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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씨세가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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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a3194
그림/삽화
월하정인
작품등록일 :
2024.03.21 07:50
최근연재일 :
2024.06.06 10:00
연재수 :
9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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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3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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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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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0화 거지황자(1)

DUMMY

명주현의 번화가에 있는 난전이었다. 황자 세옥이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거적때기에 앉아서 동냥을 하고 있었다.

완아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냐?

황자가 거지라니.

꿈이라면 개꿈일 것이고 현실이라면 벼락을 맞아 죽을 일이다.

완아는 화가 나서 침을 퇘퇘 뱉었다.


이충은 며칠에 한 번씩 둘러보기로 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세옥이 그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공연히 같이 몰려다니다가 반란군의 의심만 받는다는 것이다.

세옥은 천연덕스럽게 낡은 그릇을 앞에 놓고 앉아 있다.

옷은 일부러 찢어서 넝마를 만들고, 머리는 산발하여 귀신 형상을 하고 있었다.

거지 중에 상거지 꼬락서니.


황자가 저게 무슨 꼴이냐?


완아는 세옥에게 눈을 흘겼다.

아무리 살기 위해서라고 해도 자존심도 없다는 말인가.

황후로 삼아준다는 말에 혹하기는 했으나 너무 한심하다.


이게 뭐야?

황자의 자존심은 일찌감치 개한테 줘버렸냐?


완아는 세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자님,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예요?”

완아는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도성을 나온 지 며칠이 지나자 안심도 되고, 앞일도 걱정이 되었다.

“왜?”

“황자가 거지 노릇을 하는 게 말이 돼요?”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그야 그렇지만······.”

죽음의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제 군사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황후가 되기에는 애당초 글러먹었다.

“흐흐··· 황후가 못되어서 그러냐?”

완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귀신이 따로 없네. 세옥이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

“황자님.”

“황자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럼 뭐라고 불러요?”

“세옥이라고 불러라. 이충 아저씨의 성을 따서 이세옥······.”

원래 세옥의 이름은 유세옥이다. 성을 바꾸어 이세옥으로 살아갈 모양이다.

“황자님, 여기는 우리 둘밖에 없잖아요? 황자라고 불러도······.”

“흥. 저쪽 찻집을 보아라.”

세옥이 넌지시 말했다. 완아는 거리 한쪽에 있는 찻집을 보았다.


찻집의 탁자에 한 여자가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적의를 입고 검은 피풍(皮風, 망토)을 두르고 있다.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얼굴은 면사로 가리고 있다.

등에 검을 매고 있어서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언제 저 여자가 있는 걸 눈치 챈 거야?


완아는 가슴이 철렁했다.

“저 여자 말입니까?”

“그래. 오래 쳐다보지 마라.”

“예.”

완아는 찻집의 여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감시자가 있다고 생각하자 몸이 떨렸다.

찻집에서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때 두 명의 거지가 와서 옆에 털썩 앉았다.

완아와 세옥을 힐끗 쏘아보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한다.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술냄새가 풍겼다. 그들은 지팡이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30대와 40대의 거지들이었다.

“도성에서 열 살짜리 사내 아이 여러 명을 죽였다면서?”

“여러 명이 뭐야? 황자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을 마구 죽이고 있대.”

“사내아이로 태어난 것이 죄로군. 쯧쯧······.”

거지들이 옆에 앉아서 혀를 찼다.


완아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뒷덜미가 서늘해져 왔다.

세옥도 여자아이로 변장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을지 모른다.

“무서운 세상이야.”

40대 거지가 말했다.

“애들까지 죽이니 천벌을 받을 거야.”

30대 거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반란군 군사들은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세옥은 꾸벅꾸벅 조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황후가 되는 것은 물 건너갔네.

황후는커녕 목숨도 보전하기 힘들겠어.


완아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거지들은 빈 그릇을 앞에 놓고 동냥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거지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동냥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이러다가 오늘도 배를 곯겠어.”

거지들은 한 시진을 앉아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갔다.


완아는 배가 고파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만두 두 개 먹고 점심이 지나도록 굶었다.

완아도 세옥의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황궁 서고는 다행히 불에 타지 않았다.

부명화는 황궁서고의 서가(書架)를 샅샅이 살폈다.

서가에는 수많은 책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책이 없네.


부명화는 한 시간 남짓 서가를 살폈으나 실망했다. 그녀가 찾던 책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책을 찾는 거야?”

문앞에 서 인기척이 들리고 시영이 들어왔다.

부명화는 시영을 보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시영은 그녀의 남편이다.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였으나 책을 좋아하는 지장(智將)이다.


시영은 여전히 갑옷 차림이다.

시영은 곽위의 수양아들이 되었으니 이제 태자가 될 것이다. 운명의 바람이 그들을 향해 불어오고 있었다.

“해씨세가(解氏世家)의 책을 찾고 있어요.”

부명화는 시영을 향해 미소를 날렸다.

“무공비급이야?”

시영의 미소가 부드럽다. 아내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없다는 그런 미소다.

“전설에는 보장도(寶藏圖)로 알려져 있어요.”

“보장도?”

“보물지도요.”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네.”

시영이 건성으로 서가를 살피기 시작했다.

후한(後漢)이 건국된 지 불과 3년밖에 안 되어 멸망했기 때문에 황궁서고라고 해도 고서가 많지 않았다.


신투 모구팔이 황궁에 침입하다니.


그렇다면 해씨세가의 책은 보물 중에 보물일 것이다. 어쩌면 상고시대의 무림비급일 수도 있다.

