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홍야(紅夜) 님의 서재입니다.

무당파 막내사형이 요리를 너무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읽고쓰기
작품등록일 :
2023.05.11 22:08
최근연재일 :
2023.06.05 18:27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3,585
추천수 :
70
글자수 :
122,101

작성
23.05.27 03:40
조회
126
추천
3
글자
14쪽

북숭소림 남존무당(北崇少林 南尊武当)

DUMMY

나는 화산파 장문인을 후원의 다실(茶室,차를 마시는 방)로 이끌었다.

할 이야기가 길어 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을 물리고, 사방이 조용해지자 나는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제가 생각해보니 한 가지가 걸리더군요.”


“그게 무언가?”


“창고 안에 어떤 보물이 있느냐는 겁니다. 보물의 종류에 따라서 참가하는 가게들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말인가?”


“은원보나 보석, 송가장의 어음증서처럼 금전적인 보상을 준다고 하면 일반 요리점에서 출점을 할 것입니다.그런데 송가장의 창고에 무공과 관련이 된 것, 즉 비급이나 보검, 영약등이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각 문파의 수익원이 되는 가게들, 혹은 영향력 아래 있는 가게들이 지원을 받아 출점을 하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자네가 하는 일이 달라지는가? 나는 자네 실력을 높이 본다네”


“이해관계에 걸리게 됩니다. 저는 산해방의 이름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니까요. 계획이 틀어집니다.”


산해방은 무당파의 비호를 받고 있는 곳이다.

만약 무당파가 송가장의 창고에서 원하는 게 있다면 산해방을 통해서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화산파와 협력 관계에 있는 나는 산해방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송가장이 가지고 있는 것. 무당파의 비급입니까?”


내 생각을 밝히자 화산의 장문인은 놀란 눈으로 순순히 인정했다.


“후··· 맞다네. 그 안에 ‘자하신공(紫霞神功)’이 있네.”


자하신공이 무엇인가. 화산의 장문인, 그리고 장문제자로 낙점된 이들만 비밀리에 익힐 수 있는 비기가 아니던가.


“그게 왜 송가장에 있는 겁니까?”


“그에 대해서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네.”


명의 초대 황제. 태조 홍무제(洪武帝)는 반란으로 황제에 오른 탓에 늘 무력을 갈망하며 동시에 두려워 했다. 그래서 대명 개국과 함께 개인 호위무사들인 금의위를 정규로 편성했고,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정보집단 동창과 함께 운영하도록 하였다.


문제는 그들의 무예의 수준이었다.

금의위들은 고아출신들만 모집했고, 동창은 고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 대부분 가전무공이나 무림방파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홍무제는 꾀를 내었다. 무림방파들에게 혜택을 주고 비급을 얻어내 황궁무예를 정립하려 했던 것이다.


당시 홍무제의 인기는 대단했다. 원나라를 물리치고 중원을 통일한 농민 출신의 왕 아닌가. 아무리 관무불가침이 원칙이라고 하나 황제의 인기를 알고 있는 무림방파들도 마냥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임시 무림맹을 열어 각파의 기초 무공서, 혹은 수준 낮은 잡서들을 넘기기로 합의를 보게 된다.


그러나 홍무제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4황자이자 무골로 정평이난 연왕(燕王) 주체(朱棣)를 책임자로 직접 보낸 것이다.

연왕은 어릴 적부터 원나라와 싸우며 전장에서 자라 무공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단숨에 그들이 넘긴 무공서들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연왕은 이 사실을 알고도 홍무제에게 거짓을 고했다.

무공서들의 수준이 높으니 황실무예로 편찬하라 간언한 것이다.

그리하여 전국 무림방파의 무공을 기초로 하여 황실무예가 개발되었다.


시간이 흘러 홍무제의 사망 이후, 연왕의 조카인 건문제가 즉위했다.

연왕은 즉시 사병을 일으켜 정난의 변을 일으켰으며 수도인 남경(南京)을 초토화 시켰다.


