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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834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7.23 22:48
조회
945
추천
6
글자
20쪽

06화.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니까……!

DUMMY

“Aㅏ······.”



성적표를 보며, 나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성적이 영 오르지 않은 것이다. 뭐,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별로 오르지 않아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성적 오른 거 아니야? 등수도 많이 올랐는데.”

“그래도, 희세 너랑 같은 대학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잖아.”

“흣.”



옆에서, 같이 성적표를 보며 말하는 희세. 방긋 웃으며 위로해준다. 단발 희세는 상큼하고 귀엽다. 천사 같다. 아아, 얼마나 사려 깊은가.


어디에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3월 모의고사 처음 딱 본 점수, 그 점수 그대로 수능점수까지 간다고. 엄청난 노오오오력을 하지 않는 한. 그리고, 얼추 맞아 들어가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다. 학기 초에 봤던 모의고사 점수가 200점 중후반대. 지금은, 300점 초반대. 오르긴 했다. 특히 수학하고 영어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였다. 그래봐야 X망인 건 변함 없지만.


30점 맞던 녀석이 60점 맞으면 점수가 2배 오른 것이고, 증진률 100%지만. 천상계(?) 애들이 볼 때엔 그저 웃지요, 어이가 없는 허탈한 점수일 뿐인 것이다. 적어도 희세와 같은 대학에 가려면, 천상계 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상위권까지는 올라가야 한다.

목표는 400점!




······할 수 있어? 불가능합니다. 하아.


불가능하다 해도, 노오오력은 해 봐야지.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석차를 올려다보며, 나는 굳은 결심을 한다.





예전에도 얘기한 거 같지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우리학교는 매정하게도 전교생의 모의고사 석차를 복도 중앙 게시판에 붙여 놓는다. 프라이버시나 인권존중따위는 없는, 자연스런 헬조센식 경쟁체제. 에에~ 뭐어라구~~? 공부도 못 하는 찐따가 하는 말은 안 들리는데~~? 응 니 성적~~? 뭐 그런 거지. 외모지상주의에 이은 성적 지상주의. 자랑스런 조국 대한민국에선 흔한 일이다.



“희세는 여전히 1등이네.”

“······그냥 학교 순위잖아.”

“아, 본인은 전국구에서 노신다? 이런 좁은 우물의 1등은 별 가치도 없다? KIA~ 희뽕에 취한다~!”

“뭐래.”



깔깔 웃으며 희세를 놀리는 나. 본질적으로 내 정체성은 희세를 놀리는 데에 있으니까. 희세는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사려 깊은 희세. 말은 그렇게 해도, 숫제 놀리는 태도라는 걸 희세도 잘 알고 있으니까.



“······.”

“음? 아······.”



문득 한참 옆에서 멍하니 석차를 바라보고 있는 성빈이가 보인다. 말을 잃고 우두커니 돌로 만든 동상이라도 된 듯 쳐다보는 성빈이. 성적이라도 떨어졌나, 하고 성빈이의 이름을 찾아 시선을 돌린 나. 원래 성빈이 이름이 있어야 할 15등~20등 사이에 그녀의 이름이 없다. 한참 아래에, 37등 자리에 쓰여 있는 성빈이의 이름. 얼빠진 표정의 성빈이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어······ 음······ 그······.”

“······.”



멍하니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성빈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옆에 있던 희세도 눈치를 챘는지 힐끔 성빈이를 바라본다. 행여 내가 헛소리라도 할까 옆구리를 꾹 찌른다.



“······후우. 성적 많이 떨어졌다. 울고 싶네.”

“괜찮아?”

“응,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성적 떨어졌으니깐.”



웃는 얼굴로 말하는 성빈이. 뭔가 더욱 서글퍼 보인다. 실제로 성적이 떨어진 건 떨어진 거니까. 씁쓸하지만, 앞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성빈이의 굳건한 의지가 보인다.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성적 향상의 의지를 더욱 북돋는다.


그 성적 떨어졌다는 성빈이의 37등조차, 나에게는 한참 먼 얘기니까. 오늘 내가 잉여롭게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원하던 오늘이란 얘기도 있잖아. 나는 참고로, 100등 아래······ 하핳. 망했어. 이걸 어떻게── 아아. 모르겠다. 사실 별로 답 없는데 그냥 하는 거임 히힣.












--












“저기······.”

“응?”



