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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876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7.28 23:08
조회
772
추천
6
글자
20쪽

06화 - 3

DUMMY

“······!”

“······.”



아이고, 영락없이 여기서 죽게 생겼구먼, 아이쿠······.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신의 농간일까. 내가 그렇게 사악하게 살아왔나. 이런 업보를 받을만큼.


희세는 얼른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리곤 잠자코, 나와 성빈이를 본다. 정신이 번쩍 든 나. 얼른, 성빈이를 떼어 놓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좀체로 괴력의 성빈이는 잘 떨어지질 않는다. 어째서인지 필사적으로 나한테 붙어있으려고 해서.



“······뭐야.”

“아니, 이건 그, 저, 크나큰 오해가······!”

“!”



낮게 깔린 목소리의 희세. 눈빛은 이미 차갑게 식은 지 오래.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성빈이는 계속, 약이라도 취한듯 황홀한 표정으로 내 몸을 더듬다가 문득 희세의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춘다.



“······저리 가!”

“?!”



앙칼진 목소리로 외치는 성빈이. 표독스러운 표정이 일품이다. 나도 희세도 전혀 예상못한 성빈이의 반응에 당혹감을 느꼈다. 진실된 상황이건, 희세가 오해할만한 상황이건 지금 성빈이가 보이는 반응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니까.



“웅도는 내 꺼야······ 저리 가, 이 나쁜 년아!”

“······!”



급기야는 나를 꼬옥 껴안으며 횡설수설 말하는 성빈이. 뭔가 굉장히 무섭다. 이런 표현을 쓰면 안 되겠지만 뭐랄까, 치매 걸린 할머니가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희세도 어이없다는 황망한 시선으로 나와 성빈이를 번갈아 쳐다본다.



“씨······ 히으읏······ 하앗······ 하읏······.”

“괘, 괜찮아 성빈아?!”



작은 고양이처럼, 잔뜩 희세를 경계하며 노려보는 성빈이. 딱 보기에도 불안해보이는 모습으로, 숨을 헐떡이던 성빈이는 이내 픽 내 품에 기대어 쓰러진다. 지쳐서 잠든 것처럼. 깜짝 놀라 성빈이를 흔들며 말한다. 성빈이는 내 품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다.


일단 아무 말 없이, 희세가 다가와 성빈이를 부축했다. 아무리 여자애라지만 성빈이를 희세가 들 순 없기에, 옆에서 같이 도와 성빈이를 일으켰다. 잠든 상태로 헤롱헤롱한 성빈이. 여자애들 숙소인 위층까지, 남자인 내가 올라갈 순 없으니 바로 앞 사감실의 문을 두드렸다.



“뭔데.”

“성빈이가 갑자기 쓰러져서······.”



선생님은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사감실에서 나오신다. 기세 좋게 성빈이를 업는 선생님. 여자임에도 그 기세가 무척이나 든든하다. 꼭 살림 잘 하는 아주머니를 보는 것 같은 기분. ······절대로 생각만 해야지. 아줌마라고 입밖으로 내면 죽도록 혼날테니.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성빈이 룸메이트인 희세가 성빈이를 뉘이고,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저, 저기, 그거는 그······ 미안해, 희세야. 내가 죽일 놈이야.”

“······.”



방에서, 죄인처럼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희세를 기다리던 나. 희세가 문을 닫고 들어오자마자 애걸복걸, 애처로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다 결국 넙죽 엎드렸다. 이럴 때엔 무조건 저자세로 가야만 한다. 현장적발이기에 어떻게 더욱 변명이 먹힐 리가 없다. 그렇기에, 차라리 진심을 다해 사죄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남자는,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가 있다.



“······뭐야 그 반응. 진짜 성빈이랑 뭐 했어?”

“아니, 아니!!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이지요, 쇤내가 어찌 무얼 했겠습니까!!”

“······흥.”



