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홍야(紅夜) 님의 서재입니다.

무당파 막내사형이 요리를 너무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읽고쓰기
작품등록일 :
2023.05.11 22:08
최근연재일 :
2023.06.05 18:27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3,570
추천수 :
70
글자수 :
122,101

작성
23.05.18 18:00
조회
210
추천
5
글자
12쪽

순장(殉葬)

DUMMY

배에서 자꾸 사람들이 죽어나자 선장은 받은 계약금을 돈을 돌려주며 우릴 내보내려 했다. 그러나 주재경이 은원보를 하나 들이대자 눈이 돌아가버렸다.


“남경까지 우리를 잘 데려다 준다면 처음 계약한 금액 이외에 이 은원보 하나를 주겠소.”


대운하 운반선들이 돈을 잘 번다고 하지만 은원보 하나는 이년 치 삯에 준하는 돈이었다. 남경까지 목숨만 잘 부지한다면 배를 하나 더 사고, 사업도 키워볼만한 돈인 것이다.


돈이 대단하긴 한건지 그 후로 뱃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태도도 싹싹하게 바뀌었다.



“작은 공자님, 탕약 드실 시간입니다.”


나보다 세살 아래 노꾼 삼정(三丁)이 하루 세번 탕약을 달여 왔다.


“이봐, 나랑 저기랑 동갑인데, 왜 나는 작은 공자고 저기는 큰 공자야?”


나는 턱짓으로 주재경을 가르켰다.


“큰 공자님은 돈을 잘 쓰시고, 무공도 강하시니까요. 작은 공자님은 잘하시는 게 없지 않습니까?”


“내가 잘 하는게 왜 없어···! 으윽··· 아이고···”


화를 내니 꿰매놓은 배가 땅기기 시작했다.


‘매일 부둣가 음식을 사서 배에서 먹으니··· 요리할 일이 없구나. 요리를 빼고 나면 나는 뭐지?’


배들은 대체로 항주에서 북경으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양곡이며, 해양 수입품들 모두 북경으로 올라가야 제값 이상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 경험상 그렇게 물을 거슬러 올가면 항주에서 북경까지 40일 이상 걸렸다.

남경에 바쳐진 전어는 장강을 타고 양주로 갔다가 거기서 경항대운하를 타고 거슬러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도 한달 이상 걸리는 일정이다.


물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그 속도보다는 두배는 빠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운반선은 시기상 절반쯤인 제녕(济宁)에는 왔을 것이고··· 우리가 내려가는 속도로 짐작컨데, 앞으로 이틀 정도면 전어 운송단과 만나게 되는 되겠군.’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재경이 이야기한 것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돌아간다는 선택지 말이다.


‘내가 돌아갈 수 있을까? 장유를 배신했는데···동창의 동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나는 강바람을 맞기 위해 선미(船尾,배위 뒷부분)로 향했다. 주재경은 선미 난간에 기대어 흐르는 물에 검을 닦고 있었다.


“내 유일한 단점이 실전 경험이 적다고··· 친구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말이야. 내 평생 경험한 것보다 최근 일주일이 더 빡센거 같아.”


말라 붙은 핏자국이 물에 풀려 실타래처럼 풀려가고 있었다.


“유귀, 잘 생각해봐. 뱃대지가 터져서 내장이 흘러나올 뻔했어. 내가 저번에 말한 거 잊지 않고 있지?”


“그래, 전어 가지고 돌아가라는 거.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싫어도 자꾸 계산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 버렸으니까.


“유귀, 다음 황제가 누가되든 네 요리를 싫어할 사람은 없어. 다들 네 요리를 좋아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너는 나처럼 도망자로 살 필요가 없다.”



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한동안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고, 주태경은 평소처럼 묵묵히 검술을 훈련할 뿐이었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의 검술은 아름다울 정도로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선두에 나와 훈련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선실로 돌아와 잠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의 침묵을 깬 것은 안개속에서 <대명(大明)>의 깃발을 나풀거리며 마주 다가오는 하나의 선박이었다.


“마음을 정했나?”


“그래, 돌아가야지. 네가 그렇게 애원하는데, 가야지.”


“잊지마. 위험하면 칙서를 확실히 보여줘. 거기엔 너를 도와 안전하게 북경으로 데려오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 적혀 있으니까. 아무리 간이 큰 녀석들이라도 황명을 거역할 수 없어.”

그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 같군. 내말 밥 잘 챙겨주고.”


“그래. 꼭 잡히지 말고 살아라.”


우리는 헤어짐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준비한 나무 판자 조각을 강위에 몇개 던저 띄웠다.


“오랜만에 하는 건데, 잘 될까 모르겠네.”


