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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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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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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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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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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19쪽

28화 - 2

DUMMY

“음……!”

“뭘 폼 잡고 있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당차게 기숙사 앞에 서서 눈썹을 치켜 올려 눈을 뜨고 기숙사를 올려다본다. 옆에서 희세가 적당하게 태클을 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위풍당당한 기세로 자세를 풀지 않았다. 오늘은 토요일, 대망의 내 자취 라이프를 실현하는 첫 걸음인, 짐 옮기는 날이다. 그래, 오늘이야말로 내 역사의 한 걸음인 셈이지. 아무것도 안 해도 절로 기분이 좋다.

사실, 자취를 하는 데에는 조금의 우여곡절이 있긴 했다. 그러니까─ 방이 어딘지 헷갈리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주인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아니,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르잖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다. 계좌번호만 알려줬다 뿐이지 실질적인 계약 같은 건 내가 다 했다. 엄마가 알려준 건 덜렁 어느 건물에서 살으라는 정보 뿐. 무책임한 어머니 덕분에 아들의 자립심이 쑥쑥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여튼, 주인 아주머니와는 다시 잘 얘기하고, 엄마한테도 전화로 연결해줬고. 최종적으로 계약을 마쳤다. 우선은 6개월, 그러니까 겨울방학 때까지.

방은 그렇게 엄청 넓진 않지만, 충분히 훌륭한 원룸이다. 방과 부엌이 하나이고, 화장실도 하나 딸려 있다. 욕실 겸 화장실은 그리 넓은 크기는 아니지만 남자애 혼자 쓰기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베란다도 있고! 세탁기에, 창문도 아주 크고 아름답고! 환기가 너무 잘 된다. 게다가 아주머니가 학생이라고 특별히 책상 있는 방을 주셨다. 그래, 책상도 있어! 우와아아아! 침대가 없는 게 좀 흠이지만, 뭐 이 정도야. 맨바닥에 이불 깔고 자면 되지. 오늘, 짐을 옮김과 동시에 나의 자취 라이프는 시작된다. 으하하하!!

“와 줘서 고마워.”

“흐흥, 약속을 했는데 지켜야지! 밥이나 든든히 사줄 준비 하라구!”

“어, 그건 분명히 약속 했으니까.”

“다같이 하면 힘들지도 않지, 뭐.”

기숙사를 바라보던 나는 뒤돌아 애들을 보며 말했다. 정희는 기운찬 목소리로 말한다. 성빈이 역시 방긋 웃으며 말한다. 흐흠, 고맙네. 다들 주말인지라 사복차림이다. 리유는 예전부터 즐겨 입던 분홍색 니트에 노란 짧은 바지. 성빈이도 마찬가지로 무난한 니트와 분홍색 치마다. 미래는 의외로 분홍빛 꽃무늬 원피스인데, 평소 미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소녀적이라 당황스럽다. 희세는 뭐, 평범한 티셔츠에 평범한 스키니 청바지인데 참 평범한 스타일이지만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하게 한다. 정희는 활발한 성격대로 좀 쌀쌀한데도 민소매 옷에 굉장히 짧은 핫팬츠. 추위가 걱정되지만 정희의 열정이라면 그 정도는 이길 수 있겠지. 계속 쳐다보면 기분나빠할 수도 있으니, 옷 감상(?)은 이 정도로.

“그럼, 어디 뭐 부터 옮길까.”

“근데, 짐이랄 것도 별로 없지 않아? 기껏 해야 네 옷이랑, 책이랑.”

“응…… 그렇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 하는데 희세가 시기적절하게 태클을 건다. 아니, 태클은 아니고, 적절한 물음이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그대로다. 생각해보니까 딱히 옮길만한 게 없다. 손이 모자라서 그렇지, 실질적으로 짐이랄 건 내 옷가지랑 책, 기타 잡스러운 것들이니까. 나 혼자 옮기기는 좀 힘들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다섯 명이나 모일만한 건 아니다. 별 생각 없이 불렀는데. 사실, 처음 기숙사에 내 방 마련할 때, 그 때만 생각하고 애들을 불러 모았는데 막생 또 현실을 보니 그게 아니다. 그 때는 거기 있는 짐을 다 빼느라 엄청 고생했던 거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 내 짐만 간단히 빼면 되니까.