저녁시간. 밥을 다 먹고 나면 남는 시간은 잉여로운 시간. 보통 애들은 그 시간조차 공부를 더 하거나, 아니면 나처럼 잉여 때리거나 한다. 휴대폰을 보며 인터넷의 시끄러운 사건들을 꿀잼 개꿀잼 하며 보고 있을 때, 문득 성빈이가 말을 걸어온다.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

“상담?”



머뭇거리며 말하는 성빈이. 정말 의아한 표정으로 성빈이를 바라본다. 성빈이가 나한테 상담할 게 대체 뭐가 있다고. 치유계에게도 고민은 있는 것일까? 후흣, 없을 리 없잖아. ‘치유계’라는 것도 내가 내 스스로만 붙인 성빈이에 대한 칭호고. 성빈이가 무슨 천사도 아니고, 엄연히 인간계에 사는 사람인데 고민이나 고뇌가 없을 리가. 이런 번뇌를 모두 없애야 하기에, 청와대는 심사숙고 끝에 불교에 귀의하기로······ 아아, 개소리는 그만 하고.



“응, 별 건 아니구······ 음. 그러니깐.”

“뭐, 편하게 얘기하게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할까? 상담료로 음료수 한 캔 콜?”

“응, 사줄게.”

“아냐, 농담이야.”

“으으응, 정말 사줄게.”



성빈이랑은 3년지기 친구이니, 비록 여자애지만 이 정도 장난은 아무렇지도 않게 칠 수 있다. 랄까, 그런 것보다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 말 그대로 여고에서 3년 지냈잖아. 이제 여자애들이랑 얘기하고 장난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후훗. 성빈이도 좋아하는 것 같고.



“나 잠깐 성빈이랑 얘기 좀 하다 올게.”

“으음······ 아주 제멋대로네.”

“아 그럼 어쩔 수 없잖아. 학교가 여고인데. 나도 친구는 있어야 하잖아.”

“맘대로 하셔. 에효. 남자친구라고 있는 게 저 모양이니.”

“갔다올게~”



싱긋 웃으며 희세에게 잠깐 들려 말한다. 희세는 눈을 흘기며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은근히 장난기가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희세. 단발머리 희세가 툴툴대는 모습은 참 예쁘고 귀엽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희세랑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성빈이를 보니 순간적으로 어두운 표정의 성빈이 얼굴. 나를 보고 금세 방긋 웃는다. 저렇게나 우울한 표정을 지을 정도라니, 무슨 상담을 하려는 것일까. 고개를 끄덕이며, 성빈이와 함께 교실을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간다.





‘철컹.’

“여기.”

“땡큐.”



음료수를 뽑아주는 성빈이. 사 주는 게 성빈이니, 음료수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건 내 몫이다. 사이다를 꺼내 건네주니 방긋 웃는 성빈이. 음료수 앞 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아무도 없다. 하긴, 이런 저녁시간에 누가 이런 데에 있겠어. 덥고, 습하고, 벌레 많고, 모기 물리는데. 시원한 에어컨 빵빵 나오는 교실에 앉아 있는 게 100배 낫지. 뭐, 저녁인지라 그렇게까지 엄청 덥진 않다.



“근데, 무슨 상담?”

“으응, 별 건 아니구.”



음료수를 마시며 운을 띄우는 나. 궁금하긴 하다. 그 성빈이가 대체, 이 잉여로운 나에게 무슨 얘기를 꺼낼지. 스윽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여는 성빈이.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에, 뭐라고?”

“응? 못 알아들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 하핫.”



듣자마자 터져나오는 웃음. 성빈이가 진지하다는 게 더욱 난감하다. 아니, 지금 이걸 말이라고 합니까? 흠······. 반대하시나요?


무릇 상담이라는 건 그래도 좀 명망있는 어른이나 되는 애들이, 얘기를 들어주고 해결책을 내려주는 것이다. 나보다 한참 공부 잘 하는 성빈이가, 이 나한테 공부에 대한 상담을 요청하다니, 뭔가 너무 웃기잖아. 그래서, 저절로 드립이 나오고 웃음이 나온다.



“나 너보다 한참 공부 못 하잖아! 근데 무슨 상담!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 난 공부 못 하는데.”

“으으응, 상담은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그럼 상담사들은 모든 세상사에 통달한 신선님 같은 존재들이야? 그런 게 아니라, 같이 얘기해주고,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상담이 되는 거잖아.”

