야······♡”

“······!”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55 비행병아리
    작성일
    16.07.26 21:16
    No. 1

    역시 성빈이는 얀데레의 기운이.....
    차려논 밥상도 엎어바리는걸 아는 희세가 오해할일은 없을듯....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웅도를 빌려줄듯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6.07.27 22:53
    No. 2

    비...... 빌려주다뇨! 아 너무 좋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6.11.15 17:05
    No. 3

    작가님 너무 즐기시는거 아닌가?
    웅도 괴롭히기~
    도대체 저건 웅도꿈인지 성빈이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를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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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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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02화 - 3 +4 18.07.12 188 6 16쪽
278 02화 - 2 18.07.10 164 7 18쪽
277 02화.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18.06.17 208 5 18쪽
276 01화 - 4 +2 18.05.31 184 6 20쪽
275 01화 - 3 +3 18.05.26 191 7 12쪽
274 01화 - 2 18.05.12 240 6 14쪽
273 01화. 어서 와, 대학은 처음이지? 18.04.22 207 6 20쪽
272 00화. 호에에... 다시 또 프롤로그인 거시에요... +8 18.04.21 316 8 13쪽
271 09화. 끝 +11 17.09.13 374 9 14쪽
270 설! +1 17.01.28 794 7 9쪽
269 새해. +7 17.01.01 738 6 11쪽
268 연말. +8 16.12.31 654 8 27쪽
267 수능 후에. +3 16.12.19 720 9 15쪽
266 수능. +3 16.11.17 850 7 16쪽
265 번외 - 대학교에선, 뭘 해- 2 +2 16.11.16 837 7 20쪽
264 번외 - 대학교에선, 뭘 해? +1 16.11.04 894 8 15쪽
263 08화 - 4 +6 16.10.20 835 7 22쪽
262 08화 - 3 +1 16.09.18 880 7 17쪽
261 08화 - 2 +4 16.09.12 970 7 19쪽
260 08화. 고3에게 물놀이는 사치인 것 같지만 몰라, 놀아! +1 16.09.07 952 7 20쪽
259 07화 - 4 +4 16.08.31 829 7 18쪽
258 07화 - 3 +2 16.08.27 863 7 17쪽
257 07화 - 2 +3 16.08.23 776 8 20쪽
256 07화. 소개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 16.08.15 1,132 7 17쪽
255 06화 - 4 +3 16.07.31 861 6 22쪽
254 06화 - 3 +5 16.07.28 772 6 20쪽
» 06화 - 2 +3 16.07.26 820 7 22쪽
252 06화.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니까……! +1 16.07.23 945 6 20쪽
251 05화 - 4 +5 16.07.20 856 7 6쪽
250 05화 - 3 +1 16.07.19 796 6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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