여전히 낮고 분위기 있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희세. 흠칫 놀란 나는 더더욱 사죄의 기분으로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진심을 다한 사과를 한다. 희세는 팔짱을 끼고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잠자코 나를 쳐다보며 천천히 걸어 나에게 다가온다. 의자에 앉는 희세.



“네가 변태인 건 알지만, 그런 것까지 오해하진 않아. 넌 그럴 사람이 못 되니까.”

“······뭔가 기쁘면서 미묘한 기분인데. 어쨌든 고마워, 바로 오해를 파악해줘서.”

“덮쳤을 거면 날 먼저 덮쳤겠지.”

“······하하.”



희세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구나. 날 믿어주는구나. 기뻐야 하는데 뭐랄까, 희세의 볼멘소리에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럼 뭐, 덮쳤어야 돼?! 희세랑 단 둘이 있을 때, 남자맛(?)을 보여줬어야 해?! 앙!!? ······라는 건 그냥 드립일 뿐이고. 나는 결코 그런 마초 스타일이 아니지. 그걸 아니까 희세도 저런 말 하는 거고.



“그러니까, 너 믿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말해봐. 무슨 상황이었는지. 하나도 조작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응, 알았어. 그러니까 그게-”



희세는 나를 믿어줬다.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임에도. 어쨌든 감동은 감동이다. 성빈이와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말했다.


얘기하라고 해봐야, 별달리 상세하게 설명할 것도 없다. 문이 열렸고, 희세인 줄 알고 봤는데 성빈이. 뭔가 몸상태가 굉장히 이상한 듯 숨을 헐떡이던 성빈이가 갑자기 들이닥쳐 날 덮쳤고, 이후로 강제로 키스하면서 내 몸을 마구 더듬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엄한 부위까지 어떻게 이렇게 으음(?)······ 하려다가 다시금 문이 열리고 희세가 들어왔지. 그 뒤의 상황은 뭐.



“······그러니까 성빈이가 그랬다고.”

“믿어준다며! 정말 그랬어! 난 아무것도 못 했다고!”

“왜 화 내. 찔리는 거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하아. 미안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희세는 힐끔 나를 보며 묻는다. 벌컥 짜증을 내는 나. 내가 당하고도 내가 믿기지 않는다고. 여자애가 남자애를 갑자기 덮치다니, 이럴 수가 있나 싶은데. 어쨌든 진실은 그러니까.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이죽이는 희세의 기세에, 나는 어쩔 도리 없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성빈이 아프잖아. 약 잘못 먹었나?”

“약을 어떻게 잘못 먹어야 저렇게 되는데. 최음제 같은 것도 아니고.”

“이상하네, 진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나. 성빈이 아픈 건 사실이고, 양호실에 데려간 것도 나지만. 약은 분명히 멀쩡한 해열제였어. 아*피린이었다고.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희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럼 너, 강간당할 뻔 한거네. 성빈이한테.”

“······그런 표현은 좀.”



볼멘소리로 말하는 희세. 나 또한 굉장히 겸연쩍어하며 대답했다. 되게 당황스럽고 난감했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무섭기도 했고. 강간이라고 하면 강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표현은 조금, 그······ 형들 이거 나만 불편해?



“!”

“잘 견뎠어. 무서웠을 텐데. 고마워.”

“······.”



잠자코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나에게 다가오는 희세. 그대로, 무릎꿇고 있는 나를 포옥 안아주는 희세. 무릎꿇고 있는 내 눈높이와, 일어서서 나를 껴안는 희세와의 높이 차이 덕분에 자연스럽게 내 얼굴이 희세 가슴에 파묻힌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희세가 스스로 내 얼굴을 잡고 껴안은 것이다. 나는 변태가 아니다.


포근한 느낌과, 압도적인 부피감과, 희세의 부드러운 위로의 말이 들리니 괜히 울컥, 뭉클해진다. 별로 아무것도 당한 게 아닌데도, 희세가 해준 말을 들으니 금세 눈물이라도 고일 것 같다. 희세가 날 믿어줘서 그런 걸까. 은은한 희세의 체취에 취해버릴 것만 같다. 어질어질.