“음~ 그래도, 좀 그런데.”



뭐, 성빈이 말이 맞긴 한 것 같다. 마인드부터가 이미 성빈이에게 상담을 받아줄 마음이 아니었구나, 나란 놈은. 부끄럽다. 뉘우치고 다시금 생각을 고쳐먹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성빈이에게 ‘그래, 그럼 말해줘. 공부?’ 하고 말했다.



“저번 6월 모의고사, 망했어.”

“응, 그 망한 게 나보다 한참 높은 성적이지만. 고민 맞나요~ 농락 아닌가요~? 아핳, 농담.”



응, 아까 아침에 봐서 알잖아. 그 풀죽은 시무룩한 표정까지 같이 봐서 너무 생생하지. 그래서 농담을 했는데, 어째 성빈이 반응이 영 좋질 않다. 다시금 엄격·근엄·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간 나. 진지하게 성빈이의 상담에 응해줘야겠다.



“많이 떨어졌지, 성적.”

“응. 그래서, 하아. 솔직히, 나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치.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성빈이 너 엄~청 열심히 공부하잖아.”

“그치 그치? 아 근데~ 성적은 오르기는커녕 떨어지니깐.”

“그러게.”



어쩌면 상담이라기보단, 가볍게 재잘재잘 떠들기를 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적에 대한 얘기. 확실히, 성빈이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노력이라면 어떤 이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굳이 버금가는 사람을 찾아본다면, 희세 정도? 그 희세조차도, 나 가르쳐주느라 시간 낭비할 때도 있고, 나랑 노닥거리느라 점심시간, 저녁시간이나 쉬는 시간 버릴 때도 있다.


성빈이는 아니다. 정말, 어떤 것도 다 포기하고,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 본인 말로 법대 가는 게 목표라고 했으니, 그 노력은 응당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법대는 정말 힘든 일이니까.


하지만 세상은, 노력한 게 그대로 결과로 출력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식이라면 누구나 성공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었겠지. 성빈이는 누구보다 노력하고, 엄청 많이 공부하고 그랬지만 정작 성적은 떨어졌다. 이번 6월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진 것도, 본인은 잘 모르겠단다. 열심히 공부했고, 소신껏 문제를 풀었는데도 어이없게 틀렸댄다. 조금 헷갈렸다고 생각했지만 패기 있게 자신 있게 문제를 풀었는데, 그게 전부 틀렸다나.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집중을 못 하는 거 아니야? 10시간 앉아 있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던가.”

“······그런가? 나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하면서도 살짝 코웃음이 쳐진다. 내가 성빈이한테, ‘집중 못 하는 거 아니야’ 라니. 누가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니, 이런 게 아니지. 상담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니까. 성빈이 얘기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거니까.



“성빈이는, 목표도 확실히 있고, 기본적으로 공부도 충분히 잘 하고. 성실하고, 노력하고, 똑똑하니까 공부를 못 할 이유가 없는데.”

“에, 에이, 그 정도는 아니잖아.”



내 냉철한 분석에 얼굴을 붉히는 성빈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펙트폭력에 약한 성빈이. 선동과 날조로 깎아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실제가 그러한데.



“성적 ‘떨어진’ 게 37등인데 말 다했지. 모의고사 평균 몇등급이야?”

“평균······이면, 2등급 정도?”

“핳. 그럼 전부 2등급 근처로 나왔단 얘기잖아?! 난 제일 잘한 게 언어 2등급인데!!”



역시, 클라스의 차이가 느껴지는구나. 뭐, 언어는 그런대로 잘 봐서 90점 나왔는데도 2등급인 게 시무룩하긴 하지만. 이번에 애들이 시험을 잘 봐서 표준점수가 올라갔나보다. 점수는 저번만큼 나왔는데도 2등급인 걸 보니. 어쨌든.



“웅도 너 요즈음은 공부 열심히 잘 하잖아. 집중도 곧잘 하는 것 같고. 어떻게 마음 다잡았어?”

“뭐~ 나는, 근본적으로 내 공부의 근원은 아무래도 희세지?”

“희······세?”

“응.”



내 말에 표정이 살짝 굳는 성빈이. 조금 엉뚱했으려나.



“희세 덕분에 정신 차려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좀, 말도 안 되지만, 희세랑 같은 대학 가려고 하거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희세 따라가려면 한참 열심히 해야 하니까.”