“거기다, 들고 갈 거야? 아니면 가방에?”

“……그것도 그렇네.”

희세의 계속되는 질문에 나는 더욱 난처해졌다. 옷 같은 것들을 그냥 손에 들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 하나 정성껏 개서 가방에 넣어 갈 수도 없고. 희세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에휴, 생각 좀 하고 살아요. 사람을 불러다 쓸 거면 확실하게 어떻게 할 지 정했어야지.”

“……우씨, 그냥 부를 수도 있지 뭐.”

“어디서 큰 소리야, 잘못한 게 누군데.”

“네, 네.”

희세의 말에 나는 툴툴대며 대답했다. 내 반응에 희세는 마음에 들지 않는 투로 쏘아 붙인다. 내가 어찌 희세에게 당해내겠습니까. 계속 태클을 거는 희세와는 달리 성빈이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그럼 박스 같은 데 담아서 다같이 옮기자!’ 하고 말한다. 리유 역시 그 말을 듣고 ‘오, 그게 좋을 것 같애.’ 하고 동조한다. 성빈이의 제안에 나는 기분이 몹시 훈훈해졌다. 그래, 사람이 이렇게 긍정적이어야지. 두 사람의 말에 희세는 별로 탐탁지 않은 눈치이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기에 ‘뭐, 그럼 그렇게 하던가.’ 하고 말한다.

딱히 가지고 있는 박스는 없고, 박스를 주우러 가야겠다. 마침 기숙사 뒤편에 쓰레기장이 있으니, 거기에서…… 아. 아?! 쓰레기장!

“잠깐만 기다려봐.”

“응?”

“좋은 생각 났어! 잠깐만 기다려!”

번득 스치는 아이디어를 뒤로 하고, 나는 큰 소리로 외치고 뛰어갔다. 여자애들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황급히 뛰어 쓰레기장으로 갔다.

“……있구나!”


“자!”

“……뭐야, 이게.”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희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특유의 상대방을 경멸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던 성빈이마저 조금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미래, 정희도 성빈이랑 비슷한 반응이고 다만 리유만은 ‘우와, 재미있겠다!’ 하며 좋아라한다.

“거지같애.”

“아 왜! 얼마나 합리적이야!”

내가 가져온 건 리어카. 그래, 리어카에 담아서 한 번에 옮기면 되잖아! 마침 쓰레기장에 빈 박스도 많이 있어서 리어카에 담아 가져왔다. 그리 짐이 많지도 않다. 애들이랑 같이 짐을 싸고 리어카에 담으면 굳이 여자애들이 힘들게 하나씩 들고 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어째, 다들 표정이 영 좋지가 않다. 이게 정말 합리적인데.

“어쨌든, 하자!“

“……맘대로 해.”

희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성빈이가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응응, 옮기자.’ 하고 말한다.

“엇…….”

“잠깐. 뭐 하려고.”

막 애들과 함께 기숙사로 들어가려는 찰나, 입구 쪽에서 문이 열리며 사감 선생님이 나오신다. 주말이니만큼 머리를 똥머리로 말아 올리시고 나머지 잔머리들도 핀으로 고정시킨 특급 스타일이다. 늘 즐겨 입으시는 한 치수 작은 것 같은 회색 목 늘어난 티셔츠에, 마찬가지로 한 치수정도 작은 것 같아 엉덩이와 골반을 꽉 조여서 드러내는 짧은 핫팬츠. 선생님에 비하면 희세는 양반이구나. 늘 본다 해도 정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한 선생님의 난해한 패션이다. 하긴, 또 저 조합으로 매일 입으시는 것도 아니고.

“네, 짐 옮기려고…….”

“무슨 짐.”

“아, 말씀 드렸잖아요, 자취하게 돼서 짐 옮긴다고.”

“……진짜 옮기는 거야.”

