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용 로누아
요정용.
요정과 비슷한 본신에 용들의 것과 유사한 날개를 지니고 있는 종족으로 꼬리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혹자는 해츨링이 성룡이 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면 요정용으로 다시 태어난단 얘기도 하고 또 혹자는 혼돈의 용이 요정으로 형상 변환하여 요정여왕과 사랑을 나눈 뒤에 탄생한 종족이란 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정설이 될 순 없었는데, 드래곤은 침묵을 지키고 있고 요정과 요정용은 어떤 이야기를 그리 길게 간직하고 기억할 만한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흥! 멸종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봐봐, 이렇게 내가 있잖아.”
풀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초미니 원피스에 가슴도 상당히 파인 옷을 입은 요정용이 허리에 양손을 척 올리고 얼마 있지도 않은 가슴을 들이밀며 앙칼지게 말했다.
그 모습이 웃겨 강성우가 피식 웃었다.
“뭐야? 너 지금 웃었어!? 날 무시하는 거야?”
화가 난 요정용이 요정가루를 뿌려대며 뭔가를 하려 할 때, 강성우가 호두 하나를 꺼내 눈앞에서 흔들었다.
“먹고 싶지?”
그 순간 요정용의 눈빛이 달라졌다.
“으······ 으응.”
호두는 요정용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정용의 완력으로는 호두 껍질을 까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에 더욱 집착이 강하다.
요정용을 만났을 때 호두만 잘 까줘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이 있을 정도.
멍한 눈빛으로 고분고분해진 요정용이 호두 주변을 빙빙 날면서 강성우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알았어.”
따각-
악력만으로 호두껍질을 깐 강성우가 손바닥 위에 쪼개진 조각을 올려놓으니, 요정용은 행복한 표정으로 손바닥에 앉아 양손으로 호두 알갱이를 잡고 먹기 시작했다.
“히히, 맛있다. 맛있어!”
원래 요정용은 개체수가 그리 많은 종족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숲속을 다니다보면 간혹 만날 수 있는 이들이었다.
14살~18살 정도의 소년소녀와 같은 성격을 지닌 그들은 적당히 건방지기도 하지만 태생적으로 선한 편이라 사람을 비롯한 다른 아인종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유도 없이 개체수가 줄기 시작하더니 끝내 멸종이 되고 말았는데, 지금 이렇게 강성우의 눈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때 받았던 그 칭호의 보상이 요정용이었을 줄이야.”
강성우가 혼자 중얼거렸지만, 호두를 음미하는데 정신이 팔린 요정용은 그것도 듣지 못하였다.
배가 부른지 호두 반쪽만 먹은 요정용이 손바닥을 박차고 떠올라 강성우와 눈을 마주했다.
“너, 착한 인간이구나! 좋아. 그냥 단순한 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떠나서 친구가 될 수도 있겠어! 친구가 됐으니 통성명을 하도록 하지. 내 이름은 로누아야. 너는?”
“나는 강성우야.”
“흐흠! 그래? 역시 이름이 다르구나, 혹시나 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부화를 기다리며 정령계에 있었는데, 거기서 이야기가 나오는 인간 이름이 있었어. 리온이던가? 막 엄청난 천재라고, 대단하다고 하면서. 근데 그 이름에서 풍기던 냄새와 네가 뭔가 비슷해서 혹시 같은 사람인가 했었지.”
설마 정령계에도 자신이 알려져 있을 줄은 알지 못했었다. 속으로 ‘나란 천재······.’하고 생각하며 강성우가 말했다.
“같은 사람 맞아. 난 환생한 거거든.”
그의 말에 로누아의 움직임이 멎었다. 잠시 그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큰 웃음을 터뜨렸다.
“깔깔깔깔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갓 태어난 어린 요정용이라고 놀리는 거야? 내가 어려도 정령계에서 들을 건 다 들었어! 리온은 9클래스 마스터로 엄청난 마법사인데다가 정령들도 반할 정도의 엄청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했었는데 넌······.”
그 뒷말은 듣고 싶지 않았었다.
“못 생겼잖아.”