“그렇구나.”



내 부끄러운 고백에 방긋 웃어 보이는 성빈이. 물론 성빈이에게 적용할만한 사안은 아니다. 나야 뭐, 의지박약이니 이런 목표라도 있어야 공부를 하지만. 성빈이는, 법대라는 목표가 있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으응~ 힘들다, 힘들어.”

“나도. 내 평생동안 이만큼 공부한 적은 처음이니까.”

“고3, 힘드네. 근데 막상 돌이켜보면 벌써 시간이 빨리 지나간 거 같애.”

“응, 그렇지.”



이제는 공부에 대한 얘기는 그만하고, 간단한 잡담 타임. 의자에 기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하는 성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시간 진~짜 더럽게 안 가는데. 막상 돌이켜 지나온 뒤를 보면, 3월에 고3 시작! 했는데 벌써 6월 지나갔으니. 앞으로 수능······ 100일 좀 넘게 남았다. 후덜덜. 망했어요. 아앙. 앙.



“고3 끝나면, 우리도 이제 뿔뿔이 흩어지겠지.”

“뭐, 그렇지. 그래서 기를 쓰고 공부해서 희세랑 같은 대학교 가려는 거고.”

“······응.”



뭔가 씁쓸한 표정의 성빈이. 모두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씁쓸한 것일까. 나 또한 그러한데. 어쨌든, 모두 같은 대학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만화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각자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하아─ 차가운 현실에 부딪힌 것 같다. 나 좀 어른스러워진 듯.



“이제, 가자.”

“응. 상담이 된 거 같아?”

“응. 좀 괜찮아진 거 같애.”

“다행이네.”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하는 성빈이. 나 또한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저녁시간은 다 끝나가고, 이제 야자시간이다. 가자, 공부하러. 학생이니까 당연히 공부하지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갑니다. 삼*화재. 어? 왜 갑자기 광고하는데. 성빈이와 함께 계단을 오른다.











--










“······.”



쥐 죽은 듯 조용한 교실. 사각사각 연필소리, 스윽스윽 책장 넘기는 소리.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야자할 때 조금 떠들거나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다들 열심히 공부한다.


아까 전 웅도에게 한 말은 거짓말.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기분이 묘해져서 공부가 안 된다. 무엇 때문인지 말로 표현은 못 하겠지만, 1시간 째 잡고 있는 모의고사 문제집이 다 풀리질 않는다. 1시간 안에 다 풀었어야 하는데도. 평소에는 금방 다 풀었는데도.


정말, 공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딴 생각을 하거나, 집중을 못한 것도 아니다. 희세만큼 열심히 했다. 심지어 희세가 웅도랑 노닥거릴 때에도, 부러우면서도 이 악물고 공부했다. 하지만 다가온 현실은.


희세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전교 1등. 전교 1등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성적만 놓고 봐도. 전부 1등급에, 백분위도 상위권. 부럽다. 부러워서 미치겠다. 그 정도 성적이면, 내가 원하는 법대, 충분히 갈 수 있을 텐데. 서울대도 갈 수 있을 텐데. 나는, 나는······.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오늘만큼은, 희세가 정말 부럽다. 나도 희세만큼 공부 잘 한다면. 그래서, 원하는 대학 갈 수 있다면.





“아~ 피곤하다.”

“그냥 씻고 자고 싶어.”

“피~ 그래도 올라가서 바로 공부할 거잖아.”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웅도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쭉 펴며 말한다. 싱긋 웃으며 대답하니 옆에서 희세가 방긋 웃으며 말한다. 으응, 그렇지. 이대로 잘 수는 없지.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성적도 떨어졌는데.


희세를 질투하거나 싫어하진 않는다. 질투······ 정도는 인정해야 하려나. 싫어하는 건 결코 아니다. 희세, 착하고 소중한 친구니까. 다만, 너무 부러울 뿐이니까. 공부도 잘 하고, 나보다 예쁘고, 그리고······. 그런 희세에게 뒤지고 싶지 않아서, 묘한 경쟁심을 느끼면서 오늘도 바로 열람실에 올라갈 결심을 한다.



“여보세요?”

『응 엄마.』

“네.”



기숙사에 돌아와서, 씻고, 잠깐 쉬고 있는 사이. 엄마께 전화가 왔다. 기숙사에서 어느 때에 쉬는 타이밍인지 다 아시니까.