금의위가 황궁무예로 맞섰지만 연왕과 그의 군대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금의위의 엉터리 무공을 속속들이 아는 연왕이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그들을 도륙을 내었다.

그는 금의위와 싸워야 하는 이 순간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연왕, 영락제는 새로운 금의위, 새로운 황실무공을 만들 생각을 했다.

새로운 지지 기반 위에 쓰레기 무예가 아닌 진짜 황실 무예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방법으론 무림 방파에게 진산비기를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락제는 생각을 바꿨다.

유능한 목수들과 대장장이들을 무당산에 부른 것이다.


그리고 선언했다.


북건고궁(北建故宮)

남수무당(南修武當)


북에는 자금성을 짓고 남에는 무당산을 중건하라고.


영락제는 장작 14년에 걸쳐 정락(淨樂), 옥허(玉虛)등 구궁(九宮)과 태현(太玄), 원화(元和)등 팔관(八觀) 및 암당(庵堂), 암묘(巖廟), 사정(祠亭) 등의 전각들을 무당산에 세웠다.


천주봉을 비롯한 37개의 봉우리에 잔도를 설치해 오를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무당파의 산문(山門)을 확장하고 입구에 무당파의 조사인 장삼봉의 동상을 세웠다.


이는 놀라운 행위였다. 무당산에는 무당파 말고도 크고 작은 도문(道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연단을 목표로 개인수련을 하는 도사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 모두를 황명으로 무당파에 강제 편입하게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중건이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영락제는 직접 무당산을 찾았다.

산문에 이르자 그는 말에서 내려 무당산에 예를 표했으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벗어 산문 앞에 있는 거대한 나무에 걸기까지 했다.

이것이 ‘해검지(解劍地)’의 기원이며, 그 누구라도 무당산에 오를 때는 무장을 이곳에서 해제해야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제왕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예를 보인 것이다.


무당파 장문인은 영락제의 얼굴을 직접 보자 오체투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과거 자신들이 했던 잘못이 있음에도 영락제는 무당산을 국책으로 중건했다.

무당파 모두가 이 무거운 선의에 두려움을 느꼈다.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오리까.”


“태극혜검의 진본을 내놓게”


장문인과 장문제자 말고는 아무도 볼수 없다는 태극혜검은 그렇게 무당산을 떠나게 된다.

그 후 천주봉 꼭대기에는 금과 구리로 만든 금전이 설치되었으며, 영락제가 무당산에 남기고 간 보검이 보관되었다.


정파 도문의 말석에 위치했던 무당파는 영락제의 남수무당(南修武當) 한번으로 북숭소림, 남존무당(北崇少林 북쪽에는 소림,南尊武当 남쪽에는 무당)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두 가지 소문이 전 중원에 퍼지게 된다.


‘영락제가 황제가 된 것은 무당산의 현천상제(玄天上帝, 도교의 신인 원시천존의 화신)가 그를 보위했기 때문이다’


조카를 죽이고 황제가 된 영락제. 그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무당산으로부터 만들어졌다.


무당산은 이제 도교 명산 중에 가장 오르기 쉽고 볼 것이 많은 곳으로 변모했으며, 황제가 예를 차린 문파라는 이야기 때문에 무당파는 백성들의 흠모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향화객이 늘어 문파의 수입도 늘어났다.


다른 소문은 무림인들의 귀에 들어갔다.


‘무당파가 태극혜검을 넘기고 영락제에게 서른세개의 전각을 받았다.’


소문··· 그러나 무당파의 변모를 보면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문파들은 앞다투어 자파의 진산비기를 북경으로 실어 올렸다.


모두가 쉬쉬했지만 그 후 어떤 문파가 성장했는지는 명확했다.

9파와 1방

그들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문파가 되었다. 산에서 내려와 속세제자를 받았으며 주요 도시마다 지부를 설치했다. 도시의 음식점과 객잔을 소유하고 돈을 벌었고, 각 성(成)의 병권을 가지고 있는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와 협력해 치안을 유지했다.