“······작작 하고 그만 떨어지지? 너무 붙어 있는 거 아니야?!”

“아, 아니, 네가 떼 줘야 떨어지든가 말든가 하지.”

“표정 너무 헤벌레 하거든?!”



부끄러운지 뾰족한 목소리로 말하는 희세. 황급히 희세의 가슴에서 얼굴을 팍 떼었다. 창피한지 얼굴이 잔뜩 빨갛게 된 희세. 내 표정을 보며 벌컥 화를 낸다. 퍼지는 행복감을 감출 수는 없다. 난 포커 페이스는 전혀 못 하는 타입이니까. 헤실헤실, 바보처럼 웃음이 나온다.



“기운 차렸지? 됐어, 공부하러 올라와. 나 방 들렸다 올 테니까, 먼저 올라가 있어.”

“어, 응!”



기운 차리다마다요. 차리다 못해 430% 정도 초과충전 된 것 같은데. 희세의 말에 무릎 꿇은 것을 퍼뜩 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피가 안 통해서 다리가 저리지만 티내지 않고 얼른 책상 위의 책들을 가방에 챙긴다. 희세는 아직까지 빨간 얼굴로 그런 나를 힐끔 보며 작게 미소 짓는다.


어쨌든 공부는 계속된다. 고3이니까.












--











“잠깐 볼까.”

“네?”



점심시간이 되어, 문득 나를 부르는 선생님. 마악 애들하고 점심 먹으러 가려는 찰나였는데.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힐끔 나를 쳐다보는 선생님.



“할 얘기 있으니까.”

“저 애들하고 점심 먹어야 하는데.”

“네 자유의사따윈 필요없고. 꼬맹이랑, 여자친구까지 데리고 와 봐. 밥 사줄 테니까.”

꼬맹이는 리유고 여자친구는 희세다. 볼멘소리로 튕기는 나.

“무슨 할 말이 있으시다고······ 희세랑 리유는 또 왜요?”

“거 참 잔말 많네. 3년동안 보니까 머리 잔뜩 컸지? 성빈인지 뭔지 하는 애 때문이야.”

“······아.”



선생님의 짜증스런 대답에 나는 말을 잃었다.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인 나. 애들에게 말하러 갔다. 희세와 리유만 데리고, 선생님 차에 탔다.


성빈이는 오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어제 있었던 사태를, 최대한 순화해서 사감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그것에 이상함을 느낀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께 말했고, 담임 선생님이 성빈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셨다. 성빈이와 선생님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



“······누구한테 말할만한 건 아닌데.”

“······?”



시내로 나가는 선생님의 자동차 안. 선생님의 나지막한 물음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선생님을 쳐다봤다. 천진난만한 리유조차, 무거운 분위기를 알아 차리고 입을 다물고 있었거든.



“너희, 성빈인지 뭔지 하는 그 애랑 제일 친하지.”

“······네.”

“네.”

“으응!”



성빈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성빈이, 리유, 희세. 이 세 명은 1학년 학기 초부터 얽히고 섥힌 성골(?) 라인이잖아. 친함의 경지가 알게 된 기간에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와 마찬가지로 대답하는 희세와 리유. 희세는 룸메이트에다, 평소에도 무엇이든 성빈이랑 같이 하는 절친이고, 리유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 셋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마음의 병.”

“에······?”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 ‘마음의 병’이라니,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다. 희세도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봤다. 신호등의 신호를 기다리며, 선생님은 우리를 보지 않고 시선을 계속 앞으로 하시곤 말씀하신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들어봤어.”

“혜리······ 걸*데이요?”

“장난도 좀 보고 해! 어휴.”

“미안.”



뭔가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병명을 말씀하시는 선생님. 물론 일개 고등학생인 내가 알 턱이 없다. 선생님, 저 문과에요. 그런 과학적인 거, 잘 몰라요. 문송합니다.