“네, 네…….”

선생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투로 퉁명스럽게 물어본다. 나는 얼떨떨해서 대답했다. 분명히 말씀 드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엄마한테 확답을 들었을 때 한 번, 확실하게 자취방 계약을 했을 때 한 번. 선생님은 그렇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투로 ‘그러냐’ 하고 대답하곤 했다. 헌데 지금 이 반응은…… 이상하잖아.

선생님은 굉장히 서운해하는 눈빛이다. 제자를 떠나보내는 선생님의 눈빛이 이런 느낌일까.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쉬고 한 마디 하신다.

“……네가 나가면 내 비중이 팍 줄잖아.”

“네?”

“아니, 아니야.”

선생님의 말을 잘 못 알아 들은 나는 다시 되물었지만 선생님은 썩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해주시지 않는다.

“너 없으면 심심하잖아. 응?”

“어, 어, 어…… 네, 그…….”

“……이런 귀여운 표정도 못 보고, 후훗♡”

“아, 아뇨! 좀 이건 너무…… 너무 적나라하잖아요!!”

“왜, 이런 거 싫어? 좋아하지 않아?”

“……안 좋아해요!”

“지금 2초 정도 망설였는데. 후훗, 솔직하지 않네.”

선생님은 갑자기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몸을 살짝 숙이며 느긋하게 말씀하신다. 선생님 저 목 늘어난 티셔츠는 묘하게 옷이 작으면서 또 목 쪽이 늘어나서 가슴 쪽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게다가 이렇게 살짝 몸까지 숙이시면……!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나는 일순 멈칫하고 시선을 땔 수가 없게 됐다. 선생님은 내 반응이 귀여운지 오른손을 들어 내 볼을 꼬집으며 말한다. 아, 또 당했네. 늘 당하지만 어째 계속 당하는 이 농락. 나는 선생님의 손길을 뿌리치며 세 발자국 뒤로 갔다.

보고 있던 여자애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뭘 모르는 리유나, 같은 기숙사라 많이 봐 온 성빈이는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다. 희세도 이러는 선생님을 꽤 봤지만 그래도 조금 부끄러운지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본래 섹드립의 대가인 미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농염한 선생님의 자세를 관찰하고 있다. 참고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러기엔 미래 몸매가…… 아니다.

“뭐, 뭐하는 거에요! 서, 선생님이!”

“어멋. 넌 처음 보는 앤데. 이번에 새로 꼬꼬마의 마수가 뻗힌 애야? 능력도 좋네.”

“아니에요! 그냥 도와준다고 온 거에요!”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정희. 정희, 미래 섹드립에 대한 과한 반응도 그렇고, 이런 쪽으론 면역이 약한 것 같다.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귀엽다는 듯 나를 보며 말한다. 나는 또 기분이 엉망이 돼 소리쳤다. 여하튼, 선생님은 못 당한다니까.


“구질구질하게 남자새끼가 저게 뭐야. 그냥 내 차에 실어서 옮기면 되잖아.”

“어…… 그래도 되요?”

“너, 선생님하고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난 그래도 꼬꼬마한테 정 많이 줬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그렇구나. 역시, 암만 해봤자 결국에 너희는 3년 땡 하면 졸업하니까…… 아─ 헛수고야, 헛수고.”

“아뇨, 그게 아니라! 전 선생님한테 죄송하니까……!”

선생님의 뜻밖의 제안에 나는 살짝 죄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가장 최선이긴 하지. 박스 몇 개에 짐 싸서, 트렁크에 실어서 옮기면 그만이니까. 힘들 것도 없고, 가장 깔끔하고. 안 그래도 내가 앞에서 주구장창 말한 게 차로 옮기는 거라고 했잖아. 하지만 죄송스러워서, 너무 선생님한테 부탁하는 게 많으니까 잠자코 있었던 건데.

