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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씨세가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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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a3194
그림/삽화
월하정인
작품등록일 :
2024.03.21 07:50
최근연재일 :
2024.05.23 10:00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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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95
추천수 :
110
글자수 :
461,275

작성
24.03.2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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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화 황제의 아들(4)

DUMMY

멀리서 궁녀들의 비명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사들의 광기에 찬 웃음소리도 들렸다,

황궁은 아수라의 지옥 같았다.


오늘 우리가 모두 죽겠구나.


안락궁의 해귀비는 밖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와 울부짖는 소리에 눈을 감았다.

죽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내관과 궁녀들은 사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해귀비는 황제인 은제의 냉대를 받았다.

선황제가 죽자 냉궁인 안락궁으로 쫓겨나 쓸쓸하게 살고 있었다.

뜰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기와도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반란군이 안락궁의 사람들을 살려둘 가능성이 없었다.


반란군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은제는 반란군의 가족들을 닥치는대로 죽였다.

부인과 아이들까지 죽였다.

반란군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군사들에게 능욕이나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해귀비는 비참했다.

안락궁은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반란군이 후궁들과 궁녀들까지 닥치는대로 죽이고 있었다.

“귀비마마!”

궁녀가 뛰어 들어와 엎드렸다.

“어떻게 되었느냐?”

해귀비가 궁녀에게 물었다.

궁녀는 완아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불과 14세로 궁녀 수습 중에 있던 어린 궁녀다.


양심전의 궁녀로 선황제가 죽자 안락궁으로 보내졌다.

영민하여 해귀비도 총애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반란군에게 살해되셨습니다.”

“아아······.”

해귀비는 천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은제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황궁이 반란군에게 점령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안락궁이 냉궁이라고 해도 반란군에게 도륙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듣거라. 반란군이 들어오기 전에 숨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숨어라.”

해귀비가 내관과 궁녀들에게 지시했다.

내관과 궁녀들은 우물쭈물했다.

“반란군이 들어오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마마······.”

내관과 궁녀들이 울상을 지었다.

“속히 살길을 찾도록 하라.”

해귀비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관과 궁녀들이 그제야 눈치를 살피면서 물러갔다.


해귀비의 시선이 완아에게 향했다. 완아는 물러가지 않고 있었다.

‘이 아이는 왜 물러가지 않지?’

완아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칼을 가져와라.”

해귀비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낮게 말했다.

그녀는 이미 결심을 했다.


반란군이 쳐들어오면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진하기로.


미쳐 날뛰는 군사들에게 치욕을 당하기는 싫었다.

“마마.”

완아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반란군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황자의 목숨을 끊고 나도 자진할 것이다.”

“마마,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후일을 도모해? 내가 달아날 곳이 어디 있느냐?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어서 칼을 가져와라.”

해귀비가 완아에게 재촉했다.

“마마.”

완아는 선뜻 명을 따르지 않았다.

“너는 내가 반란군에게 치욕을 당하는 꼴을 보고 싶으냐?”

해귀비가 절규하듯이 외쳤다.

완아가 울면서 마지못해 벽에 걸린 검을 가지고 왔다.

한 자 남짓 되는 묵검(墨劍)이다.


해귀비가 묵검을 검집에서 뽑았다.

“선제께서 이 검을 하사하신 것은 이런 날을 예측하신 것이다.”

해귀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황자, 이제 어쩔 수 없구나. 너는 죽임을 당하고 나는 능욕을 당할 테니 우리 모자가 같이 죽자.”

해귀비가 황자를 응시했다.


황자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상황이 엄중한데 입을 다물고 있다.

해귀비가 황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고 하는데 입을 열지 않았다.

신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총명한 소년인데.

“마마, 소인이 황자님을 구하겠습니다.”

그때 완아가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해귀비가 멈칫했다.

황자를 살린다고? 이 난국에?

안락궁밖에는 이리보다 더 사나운 반란군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해귀비의 눈이 짙은 의심을 뿜었다.