사실 강성우는 전생이었던 리온 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외모에 딱히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그래도 막상 못 생겼단 말을 들으니 상처가 좀 된다. 어쨌든 로누아가 그렇게 말하니, 적잖은 충격을 받은 강성우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 잘 생겼으니 하루만 못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전생에 생각했었더니만 이젠······.’
물론 지금의 강성우도 그리 못 봐줄 외모는 아니다.
그저 보통 정도였던 건데, 크리에타의 영향인지 조금씩 전생의 리온처럼 잘 생겨지고 있는 상태였다.
“어. 내가 좀 말이 심했나? 미안미안. 그럼 기분 풀게 내가 특별 서비스를 해줄게!”
“서비스?”
“얍! 커져라아아아아아아!”
요정가루가 로누아의 전신을 뒤덮고 환한 빛이 생겨나더니, 곧 그녀가 키 164CM 정도의 늘씬한 여자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짜잔! 어때? 역시 인간도 자기와 크기가 비슷해야 미적인 충족감이 생기겠지? 헤헷. 인간 남자들한테 이걸 해주면 다들 좋아할 거라고 정령들도 말했었어!”
로누아가 커진 것을 보고 강성우는 더욱 놀랐다.
“그냥 요정용이 아니었구나. 왕족이었어?”
보통의 요정용은 지금 로누아처럼 커지지 못한다. 저렇게 거대화하여 본신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요정용의 왕족만 가능한 것.
강성우가 놀란 것이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제대로 보고 그런 것이라 생각한 로누아가 다시 한 번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흐흥! 혹시했더니 역시나야. 내 몸매와 미모에 정신을 못 차리는군!”
강성우가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몸만 커졌지 가슴은 그대로잖아. 어디가 등인지도 모르겠는데······.”
그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로누아가 발끈했다.
“뭐, 뭐야!? 어디가 등인지를 몰라? 그걸 왜 몰라! 그리고 내가 아직 어려서 그래! 조금만 더 커봐 그러면!”
그 순간 로누아가 다시 작아졌다.
“앗. 으으······ 아직 마력이 부족해서 거대화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는구나. 분하다.”
그녀의 말을 흘리며 강성우는 확인을 해봤다.
‘역시. 주종관계가 성립되어 있어. 흐음, 꽤나 대단한 칭호인 걸. 요정용 왕족과 패밀리어 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해주다니.’
요정용은 아무리 다른 종족과 친해져도 쉽게 패밀리어 계약을 맺지 않는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누가 남과 주종관계를 맺어 종이 되고 싶어 하겠는가?
어찌됐든, 요정용과 패밀리어 계약을 맺게 될 경우 마법사에겐 무궁무진한 힘을 주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마법 증폭이었다.
패밀리어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인의 마력에 동조하여 마법 출력을 높여준다.
이 외에도 유용한 능력은 수도 없이 많다. 특히나 그냥 요정용도 아닌 왕족임에야.
로누아를 만나고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접속시간이 채 3분도 남지 않았다.
강성우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난 이제 슬슬 다른 세계로 가봐야 돼. 넌 어떻게 할래?”
그러자 로누아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여기로 부화되기 전에 들어서 알아. 넌 이방인이란 거지? 뭐 어쨌든 잘 됐네. 나도 마침 졸렸거든. 부화시기가 일렀던 건가······ 아직 잠이 많이 필요한··· 가··· 보아아아아···.”
로누아는 정말 졸렸던 것인지 바로 강성우의 손바닥 위에 쓰러지듯 누워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
“······의외의 득템이군. 나쁘지 않아.”
로누아를 자신의 침대 베개 위에 올려주고, 강성우는 접속을 끊었다.
다시 접속했을 때.
데미트린을 구출할 것이다.
***
현실로 돌아와 학교로 간 강성우는 교문 위에 걸린 대자보를 볼 수 있었다.
보통 입학 시즌을 전후하여 어느 유명대학에 누가 붙었는지 등등이나 알려주던 그곳엔,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다.
-경축! 3학년 6반 박종식(571레벨) 플레이어 자격 획득!
- 작가의말
강성우와 로누아의 첫 대면에서, 로누아가 다소 지나친 표현들을 했던 것을 완화시키거나 삭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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