선생님은 실망이라는 표정으로 길게 말씀하신다. 종국에는 나를 쓰레기로 만드신다. 진심이 담기신 건지, 숫제 장난인 건지. 결국 내 쪽에서 벌벌 떨며 빌어야 했다. 선생님은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 피식 웃으며 ‘됐어, 짐이나 싸자.’ 하고 내 방 문을 여신다. 역시, 장난이시잖아. 한숨을 푹 쉬고 방으로 들어간다. 정희는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너 고생 많이 하면서 살았구나.’ 하고 말한다. 그래, 그렇게 알아주기라도 하면 고마워.

짐이라고 해봐야, 옷가지 몇 개와 책, 세면도구나 잡다한 거 몇 개 정도.

“침대도 옮겨.”

“네?! 그래도 되요?”

“너 기억 안 나? 이 침대, 내가 주워온 거잖아. 어차피 주인 없는 거니까, 네 자취방에서 써. 자취방에 침대 없지?”

“네, 네…… 진짜 고맙습니다, 이렇게 챙겨주셔서…….”

“흥, 뭐 이런 거 가지고. 얼른 얼른 옮겨. 어이, 거기 키 큰 애. 꼬꼬마랑 같이 옮겨.”

“예, 옛!”

선생님은 무심한 듯 시크한 느낌으로 말씀하신다. 나는 조금은 진심으로 감동해서 말했다. 선생님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더니 멀뚱하게 서 있는 정희에게 말한다. 정희는 깜짝 놀라며 고참이 불러서 얼른 달려오는 이등병처럼 빠르게 다가와 침대를 든다. 아무래도 이런 무거운 걸 들만한 애가 정희밖에 없으니까. 같이 낑낑대며 들고 기숙사 앞 선생님 차까지 옮겼다.

“어머─ 이게 뭘까나.”

“으, 으아아아아! 자, 잠깐만요!”

“참 애가 고전적이네. 이런 거 아직도 이렇게 숨겨 보는구나.”

“아아아아!! 서, 선생님 제발!!”

정희와 함께 침대를 옮겨 놓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왠지 모르게 선생님을 중심으로 애들이 모두 뭉쳐있다. 거기다 다들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내가 들어오니 여자애들은 힐끔 나를 보더니 다들 시선을 피한다. 선생님은 여유 있는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한다. 영문을 모르고 선생님을 쳐다보다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저, 저건 내 맥…… 으아아! 왜 이런 최악의 타이밍에 저런 게 발견되는지! 아니 그보다 나도 저 잡지의 존재는 새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고!

─그러니까 몇 주 전, 오래간만에 고향에 갔을 때. 친구들하고 축구하고, 닭도 시켜 먹고, 재미있는 주말을 보내고 돌아가려는 때. 친구 녀석이 ‘뭐, 너한텐 필요 없겠지만 이거 봐라.’ 하고 이 잡지를 쥐어 줬다. 헛…… 남성 잡지……! 친구는 그런 말을 덧붙였다. ‘너는 하루하루가 여고생들이랑 함께하니까 이런 건 별 필요성을 못 느끼겠지만, 가끔은 성인 여성이 당길 수도 있잖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서 한 번 봐봐. 내 성의다.’ 하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 ‘뭐 이런 걸 다…….’ 하고 그 날에 다 보고 잊었다. 버리긴 아깝고, 그렇다고 한 번 본 걸 다시 보기도 그렇고, 해서 장롱 밑에 넣어놨다. 침대 밑은 너무 들키기 쉬우니까. 내가 넣어놓곤 새까맣게 그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

나는 잔뜩 부끄러워져서 얼른 돌진해 잡지를 되찾으려 했지만 선생님은 잡지를 높게 들고 잔뜩 놀리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가 선생님보다 키가 크지만, 선생님도 여자 치곤 그리 작지 않은 키인데다 팔을 쭉 높이 드셨고, 거기에 내가 필사의 심정으로 잡지를 잡으려고 해도 그럼 선생님 몸에 닿고, 가슴 쪽에 닿아버리면 안 되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여자친구를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남자들의 10계명.’ 어멋, 네가 보기엔 좀 이르지 않나, 아하하. 요즘 고등학생들은 참 빠르다니까. 나 때는 이런 거 상상도 못 했는데.”

