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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프로틴

회귀한 독마는 x쟁이가 됨.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초코프로틴
작품등록일 :
2022.05.14 12:42
최근연재일 :
2022.06.27 05:4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4,087
추천수 :
117
글자수 :
96,150

작성
22.05.15 12:01
조회
281
추천
13
글자
11쪽

#03 내 안에 무한한 신앙심이 솟구쳐 올랐다.

DUMMY

#03


‘이건 내 예상과는 거리가 먼데?’


빠르게 변하는 주변 풍경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 멀리 위로 절벽의 끝자락이 보였다.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였다.


그러니까 난 지금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싶어서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천마의 검에 심장이 부서진 순간, 막힌 둑이 터져나가듯 안에서 어마어마한 혼령들이 터져 나오더니 천마와 나를 순식간에 멀리 날려 보냈다.


그 때문에 나는 절벽 너머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역시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저걸 보면 제대로 망가지긴 한 것 같구나.’


절벽 위로 한없이 올라가는 혼령들의 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아마 저건 천마가 일으키는 혼령들이 아닌, 신조의 심장에 속박되어 있던 영혼들일 것이다. 갇혀있던 혼령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거면 본래 가야 할 곳에 가는 그런 것일 거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독을 다루는 것뿐. 영혼이라던지 그런 쪽은 아는 게 없으니 어차피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러니까.....


“너희도 따라 올라가면 안 되냐? 왜 내 몸에 들러붙은 거냐 징그러운 것들아?”


나는 떨어지는 와중에 내 몸에 달라붙은 혼백의 무리에게 투덜거렸다. 신조의 심장이 부서지자 무수히 많은 혼령이 터져 나왔는데 그 혼령들이 덕지덕지 내 몸에 달라붙은 것이다.


‘아니, 딴 놈들은 잘만 올라가는데 이것들은 왜 내 몸에 들러붙은 거냐?’


몸에 원혼들이 들러붙자 시커먼 기운이 몸을 잠식하듯 스멀스멀 일렁이고 있었다. 귓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귀곡성들이 맴돌기 시작했고 눈앞은 흐려졌다가 멀쩡해졌다가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혼령들이 얼마나 달라붙은 건지 모르겠지만 귓가가 울리고 머릿속도 상당히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문득 혼령을 다루는 천마가 왜 그리 제정신이 아닌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라이, 어차피 이대로 뒤지면 결국 다 똑같은데 이것들은 뭐 좋다고 달라붙은 거야?”


투덜거려 보았지만, 혼령들이 답을 해줄 리가 없었다. 그저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슬프고 괴로운 느낌의 웅얼거림뿐.


‘됐다. 어차피 이대로 뒤지면 결국엔 다 올라가는 거야.’


안 올라가려고 버티면 내가 머리채 끌고 올라갈 거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원혼들의 울음을 들으며 나는 떨어지는 와중에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결국 그 심장의 용도는 무엇인지 알 길은 없어졌군.’


무엇 때문에 영혼을 저리 집대성시켜서 신조의 심장에 응축시킨 것일까? 아마 마교쪽 인물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좋은 일에 쓰려는 건 아니었겠지. 천마가 저리도 다급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아마 마교측에서도 어떤 중대한 계획에 쓰려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내가 마교의 원대한 계획 중 하나를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결국은 절벽에 떨어져서 대가리 깨져 죽게 생겼는데. 그래도 가는 길 외롭지 말라고 시커먼 원혼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거 보면 요단강 못 찾아서 구천을 헤맬 일은 없을 듯싶었다.


‘살아있을 땐 홀로 살아왔는데 그래도 죽을 땐 혼자가 아니라니. 이외로 기분이 좋구나.’


몸에 들러붙은 원혼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니.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아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불타고 가족을 잃었다. 알던 사람들은 차디찬 주검으로 변하였고 폐허로 변한 마을 한복판에 살아 숨 쉬는 것은 나 하나뿐.


폐로 들어오는 메케한 연기와 코에서 느껴지는 시체의 비릿한 냄새가 너무나 싫었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었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그게 너무나 분하고 분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독에 빠져 살았다.


강해질 방법을 알지 못해 비겁하게 독을 사용해 싸우는 방법만을 익혔다.


그러다 보니 몸에 독기가 가득해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나 자신도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평생을 독마로써 살아왔다.


‘옘병, 이 상황에서 넋두리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혹여나 만약 다음 생을 살 기회를 얻는다면.


조금은 다르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머리에 무언가 느껴졌다. 그것이 바위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귓가에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멎었다.


고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 * *


꿈을 꾸었다.


눈앞에서 집이 타오르고 있었다. 귓가에선 비명이 오고 가고 코끝에선 피 냄새와 함께 타오르는 메케한 잿가루가 밀려 들어왔다.


그 익숙한 냄새를 맡자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기억이다. 옛날에 내가 겪었던 과거이고, 평생을 괴롭힌 악몽이며, 죽기 직전에 보는 주마등일 것이다.


잿가루밖에 남지 않는 집터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과거의 내가 보였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산속을 오가며 독초를 캐내는 내 모습이 보였다.


독초를 씹어먹고, 중독되어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이, 직접 만든 독분을 이용해 싸워나가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샌가 나의 눈빛은 광인의 그것으로 물들어 있었고 독액이나 독분을 터트리지 않아도 몸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어느 날 모든 것을 잃고 서서히 미쳐가는 사람. 그것이 유선하라는 사람이고 독마의 인생이며, 곧 나라는 사람이었다.


하염없이 비참하게 산 사내의 말로였다.


‘아아, 젠장할.’


주마등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절벽에서 떨어질 때만 해도 아주 보람찬 삶을 보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과거를 되뇌이고 보니 인생 정말 제대로 못 살았다.