내 장난에 희세는 잔뜩 나에게 눈총을 보내며 옆구리를 꼬집는다. 고통을 느끼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니, 힘들 때일수록 눈치 없는 장난이 분위기를······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다중인격 아니에요?”

“오. 어떻게 알아, 꼬맹이가.”

“헤헷.”



이런 이상한 것만 잘 알고 있는 리유. 눈을 빛내며 말하니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거울로 힐끔 리유를 보며 말한다. 리유는 생글생글 웃으며 좋아한다.



“다, 다중인격이요?!”

“힘들고, 괴롭고, 상처받은 것들을. 하나로 몰아낸 거야. 몸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니까. 그런 힘든 것들을 계속 안고 있다면. 정신이 망가져버릴 지도 모르니, 차선책으로 그것들을 한데 모아 다른 인격이 형성된 거지.”

“······.”



이중인격이니 다중인격이니, 말로만 들었었는데. 실제로 그런 병, 처음 본다. 선생님의 말에 두 가지 짐작 가는 바가 뇌리를 스친다. 첫 번째는 어제 나를 덮친 성빈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줄은 알았는데, 그게 다른 인격이었을 줄이야.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성빈이가 그럴 리가 없긴 한 것 같다.


두 번째는, 힘들고 괴롭고 상처받은 것들. 성빈이 요즈음, 성적 떨어져서 계속 괴로워 했으니까. 거기에, 양호실에서 있었던 일도. 아직까지 나를 좋아하고 있는데, 거기에 내가 확실히 선을 그은 것도······ 분명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죄책감 드는데.



“매체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 유리된 성격이 활동할 때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네. 그러니까 지금, 네 친구는 어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 해.”

“······.”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렇게까지 돼버린 걸까. 늘 농담처럼, 혼자 속으로 ‘성빈이는 치유계지~’ 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성빈이에게 멘탈을 치유받은 적이 상당히 많으니까. 성녀처럼 늘 착하고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성빈이니까. 그런 성빈이가, 실은 자기 마음은, 누구보다 상처투성이에 돌이킬 수 없을만큼 멍든 상태였다니.



“엥? 어제 무슨 일?”

“리유야, 쉿.”

“에에? 응?”



어제 있었던 일은 나하고 희세, 선생님 정도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다. 워낙 급박했던 상황이기에. 다행히 밤이었고, 보는 사람도 없었기에 다른 기숙사 애들은 무슨 일인지 몰랐다. 그냥 성빈이가 몸이 아파서 쓰러진 정도로만 알지. 그렇기에 소문 같은 것도 안 나서, 우리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리유가 알 리가 없다. 눈치 없이 물어보는 리유에게, 희세는 타이르는 목소리로 어떻게 얼버무린다.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치료한다는 개념이 아니지만, 그런 정신질환은.”

“네.”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으며, 선생님과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성빈이에 대한 선생님의 말을, 나는 국밥을 우적우적 씹으며 경청한다. 희세와 리유도 마찬가지로.



“너희들이 그 녀석 멘탈을 보듬어줘야 돼. 더 충격 받거나 힘들면 정신이 버티질 못할 테니까. 여차하면 원래 정신보다 분리한 인격이 더 많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걷잡을 수 없겠지.”

“네······.”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 성빈이를 보기 참 힘들 것 같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말을 끝내고 우적우적, 남성적으로 국밥을 호쾌하게 드시는 선생님. 뜨거워서 용의 브레스처럼 숨결을 뱉으며, 숟가락으로 신속하게 깍두기를 집어 드신다. ······좀 곱게 좀 드시지. 나이도 이제 나이신데. 그러니까 시집을 못─



“고3은 힘들지.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뭐, 개인사정 같은 것도 있겠지만. 너희들이 제일 절친한 친구들이라니까, 좀 잘 해 줘 봐. 그 애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 옆에서 거들어 주고. 친구들 있다고.”