“아아아악! 그런 거 안 봤어요, 그런 건! 전 그냥! 넘겼다구요! 얼른 돌려주세요!!!”

“어허! 지금 누가 누구한테 큰 소리를…… 이런 잡지 가지고 있는 게 잘한 거에요, 잘못한 거에요?”

“……잘못했습니다. 제발 돌려주세요…… 창피해 죽을 것 같아요…….”

“아하하하. 잘했어요, 하지만 돌려주진 않아요. 압수에요, 압수.”

“……으으으.”

선생님은 잡지의 한 구절을 읽으신다. 순식간에 야릇해지는 분위기. 선생님만 멀쩡하고, 나머지 모든 여자애들과 나까지 엄청 창피해졌다. 공기까지 끈적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가슴이 닿던 말던 발버둥치며 뺏으려 했지만 선생님은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말씀하신다. 나는 어찌 하지 못하고 결국 풀이 죽은 표정으로 사죄했다. 하지만 끝까지 나를 농락하시는 선생님. 방을 나서며 말씀하신다. 자기 방에 잡지를 가져다 놓으시려는 모양이지. 선생님이 나가고 방 안의 분위기는 정말 환상. 미래하고 어색할 때의 몇 제곱배는 되는 것 같다. 다들 나하고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심지어 리유조차도! 투명한 피부가 빨갛게 돼 힐끔 나를 보다 눈이 마주치자 홱 시선을 돌린다. 으아아! 순수한 리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선생님은! 으아아앙! 나 돌아갈래!!


“읏챠! 다 됐네요!”

“하아. 생각보다 간단한데. 좀 힘들기도 하고.”

“네, 정말 감사드려요.”

침대와 여러 짐들 덕분에 선생님 차로도 두 번을 왔다갔다 했다. 도착해서도 짐을 내리고 옮기고 하는데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우리끼리 짐 싸서 리어카로 질질 끌고 왔으면 저녁이 돼서도 못 했을 것 같다. 여러모로 선생님 덕을 많이 보는 것 같다. 처음 기숙사에 자리를 잡을 때도 그렇고, 이제 기숙사를 떠나게 될 때에도 그렇고. ……아까 전에 너무 큰 충격과 절망을 안겨주신 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짐 옮기면서 애들의 어색한 시선과 반응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 안도가 된다.

“밥! 이제 밥 먹자! 사준다고 했잖아, 변태 씨!”

“나도 배고파아~ 맛있는 거 먹자!”

“응, 나도 실컷 얻어먹고 싶어!”

“아아, 그래야지.”

짐을 대충 때려 넣어놓고, 자세한 정리는 내가 다 한다고 하고,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특히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쿨하게 웃고 만다. 정희가 팔을 크게 하늘로 뻗으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오후가 한참 넘어간 시간이니 배고플만도 하다. 사실 나도 배고프다. 리유도, 성빈이까지 적극적으로 말한다. 사실, 이 많은 인원 밥을 사 주면 한동안 빈곤에 쪼들릴 작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뭐, 꼭 짐 나르는 걸 도와줘서 뿐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평소에 많이 고마운 게 있는 애들이니까. 소중한 친구들이니까, 언젠가 한 번 이렇게 모여 밥을 사 주고 싶었다. 애들 맛있는 거 먹고, 내가 좀 아껴 쓰면 되지.

“차 타. 선생님이 사 줄게.”

“엣……?”

“선생님이요?”

선생님은 계단을 내려가며 시원한 태도로 말씀하신다. 나는 물론 다른 애들까지 깜짝 놀라 선생님을 바라본다.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말씀하신다.

“그 동안 놀려먹은 거, 아까도 지독하게 놀린 거. 고마워서 사 주는거야. 그리고, 네가 돈이 어디 있어, 학생이. 꼴에 남자새끼라고 허세부리지 말고, 선생님이 사 주는 거 얌전히 얻어 먹어요.”

“……아뇨, 허세가 아니라! 저도 애들한테 고마워서 그러는 건데!”