‘내가 미리 강해져 있더라면...’


마을도 불타지 않았겠지? 그러면 나도 나름 정상적으로 살았을테고, 그렇게 살다가 이쁜 처자 만나서 결혼이라는 것도 해보고... 젠장, 생각해보니 이때까지 살면서 연애도 못했다는 끔찍한사실마저 자각하고 말았다.


자꾸만 삶에 미련이 생긴다.


‘원시천존이시여.....’


자꾸만 생기는 미련에 나도 모르게 원시천존의 이름을 되뇌였다. 사람이 위급하면 신을 찾는다고 하던데 그게 마냥 거짓말은 아닌 듯 하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속엔 신앙심이 가득 차올랐다.


그래봤자...


사람이 살아날 리가 없지만....




의식이 끊겼다.


* * *


나는 어느샌가 두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구태여 눈을 뜨지는 않았다. 왠지 눈을 뜨면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확정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지, 솔직히 죽는 건 확정이지.’


하긴 한쪽 눈이 뚫리고 배에 구멍도 뚫리고 아무튼 치명상이라고 불릴법한 상처는 죄다 입었다. 게다가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고 대가리부터 지면에 부딪혔는데 그러고도 살면 그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원시천존에 대한 무례지. 암.


‘시벌 무능한 천존새끼.’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었는데 결국엔 죽은 모양이다.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역시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지옥일까 천국일까?’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있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내가 있을법한 곳은 지옥일 것이다. 아무렴, 비록 내가 죽인것들이 인면수심의 악한들이라고는 하나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내가 천국에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죽고 난 후에도 편한 날은 없겠구나.’


나는 천국에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미련을 버리고 살포시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누렇게 물든 천장의 벽지가 보였다.


“...이것이 지옥의 풍경?”


너무나 가정적인 지옥의 모습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내 눈?’


천마에게 뚫렸던 두 눈이 멀쩡히 움직이고 보인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는 다급히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매만졌다. 천마의 손가락에 꿰뚫렸던 한쪽 눈에 멀쩡한 안구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나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내 몸에 걸쳐져 있던 이불이 밀려 내려가자 나는 내가 이부자리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방을 둘러보았다.


방 안 여기저기엔 말린 약초들이 가득했다. 어쩐지 코에서 약초 내음이 가득 풍겨온다 했더니 다 약초 때문이었다.


익숙한 가구들이 보이고 그 위에 놓인 면경이 보인다. 나는 서둘러 면경을 가져와 얼굴을 비추었다.


“...맙소사.”


거울 속엔 두 눈 멀쩡한 내가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알던 것과 조금 달랐다.


두 눈에 독기가 가득 서리고 온몸에 독향을 뿜어내며 초췌하기 짝이 없던 독마 시절의 내 모습은 없었다.


대신 약초꾼이자 의원 도우미로써 살던 유선하 시절의 내가 있었다.


나는 다시 방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방 구조, 늘 풍겨오던 약초의 냄새. 익숙한 가구들을 보자 나는 이곳이 어딘지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이다.’


오래전 불타 사라져버린 내 집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다시금 거울을 보았다. 독마 시절의 내가 아닌, 의원 도우미였던 유선하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진다. 나이도 젊어서 그런지 앳된 느낌마저 들었다.


‘정말 내가 완전히 돌아버린 게 아니라면...’


여기까지 파악하자 나는 내가 어떠한 상황에 직면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로 믿기 힘든 일이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자각하고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멀쩡한 팔다리가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준다. 양쪽 눈도 멀쩡히 굴러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쳐서 보는 환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감촉이었다.


무엇보다 무리하게 익힌 독공으로 인해 늘 시달리던 독기의 찌릿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쯤 확인하면 더 이상 의심할 필요도 없으리라. 무슨 원리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하게 과거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렇다면 우선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차분히 숨을 깊게 들이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누런 천장이 보였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천장 너머, 하늘을 향한다는 것이었다.


“휴우.”


이윽고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나는 천천히 숨을 길게 내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원시천존이시여.”


평생 따르겠나이다.


내 안에 무한한 신앙심이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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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시험 통과야 22.06.27 125 0 11쪽
20 #19 거대한 독사가 똬리를 튼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22.06.25 9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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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문지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22.06.12 99 0 11쪽
16 #15 하류현 최강의 똥싸개를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22.06.09 127 0 10쪽
15 #14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22.06.05 141 2 11쪽
14 #13 제갈군사이자 사마의였다. 22.06.01 133 2 10쪽
13 #12 이 참에 무릎 못 피게 정강이 다 분질러줘? 22.05.30 155 7 11쪽
12 #11 회귀한 독마는 똥싸개가 되었다. 22.05.27 181 8 9쪽
11 #10 x독도 독이다 +1 22.05.24 182 3 10쪽
10 #09 인간으로서 완전히 죽어버렸다. 22.05.22 196 4 10쪽
9 #08 의원이 만만하나? 22.05.21 201 3 10쪽
8 #07 돼지가 건방지게 이족보행 하고 있었다. +2 22.05.20 212 5 11쪽
7 #06 단전이 대문처럼 활짝 열려있었다. 22.05.19 199 5 10쪽
6 #05 아니, 나도 잡힌 것 같아. 22.05.17 229 5 10쪽
5 #04 그 순간 하류현이 불타버렸다. 22.05.17 254 6 11쪽
» #03 내 안에 무한한 신앙심이 솟구쳐 올랐다. +2 22.05.15 282 13 11쪽
3 #02 이게 아닌데? 22.05.14 313 12 10쪽
2 #01 기본 예의도 모르는 놈! 22.05.14 349 22 9쪽
1 #서장 +2 22.05.14 399 2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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