“넵.”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에 빠르게 대답하는 나. 선생님이 내 생각을 읽은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다. 그렇지는 않겠지. 마저 국밥을 드시는 선생님을 보며, 나 또한 우걱우걱 밥을 입에 쳐넣는다.











--











“성빈찡~ 많이 아팠음?!”

“으으응, 괜찮아. 그냥, 좀 많이 힘들어서 그렇데.”



미래는 아무한테나 잘 달라붙는다. 뭐, 성빈이가 ‘아무나’는 아니지만. 오후에, 성빈이는 학교로 돌아왔다. 진료를 다 받고 온 모양. 힐끔 성빈이를 바라본다. 아, 안 돼. 어제의 그 성빈이가 겹쳐 보인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 풀린 눈. 숨을 헐떡이며, 나를 쳐다보던 그 끈적거리는 눈빛.



“······어, 어디가 아프데? 감기?”

“으응. 몸살감기랑, 조금······ 우울증? 나 우울증 있나봐. 헤헷. 몰랐는데.”

“······그렇구나.”



성빈이를 차마 똑바로 못 보고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성빈이는 딱히 내 시선처리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 했는지 방긋 웃으며 말한다. 우울증이라······ 그런 식으로 둘러댔구나. 하긴, 본인한테 그걸 말해줄 리가 없겠지. 충격 받을 텐데. 성빈이처럼 섬세한 소녀라면 더더욱. 거기에 더해, 어제 있었던 일까지 알게 된다면. 아마, 진정한 ‘멘탈붕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겠지.



“어쨌든 안 아파서 다행이야, 비니! 지금은 멀쩡하징?”

“응, 밥 먹고 약 먹으니까 괜찮아졌어. 주사도 맞았구.”

“헤헷~ 저녁 뭐 먹을까?”

“아직 점심 먹은 지 1시간 지났는데?”

“헤헤헹~ 비니랑 점심 못 먹으니까 이상하잖아!”



리유는 늘 유쾌하고 쾌활하다. 리유 덕에 어색한 기분을 조금은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다행이야. 성빈이가 다시 건강을 찾은 건. 이제 찾아야 할 건, 내 평정심뿐인가.




“신경 쓰고 있지.”

“······어.”



수업에 들어가기 직전, 나지막이 나에게 속삭이는 희세.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대로 말한다.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런 일이 있었는데.



“신경 쓰지 마. 너 얼굴에 다 드러나니까. 행여라도 말하지 말고.”

“응, 당연하지.”

“근데 아까 성빈이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딱 드러나던데.”

“······어쩔 수 없잖아.”



희세의 조언에도, 나는 얼굴을 펼 수가 없다. 막막한 기분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 나를, 착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희세. ‘갈게.’ 하곤 우리반에서 나가는 희세. 기분이 참, 미묘하다.



“아, 웅도야.”

“어, 응?!”



아, 안 돼, 지금 그렇게 갑자기 다가오면! 어제 나한테 마구 몸을 부비던, 그 성빈이가 떠올라버리니까! 하앗! 후읏! 이것도 어쩌면 트라우마의 일종이라고 해야 하려나. 막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게 된다. 성빈이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미안해, 어제.”

“어, 어?!”



뭐,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서, 설마, 어제 일 다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과할 수 있어! 당사자인 나는 이렇게 당혹스러운데, 그거 기억하고 있으면 이렇게 당당하게 ‘미안해’라고 말하지 못할 텐데! 미칠 듯이 창피해하는 게 정상일 텐데!



“어제, 웅도 방 가서 픽 쓰러졌다고 하던데. 그래서 웅도가 사감 선생님이랑 희세 불러서 방까지 데려다 줬다고 들었어.”

“아······ 어, 응, 그렇지! 열람실 가자고 온 것 같았는데, 내 방 문 열자마자 갑자기 팍 쓰러져서! 그거 받아내느라 고생 많았지! 하핫!”

“응, 미안. 어제 너무 컨디션 안 좋아서 그랬나봐.”

“뭐 아무것도 아니지! 선생님이 업어다 갔는데, 선생님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하핫!”