그의 몸이 가볍게 뜨더니 강위에 떠가는 나무조각을 밟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은 곧 안개에 휩싸여 사라져버렸다.


‘무림인들은 모두 저런 걸 할 수 있다는 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자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배가 가까워지자 나는 준비해둔 칙서를 들고 건너 편으로 뛰어 넘어갔다.


[우당탕!]


그 짧은 거리를 뛰어 넘는데도 나는 다리를 헛디뎌 한바탕 굴렀다.

낯선자가 배에 뛰어드니 당연히 금의위와 관리들이 뛰어나왔다.


“멈춰라! 대명제국의 행사다!”


“수상한 자다. 금의위는 저자를 당장 포박하라!”


“으아앗! 황명이요! 황명! 신궁감의 담당관은 나와서 황명을 받으시오!”


다행히 그들은 칙서를 알아보았다.


신궁감의 진선락(進宣絡) 소감(少監)이 나와 무릎을 꿇고 칙서를 받아 읽었다.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황제께서 육지로 전어를 내려서 이동하라는 명령이시구나. 배로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하루도 지체하지 말고 북경으로 올라오라고 하신다. 모두 하역할 준비를 하거라!”


“존명!”


“장귀 주자 아니오? 장인태감의 자제분이 직접 황명을 들고 오실줄은 몰랐소. 혹시 자금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신궁감의 병필태감 허백우(许柏宇)는 장유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밑에 있는 진선락 역시 지금 자금성의 돌아가는 분위기를 잘 모르고 있을 확률이 컸다.


“황제의 상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한달을 넘기기 힘들다고 하십니다. 살아생전에 꼭 전어를 드시고 싶다고···”


“하···한달. 오호통재(嗚呼痛哉,괴롭다)로다···”


진선락은 내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다.


“칙서를 보니, 마차를 이끌 한혈마가 있다 들었소. 말들은 어디에···”


“저쪽 배에 있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의위들이 배를 넘어가 말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그럼···주재경 3황자는 어디에?”


‘함정이었나···!’


[퍽!]


진선락의 주먹이 내 배에 날카롭게 꽂혔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단순한 주먹이 아니었다. 내장이 터져 나가는 듯 괴로움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내기 시작했다.


남경에서 출발한 신궁감이 반역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알리 없었다. 그들은 적어도 석달 전에 북경에서 떠났으니까. 그러나 주재경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자금성을 떠났다는 것을 아는 것은 북경의 수뇌부들뿐이다.


“소감, 아무도 없습니다! 3황자는 이미 도주한 듯 싶습니다”


“여기 선원들은 어떻게 할까요?”


“3황자의 탈출을 도운 자들이다. 살인멸구(殺人滅口)하라!”


“제발 살려주시오-! 으아아악!”


삼정의 비명이 머리뒤로 울려 퍼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전서구를 띄워 대기조에게 알리고 임청,요성,제녕까지 천라지망을 펼쳐라.”


“존명!”


‘전서구···!’


전서구를 간과하고 있었다. 대운하의 물줄기는 하나이니, 우리는 피하고 싶어도 그들과 만날 수 밖에 없다. 주재경이 미리 떠났기에 다행이었다.


“황명··· 황명이다! 감히 황명을 거역할 셈이냐?”


“하하하! 우리가 모시는 황제가 서로 다른 듯 싶구나. 천하가 이미 바뀐 것을 모르더냐?”


“크으···붕어하신 것이냐?”


“혼수상태에 빠지셨다. 6황자께서 대리청정(代理聽政,황제의 역할을 대신함)을 하시고 계시지. 붕어하시면 그분께서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르실 예정이다.”


“...!”


“장인태감께서 너의 목숨만 살려 오라고 하셨다. 3황자는 어디로 간다고 했느냐?”


“크크크··· 태자를 잡아오면 장유가 병필태감의 자리라도 준다 약조 하더냐?”


[퍽!]


분노한 진선락의 주먹이 다시 복부에 박혀 들었다. 이번엔 비명을 참기 어려웠다.


“크아악!”


“꼴을 보건데, 너도 그에게 버림받은 듯 싶은데 왜 상황을 굳이 어렵게 만드느냐. 3황자는 어차피 잡히고 죽게 되어있다.”


배를 내려다보니 상처가 터져 피가 진하게 베어 나오고 있었다.

머리가 핑 돌더니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이다.

보폭으로 짐작컨데 한 명은 동창의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한명에게는 좋은 사슴가죽을 덧댄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이곳의 피고름, 배설물 냄새와 어울리지 않은 익숙한 사향 냄새도 난다. 사슬에 묶여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장유··· 태감이요?”


“이젠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는 것이냐?”


“내 아버지와 어머닌, 어릴 적 홍수에 휩쓸려 돌아가셨소. 그리고··· 당신이 아비 구실이나 할 수 있겠소?”