『모의고사 본 거 어떻게 됐어. 오늘 성적 나오지 않았어? 월요일인데.』

“네······ 나왔어요. 그······.”



엄마는 귀신같이 성적을 체크하신다. 세상 누구보다도, 내 성적에 관심이 높으신 엄마니까. 나는 벌써부터, 살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되었다. 성적 떨어졌다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는데.



『성적 떨어졌어?』

“네······.”

『학교에서 뭐하는데? 공부 안 하고 딴생각 해?』

“그런 건 아닌데······.”

『그런 게 아니면 성적이 왜 떨어져. 공부 열심히 하는데, 오르기는커녕 떨어지긴 왜. 이제 수능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실수라도 용납 못할 거야. 얼마나 떨어졌는데.』

“37등······.”

『뭐, 37등?!』



엄마는 한없이 내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잔뜩 뭐라고 하시는 엄마.











알아요, 나도 알아요.






내가 누구보다 답답해요.





내가 제일 짜증난다구요.









하지만 그 말, 차마 입으로 내뱉진 못하고 묵묵히 듣고만 있는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죄송해요······’ 하는 풀죽은 말 뿐.



『엄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잖아. 지금 열심히 안 하면, 앞으로 평생 후회한다 너? 공부는 해야할 때가 있는 거니까.』

“네, 죄송해요······.”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무, 몰아 세우지. 미안.』

“아녜요, 제가 잘 못 해서 그런 건데.”

『실수한 거니까, 다음부턴 꼭 정신 차려서 잘 보고. 수능 때에도 실수하면 절대 안 되니까. 너무, 밤 늦게까지 하진 말고. 잠은 꼭, 7시간 지켜서 자고. 알았지?』

“네.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응. 우리딸, 착하네. 공부 열심히 하고, 다음에 또 전화할게.』

“네.”



알고 있다. 엄마가 이러시는 것도, 결국엔 나를 위해서. 그래서 차마 짜증도 투정도 못 한다. 나를 위해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조금, 지칠 것 같다.



“······어머니 화나셨어?”

“어? 어, 응! 아, 아니야.”



잠깐 상념에 빠져있을 때. 희세의 목소리가 들린다. 심각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는 희세. 너무 상심해서, 희세가 있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들으려는 건 아니었는데, 기다리다보니까.”

“아, 시간 벌써 이렇게 됐네. 미안.”

“아니야. 같이 가야지.



희세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11시를 훌쩍 넘겼다. 아, 그렇게나 오래 전화했구나. 얼른 책을 챙기며 희세에게 말했다. 희세는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뭔가, 내가 말하면 주제 넘을 거 같지만.”

“응?”

“성적 떨어졌다고, 너무 기죽거나 그러지 마. 어차피 성빈이 너 잘하니까, 금방 회복할 수 있잖아?”

“으응······ 자신이 없네, 솔직히.”

“괜찮아, 실전에서 실수 안 하면 되지.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응, 고마워.”



희세의 말은 왠지 모르게 더 와닿는다. 나를 생각해주는 게 느껴진달까. 살짝 부끄러워져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가방을 다 챙기고, 희세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오늘도 늦게까진 안 할 거지?”

“응, 졸려서.”

“그래, 나도 일찍 들어가야지. 그 놈의 정웅도 녀석, 꾸벅꾸벅 졸아대니깐.”

“후흫.”



희세의 말에 피식 웃음지었다. 그러면서도 살짝 드는 씁쓸한 기분. 아니아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4층 열람실로 올라갔다. 공부해야지. 모두를 실망시킬 순 없으니까, 공부해야지. 나를 위한 것도 있으니까,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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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07화 - 4 +4 16.08.31 829 7 18쪽
258 07화 - 3 +2 16.08.27 863 7 17쪽
257 07화 - 2 +3 16.08.23 776 8 20쪽
256 07화. 소개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 16.08.15 1,132 7 17쪽
255 06화 - 4 +3 16.07.31 862 6 22쪽
254 06화 - 3 +5 16.07.28 772 6 20쪽
253 06화 - 2 +3 16.07.26 820 7 22쪽
» 06화.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니까……! +1 16.07.23 946 6 20쪽
251 05화 - 4 +5 16.07.20 856 7 6쪽
250 05화 - 3 +1 16.07.19 796 6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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