“소인이 황자님을 모시고 황궁을 탈출하겠습니다.”

“반란군이 황궁을 에워싸고 있는데 어떻게 탈출한다는 말이냐?”

“북쪽 담장에 수구문(守口門)이 하나 있습니다. 잡초가 우거져 아무도 출입하지 않습니다. 반란군도 이곳은 모를 것입니다.”

완아가 빠르게 말했다. 해귀비가 완아를 쏘아보았다.


완아는 결연해 보였다.

어린 아이가 당돌하다.

이제 겨우 열네 살짜리가 아닌가.

어쩌면 이 아이가 황자를 살릴 수도 있겠구나.

해귀비는 언뜻 그렇게 생각했다.

“네가 정녕 황자를 살릴 수 있겠느냐?”

“예. 황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소인이 목숨을 걸고 반드시 황자님을 구하겠습니다.”

“어른들은 못 빠져 나가느냐?”

늙은 환관 심온이 물었다. 그는 반란군이 언제 안락궁으로 들이닥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는 해귀비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고 떠나지 않고 있었다.

“구멍이 작아서 아이들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완아가 토막을 치듯이 잘라 말했다.

“데리고 가라. 전 한림학사 해준에게 데리고 가라.”

해귀비가 망설이다가 명을 내렸다.

“이 검을 가지고 가라.”

해귀비가 묵검을 주었다.


*


완아는 황자를 보았다.

황자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자신을 살리라고 완아에게 말했다.

목숨을 살리면 훗날 황후로 삼겠다고.

훗날의 일은 알지 못하지만 황궁을 탈출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설마···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면 귀신이나 다를 바 없다.

해귀비는 그들을 보내기 전에 황자에게 무엇인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

당부의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언을 남기는 것 같기도 했다.

황자의 두 눈에서 비로소 눈물이 흘러내렸다.


황자가 총명하기는 했다.

열 살이었으나 글을 읽고 시를 지었다.

황제가 될 몸이었으나 너무 어렸기 때문에 황제가 되지 못했다.

은제는 황제가 된 뒤에 황자를 눈엣가시로 생각했다.

장군들이 황자를 내세워 황제 자리를 빼앗을까봐 의심했다.


*


완아는 황자를 데리고 빠르게 수구문을 향해 달렸다.

반란군이 안락궁까지 쳐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린다.

완아는 다급했다.

황자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뛰고 있었다.

“학, 학······.”

숨소리가 거칠었다.


이내 수구문에 이르렀다.

수로에서 더러운 냄새가 풍긴다. 평소라면 가까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구문 일대는 잡초가 무성했다.

잡초를 헤치고 수로를 내려다보았다.


밤이라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마마, 이제는 황자님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완아가 말했다.

“그냥 세옥이라고 불러라.”

황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이름은 유세옥이다. 어린 아이답지 않게 침착했다. 아이의 옷차림을 본 완아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황자는 여장을 하고 있다.

그것도 민간에 사는 가난한 소녀의 차림.

고귀한 황자가 떠돌이 거지소녀가 되었다.

“가요.”

완아가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그녀의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왔다. 수구문을 지나는 수로는 황궁에서 운하로 흘러가는 일종의 하수도다.

완아는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물은 더럽고 역겨운 냄새까지 풍겼다.


완아가 황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울어야 하는데 황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오히려 침착하기까지 하다.

상황이 너무나 엄중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황자가 완아의 손을 잡고 물로 들어왔다.

물은 황자의 가슴까지 찼다.

“조심하세요.”

“괜찮아.”

수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수구문은 황궁의 담장 아래쪽으로 잡초가 무성하고, 물에 쇠말뚝이 박혀 있었다.

수구문은 겨우 한 뼘 남짓 정도의 공간밖에 없다.

완아가 간신히 쇠창살을 빠져 나갔다.

어른들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구멍이다.

황자도 쇠창살을 빠져나왔다.


수로 양쪽은 갈대숲이 우거져 있었다.