[짝!]


오른쪽 뺨이 불에 데인 듯 화끈 거렸다. 입안이 터져 나가며 피맛이 번졌다.


“황제 폐하께서 붕어하셨다.”


“그런 것 같았소. 여기까지 울음소리가 가득했으니 말이오. 그런데 기이하게도 신하들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여인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했소.”


“너는 아직 처음이겠구나.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시면 그의 비빈들은 모두 순장(殉葬,죽여 같이 묻힘)을 당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죽을 것을 두려워 하며 통곡을 하는 게지.”


“그런 잔인한 풍습이 남아 있는지 미쳐 몰랐소.”


“새로운 황제 폐하께서 즉위 하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오래된 가지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하하하. 그대는 오래된 가지가 아니요? 아니지··· 거머린가?”


이번엔 반대쪽 뺨이 터져나갔다.


“끝까지 태자가 어디로 향했는지 말하지 않는구나. 그것만 말했더라도 두눈이 멀쩡했을텐데 말이야. 새로운 황제께서는 네 요리를 아주 좋아하셨다. 네 요리를 먹지 못하게 된다 말하니 슬퍼하시던군.”


“하하, 그러셨소? 그런데 그분은 내가 정한 주군이 아니오. 아쉽지만 다른 요리사를 구해야 겠소.”


“그럴 예정이다. 붕어하신 황제폐하께서 유언을 남기셨으니 듣거라.”


“세이공청(洗耳恭聽, 귀를 씻고 듣다)하겠소. 말하시오.”


“유귀, 죽어서도 그의 음식이 먹고 싶구나.”


“하하하! 그게 정말이오? 정말 황제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셨소? 나를 죽이기 위해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다. 병필태감이 직접 기록한 사실이다.”


실력있는 요리사로 살다보면 어떤식으로든 찬사의 말을 듣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내 생을 지배하는 찬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자금성에 들어 온 것이오.

내가 살면서 가장 잘 한 것도 자금성에 들어온 것이오.”


“유언은 그게 다인가?”


“전어··· 이번에 전어를 올릴 적에 꼭 찜으로 올리라 하셨소.”


“그래, 그 말은 내가 상선감과 신궁감에 직접 전하지.”


내 목에 명주로 만든 두꺼운 줄이 걸렸다.

그것을 동창의 첩형(貼刑, 동창의 2인자)이 내 뒤에 있는 창틀에 거는 듯 싶었다.


‘유 주자, 미안하오.’


내 귓가에 작게 울음섞인 강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당신이었군 강휘··· 당신이었어.’


동창에서 온 자가 강휘라서 다행이었다. 요리에 재능은 없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임했던 그였다. 그저 임무였으니까.


강휘가 있는 힘껏 줄을 끌어 당겼다.

목이 졸려 온다. 나는 있는 힘껏 버둥거렸다. 살고 싶다기 보다는 눈 앞에 장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있는 힘껏 살다 갔다고.

장유가 지금 날 보고 있다면 분명 그가 죽는 순간 내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점차 흐려진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 때도 요리를 하고 싶다.

그저 자유로운 요리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당파 막내사형이 요리를 너무 잘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안내 23.06.06 40 0 -
20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 23.06.05 62 2 13쪽
19 복마전(伏魔殿) 23.06.02 71 2 13쪽
18 유귀지도(劉貴之刀) 23.06.01 88 3 15쪽
17 유채론(劉菜論) 23.05.30 95 4 15쪽
16 송가난전(宋家亂廛) 23.05.28 121 3 13쪽
15 북숭소림 남존무당(北崇少林 南尊武当) 23.05.27 126 3 14쪽
14 삼재검법(三才劍法)_오타수정 23.05.26 151 2 13쪽
13 오륜금시(五輪金匙) 23.05.25 157 2 11쪽
12 무당논검(武當論劍) 23.05.24 181 2 15쪽
11 양의검(兩儀劍) 23.05.23 183 4 12쪽
10 금제(禁制) 23.05.22 197 6 11쪽
9 청증무창어(清蒸武昌鱼) 23.05.20 193 4 13쪽
8 화산파(華山派) 23.05.19 220 4 14쪽
» 순장(殉葬) 23.05.18 211 5 12쪽
6 백유판압(白油板鴨) 23.05.17 174 5 15쪽
5 장강 전어(长江鲥鱼) 23.05.16 188 4 15쪽
4 동파육(東坡肉)_2 +2 23.05.15 225 5 14쪽
3 동파육(東坡肉) 23.05.14 244 3 16쪽
2 철과단(鐵鍋蛋) 23.05.13 293 3 13쪽
1 서. 서호초어(西湖醋魚) 23.05.12 389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