“튕기는 거 한 번이면 족해. 그냥 얻어 먹어라?”

“……넵.”

선생님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에 잠자코 대답했다. 좀 창피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선생님, 나 잔뜩 놀려먹고 그러지만 그래도 가장 아껴주고 챙겨주시는 분인데. 어찌 보면 담임 선생님보다 더 많이 챙겨주시는 것 같다. 기숙사 사감이라는 명분으론 훨씬 넘을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애들과 같이 계단을 내려와 선생님 차에 탔다.

“아! 아! 좁아!”

“좀만 참아, 금방 가니까.”

“그보다 이렇게 타면 불법 아니에요~?”

“뭐, 꼬꼬마만 좋겠네.”

“아, 어디 만져!? 보지마!”

“안 봤어, 안 만졌어! 좁은데 어떡하라고!”

“벼, 변태야!”

분명 승용차의 정원은 4명이다. 하지만 사람이 6명이니까. 어쩔 수 없이 뒷좌석에 5명이 끼워 탔다. 굉장히 불합리하게 덩치가 가장 작은 리유가 앞 조수석에 타고, 나머지 애들이 모두 뒤에 타니까 죽을 것 같다. 묘하게 양 옆 희세와 정희의 몸에 밀착돼 이상한 기분이지만 그것보단 희세와 정희의 구타에 식당에 도착하기 전에 죽을 것 같다. 분명 닿긴 했지만, 그건 내 고의가 아니잖아! 오늘 여러모로 고생하네, 죽겠다 죽겠어.


작가의말

하라는 과제는 안 하고 글 쓰네요... 하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9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5.27 23:33
    No. 1

    과제할때 하는 딴 짓이 가장 재밌는 법이죠...하...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27 23:56
    No. 2

    정작 소설쓰라고 시간 주면 안 쓰는... 하, 나란 인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사카나상
    작성일
    14.05.27 23:35
    No. 3

    큿 재밌네요 좀더 야한요소가 있어도되는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27 23:56
    No. 4

    큿 더 야할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05.28 00:04
    No. 5

    뭔데 어디가 닿였고 보였는데?
    아주 손을 꼭 잡아줘...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28 00:34
    No. 6

    어멋... 그러면 범죄랍니다! 본인의 동의(?)가 있다면 괜찮겠지만... 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05.28 08:21
    No. 7

    아뇨 아뇨
    이상한데 닿지않게 니들 손으로
    내손을 잡고 있어 달라는 얘기죠
    웅도는 순수하니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28 09:08
    No. 8

    ...뭔가 제가 더 음란한 해석을 한 것 같아 부끄럽네요. 아니, 그보다 손 잡는 건 썸의 시작이라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코드명000
    작성일
    14.05.28 09:15
    No. 9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28 11:58
    No. 10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5.28 17:53
    No. 11

    대체 소설이나 만화마다 나오는 저 잡지라는 건 어디서 구하는 건가요? 일본에서야 편의점에서도 팔지만, 대체 요즘 우리나라에서 저런 걸 언제 구하는 건지... USB라면 모를까...(더 하드해 질 지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28 18:34
    No. 12

    간단합니다. 편의점이나 서점이요!! 일본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그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코드명000
    작성일
    14.05.28 19:10
    No. 13

    외국에서야 나이차이같은것은 예전부터 문제조차 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도 전이라면 모를까? 요즘같은 시대에 12,13살 차이는 약간 특이한 경우일뿐이지 그정도 나이차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죠 오히려 능력있다고 부러워할테죠(남녀양쪽모두 말이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28 21:24
    No. 14

    아뇨, 뭐 웅도랑 선생님이랑 딱 12살 차이니까 아주 좋긴(?) 한데... 하핳, 그래도, 그래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코드명000
    작성일
    14.05.29 18:46
    No. 15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29 22:28
    No. 16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99 코드명000
    작성일
    14.05.30 10:15
    No. 17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5.30 20:20
    No. 18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5 13:43
    No. 19

    맥심은....한국맥심은 아닙니다....아니 뭐 그렇다구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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