거지들의 집합이었던 개방은 이제 전국의 정보를 모았다. 반란의 정황처럼 중요한 정보는 북경과 가까운 개봉지부에서 일급으로 직접 다루었다. 그 정보가 어디로 가는지는 뻔했다.


그러나 황실무예의 탄생은 더디기만 했다.

황실서고에는 그의 꿈으로 모은 비급들이 가득찼지만 그 누구도 언뜻 나서 그것을 하나로 묶는 거사(巨事)를 해내지 못했다.

진산비기란 그 하나하나를 이해하는데도 수년에서 수십년이 걸린다.

그것을 하나로 묶으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또 필요하겠는가.


웬만한 고수가 아니고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다.


게다가 영락제 말년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몽골과의 전쟁, 대기근을 겪으며 궁이 빈곤해진 것이다. 녹봉조차 밀리기 시작하자 관리들은 부정을 저질렀고, 황실의 보물들을 외부로 유출하기 시작했다.


영락제와 몽골 전쟁에 나섰던 좌군도독(左軍道督) 송희문(宋熙文)은 이때 반출되던 무림 비급들을 비밀리에 사모았다.

병부가 그들의 역할을 대신하고, 함께하던 영락제가 죽을 날이 다가오자 송희문 스스로 살길을 도모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세 수레 분량의 비급들이 북경에서 의창의 송가장 장원으로 모였다.


이것이 현재 무림의 몇몇 수뇌부만 알고 있는 비사였다.


“사실 송가장에서 각 파의 무림비급을 보관하고 있다는 건 확인되지 않는 비밀이네. 그럼에도 몇 가지 의심 가는 정황이 있어 추측할 뿐이지.”


“그것이 무언가요?”


“그들의 무공일세. 원래 송가장이 무가(武家)로 정평이 난 곳이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의 기준이지. 그러나 송희문 이후 100년동안 그들은 무림세가로 빠르게 탈바꿈했다네. 이제 천하 5대 세가를 말할때 의창 송가를 으뜸으로 치지 않는가?”


“그렇죠. 호북 제일의 어상(鄂商,호북의 상인)이자 무과 급제자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명문 무가, 게다가 무림세력의 주축인 창천회 회주가 송현길(宋賢吉) 아닙니까?”


송현길은 송가장의 가주이면서, 우내십대고수(宇內十大高數)로 이름이 높은 자였다.

그는 두문불출하는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한번 손을 쓰면 반드시 상대를 죽인다하여 탈혼검(奪魂劍)으로 불리고 있었다.


“탈혼검 송현길··· 그를 두고 이런 노래가 있지.


그의 검은 후예(后羿)의 화살처럼 빠르고


그의 신법은 취한 듯 비틀(取步) 거리지만 누구보다 빠르다


자색노을(紫霞)이 지면 모두 도망가라


탈혼검이 시작되리니”


“...!”


“왜 모두들 송가장에 주목하는 지 알겠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일명이 비록 외부경험이 전무하지만 듣는 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태양을 활로 쏘아 맞췄다는 후예(后羿).

그의 추종자는 사상 최고의 쾌검 사일검법(射日劍法)을 쓰는 점창파다.


무림 역사상 취한 듯 걸으며 절학소리를 듣는 신법은 개방의 취선팔보(取仙八步) 밖에 없다.


그리고 자색노을(紫霞). 그것은 화산파의 자하신공(紫霞神功)을 뜻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세 문파에서는 송가장을 의심하겠군요. 자파의 무공을 익힌 것도 모자라 가전무공으로 전수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렇지. 그러나 지금은 단지 의심 단계고, 창천회의 회주 자리에 송현길이 앉아 있는 이상 추궁할 수도 없다네. 그러니 점창과 개방, 우리 화산은 무당논검보다는 송가장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더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니 사활을 걸껄세.”


“그 의심··· 아마도 맞을 겁니다.”


내 말에 화산 장문인의 눈이 커졌다.


“영락제에게 넘겼던 태극혜검의 진본. 이미 무당파로 돌아왔거든요.”