해씨세가는 중원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북 일대에서는 세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신투(神偸)도 침입했었고······.”

“신투 모구팔?”

시영이 부명화의 허리를 살짝 안았다. 모구팔은 전설적인 도둑이다.

“해귀비에게 들었어요.”

시영은 다시 서가를 천천히 살폈다. 서가에 많은 책이 있지만 시영의 시선을 끌만한 책은 없었다.


문득 해귀비와 황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해귀비가 안락궁에서 사라진 것이다. 궁녀들은 모두 죽었는데 해귀비만 보이지 않고 있었다.

궁녀들을 추궁하자 황자는 어린 계집애와 함께 탈출했고, 해귀비는 끝까지 남아 있다가 사라진 것이다.

“해귀비가 황궁을 탈출했는데 알아?”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 같아요.”

“어떻게 귀비를 납치한 거지?”

시영이 부명화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반란군이 황궁을 공격하고 있는데 안락궁에 침입하는 것은 절대고수일 가능성이 많다.

“어떤 놈들이 해귀비를 납치했는지 조사 좀 해줘요.”

“책 때문에?”

“해귀비에게 목숨을 빚졌어요.”

부명화가 시영에게 안기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해귀비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없었다.

시영이 부명화를 더욱 바짝 껴안았다.


“음.”


부명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시영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얹혀지고, 몸이 더워져 왔다.


에그 나 죽겠다.


부명화는 나른한 감각에 몸을 떨면서 눈을 감았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


황자는 어머니 해귀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시름에 겨워 우울한 시선으로 수양버들이 늘어진 개울을 보고 있다.

아직 어리기 때문일까.

황자 세옥은 계집애처럼 얼굴이 곱다.

세옥은 자신의 출신을 감추기 위해 얼굴에 숯검정까지 묻히고 있다.

몸이 허약하여 더욱 계집애 같아 보인다.


입술도 예쁘네.


완아는 세옥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개울에도 빗방울이 스산하게 날리고 있다.

명주현 수락천에 있는 영제교 다리 밑이었다.

비가 와서 동냥도 못하고 다리 밑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세옥은 벽에 기대앉아 입을 다물고 있다.


이게 무슨 꼴이야?


완아는 황궁의 궁녀에서 다리 밑 거지 신세가 되어 쓸쓸했다.


비가 와서 몸이 떨렸다.

한기도 느껴지고 배도 고팠다. 세옥도 배가 고플 텐데 꾹 참고 있다.

‘부모님도 없고······.’

완아는 어릴 때 황궁에 들어왔다.

거리에서 구걸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늙은 궁녀가 데리고 왔다고 했다.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옛날에 구걸을 하던 일이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시 거지가 되었네.


완아는 비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쓸쓸했다.

“완아야.”

세옥이 불렀다.

“예?”

“춥지 않냐?”

“추워요.”

비 때문에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이리 들어와라.”

완아는 세옥이 덮고 있는 거적때기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만 나란히 내놓고 비가 오는 것을 내다보았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가 처량했다. 거지 노릇을 하고 돌아다닌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세옥은 명주를 떠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곽위가 한나라 왕조를 뒤엎고, 나라를 찬탈했다고 이야기했다.

한나라도 하동절도사 유진원이 세운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왕조가 몇 년 만에 바뀌어 세상이 어지러웠다.


세옥은 은밀하게 황궁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인 해귀비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완아야. 배고프지 않냐?”

“배고파요.”

“내 그럴 줄 알았다.”

세옥이 품속에서 한지에 싼 만두 두 개를 꺼냈다.

“이게 어디서 났어요?”

“네기 잠이 들었을 때 만두가게에서 얻어 왔지.”

세옥이 만두 하나를 건네주었다. 품속에서 있어서 만두가 따뜻했다.

“감사합니다.”

완아는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세옥도 천천히 만두를 먹었다.

“황자님, 우리는 이제 어떻게 돼요?”

“지금은 방법이 없다.”

“태원에 가지 않아요?”

“황제로 추대하겠다고 태원에서 데리고 오던 유빈도 죽지 않았느냐?”

반란군이 태원으로 가서 유빈을 데리고 올 때 암살자의 습격을 받아 살해되었다고 했다.

세옥은 유빈이 죽어 우울해 있었다.


도성 인근에 있는 열 살짜리 사내아이들도 무수히 죽었다.

그들은 세옥을 대신해 죽은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곽위가 황제가 되면 여기를 떠날 거다.”

“에······.”

완아가 실망했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곽위가 황제가 되면 완아는 황후가 될 길이 없다.

“완아야.”

“네?”

“너는 꼭 황후가 되고 싶으냐?”

“황자님이 황후로 삼아주신다고 그랬잖아요?”“후후. 어떻게 하냐? 이제는 우리 두 사람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울 것 같구나.”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한 떼의 거지들이 몰려왔다.

“누구냐?”

“왜 남의 소굴에 기어들어 온 거야?”

험상궂게 생긴 거지들이 다짜고짜 거적때기를 거둬치우고 완아와 세옥에게 마구 발길질을 하고 주먹질을 했다.


이 거지새끼들이 감히?


세옥은 눈에서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어른 거지들에게 대항할 수없었다.

세옥과 완아는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냐?”

아줌마 거지가 개구리처럼 튀어 나온 눈알을 굴리면서 세옥을 쏘아보았다.

덩치가 산처럼 컸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완아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공손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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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용과 싸우다(2) 24.03.30 15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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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묵가의 제자(1) 24.03.27 1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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