Aㅏ······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조작된 기억인가. 그런 거라도, 피할 수 있다면 좋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조작된 기억에 발을 얹는 나. 그래, 원래 그랬던 거야. 픽 하고 쓰러지긴 했지. 내 품 안에서. 아, 안 돼. 기억하지 마라, 정웅도. 그건, 없었던 일이야. 완벽하게 없었던.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연거푸 사과한다. 평소와 같은 상큼한 성녀와도 같은 미소지만, 나는 그런 성빈이를 보며 영 씁쓸한 느낌이 든다. 지금도 이렇게, 애써 괜찮다고 하지만, 성빈이의 멘탈 안은······ 후우.


치유해주자. 우리가, 친구로서. 쉬는 시간은 끝이 나고 다시금 수업시간이 된다. 우린 고3이니까. 이러나 저러나, 공부 해야 하는 건 숙명과도 같은 거니까. 공부시간이 되고 우린 또 모의고사 문제집을 푼다.


작가의말

실제 질병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굉장히 희귀한 질병이고, 글 안에 나오는 묘사와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그냥 가져다 쓰려니 찔리네요. 어쨌든, 너무나 힘든 정신 때문에 성빈이의 인격이 두 개가 된 건 맞습니다. 그런 거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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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17 하늘아지
    작성일
    16.07.28 23:15
    No. 1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6.07.30 21:57
    No. 2

    넵,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비행병아리
    작성일
    16.07.29 17:02
    No. 3

    성빈이의 왼손에 숨겨져있던 흑염룡이 나타났다. 밤에만 나타나는 그것은 웅도의 체리를 노리는데.....
    희세와 성빈이 그리고 미래까지 가세한 웅도 체리 차지하기!!!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6.07.30 21:57
    No. 4

    뭐......라구욧!? 체, 체리라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6.11.15 17:29
    No. 5

    앞 화에서 글의 순서가 엉망이었군요~~~!!!
    어째 이상하다고 했더니~
    성빈이 꿈꾼 내용이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니...
    치유계 성빈이가 마음의 병에 걸려버렸다니...ㅜㅜ
    역시 정웅도는 상남자이자 암적인 존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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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01화. 어서 와, 대학은 처음이지? 18.04.22 207 6 20쪽
272 00화. 호에에... 다시 또 프롤로그인 거시에요... +8 18.04.21 316 8 13쪽
271 09화. 끝 +11 17.09.13 375 9 14쪽
270 설! +1 17.01.28 796 7 9쪽
269 새해. +7 17.01.01 740 6 11쪽
268 연말. +8 16.12.31 654 8 27쪽
267 수능 후에. +3 16.12.19 720 9 15쪽
266 수능. +3 16.11.17 850 7 16쪽
265 번외 - 대학교에선, 뭘 해- 2 +2 16.11.16 837 7 20쪽
264 번외 - 대학교에선, 뭘 해? +1 16.11.04 895 8 15쪽
263 08화 - 4 +6 16.10.20 836 7 22쪽
262 08화 - 3 +1 16.09.18 880 7 17쪽
261 08화 - 2 +4 16.09.12 971 7 19쪽
260 08화. 고3에게 물놀이는 사치인 것 같지만 몰라, 놀아! +1 16.09.07 952 7 20쪽
259 07화 - 4 +4 16.08.31 830 7 18쪽
258 07화 - 3 +2 16.08.27 864 7 17쪽
257 07화 - 2 +3 16.08.23 776 8 20쪽
256 07화. 소개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 16.08.15 1,133 7 17쪽
255 06화 - 4 +3 16.07.31 862 6 22쪽
» 06화 - 3 +5 16.07.28 773 6 20쪽
253 06화 - 2 +3 16.07.26 820 7 22쪽
252 06화.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니까……! +1 16.07.23 946 6 20쪽
251 05화 - 4 +5 16.07.20 857 7 6쪽
250 05화 - 3 +1 16.07.19 797 6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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