화산파 장문인이 말한 비사가 사실이라면, 태극혜검의 진본은 무당파에 없어야한다.

황궁무고에 남아 있거나, 적어도 송가장의 비밀창고에 보관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태극혜검은 무당파에 돌아와있고, 봉인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무당파가 송가장으로부터 태극혜검을 돌려 받기 위해 모종의 거래를 했었다는 거군. 그둘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배를 탄 것이나 다름 없겠어.’


나는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나는 태경이 바닥에 내던졌던 태극혜검을 기억한다.

그것은 역대 장문인들의 도혜가 첨부된 태극혜검의 진본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태경은 어떻게 태극혜검이 그곳에 있는 줄 알았던 것일까?

천주봉 꼭대기, 금과 구리로 봉인된 금전 속에 말이다.


나는 태경이 펼치는 태극혜검을 다시 떠올린다.


파도의 너울. 크기.


그리고 사부가 펼치는 태극혜검을 떠올린다.


분명 사부의 것이 더 크긴 하나 태경의 태극혜검 역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의문이 고개를 든다.

하루 아침에 태극혜검을 그런 수준으로 익힐 수가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태경의 재능이라도 금전을 들락거리며 몇개월은 익혔을 것이다.


누군가 태경에게 태극혜검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었을 것이다.

태경은 몰래 그것을 익혔고, 종국에는 사문의 공적이 되는 걸 감수하고 태극혜검을 훔쳐 밖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가 창천회 회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창천회의 회주가 송현길이란 사실도.


모든 가설이 정리되어 하나의 결론으로 모이고 있었다.


무당과 송가장, 둘 사이의 관계가 틀어졌거나 송가장이 태극혜검을 돌려받고 싶었던 거라면?

만약 송현길이 태경을 꼬득여 태극혜검의 진본을 빼내 오려 했던 것이라면?


나는 다시 떠올렸다.

그날 태경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금전에 불을 질러 모두에게 알린 것.

마지막에 조일명. 나를 찾아온 것.

그렇게 소중히 했던 태극혜검의 진본을 정작 내 앞에 집어 던진것.

태극혜검이 실패하자 죄책감에 가득찬 얼굴로 스스로 자결을 선택한 것.

그도 무당파를 사랑한 한 명의 어엿한 제자였다는 것


나는 눈을 떴다.


“오륜금시를 반드시 손에 넣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 생각이 맞다는 걸 확인한다면··· 송가장은 그날로 의창에서 사라지게 될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당파 막내사형이 요리를 너무 잘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안내 23.06.06 40 0 -
20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 23.06.05 63 2 13쪽
19 복마전(伏魔殿) 23.06.02 71 2 13쪽
18 유귀지도(劉貴之刀) 23.06.01 88 3 15쪽
17 유채론(劉菜論) 23.05.30 96 4 15쪽
16 송가난전(宋家亂廛) 23.05.28 122 3 13쪽
» 북숭소림 남존무당(北崇少林 南尊武当) 23.05.27 127 3 14쪽
14 삼재검법(三才劍法)_오타수정 23.05.26 151 2 13쪽
13 오륜금시(五輪金匙) 23.05.25 159 2 11쪽
12 무당논검(武當論劍) 23.05.24 182 2 15쪽
11 양의검(兩儀劍) 23.05.23 183 4 12쪽
10 금제(禁制) 23.05.22 200 6 11쪽
9 청증무창어(清蒸武昌鱼) 23.05.20 194 4 13쪽
8 화산파(華山派) 23.05.19 221 4 14쪽
7 순장(殉葬) 23.05.18 212 5 12쪽
6 백유판압(白油板鴨) 23.05.17 175 5 15쪽
5 장강 전어(长江鲥鱼) 23.05.16 188 4 15쪽
4 동파육(東坡肉)_2 +2 23.05.15 226 5 14쪽
3 동파육(東坡肉) 23.05.14 244 3 16쪽
2 철과단(鐵鍋蛋) 23.05.13 293 3 13쪽
1 서. 서호초어(西湖醋魚) 23.05.12 389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