완아는 황자와 함께 갈대숲으로 기어 올라갔다.

마침내 황궁을 빠져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에는 아직도 부족했다.

불타는 황궁에서 비명소리와 고성이 들렸다.

“달이 밝아서 다행이에요.”

완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황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북두칠성을 보고 방향을 찾으라고 그랬지?’


안락궁을 떠나올 때 귀비 해귀비가 어떻게 한림학사 해준의 집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완아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해준은 해귀비의 먼 친척이다.

완아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황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자는 말없이 불타는 황궁을 보고 있었다.

황자의 얼굴이 어두워보였다. 그러나 완아는 지옥같은 황궁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황자는 수구문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귀비마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완아는 황자를 따라 황궁을 보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황궁에 남은 사람들은 오늘밤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

“가요.”

완아가 황자에게 말했다.

황자가 황궁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절을 했다.

황자가 해귀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완아는 가슴이 뭉클했다.


‘속내를 알 수 없네.’


완아는 착잡한 눈으로 황자를 응시했다.

황자가 절을 마치고 일어나서 완아의 손을 잡았다.

황자의 손은 더럽다.

완아는 자신의 치맛자락으로 황자의 손을 닦았다.

너는 이제 내 남자야.

완아는 황자를 보면서 살포시 웃었다.


*


황궁이 있는 도성은 어수선했다. 여기저기서 말발굽소리가 들리고, 군사들의 고함소리가 드렸다.

한림학사 해준(解俊)은 말발굽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골목으로 숨었다.

말발굽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들렸다.

“젠장······.”

이충(李忠)이 옆에서 투덜거렸다.

반란이 일어날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으나 오늘일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황제라는 인간이 무도하니 반란이 일어나지.

게다가 환관 윤충 놈까지.

환관이 활개를 치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세운 한나라가 멸망한 것도 환관 십상시(十常侍) 때문이다.


찢어죽일 놈들.


해준은 환관 윤충에게 맹렬한 분노를 느꼈다.

그때 횃불을 든 군사들이 사납게 말을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해준은 이충과 함께 담벼락에 바짝 붙어섰다.

난군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살육을 일삼아 거리에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해준과 이충은 기루에서 이 골목까지 오는 동안 많은 살육 행위를 목격했다.

황제를 잘못 세워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때 관군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도망을 쳐왔다.

“암호!”

반란군 군사들이 관군들 앞으로 몰려왔다.

거리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관군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죽여라!”

우두머리의 명령에 반란군이 일제히 창과 칼을 휘둘렀다.


“아아악!”


관군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나뒹굴었다.

이충은 소름이 오싹 끼쳤다,

반란군이 관군을 마구 죽이고 있었다.

“저 놈들이 미친 거 아니야?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있네. 곽위가 저렇게 악랄한가?”

이충이 닥치는대로 살육을 저지르는 반란군을 쏘아보면서 칼을 움켜쥐었다.

이충은 무림인이다.


무영검(無影劍) 이충(李忠).


이씨세가(李氏世家)의 아들로 청년기수 중에서 손가락 꼽힐 정도로 무공이 뛰어나고 의협심이 남달라 촉망받고 있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겠지.”

해준이 이충의 손을 잡았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반란군이 말을 타고 다른 곳으로 몰려갔다.

거리는 관군의 시체만 나뒹굴고 있었다.

“시영이나 조광윤이 용납하는 건가?”

이충은 시영과 조광윤이 인재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들이 살육을 막지 않아 실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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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만두가게 서생(2) 24.03.26 1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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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황후가 되고 싶은 소녀(2) +1 24.03.25 15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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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거지황자(6) 24.03.24 15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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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거지황자(4) 24.03.24 1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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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거지황자(2) 24.03.23 14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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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황제의 아들(6) 24.03.22 179 2 12쪽
7 7화 황제의 아들(5) +1 24.03.22 186 1 12쪽
» 6화 황제의 아들(4) +1 24.03.22 19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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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황제의 아들(2) +1 24.03.21 25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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